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83화 (483/803)

483====================

봄이 온다

거대한 파도에 홀로 맞서는 한 명의 인간.

대자연의 엄습을 거스르려고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타의 상황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최고잖아?'

전장의 주인공이 된 듯한 흥분감에 다대기의 기분은 크게 고조됐다.

하지만 흥분과는 별개로 머리 안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마치 한 꺼풀 벗어던진 기분이다.

어째서일까?

다대기는 금새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반드시 꺾어주마..!'

저 올마스터라는 자가 진실로 Unknown Error인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단순한 오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정도로 빛나 보이는 선수..

씨지맥 이후로 만나본 적이 없다.

그를 꺾는다면 자신도 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에 악착같이 전력을 짜냈고 결국 도달할 수 있었다.

자신은 확실하게 저 자에게 닿았다.

'나는 한국 최고의 미드라이너가 될 사람이다.'

몰려오는 파도를 뛰어넘어 공세에 들어간 토이치를 노린다.

혹시 타이밍을 잘못 재면 어떡하지?

평소였다면 스킬이 들어오는 찰나 동안 수 번은 고민하다 접었을 무모한 도전이다.

그에게 닿고 싶다는 욕망이 성공이란 결과물을 빚어냈다.

미드라이너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다대기는 확신에 찼다.

지금껏 이만치 깔끔하게 스킬 콤보를 넣은 적이 없었다.

나이즈가 토이치에게 엄청난 속도로 스킬을 쏟아부었다.

후웅!

치지직..!

토이치가 미드에 로밍을 왔을 때는 순간적으로 녹이지 못했다.

아이템도 부족했을 뿐더러 코리아나의 궁극기와 실드가 방해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이즈가 가장 강력한 2코어 타이밍.

실드를 덮어줘야 할 코리아나는 저 멀리 있다.

만약 점멸을 사용해 토이치를 살리려 한다면 그 순간 한타는 끝난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이다.

자기 한 명을 어떻게 하기 위해서 상대가 모든 스킬과 스펠을 퍼붓는다면?

나머지 네 명의 아군들이 싹 다 정리하는 그림이 반드시 나온다.

그리고 애시당초 자신은 죽을 생각도 없었다.

두둥실~

인어가 던진 물방울에 적중당했지만 다대기는 여유로웠다.

모든 것이 예상한 대로.

머릿속에서 한 번 그려졌던 한타의 흐름이 게임내에서 되풀이된다.

앞점멸 이후 전력을 다해 스킬콤보를 쑤셔 넣어 토이치를 걸레짝으로 만든다.

그 직전에 인어가 자신에게 탈력을 걸며 물방울을 던진다.

피할 수단이 없으므로 필히 맞게 되겠지만 이조차도 상정 내.

아테나의 신발은 폼으로 구입한 게 아니다.

한 마디로 설계다.

적들은 기절한 자신을 노려올 거다.

체력은 분명 빠른 속도로 깎이겠지만 살 수 있다.

대악마의 한숨을 발동해 얻을 수 있는 1천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실드량.

목숨을 담보로 이상적인 한타 그림을 그려냈다.

어제의 자신이었다면 떠올리지 못했을 천재적인 발상이다.

'그런데.. 대체 왜....?'

설계는 완벽했고 게임 내 구도는 떠올린 대로 움직여줬다.

모두가 자신이 조종하는 것 마냥 한 치도 틀리지 않고 인형처럼.

그래야만 했는데 가장 중요한 단추가 엇나가버렸다.

잘못 뀄다기 보단 애시당초 단추 구멍의 크기가 에러였다.

'왜 기절이 안 풀리는 거야!'

다대기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연타했다.

제발 늦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그런 다대기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실드가 발현되는 일은 마지막까지 없었다.

.

.

.

* * *

달아오르고 달아오른 결승전 세 번째 세트.

중계진들의 바람대로 장기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양 팀이 팽팽하게 맞선다.

그러나 팽팽하게 당겨지던 실도 슬슬 한계점에 도래했다.

<이번 억제탑 한타의 중요도가 정말 높죠? 여기서 분명히 분기점이 나뉠 겁니다.>

<예, 삼선 레드가 살짝 밀리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몰라요. 여기서 블루가 한 번만 실수해주면 억제탑 역으로 밀리고요. 큰 실수를 한다면 게임이 역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바야흐로 1시간이 가까워진 50분대의 시간이다.

경기 시간이 이 정도로 흐르게 되면 해설자들이 늘 몇 가지를 언급하다.

더 이상 글로벌 골드 격차는 의미가 없다.

한타 잘하는 쪽이 무조건 이긴다.

몇 번이고 들어본 귀 따가운 이야기지만 현재 시즌3에서는 상당히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차후에는 바론 버프가 강화되고 드래곤볼을 모으는 등 한타의 승패를 가릴 만한 요인들이 추가된다.

하지만 현재의 바론 버프는 그냥 공격력과 주문력 올려주고 끝이다.

용도 글로벌 골드를 1천 정도 보태주는 게 전부다.

풀템에 가까워진 극후반에 공격력, 주문력 조금 올랐다고 한타의 승패에 영향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즈가 귀신 같은 카이팅을 보여줘야 합니다. 지금까지 물론 잘했지만! 더욱 더 잘해야 돼요. 이기기 위해서 보통 잘하는 걸로는 턱도 없습니다.>

<정말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레드의 조합이 슬슬 힘 빠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나이즈가 대장군이니 뭐니 해도 성장 기대치가 의외로 썩 훌륭하진 않아요?>

나이즈는 중반에서 중후반까지 엄청나게 강력하다.

혼자서 2인분 이상을 거뜬히 해낸다.

딜은 딜대로, 탱은 탱대로 해낸 셈이니 2인분은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강력한 나이즈도 극후반에 접어들어 풀템 싸움이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납득하기 쉬운 일례가 한 가지.

후반에 갈수록 AD미드라이너들이 힘 빠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 따질 것도 없이 바로 라둔의 죽음투구 때문이다.

AP미드들은 라둔의 죽음투구로 주문력을 30%나 확! 올려버린다.

그에 반해 AD미드들은 그냥 순수하게 공템만 올려야 한다.

아이템 시너지라는 측면에서 밀리는 것이다.

이외에도 조냐라던지 생존 아이템 탓도 있는데 여기에 딱 나이즈가 해당된다.

현재 시점의 나이즈는 조냐의 물시계와 라둔의 죽음투구를 안 올린다.

아이템 시너지가 맞지를 않는다.

이러한 점은 풀템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오히려 장점이지만 후반에는 되려 단점이 돼버린다.

<하지만! 다대기 선수의 나이즈라면 또 몰라요? 지금까지 보여준 카이팅이 상당했잖습니까? 저는 충분히 기대해봄직 하다고 봄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첫 한타에서 다소 실수를 했다고 하나, 그 이후로 제 역할 꾸준히 하면서 기량을 증명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붙어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

서로가 동등하게 인구수 200 꽉꽉 채워서 맞붙는 갤럭시 크래프트조차 정면 한타의 승리를 예상하기 힘들다.

열 명의 선수들이 각기 다른 챔피언을 하는 로드 오브 로드는 오죽할까.

선수 한 명의 실수 때문에 한타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왕왕 생길 정도다.

산신령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예측은 불가.

다 알고 있음에도 중계진들이 눈으로 직접 봐야 알 수 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바로 긴장감의 조성이다.

현장의 관중들의 이목이 한 점으로 모아지며 집중도가 높아진다.

다가오는 한타가 머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는다.

<바론을 챙긴 삼선 블루가 밀고 들어옵니다. 지체가 없죠? 한타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거에요.>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어차피 레드는 라인 클리어가 좋지 않아서 수성이 안돼요. 미드 억제탑 무너지면 돌려깎기 되면서 휘둘리다 게임 끝납니다!>

게임 시간 50분동안 양 팀이 손가락만 쪽쪽 빤 게 아니다.

정말로 치열하게 주고 받았다.

어느 한 쪽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으리 만큼 불꽃이 튀었다.

이미 양 측의 억제탑을 한 번씩 교환했을 정도.

하지만 다 과거의 이야기다.

시간이 흘러 재생이 됐고 현재는 양 측의 억제탑이 모두 건재하다.

그러했던 팽팽함은 삼선 블루의 깜짝 바론과 함께 무너졌다.

물론, 그 사이에 레드는 봇라인의 2차 포탑과 용을 챙겼기 때문에 큰 손해는 아니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바론 버프가 한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그렇다고 영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란 말이죠? 블루로서는 조금이라도 유리할 때 끝을 볼 작정입니다.>

<삼선 레드는 여기서 한 발 뒤로 빼면 절벽 끝까지 떨어질 수 있어요? 오! 레드가 한타를 열었습니다! 거는 건 역시 아웃섹 선수의 리심!>

삼선 레드가 자랑하는 정글러.

아웃섹의 리심이 음파를 맞히고 날아갔다.

맞은 대상은 코리아나지만 진짜 노리는 대상은 전혀 다르다.

현재 삼선 블루의 코리아나는 그냥 궁극기 셔틀이다.

진짜 위험한 건 원딜러인 토이치.

토이치가 한 번 프리딜 구도를 잡기 시작하면 답도 안 나온다.

풀템은 커녕 신발까지 팔아서 6코어를 갖춘 토이치의 딜량은 상상초월이다.

─해일이당!

그 토이치를 서포팅하는 올마스터의 인어가 리심의 돌격을 저지한다.

날아가는 리심을 향해 거대한 해일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당하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는 것일까.

아웃섹의 리심은 방로를 사용해 우측으로 틀었다.

<들어가는 각은 정말 좋았지만..! 올마스터 선수가 막아서는 이상 역시 힘드네요. 매 한타에서 궁극기를 예술처럼 뿌리며 원딜러를 철통처럼 지켜냅니다.>

<누가 보면 지극 정성 서포팅하는 선수인 줄 알겠습니다. 사실 전 처음 보거든요. 시청자 여러분들도 이 선수가 서포팅하는 거 처음 보셨을 거에요. 그럼에도.. 잘합니다!>

지금껏 라인전은 뒷전이고 하루종일 로밍다니던 이 춤바람 난 아줌마 같은 올마스터가 달라졌다.

마치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한결같이 원딜러를 지켜낸다.

세미 미드라이너라 불리우며 공격적인 일변도를 자랑했던 그의 스타일이 온데간데없다.

이렇듯 선수가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면 허점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서포터로서의 본연의 업무가 흠 잡을데 없이 해냈다.

방금처럼 아웃섹의 리심이 노리고 들어와도 올마스터의 인어에 의해 항상 한 번 막히고 만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승부수! 당구 차기가 제대로 들어갑니다!>

돌아가는 게 안된다면 정면승부다.

껄렁껄렁 서있던 아웃섹의 리심이 불현듯  점멸을 사용해 대놓고 깠다.

삼선 블루의 앞라인을 맡고 있던 탈리반 3세를 점멸 궁극기로 냅다 까버렸다.

아니, 이 선수가 흥분해서 정신이 나간 건가.

그렇게 생각되었던 것도 잠시.

탈리반 3세가 날아간 동선에 토이치가 정확히 휘말렸다.

명실상부 한타 개시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챠륵!

가장 먼저 아웃섹과 오랜 호흡을 맞췄던 다대기의 나이즈가 점멸 속박을 연계한다.

다음으로 호모 선수의 잭트가 머리 위로 봉을 빙글빙글 돌리며 호응한다.

코볼트 선수의 크레이브즈가 궁극기까지 퍼부어지자 화룡점정.

강력한 화력에 반비례해 몸이 종잇장인 건 원딜러의 고질병이다.

피흡할 시간따위 없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서는 그러한 광경이 그려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피할 순 없을걸? 끄하하하하!

토이치의 시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잭트만이 오도카니 서있다.

정작 죽었다고 생각했던 토이치는 수 걸음 뒤에서 궁극기를 켜고 난사해댄다.

엄청난 추가 사거리를 얻은 토이치의 관통탄에 잭트와 나이즈가 한꺼번에 꿰뚫린다.

<사, 살았습니다?! 토이치 프리딜!! 비누 방울과 레드 때문에 도망도 못 쳐요!>

<이거 난리났습니다 모든 걸 투자해서 토이치를 노렸는데 그 토이치가 살고 프리딜까지! 잭트 전사! 나이즈 전사! 크레이브즈 혼자 남았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일련의 상황을 똑똑히 보고 있었던 중계진은 하필 강빈 해설밖에 없었다.

<인어를 먹으면 불로불사가 된다는 설화가 있거든요? 인어의 서포팅을 받는 토이치는 무적입니다!>

먼소린지, 강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눈치챌 수 있었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에 잠시 올마스터의 인어 쪽에 눈을 땠던 김은준 해설위원이 설명을 보충했다.

<미카엘의 그릇과 청동의 톨라리 팬던트, 연이어 넘실거리는 물결까지 들어가며 토이치를 슈퍼세이브 해냈던 것.. 같습니다?>

말로만 듣기에는 아쉽다.

하지만 대강 상상은 간다.

나이즈의 점멸 속박을 미카엘의 그릇을 사용해 풀어냈을 것이다.

연이어 들어간 딜링은 다분 위협적이었지만 힐과 보호막이 겹쳐져며 구사일생했다.

몸이 자유로워진 토이치가 뒤늦게 점멸로 도망가자 도약이란 결과만이 남은 잭트.

물론 토이치는 체력이 불과 1mm도 안 남았지만 더 이상 물 수단이 없다.

점멸도, 이동기도 전부 빠졌다.

눈치 볼 것 하나없이 뒤에서 관통탄을 뻥뻥 쏴재끼자 한타 종료.

본래라면 리플레이가 틀어져야 할 명장면이지만 불가하다.

게임은 이미 끝났고 삼선 블루가 넥서스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길고 길었던 세 번째 세트까지 삼선 블루의 승리로 종결지어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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