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
봄이 온다
내 노림수라 함은 다름이 아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난전.
적이 실수를 해오기를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다.
'정확히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지만.'
적의 실수를 유도한다.
확실한 킬각을 잡기 힘든 인어의 특성상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괴롭힌다고 웅크려 있는 적이 공격적인 태세를 취해줄까?
그것을 위한 미끼 행위다.
기회가 찾아오는 데에는 생각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티링!
거센 견제를 최대한 돌려 맞으며 버티던 적팀도 한계에 부딪혔다.
정확히는 내가 조금 맞을 만하게 때렸다.
너무 세게 때리면 애가 집에 가니까.
집에 가서 엄마한테 이르진 않겠지만 체력 채워서 다시 돌아온다.
내가 원하는 건 엄마한테 이르는 게 아니라 형을 불러오는 쪽이었다.
"뭐야, 리심? 지금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갱킹에 헬멧이 깜짝 놀라 당황한다.
투 버프를 챙겼으니 탑이나 미드에 얼굴을 비출 차례 아닌가?
상대 쪽에 심리전을 걸어왔다.
현재 탑과 미드는 아웃섹의 갱킹 때문에 사리고 있다.
명진이도 동선이 강제로 묶여버렸다.
그럴 거라 예상한 아웃섹은 버프를 챙긴 후로 곧장 귀환해 일직선으로 봇을 달렸다.
전체적인 판짜임이 완벽하다.
상대가 자신의 귀환을 알아챌 타이밍을 주지 않기 위해 기동력의 신발까지 구비했다.
일련의 심리전은 리심을 잡은 아웃섹의 기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아!
기동력의 신발 덕분에 눈에 띄게 빨라진 이동 속도.
여기에 방로라는 이동 수단까지 더해지니 눈 깜짝할 새다.
리심이 던진 음파가 내 인어의 꼬리에 아슬아슬 스쳤다.
음파를 맞힌 리심이 지체없이 날아온다.
이후에 그려질 그림은 상상이 간다.
다른 이도 아니고 아웃섹의 리심이라면 내가 겨루었던 미터스에 필적한다.
필적할 뿐 동등한 수준이라는 소리는 결코 아니지만.
<해일이당-!>
리심이 나에게 당도하기까지 그 찰나.
나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궁극기를 사용했다.
거대한 파도를 소환하여 적을 쓸어버린다.
리심을 포함한 세 명의 파도에 휩쓸린다.
뭐, 임팩트만이다.
실질적인 데미지는 어마어마하지 않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를 향해 날아오던 리심의 날라차기가 끊겼다.
연이어 예측샷으로 들어간 물방울이 리심에게 닿았다.
두둥실~
인어의 Q스킬, 물방울은 적을 1.5초간 물방울에 가둬 기절시킨다.
제법 괜찮은 효과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두 가지 문제.
탄속도 느린데 예상 피탄지가 동그랗게 훤히 보인다.
설사 무빙할 짬이 안 나와도 생존기라던지 점멸로 못 피하면 바보다.
하지만 리심은 파도를 맞아 잠시간 행동불가가 됐다.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두둥실 물방울에 갇힌 리심은 단순한 표적이다.
토이치가 자신있게 앞무빙을 하며 독화살을 펑펑 쏴재낀다.
7초에 한해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긴 사거리를 주는 토이치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궁극기.
관통된 화살이 리심을 꿰뚫고 크레이브즈에게 다다른다.
심지어 느려지기까지 한다.
철써덕~!
리심은 이미 아웃 오브 안중.
앞무빙을 하며 더블 킬을 노린다.
그 음흉한 심중을 눈치챈 것인지 크레이브즈가 점멸을 사용해 미리 내뺐다.
훌륭한 판단이다.
아마 1초만 늦었어도 독중첩이 하나 더 쌓이며 맹독 폭발로 죽게 됐을 거다.
그것도 실드 반응을 해냈을 때의 기준으로.
이~쿠우!
물방울에서 풀려난 리심이 토이치를 뻥 차재끼고 도망을 꿈꿔보지만 어림없다.
멍청하게 당구에 차여줄 위치에 있었을 리가 있나.
맞점멸로 따라가 찰싹! 때려준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넘실거리는 물결을 선마스터한 덕에 데미지가 상당하다.
돌아오는 물결이 체력을 회복시켜주자 내 체력은 온존하다.
적의 포화를 뚫고 유유히 생존해 돌아왔다.
"오, 역관광 쩔었다. 저 점멸있는데 다이브 콜?"
"아서라, 한나도 곧 6레벨 찍는다."
아웃섹의 리심은 물론 수준이 높다.
아니, 세계적으로 따져도 탑클래스에 손꼽힌다.
하지만 미터스와 비교할 만한 수준은 될 수 없다.
'경험이 턱도 없어.'
피지컬적인 프로게이머들은 흥분하기 쉽다.
이거 들어가면 필킬 아니냐?
솔로랭크였다면 충분히 킬각이었을 상황이 대회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상대의 반응이 엄청 빠르지는 않겠지.
그런 낙관적인 생각은 씨알도 안 먹힌다.
프로 리그에서는 칼같은 대응과 정밀한 연계로 적팀의 슈퍼플레이를 사전에 방지한다.
피지컬이 높다는 장점이, 자신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되려 독으로 작용한다.
그렇기에 프로게이머는 뜨거운 심장과 더불어 차가운 두뇌를 가져야 한다.
선천적으로 가능한 케이스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경험으로 완성된다.
지금의 아웃섹에게는 없는 것이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회심의 갱킹이 갱승으로 끝난 데다 적 봇듀오마저 체력이 크게 깎였다.
한나가 궁극기를 사용해 한 차례 회복하긴 한 것 같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계속되는 라인전 견제 속에서 천천히 허물어가던 포탑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뭐, 킬 한 번 따냈다고 게임이 뒤집어진 건 절대 아니고 여전히 불리하긴 하지만.. 적어도 해볼 만해진 건 사실이지.'
이번 판의 나는 서포터다.
아니, 당연히 서포터긴 하지만 정말로 순수 100% 서포터다.
막 딜템 올려서 원딜러 때려 잡고 한타에서 깽판치는 무늬만 서포터가 아니라 진짜로 원딜을 보조한다.
한타 캐리력이 손꼽히는 원딜러 토이치라면, 그리고 헬멧의 실력이라면 기대해봄직 하다는 판단.
더욱이 실수를 했다고 하나 아군 미드라이너 키나키나도 역전의 찬스를 살피고 있다.
코리아나라는 챔피언이 으레 그렇듯 한타에서 궁극기 한 번만 잘 써주면 된다.
'토이치랑도 엄청 잘 맞고 말이야.'
역으로 말릴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아이디어를 귀뜸해주자 단박에 실행된다.
토이치가 미드라인을 향해 살금살금 기어갔다.
<살금살금~!>
은신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암살자로도 활용되는 토이치.
하지만 적팀의 나이즈는 너무 잘 컸다.
아직 10분도 되지 않은 타이밍에 여제의 눈물방울과 억겁의 스태프 하위템이 갖춰졌다.
임관 준비 중인 대장군을 따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적의 턱 밑까지 토이치가 접근했다.
호롱!
나이즈는 방심하고 있었다.
봇라인이 깨진 건 맞지만 토이치가 온다고 해도 노상관.
이 정도로 잘 큰 나이즈는 원딜러 정도야 보이는 순간 찢어발길 수 있다.
설사 갱킹이 한 명 더 와도 풀콤보에 발화를 박으면 토이치는 순살 치킨이다.
그럴 거라 생각했겠지만.
콰드득!
허공에서 코리아나의 궁극기가 울린다.
나이즈는 붕떠서 중앙에 쳐박힌다.
중력 장판까지 토이치는 빨라지고 반대로 나이즈는 느려진다.
후웅!
치지직..!
나이즈는 토이치라도 잡을 속셈으로 풀콤보를 때려 박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잘 박히지가 않는다.
코리아나의 공이 토이치에게 보호막을 씌워주며 방어력과 마법저항력을 상승시켰다.
나까지 가세하자 나이즈는 완벽하게 수세에 몰린다.
철써덕~!
멀리서 토이치에게 넘실거리는 물결을 퍼부어 체력을 채워준다.
물결은 한 번 더 튕겨나가 나이즈의 체력을 깎아낸다.
나이즈는 뒤늦게 도망을 꿈꿔보지만 헛수고.
은신한 시점에서 비누 방울이 묻어있던 토이치의 평타는 나이즈를 끝까지 따라가 추살한다.
"오, 대박인데? 제대로 잘라 먹었어."
"이런 연계가 가능하구나. 상상도 못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상당히 낯선 플레이다.
은신 챔피언에게 스킬을 연계하다니?
적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스킬이 써진 꼴이다.
어안이 벙벙하겠지만 엄연한 팀플레이의 한 방식.
방심한 적에게서 킬포인트를 따왔다.
'이제 겨우 따라간 셈이지만.'
불리하게만 흘러가던 게임의 흐름에 물꼬가 트인다.
바야흐로 대반격의 서막이다.
.
.
.
* * *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미드, 정글이 중심이 되어 게임을 풀어나가는 흐름.
삼선 레드로서는 필승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게임이 산으로 간다.
"토이치! 토이치 안 보인다. 탑? 미드?"
"봇이야. 아, 죽었다..."
한 입, 두 입 토이치가 킬을 먹기 시작하자 말릴 수가 없다.
은신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독화살을 펑펑 쏴재끼니 조금만 방심하면 당해버린다.
방금도 봇라인의 웨이브를 한 번 밀고 빠지려던 크레이브즈를 토이치가 암살했다.
본래 이렇게 암살이 와도 크레이브즈는 도리어 환영하는 입장이다.
애초에 나이즈도, 크레이브즈도 토이치를 상정해서 픽했다.
이번 세 번째 세트는 어떻게든 삼선 블루를 이기고자 하는 집념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자신들이 당했다면 억울해서 팔짝 뛰었을 치사한 꼼수를 몇 개나 사용했다.
그랬을 텐데, 암살자인 토이치가 급성장하자 밸런스가 와르르르 무너져 내렸다.
"봇 성장을 너무 방관했나.. 근데 솔직히 미드킬은 당할 수밖에 없었어. 어떻게 그렇게 들어올 생각을 다 했냐.."
"맨 처음에 실수한 건 나였지. 일단은 집중해서 해보자."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봇라인전을 밀려버린 건 봇듀오의 탓.
갱승을 내버린 건 정글러의 탓.
미드 로밍을 당해준 건 미드라이너의 탓이다.
각자가 조금씩 잘못을 떠안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포기하기엔 한참은 일렀다.
"아직까지 충분히 반반이고, 내가 한타에서 말도 안되게 죽지 않는 한 이길 수 있어."
"그래, 용쪽 시야 천천히 장악하면서 한타각 재보자."
토이치의 성장은 물론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반 한타에서 나이즈는 패왕의 범주에 든다.
대장군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었겠는가?
딜이면 딜, 탱이면 탱 혼자서 3인분을 해낸다.
전차와도 같은 막강한 위력 만큼 단점도 뚜렷하긴 하다.
AP챔피언 주제에 사거리가 원딜 수준이라 CC기에 취약하다.
하지만 이는 삼선 레드의 미드라이너, 다대기에게 해당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의 나이즈는 수준급의 원딜러들처럼 카이팅을 통해 꾸준한 지속딜링을 자랑한다.
"혹시 몰라서 아테나의 신발도 샀고 완벽해."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잘 생각했어. 조급해 하지 말고 앞라인 녹이기 싸움으로 가자. 우리 화력이 쟤네보다 압도적이야."
토이치가 제법 잘 성장했다고는 하나 그 위력을 백분 발휘하려면 적어도 3코어는 나와야 한다.
아니, 4코어는 나와야 자신들을 막아 세울 수 있다.
그것도 값비싼 무극의 대검이 아니라면 화력 싸움에서 자신들이 무조건 우위.
무극의 대검은 이제 겨우 20분을 갓 넘긴 시점에서 바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중반 한타에서 자신들이 질 여지는 눈곱만큼도 없다.
여기에 하나의 확신이 더해진다.
"대악마의 한숨까지 떴어! 진짜 질래야 질 수가 없다. 제발 좀 덤벼줬으면 좋겠다."
나이즈가 들고 있던 두 번째 코어 아이템, 여제의 눈물방울 상위템인 대악마의 지팡이가 대악마의 한숨으로 진화했다.
본래라면 이렇게나 빨리 나올 아이템이 아니지만 나이즈가 워낙 잘 컸다.
초반에 킬을 먹은 나이즈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세기 때문도 있지만 다른 하나.
여제의 눈물방울이 빠르게 나오면 대악마의 한숨도 그만치 빠르게 완성된다.
아이템이 진화하면 가시적인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액티브 효과가 쏠쏠하다.
가지고 있는 마나를 소모하여 대량의 실드를 덧씌운다.
안 그래도 억겁의 스태프 덕에 딜탱을 겸하는 나이즈가 날개를 단 격이다.
중반 한타의 패왕, 대장군이라는 이명을 제대로 떨칠 기회다.
"쳐, 쳐! 나이즈, 크레이브즈라 금방 죽인다."
"오면 조금씩 빠지다가 용 잡자마자 바로 덮치자."
한 차례의 오더가 빠르게 오가고 삼선 레드는 행동을 개시했다.
안타깝게도 자신들의 조합엔 대치 상황에서 효율적인 포킹 스킬이 없다.
용을 쳐서 한타를 유도하는 것이 베스트.
화력이 하도 좋아서 용 따위 카스테라 마냥 살살 녹일 수 있다.
그렇게 한타가 열리기만 하면 자신들이 높은 확률로 이긴다.
콰라라라랑!!
기다렸던 결과다.
자신들이 용을 치자 상대 쪽에서 이니시를 걸어왔다.
올마스터의 인어가 거대 해일을 불러 일으켜 덮쳐온다.
임팩트는 가히 어마어마하지만 그 효과는 뜨뜻미진근.
파도에 닿으면 잠깐 휘말리고 느려지는 게 전부다.
배티나 조아라 마냥 주문력 템을 올린 것도 아니라 변변찮은 데미지다.
용을 가져가는 데엔 하등 불편 요소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까꿍! 숨어 있는지 몰랐지!? 끄하하하!>
아무 것도 없었던 허공에서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 토이치가 궁극기를 켜고 난사해왔다.
중반 한타에서 원딜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얕보고 있었는데 인어의 버프가 더해지니 위력이 상상 이상이다.
느려진 상태에서 계속해서 맞는다면 이건.. 위험하다.
'내가 움직일 때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다대기는 다가오는 해일을 뛰어넘었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