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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대망의 결승전 네 번째 세트.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 3 대 0으로 삼선 블루가 삼선 레드를 압살 중이다.
솔직히 말해서 네 번째 세트도 역시 삼선 블루가 따내지 않을까?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4 대 떡이라는 결말을 예상하는 가운데 오직 한 명.
전범준 캐스터가 슬그머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곳도 반쯤 야외 무대죠. 그리고 야외 무대의 참맛은 역시 시간 변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를 보고 있던 수많은 관중들이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정말로 오랜만의 풍경이다.
현대 사회의 바쁜 사람들은 하늘 올려다 볼 시간 마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그 푸르렀던 하늘의 색이 변해있다.
경기 시작 이후로 시간이 상당히 흐른 탓에 하늘이 점점 노란 빛을 띄고 있다.
아니, 한층 더 나아가 붉은 빛으로 물들어간다.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관중들이 하나하나 넋이 나가버렸다.
그렇게 관중들의 감성이 최고조로 오른 순간.
전범준 캐스터가 그 여운을 예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마이크를 고쳐 잡았지만.. 실패!
마지막 킬딸을 치게 된 사람은 강빈 해설위원이 되었다.
<마치 삼선 레드의 승리를 예고하는 듯한 붉은 하늘입니다. 와, 정말 산뜻하게 멋있네요!>
<예에.. 강빈 해설위원의 말이 맞습니다….>
전범준 캐스터가 잡은 마이크 끝이 부들부들 떨린다.
삼선 레드의 승리 예고와 함께, 강빈 해설의 사회 생활이 제대로 꼬였다는 것도 동시에 예고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나마 말하려고 했던 바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푸르렀던 하늘이 붉게 물들다니?
지금껏 우세를 점하던 삼선 블루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삼선 레드가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실질적인 경기의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수만 관중들, 어쩌면 TV나 모니터 화면을 통해 이를 보고 있을 시청자들까지.
그들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
삼선 레드가 총공세를 퍼부울 때가 왔구나.
결코 비약이나 분위기 탓만으로 볼 수도 없는 게 밴픽 구도가 너무나도 웃어준다.
<스스로 팔다리를 묶어버린다니! 과연 삼선 블루다운 패기가 넘치는 밴이었습니다....만! 너무 과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대기 선수에게 자드를 준 건 엄청난 실수에요!>
<삼선 블루가 너무 안이했죠. 쇈을 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자드는 밴을 해야 마땅했습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다대기 선수의 자드거든요?>
자드가 다대기를 한다.
주어가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으리 만큼 그는 자드와 혼연일체를 이루었다.
자드라는 챔피언이 퍼진지 얼마 안된 이 시기에 해외 선수들 못지 않게 자드를 다루는 한국 선수는 그밖에 없다.
한국 자드 유저의 자존심, 다대기가 자드를 잡아버렸다.
<현재 스코어는 3 대 0! 벼랑 끝까지 몰린 상황입니다. 다대기 선수의 두 어깨가 무거워요.>
<하지만 다대기 선수의 자드라면 충분히 가능하죠. 이전 세트에서의 실수를 가볍게 만회하고도 남을 거라 감히 단언하겠습니다.>
김은준 해설이 빈말이 아닌 진심을 내던졌다.
다대기의 자드는 단순히 솔로랭크에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삼선 레드가 결승전까지 진행한 경기들 중, 단 한 세트를 빼놓고 다 이겼다.
공식 전적 6승 1패.
다대기의 자드는 준결승전에서 테이커의 리픈에게 한 번 무릎을 꿇었으나 이를 빼놓고는 전승이다.
심지어 버스가 아닌 그의 캐리였다.
사뭇 고조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올마스터 선수의 새로운 픽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서포터 끠들스톡..? 어떻게 플레이 할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저를 바라보셔도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전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솔로랭크에서 끠들 서폿으로 유명한 천상계 유저가 한 명 있기는 합니다.>
아니, 결승전에서 챔피언 실험이라도 하는 건가.
만약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적지 않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올마스터는 한두 번이 아니다.
특이한 챔프, 독특한 플레이를 장기로 삼는 자.
이번 스프링 시즌에서만 벌써 여섯 번째 뉴메타 중인 올마스터다.
하지만 슬슬 실패할 때도 됐지.
하던 참에 또 어지간히 이상한 챔피언이 나왔다.
해설자들도 이게 정글로 가는 건지, 서폿으로 가는 건지 픽이 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끠들스톡으로 유명한 서폿 유저, 렛미끠들이라고 한 분 있습니다. 플레이 방식이 조금 독특하긴 한데 나쁘지는 않다. 거기까지는 인정되는 추세거든요?>
올마스터도 어지간하지만 렛미끠들도 못지 않다.
서폿으로 무려 점멸과 텔레포트를 든다.
그리고 딜템을 올려서 하드 캐리.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솔랭이니까 가능한 경우다.
<특이한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의 리플레이를 시간 날 때 돌려보는 편입니다. 렛미끠들은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솔랭 특화형의 플레이를 보여주더군요.>
굳이 올마스터가 아니더라도 와드돌을 안 사는 서포터는 솔로랭크에 왕왕 보인다.
그 대표적인 유저 중 하나가 바로 렛미끠들.
끠들 서폿으로 킬먹은 다음에 딜템을 올린다.
<킬을 먹은 판은 캐리를 하고, 못 먹은 판은 체력이 낮다는 단점이 작용하며 자주 끊겼습니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단점이겠죠. 이를 올마스터가 어떻게 극복을 할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올마스터에게 어울려 보이는 챔피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회 게임이라는 게 생각처럼 흘러주진 않는다.
킬을 먹으면 좋겠지만 킬을 못 먹었을 때 안 좋은 챔프는 안 쓰인다.
예를 들어 킬 한 번 먹으면 미쳐 날뛰는 AP마스터 오브 이.
망하면 0.5인분의 딜량도 못 넣는 애물단지다.
끠들 서폿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게 직접 렛미끠들을 보고 판단한 김은준 해설의 의견이었다.
사전 조사 철저하기로 유명한 그 다운 건설적인 비판이긴 하다만 과연?
뭐인지 된장인지는 의외로 찍어봐야 알 수 있을 때도 많다.
<밴픽 끝났습니다. 손에 땀을 쥐는 혈전이 될 거라 예상을 마지 않는 네 번째 세트, 소환자의 전장에서 펼쳐집니다!>
<저녁 노을이 점점 붉어져 가고 있어요! 삼선 블루 대 레드의 네 번째 세트! 경기이~~~! 들어가시죠~~!!!>
상암 E-스포츠 경기장에서 결승전이 치러졌다면 있을 수 없는 애드립.
삼선 라이온즈 파크의 개방된 하늘 덕분에 자칫 긴장감이 사라질 수 있었던 분위기를 한껏 격변해내는데 성공했다.
눈치 없는 강빈 해설 때문에 한 차례 제지되긴 했었다만 다시금 불피운다.
전범준 캐스터가 만족스레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바로 경기가 진행돼 가는 가운데..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한 가지 잊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올마스터 선수..? 곧 미니언 젠 됩니다? 지금 봇 안 가면 늦어요?!>
<튕긴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설마 이거? 지금 레드 달려가는 건 아닌지요?!>
정상적인 플레이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예상을 깨부순다.
그리고 잊고 있는 사실에 더해 깨닫지 못한 한 가지.
이곳 삼선 라이온즈 파크가 위치한 장소는 바로 대구다.
대구의 해는 서울보다 조금 빨리 저문다.
시시각각 붉어지는 하늘에 어둠이 찾아올 시기는 늦지 않을 것 같았다.
.
.
.
* * *
삼선 레드와의 네 번째 세트.
라인전은 아주 격하게 흘러가고 있다.
꾸엑! 꺅! 꺅! 꺅!
끠들 서폿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E스킬, 까마귀 바람이 날아가 적팀의 서포터 랄라를 훑고, 미니언 몇 개 더 훑고, 최종적으로 크레이브즈에게까지 닿는다.
적팀도 당연히 반격을 하지만 딜교환이 성립되지 않는다.
"설마 레드를 빼먹고 올 줄이야.. 버틴 보람이 있어 다행이네요."
현재 내 평타에는 레드 버프가 묻어나간다.
레드 버프의 효과는 도트 피해와 더불어 둔화.
서로 평타를 한 번씩 주고 받았을 때 가할 수 있는 데미지의 총량이 다르다.
그 뿐일까?
잘못 딜교환이라도 했다간 레드 평타를 계속 맞다가 죽을지도 모른다.
버프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상대는 딜교환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정글이 많이 꼬이지.'
초반에 정글러의 갱킹이 위협적인 이유의 반은 레드 버프 때문이다.
데미지도 데미지지만 둔화 효과.
생존기가 빠진 상대한테 어떻게 묻히기만 하면 추노가 용이하다.
그런데 이 레드 버프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체력이 많은 적은 절대 못 죽인다.
즉, 체력 관리가 되는 라이너들이 활개칠 수 있다.
어차피 와도 못 잡으니까!
실제로 말카림을 잡은 씨지맥이 전기쥐를 거세게 압박하는 중이다.
부쉬를 들락 거리며 아주 집요하게 실력 차를 보여준다.
'아마 되찾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거야.'
뺏긴 버프를 찾고 싶어하는 건 모든 정글러들의 습성이다.
모르긴 몰라도 화가 단단히 났을 거다.
그럼에도 오지 않고 있다.
슬슬 버프가 끝나가고 있는데 코빼기도 안 비추고 있는 이유는 대강 예상이 간다.
'아까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겠지.'
세 번째 세트에서의 갱승.
비단 그것 때문에 진 것만은 아니지만 꽤나 걸릴 거다.
중요하디 중요한 결승전에서 해버린 실수는, 트라우마는 하루 이틀로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꾸엑! 꺅! 꺅! 꺅!
끠들스톡의 까마귀 바람은 초반 견제력이 엄청나게 강력하다.
한 번 맞는 건 괜찮지만 두 번, 세 번씩 튕겨 버리면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데미지가 아니다.
상대법을 알고 있는 상태에선 그나마 사정이 낫겠지만 모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드 버프까지 들려 있다.
일방적으로 휘몰아치는 견제에 상대는 속수무책.
이번 세트에서 헬멧이 특별히 픽한 고르키도 짤짤이 강력하기로 소문난 원딜이다.
이렇게 겁나 때려서 상대를 집보내면 끠들 서폿은 하나 할 수 있는 게 있다.
─삼선 AllMaster님이 용을 지목.
정글러를 불러서 용을 잡는다.
아직 레벨링도 아이템도 갖춰지지 않은 타이밍의 용 트라이는 위험하다.
하지만 빨대 꽂아서 체력을 쭉쭉 빨아대는 끠들스톡에겐 손 쉬운 일.
아군 정글러도 리심인지라 가볍게 챙겨가 버린다.
'호오, 생각보다 잠잠하네?'
초반부터 이 정도로 뚜까 패면 무언가 반응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잠자코 맞고만 있다.
글로벌 골드가 격차 꽤 벌어졌을 거라 보는데 상대는 침착하다.
'천천히 성장해서 한타 페이즈에 가면 자신들이 이길 거라 보고 있나?'
확실히 아직까지는 결정적인 손해라고는 볼 수 없다.
성장이 크게 말린 것도 아니고 킬을 따인 것도 아니다.
중반 한타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삼선 레드가 할 만한 선택인 것도 맞다.
티링!
내가 조금 살살 때렸나 보다.
반성한다.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겁나게 뚜드려 팼어야 했는데 너무 자중했다.
애초에 적당히 때릴 생각은 없었지만 조금 더 스퍼트를 올려야겠다.
'트라우마가 남으리 만큼 아주 잔인하게 말이야.'
티어별로 다르고 개개인마다 또 다르다.
똑같이 10분을 게임을 해도 1초, 1초가 지나가는 속도가 같지 않다.
어떤 때 느낄 수 있냐면 자신의 본 실력보다 아주 높거나 낮은 구간을 갈 때.
아니, 이 타이밍에 벌써 바론이라니?
게임 시간 10분도 안 됐는데 한타 싸움을 하고 있어?
티어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들의 게임에 섞이면 흔히 가지는 생각이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
얘네들 라인전 대체 언제까지 할 작정이지?
왜 바론 안 쳐? 바론은 신성한 존재라 30분 전에 죽이면 벌 받나?
답답함에 치를 떤다.
나의 경우 후자에 가깝다.
현재 게임의 진행 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내 전력과는 거리가 멀다.
LCF 당시에 느꼈던 속도감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물론 가능한 챔피언이 있고 안되는 챔피언이 있지만, 끠들스톡은 충분히 돼.'
끠들스톡이라면 가능하다.
아예 숨쉴 틈도 없이 몰아붙일 수 있다.
그를 위한 첫 걸음으로 구입하는 아이템은 역시 이거다.
'기동력의 신발, 그리고 핑크 와드.'
라인전에서 무난히 5레벨을 찍고 귀환했다.
나의 성장을 방관한 순간 게임의 승패는 정해진 셈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기동력의 신발이 이렇게 쉽게 들리면 안됐다.
'현재 시점의 끠들스톡에겐 코어템이 두 개가 있지.'
그 중 하나인 기동력의 신발이 나오고야 말았다.
끠들스톡의 존재 이유라고까지 할 수 있는 Q스킬, 공포와 이렇게나 잘 맞을 수가 없다.
아니, 그냥 딜템 올려서 궁극기 콤보를 강화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이게 또 사용하기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그 사용법에 가장 좋은 시너지를 주는 아이템이 바로 기동력의 신발이다.
지금껏 맛본 적이 없었을 공포.
그 속도감을 최대치로 뿜어내기 위해서 일단 자가용부터 한 대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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