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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게임의 스노우볼은 격하게 굴러간다.
철두철미한 오브젝트 관리로 쥐어 짜내는 탈수기 운영!
딱히 그런 건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가 개인기 위주로 멋대로 날뛰었다.
그럼에도 호흡이 척척 맞으며 게임을 손 쓸 도리가 없게 터트렸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역시 탑과 봇라인의 압승이다.
오랜만에 정줄놓고 한바탕 제대로 날뛰고 있다.
<곰이다!>
파밍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몰아붙인다.
첫 번째 세트가 커피라면 이번 세트는 T.O.P다.
나와 탈리반의 점멸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교대로 이니시를 걸어댄다.
순서상 이번에는 내 차례다.
곰돌이가 탑라인 2차 포탑을 끼고 있는 크레이브즈와 랄라를 동시에 덮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적팀의 봇듀오는 꽤나 안정적이지만 빈틈이 없다면 강제로 만들면 된다.
기절한 랄라에게 탈리반이 돌진하며 토이치가 궁극기를 퍼붓자 그대로 순삭.
자랑하는 궁극기, 거대화를 쓸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역갱이 대기하고 있기는 했지만 있어봐야 뭣하겠는가.
<버거킹!>
아이템 격차가 심각하게 나는 상황에서 타워는 무쓸모.
탈리반이 죽더라도 토이치가 싹 다 정리하는 그림이다.
범접할 수 없는 거리에서 쏘아지는 무차별 사격에 크레이브즈가 녹아나고 거미여왕도 주춤한다.
애당초 랄라가 잡힌 시점에서 3:3은 성립하지 않는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그나마 성했던 탑라인의 2차 포탑이 그대로 무너진다.
이대로 미드와 용 쪽에 순회공연.
양 팀의 탑라이너가 맞서는 봇 2차 포탑 근처에서도 한 차례 더 피바람이 불 예정이다.
뚜루뚜 빠라빠라~!
초반부터 빠르게 2킬을 먹고 성장 가속도가 붙은 씨지맥의 젤리맨.
완전히 기울어져 버린 라인전 구도는 도저히 두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정령힘의 향상이 나온 젤리맨이 전기쥐를 대놓고 다이브친다.
젤리맨이 자랑하는 E스킬, 몸통 박치기를 쓸 필요도 없다는 듯 걸어가서 뭉개버린다.
치지지지직!!
몸통 박치기만 맞지 않으면 어떻게 승산이 있다는 걸까.
전기쥐가 백만볼트를 사용해 젤리맨을 기절시키지만 고작해야 0.3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쥐의 데미지는 박히지도 않는다.
젤리맨이 주위에 퍼진 젤리들을 주워 먹을 때마다 체력이 뭉텅뭉텅 차올랐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학살 중입니다!
젤리맨은 적에게 스킬을 맞힐 때마다 젤리가 하나씩 튄다.
특히 궁극기를 사용하면서 몸을 펑펑! 터트릴 때는 주위가 완전 푸딩 바다다.
그 푸딩같은 젤리들을 하나 주워 먹으면 최대 체력의 4%가 회복된다.
정령힘의 향상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그 이상.
스킬을 모두 맞히자 총 일곱 개의 젤리가 튀겼고 젤리맨의 체력은 반피 가깝게 회복됐다.
"오 마관신 나오니까 데미지 장난 아니네. 말화이트랑 비교가 안되는데?"
"마관신? 탱커로 마관신을 가? 하긴 뭐 흥했을 땐 뭘 가도 상관없겠지만."
원딜러들은 팀이 아이템을 탱탱하게 둘러주길 바라는 습성이 있다.
헬멧이 어차피 이긴 게임이 괜찮겠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어가지만 마과신의 선택은 지극히 옳다.
현재 젤리맨은 마관신의 효율이 이상적이다.
적팀에 CC기가 많으면 탱커들은 필히 아테나의 신발을 가서 강인함을 보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타에서 진입했다가 스킬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바보처럼 농락 당한다.
하지만 이는 궁극기에 강인함 75%나 달린 젤리맨에겐 해당되지 않는 소리다.
오히려 마법 관통력의 신발로 딜링을 올리는 편이 맛깔난다.
잘 큰 젤리맨의 광역딜은 어지간한 딜러 못지 않다.
"여기서 아이템 뭐 가지? 적 AP많은데 심홍의 완드까지 가버릴까?"
"오, 그러면 거의 트루 데미지 박히겠네. 괜찮은데?"
적당히 맞장구쳐주자 씨지맥이 끄덕끄덕 심홍의 완드 하위템을 구입한다.
갑작스레 픽한 만큼 머릿속에서 템트리가 정립이 안된 듯하다.
맞장구까지 쳐줄 필요까지 있을까 하지만 씨지맥이 심홍의 완드를 올리면 나도 좋다.
한타 때 필히 적진영 안에서 난리부르스를 치게 될 젤리맨.
젤리맨이 심홍의 완드로 적의 마법 저항력을 깎아내면 내 풀콤보의 데미지도 덩달아 상승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와 씨지맥 둘만의 광역딜로 한타가 아예 끝나버릴 수도 있다.
찰칵!
이번 판의 컨셉은 나 또한 극딜이다.
마관신에 연이어 괴이한 가면까지.
씨지맥 심홍의 완드를 올려준다면 마법 관통력만 거진 60에 달한다.
룬과 특성을 감안하면 얼추 그쯤 된다.
'전화위복.. 아니, 자업자득이라는 표현이 맞겠네. 참 재밌게 됐어.'
삼선 레드가 해온 되도 않는 도발은 오히려 지들 꾀에 지들이 고꾸라진 꼴이 됐다.
본래라면 픽될 일이 없었을 젤리맨은 오늘 결승전 내내 활용이 가능하다.
설사 밴이 된다 하더라도 밴카드를 하나 잡아먹는 꼴이니 그것만으로도 이득이다.
두 번째 세트의 밴 때문에 일어났던 짜증을 가라앉히느라 게임의 흐름이 잠시 지체됐다.
이제는 제대로 운영을 들어가서 빠르게 게임을 끝낸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이어받아 세 번째, 네 번째 세트도 멘탈이 박살난 상태에서 끝장낸다.
─삼선 AllMaster님이 용을 지목.
하도 유리한 지라 용의 임자는 당연히 우리 거다.
적들은 용 근처조차 오지 못했다.
하지만 용 좀 내준 걸로 멈춰줄 턱이 없다.
용에 이어 바론까지 접수한다.
상대는 그것만은 어떻게 저지하려 하겠지만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끄으응..!
부쉬 안에 숨어있던 씨지맥이 자세를 고쳐 잡는다.
젤리맨이 기를 모으면 몸통 박치기의 도약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효과가 비슷한 바람에 말화이트 같다고 오해받지만 사거리부터 격이 다르다.
궁극기까지 생각하면 상위 호환이라는 말조차 부족하다.
뚜루뚜 빠라빠라~!
젤리맨이 마치 새총처럼 푸슝-! 쏘아져 나가 적 세 명을 깔아 뭉갰다.
나름대로 거리를 유지한 채 눈치를 보고 있었음에도 완전 무의미.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궁극기를 연계하자 진영이 급속도로 붕괴된다.
탈리반과 토이치가 보조하자 내가 나설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야.. 오늘 미드라인 존재감 완전 제로네. 나만 존재감 없는 게 아니니 아무래도 됐지만."
젤리맨을 포함한 세 명만으로도 적 다섯 명은 36계 줄행랑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는 탓에 잔당 처리할 시간이 아깝다.
존재감이 없어서 불만이라 툴툴 대는 키나키나와 함께 바론을 친다.
몸빵은 곰돌이가 대신 해준다.
<곰이다!>
바론은 당연히 스턴이 걸리지 않지만 기분이라도 낸다.
그렇게 한 10초쯤 바론을 치고 있자니 아군이 승전보와 함께 되돌아온다.
적 세 명을 소탕하고 두 명을 빈사 상태로 만들어 돌려 보냈다.
바론 백작은 당연히 우리 차지다.
─아군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어진 게임의 흐름.
결승전이라는 무대가 무색하게도 일방적이다.
나와 씨지맥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조금은 아쉽다.
'정석적으로 차근차근 나왔다면 꽤나 고전했을 텐데.'
삼선 레드의 전력은 만만치 않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중반만 가면 그 시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내가 첫 번째 세트에서 괜히 긴장을 했겠는가.
만약 나이즈와 크레이브즈가 무난하게 성장한 상태에서 한타를 맞붙었다면..?
아군의 앞라인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녹아버렸을 게 분명하다.
승산은 높게 쳐줘도 4할이 안됐다.
그 점을 알고 있었기에 허를 제대로 찔러 완성되기 전에 무너뜨렸다.
덕분에 첫 세트를 가져갈 수 있었지만 다음 세트부터도 또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런데.. 상대가 마음 조급하게 나서줌으로서 오히려 빈틈이 늘었고 결과는 이하동문.
팀의 특색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나 연달아 두 세트 털리면 멘탈.. 정상 아닐 텐데.'
동정의 여지는 전혀 없다.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니 책임도 져야 할 거다.
대회의 흥행, 프로게이머 되는 자로서 물론 염두해둬야 하겠지만.. 가끔은 괜찮지 않은가?
짧고 굵은 임팩트 있는 경기.
마지막으로 내가 대회의 후미를 장식한다면 더없이 완벽하다.
.
.
.
* * *
두 번째 세트 직후.
삼선 레드의 부스 안은 난리가 났다.
투자한 것은 많은데 비해 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왜 갑자기 전략을 바꾼 건데...요? 아니 그리고 콩머스는 또 왜?"
"나는 코치로서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팀의 주장인 다대기가 대표로 코치에게 따지고 있다.
이에 코치가 반문하지만 서로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 진다.
생각 이상으로 사정이 녹아있는 듯 감정은 해소될 것 같지가 않았다.
이야기가 진행되자 잠자코 있던 나머지 팀원들도 격분해서 입을 놀렸다.
"다른 건 몰라도 콩머스는 맥형이 얼마나 연습했는지 다들 알고 있잖아? 코치는 더욱 잘 알 테고."
"당신 설마 하지만 감독한테 놀아나는 거 아니야?"
의문이 심화된다.
그저 씨지맥을 저격밴했다..
그 정도라면 게임에 변화를 주기 위한 방식이었다.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마지막 밴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콩머스는 씨지맥이 이전부터 꾸준히 연습하고 있던 카드다.
만에 하나 주력픽들이 전부 밴됐을 때 사용하기 위해서 칼을 갈아놨다.
그런데 그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밴해버렸다.
"밴 선택하기 직전에 콩머스라고 외치지만 않았어도..! 내가 콩머스를 고를 일은 없었어. 정말이야!"
혹시 자신이 덤터기를 쓰게 되는 건 아닐까.
탑라이너로서 밴픽을 맡은 호모가 서둘러 말을 흐렸다.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될 경우를 막기 위해서.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잖아. 이건 확실하게 코치가 문제지."
"아니.. 솔직히 그냥 게임을 진행한 우리도 문제가 있다고 나만 보나..?"
한 번 여론이 분열되자 겉잡을 수 없어졌다.
우리가 아닌 코치 때문이다.
그 남탓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콩머스가 밴된 직후 그들은 속으로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리쉬었다.
씨지맥의 비장의 카드가 살아있는 한 그건 막았다고 볼 수 없을 테니까.
물론 전기쥐는 콩머스를 상대로도 나쁘지 않지만 라인전이 어쩌다 풀리게 된다면?
탑콩머스가 의병대까지만 어찌저찌 갖춰지면 게임이 어떻게 비벼지는지..
삼선 블루와 수 번 가졌던 스크림을 통해서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기에 안심했다.
씨지맥의 모든 카드를 봉인했으니 이번 경기는 이긴 거나 다름없다고.
그는 물론 훌륭한 선수지만 대세 카드를 못 다룬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주챔피언을 모두 밴하면 엄청나게 무력하다.
같은 게임단에 속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젤리맨.. 설마 우리 처음부터 의심 받고 있었던 거 아니야?"
"탑콩머스로 연막 치고 딴 데서는 젤리맨을 연습하고 있었다던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묘한 구석이 있다.
한 번 그렇다고 믿기 시작하면 사실이 된다.
적어도 그 사람 안에서는 그것만이 진실이며 정의다.
다단계, 사이비 종교등이 얼토당토한 사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발본색원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심각히 갔을 때 그렇다는 거고..
적게 잡았을 때는 커뮤니티 등에서 흔히 보이는 마녀 사냥이 대표적이다.
그냥 대학교나 친구들 사이의 집단에서도 이유없는 왕따 현상.
방관자로서 누구나 한 번은 본 경험이 존재한다.
드라마만 봐도 흔하게 나온다.
덜컥!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 종지부가 찍힌다.
상당히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삼선 레드의 부스 안에 누군가가 난데없이 들어왔다.
"그래.. 이 모든 게 나의 책임이다."
부스 안에 들어온 누군가.
다름아닌 이 모든 일의 원흉일지 모를 감독이었다.
사람 낯짝이 두꺼워도 정도가 있지 이게 무슨?
이어진 감독의 한 마디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부류였다.
"나는 너희들을 우승시키고 싶었다. 레드든, 블루든 똑같이 아끼지만 적어도.. 생판 외지인에게 트로피를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아니겠나?"
감독이 진지한 변명은.. 선수들의 안과 밖을 모조리 충족시켰다.
밖으로는 감독의 말마따나 Unknown Error가 아니냐느니 의혹이 있는 외지인.
올마스터가 블루의 주역이 됐다는 사실이 눈꼴 사납다.
삼선 레드와 블루, 형제팀간의 대결에서 맛있는 부분만 쏙 뺏어가는 꼴이 아닌가?
그리고 안으로는..
솔직하게 안심했다.
아, 우리는 책임질 필요가 없구나.
감독이 저렇게 말했으니 감독이 시킨대로 했다고 하면 되겠구나.
어차피 정나미가 떨어진 사람이니 탓하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여기서 한 걸음 더 감독이 밀어붙이자 모두가 넘어왔다.
"조금 심한 전략을 사용한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너희는 아무 생각 안 해도 돼. 일단 이기는 것만 집중하도록. 알겠지?"
그렇다, 이건 전략이다.
그리고 선수로서 팀의 윗사람인 코치와 감독이 시키는 대로 한 거다.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머지 네 명도 차례차례 납득해나갔다.
이 모든 것을 벙찐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이청호 코치.
그는 상황이 잘못돼가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금일 한 편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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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