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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혼자서도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기왕지사 할 거라면 자가용 뽑아서 액셀 쭈욱 밟아 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내가 자가용으로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말이었다.
─삼선 AllMaster님이 전기쥐를 지목.
나는 슬금슬금 탑라인의 부쉬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여기서 잠시 대기.
곧 전기쥐가 라인을 밀며 다가올 것이다.
차후에는 이러한 서포터 로밍조차 각 라이너들이 반드시 대비를 하지만 현재는 아니다.
아니, 서포터가 지금 왜 탑라인에 있어?
실제로 전기쥐는 나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빙을 밟고 있다.
리심의 갱킹이 혹시 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바깥 동선의 무빙.
여기서 바깥이라 함은 부쉬 근처를 뜻한다.
앞으로 한 걸음이면 내 코앞에 도달한다.
까꿍-!
타겟팅으로 선사하는 3레벨의 공포.
전기쥐는 2초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혼란 상태에 빠진다.
의지를 상실하고 제멋대로 돌아다니기는 하나 기절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운이 안 좋게도 나를 향해 슬금슬금 걸어오고 있다.
아군 탑라이너 씨지맥이 갱호응을 하기에 최상의 여건을 제공해준다.
띠리리리링~!
유령화를 켠 말카림이 질주한다.
그대로 쭉 달려나가 전기쥐를 지나치고 나서야 꼴아박는다.
마치 리심의 당구킥에 차인 것 마냥 전기쥐는 뒤로 쭈욱 밀려버린다.
뒤늦게 공포 상태에서 깨어난 전기쥐가 몸을 번개로 바꿔 빠르게 도망가지만 헛수고.
점멸로 도망간 자리에 말카림의 궁극기가 떨어진다.
언월도를 풍차처럼 돌리며 마무리한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생존의 여지가 없는 깔끔한 킬이었다.
봇에는 고르키가 외로이 남아있지만 괜찮다.
상대 정글러가 다이브를 치지 않는 한 2:1까지야 버틸 수 있겠지.
6레벨에 달한 고르키는 미사일 뻥뻥 쏴재끼는 걸로 파밍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되돌아가기엔 섭한 노릇이야.'
기왕 울린 승전보.
한 번 더 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럴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다.
"부쉬에서 한 번 더 대기타죠."
"이걸 또요? 솔랭이면 탈주하겠다."
마침 궁극기도 찍었겠다 시기적절한 타이밍이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 더 해버린다.
쉽게 상상하기가 힘들 거다.
설사 또 로밍을 온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니까.
집에 가서 다시 라인 복귀하는 시간을 어림 계산해도 한두 웨이브 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냥 기다린다면?
나는 전기쥐가 오자마자 지체없이 실행했다.
까악! 까악! 까아악
킬을 따낸 후 라인을 먹음으로서 6레벨을 찍었다.
일단 닿기만 한다면 필킬이라는 끠들스톡의 궁극기가 전기쥐를 향해 떨어진다.
게임할 맛이 싹 사라질 것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5초 동안 상대를 믹서기 마냥 갈아버리는 황천의 까마귀 떼.
씨지맥과 합공을 하니 간단하게 킬이 만들어진다.
이로써 아직 두 번째 킬이다.
"빠르게 의병대로 라인 복귀 해봐요."
보통 사람이 똑같은 걸 두 번 당하면 아차한다.
아, 진짜 게임하기 싫다.
그래도 일단은 라인에 복귀한다.
적이 너무하긴 했어도 조금 안일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가까스로 멘탈 붙잡고 꾸역구역 라인 복귀한다.
이제부터 사려야지.
그런데 그 이제가 없다.
까꿍-!
아까는 앞부쉬에서 대놓고 대기했다면 이제는 뒷부쉬다.
전기쥐는 나름대로 부쉬 체크도 하면서 사리려고 했지만 얄짤없다.
점멸 후에 타겟팅으로 박히는 2초 간의 공포.
의병대로 빠르게 라인을 복귀한 씨지맥은 아까보다 때깔이 고와졌다.
비싼 아이템을 두른 만큼 강해진 공격력은 전기쥐를 순식간에 두 동강 낸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렇게 전기쥐의 멘탈을 승천시켜버린 동안.
봇라인에서는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손해가 생겼다.
고르키가 탈리반의 갱킹에 당하면서 봇 1차 포탑까지 이어서 터져버렸다.
사릴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다.
미리 용을 챙긴 덕에 이상의 손해는 없었으니 충분하다.
─아군이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나와 씨지맥도 똑같이 탑 1차를 철거했으니 샘샘으로 주고 받은 셈이다.
킬과 성장의 불균형, 그리고 운영적인 요소까지 생각하면 최소 두 배는 이득.
아니, 앞으로 내 행동 여하에 따라 세 배, 네 배, 게임이 터지는데까지 닿는다.
'골렘 먹고 귀환해서 큰 지팡이. 완벽한 흐름이구만.'
끠들 서폿의 장점은 여러가지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게 바로 정글 빼먹기다.
봇라인의 갱킹이 성공했다는 말은 적 정글이 이 근처에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한다.
상당히 쫄은 상태인 전기쥐는 내 정글링을 방해할 우려가 없다.
꾸엑! 꺅! 꺅! 꺅!
까마귀가 튕겨 나가며 쌍둥이 골렘을 빠른 속도로 분해한다.
정글링이 느리다는 말이 나오는 끠들스톡이라지만 쌍둥이 골렘 만큼 어떤 정글러보다 잘 잡는다.
그렇게 끠들스톡의 가장 큰 난관인 겁나 쓸데없는 지팡이가 해결됐다.
찰칵!
탑을 조금 과하다시피 풀어준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한 번 라인전이 풀려버린 말카림.
그것도 의병대를 완성한 말카림은 백업이 기가 막힌다.
라인도 시원하게 2차 포탑까지 밀어두었으니 로밍에 제격이다.
설사 적이 대비한다고 한들 막을 수가 없다.
─삼선 AllMaster님이 미드 1차 포탑을 지목.
운영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곳이 어디일까.
다름아닌 미드 1차 포탑이다.
로드 오브 로드가 미드라이너의 기량에 의해 승패가 많이 갈린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가 누커이기 때문도 분명히 있지만 전략적 요충지 라는 이유도 지분률이 상당하다.
'이 미드 1차 포탑의 유무로 잘라먹기의 성공률이 두 배는 껑충 뛰지.'
끠들스톡은 잘라먹기에 한없이 능한 챔피언이다.
저 미드 1차만 부술 수 있다면 앞으로의 게임은 탄탄대로.
하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미드 진짜 힘든데.. 여기서 싸우다가 게임 비벼지는 거 아니에요?"
코리아나로 힘겹게 파밍을 하고 있는 키나키나가 불안한 듯 외친다.
그도 그럴 게 상대가 다대기다.
다대기가 자드를 잡았다.
이미 한 번 솔킬을 따여버린 탓에 미드의 성세는 불안불안하다.
그나마 명진이가 미드를 조금 많이 봐줬고 수비에 능한 코리아나라는 이점을 살려 버텨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버틴 거지 미드에서 싸움이 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 레드 지역 장악하고 천천히 하면 돼."
미드가 위험한 건 맞지만 탑라인의 균형은 와장창 무너진 상태다.
전기쥐와 말카림의 백업 속도 차이는 배 이상.
굴러갈 수밖에 없는 스노우볼을 강제로 굴리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레드 지역에 명진이가 산 와드와 핑크 와드로 장악한다.
그리고 주위에 오는 적들을 공포를 걸어 하나하나 잡아먹으면 된다.
오지 않는다면?
명실상부 동네북이 되어버린 전기쥐네에 마실을 나간다.
까꿍-!
적 레드 지역을 빙 둘러 걸어가는 로밍.
기동력의 신발이라는 요물은 적의 예상보다 한 발 빠른 로밍을 가능케 해준다.
그렇게 가서 타겟팅인 공포를 걸어주면 끝이다.
이미 삼종신기가 반쯤 완성된 씨지맥의 말카림이 전기쥐를 믹서기처럼 갈아버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탑에서 딜챔프하다가 말리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다.
향후 탑라인에서 딜챔프가 안 쓰이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물론 아이템 패치의 여파도 크긴 하지만 운영적인 부분.
즉, 게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안정직이지 못한 탑솔러가 꺼려지게 된다.
구오오..!
하지만, 적이라고 놀고 있지 않았다.
내 생각 이상으로 다대기의 자드는 상당한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미드라인에서 사달이 났다.
챠라락!
콰직!
키나키나의 코리아나가 자드에게 킬각이 노출됐다.
그림자를 귀신같이 사용해 코리아나의 궁극기를 피하며 넣을 딜 다 넣는다.
코리아나는 나름 방어막까지 쓰며 분전했지만 이미 킬 차이가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로 스펠이 다 빠지는 난전 끝에 결국 솔킬이 나왔다.
"슈퍼 세이브 해주고는 싶었는데 각이 안 나왔어."
"아니야. 이건 내가 잘못했지. 아니 근데 솔직히 죽을 줄은 몰랐어.."
명진이의 리심이 미드를 보고 있었음에도 막을 수 없었다.
무리를 한다면 슈퍼 세이브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기하고 있던 건 적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 명이 더 많다.
내가 탑라인에 로밍을 갔다는 뜻은 적 서폿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잘못 걸렸다간 더블 킬을 당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렇게 되면 용까지 나가려나.'
킬을 내준 타이밍이 조금 안 좋았다.
하필이면 용이 젠되는 시간과 맞물렸다.
그래서 지금 탑을 딴 것이기도 했는데..
사실 키나키나와 다대기의 역량 차를 생각한다면 지금껏 버텨준 게 용하다.
'그런데 뭔가 날카로워진 듯한 기분인데..?'
방금 전, 코리아나를 잡고 빠졌을 때의 움직임은 내가 봐도 상당히 깔끔했다.
단순하게 잘하는 챔피언으로 활개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선수의 역량이 올랐다.
다대기의 자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진작에 확인을 마쳤다.
확실히 상당한 수준이기는 했지만 방금 만치는 아니었다.
뭐, 어디까지나 느낌이고 내 바보같은 착각일수도 일 수도 있겠지만은..
'한 번이 있었으니 두 번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지.'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은 게임이 중요하다.
예정에서 살짝 어긋나기는 했어도 전체적인 흐름이 좋다.
용을 빼앗긴 대신에 탑라인의 2차 포탑을 파괴했으니 나쁘지 않은 교환이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첫 번째로 목표하는 아이템은 당연히 조냐의 물시계.
끠들스톡에게 코어템이 두 개 있다면 다른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벌써 2/3 이상 완성되었다.
'자드가 잘 크긴 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어.'
게임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것은 게이머의 실력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될 확률보다 안될 확률이 훨씬 크다.
때문에 탈선되었을 때 이를 다시 정상 궤도에 끌어올리는 것 또한 프로게이머에게 필요한 능력.
상대가 기어코 미드를 내줄 생각이 없다면 다른 쪽으로 우회한다.
.
.
.
* * *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던 네 번째 세트.
그 시작이 너무나 불안불안 했던 탓에 초조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초조함이 아무 상관 없으리 만큼 다대기는 몸이 달아올랐다.
"야, 내 플레이 개쩔지 않았냐?"
"닥치고 게임이나 집중해라.."
친구인 아웃섹은 헛소리 작작하라는 듯 무심하게 대꾸하지만 진짜였다.
다대기는 정말로 실력이 급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미드에서 코리아나를 따냈을 때도 원래라면 들어가지 않았을 각이었다.
왠지는 몰라도 들어가면 딸 것 같았다.
계산이 아닌 직감에 의한 킬각.
프로게이머를 지망하게 된 이후로는 벗어던졌던 감각이다.
불확실한 감보다는 역시 계산을 해서 들어가는 편이 승산이 높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듯하다.
방금 코리아나를 따낸 킬각은 이성이 완강하게 부정했다.
세 번째 세트에서 나이즈로 앞점멸을 했을 때도 비슷한 것을 느꼈었다.
그때 한 번 크게 데였기에 착각이라 결론지었지만 해버렸다.
몸이 그냥 움직여버렸다.
'그리고 해냈지.'
실패를 했다면 게임을 또 던져버렸다고 말이 엄청나게 나왔으리라.
탑 2차는 물론이고 잘못하면 미드 1차까지 나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했다.
자신의 솔킬은 방아쇠가 되어 때마침 젠된 용까지 이어졌다.
글로벌 골드의 격차를 상당히 좁힐 수 있었다.
'게다가 영락한 기사검이 완성됐어.'
역전의 발판이 완성되었다.
탑라인이 다소, 아니 상당히 망하기는 했지만 괜찮다.
호모는 한타 캐리형 탑라이너.
광역 CC기를 잘 넣어주며 충분히 1인분을 해낼 거라 믿는다.
터무니 없는 떠넘김이 아닌 신뢰 관계였다.
"아, 나 게임하기 싫어! 끠들스톡 얼굴 한 번만 더 보면 대회에서 탈주할 것 같아.."
멘탈이 나갔는지 궁시렁궁시렁 혼잣말을 해대고는 있지만 정말로 괜찮다.
이제부터 사이드 라인으로 빠지는 것은 다대기 자신이었다.
일련의 운영 방식은 확실하게 배웠다.
'영락한 기사검만 나오면 1대1에서 질 수가 없다.'
가장 걸리는 상대는 삼선 블루가 자랑하는 탑라이너 씨지맥의 말카림.
하지만 방어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
전기쥐를 상대하느라 마법 저항력 아이템인 아테나의 신발을 올렸다.
삼종신기가 완성될랑말랑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괜찮다.
영락한 기사검이 완성된 자신과 완성되지 못한 말카림의 차이는 하늘과 땅.
그리고 지금의 자신이라면 1대1에서 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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