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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96화 (49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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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귀국 후 첫 번째 대회라고 할 수 있는 롤챔스 스프링 시즌.

이를 우승으로 마무리 지음으로서 내 어깨는 한 층 가벼워졌다.

분명 그리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개뿔이..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깝깝하다.

그렇게 골치 아픈 심정과는 정반대로 한가하기 그지없는 몸.

나는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간만의 휴가를 만끽하고 있다.

'혼자 말고 예은이랑 노닥거리고 싶은데..'

그런데 예은이 안 놀아준다.

기습 백허그라도 해버리면 진심으로 때려온다.

물론 이건 낮의 일이고 밤에는 웬만한 건 다 받아준다.

하지만 낮에는 얄짤이 없다.

'따지고 보면 이러는 편이 맞는 것 같긴 해.'

여자친구 사귄 프로게이머들은 성적이 떨어진다더라.

일련의 이야기는 비단 헛소문만으로 보기 힘들다.

그럴 듯한 일례들이 알려진 것만 잡아도 최소 두 자릿수.

예은이 거기까지 생각해서 선을 그은 건지는 모를 일이지만 최선의 선택은 맞는 것 같다.

'예은도 요즘 많이 바빠 보이니 서로 노력해 가야겠지.'

나만 프로게이머인 게 아니다.

서머 시즌부터는 예은도 함께 나가기로 이야기가 맞춰졌다.

안 간다고 했다면 섭했을 부분이지만 내 머리를 지끈지끈 하게 만든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씨지맥, 예은. 그리고 세 명 더, 어떻게 구해야 할까..?'

하나의 팀을 구성하기 위한 최소의 머릿수.

생각해둔 바는 당연히 있다.

예은에게도 허락을 구했고 이제는 하기만 하면 된다.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게 떨떠름해서 문제지.

'일단 나가보자. 가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결심하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가는 길에 예은과 얼굴 마주치길 내심 바랬건만 없다.

요즘 예은은 방에 콕 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현관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사전 조사를 하고 가는 것이긴 하지만 애매하다.

정말로 거기에 살고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뭐,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없으면 공치는 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있다면 일이 좀 쉽게 풀리는 셈이고.

사실 어느 쪽이든 본인이 하기 싫다고 뻐팅기면 그만이긴 하다.

끼익.

얼마 전 예은의 아버님께 선물 받았던 고급 세단.

나는 차를 몰아 목적지로 향했다.

하마터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할 만큼 아슬아슬 먼 거리였다.

'내가 가오가 있는데 그건 안되지.'

장롱면허에 불과했던 나는 예은에게 호된 갈굼을 받으며 운전연수를 받았다.

하기 싫었는데 어거지로 당했다.

그냥 좀 곱게 가르쳐주면 안되나..

운전 재능 더럽게 없다며 어찌나 서럽게 만들던지 울 뻔했다.

그래도 잘하진 못했지만 열심히는 했다며 운전연수 후 가볍게 데이트를 가졌다.

그것으로 위안은 된 셈이지만 문제는 내 운전연수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는 사실.

이 차 끌고 시내 밖으로 나가면 너 죽고 나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슬아슬하지만 사정이 사정이니 이해해 줄 거야.. 아마.'

그렇게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남짓.

사실 한 시간 반이나 걸릴 거리는 아니었는데 내가 조금 살살 밟았다.

만에 하나 기스라도 나면 예은이 악마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 막 사귄 시점에서 너무 잡혀 산다는 느낌은 들긴 하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띵동~♬

오래된 연립 주택의 2층이다.

고시원보다 조금 넓은, 자취를 한다면 이 정도가 알맞지 않을까.

초인종을 누른 나는 얌전히 기다렸다.

잠시 후, 짜증스런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 안 산다고 몇 번 말하셈! 짜증나게 하지 마셈!"

"…."

도슈, 본명 이초홍씨랑 눈이 떡하니 마주쳤다.

마주치고 나서 흐른 정적 2초.

빠르게 문을 닫는데 1초.

내가 발을 걸어서 멈추는데 0.5초 추가로.

총 3.5초, 로드 오브 로드로 따지면 멀리서 애씨의 저격궁을 맞은 시간이 흘렀다.

"빼애애액! 소리 지를 거셈! 경찰 부를 거셈!"

이미 소리 지르고 있는 주제에 뭘?

하지만 경찰을 부르는 건 조금 위험하다.

연거푸 괴상한 비명을 지질러대면 옆집에서 신고할지 모른다.

나는 과감하고 빠르게 행동에 옮겼다.

"야, 말 들으면 풀어줄 테니 조용히 좀 해봐."

"읍! 읍..!"

현관문을 열어재끼고 안으로 들어가 도슈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고 나서 현관문을 닫고 잠금쇠까지 걸어 잠근다.

사뭇 범죄자의 표본과도 같은 행위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혹시 누군가 본 건 아니겠지..?'

한없이 찔리기는 하다만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그리고 정말 무슨 이상한 목적이 있어서 이 집에 침입한 것도 아니다.

끄덕끄덕.

입이 막힌 채 하염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도슈가 고개를 끄덕여온다.

죄책감이 한없이 올라가는 것 같지만 어쨌든.

일단락 됐다는 생각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 있던 손을 치워졌다.

손바닥에는 침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하아...!"

"야, 잠깐!"

이 녀석도 상당히 예은과다.

사람 말귀 더럽게 안 듣는다.

손바닥을 떼자마자 고함을 지르려고 숨을 몰아쉬는 걸 간신히 막아 세웠다.

하마터면 경찰서에 얼굴 도장 찍을 뻔했다.

.

.

.

* * *

도슈의 집 내부는 여자애의 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삭막했다.

부엌과 화장실 딸린 조그만 방 안에 컴퓨터가 달랑 한 대.

간이 화장대 정도는 있었지만 그것을 빼면 게임폐인 방이나 다름없었다.

'아, 게임폐인 맞지.'

주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컵라면과 생수 박스들이 이를 증명한다.

게이머에게 가장 좋은 환경!

나도 전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 왔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 못생긴 남자한테 붙잡혀서 깜짝 놀란 거셈."

한 대 쥐어 박을까..

그래도 일단 상황이 상황이다.

무단 침입을 한 것도 사실이니 한 번은 봐준다.

심호흡을 통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머리가 안 돌아가는 편은 아닌 녀석이라 납득시키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하나 만큼은 도저히 말을 들어 먹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말끝에 또 셈 붙이면 두 대씩 맞는다."

"알아들었....음."

셈이나 음이나.

저번에 만났을 때 분명 했던 이 이야기는 같긴 한데 일단은 스킵해준다.

나도 예고 없이 방문을 했으니 서로 주고 받은 셈이다.

"..너도 셈 쓰지 마셈."

"이건 올바른 사용법이고 하아.. 한 대만 봐준다."

한 대 봐주기로 했으니 나머지 한 대는 때린다.

두 대 때린다고 했으니 적절한 계산 아닌가?

꿀밤을 한 대 쥐어 박자 이제서야 조금 말이 통한다.

"그래서 대답은?"

내가 도슈를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현재 아마추어 판에서 제대로 된 선수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실력적으로 눈에 차는 이가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우후죽순 생기게 된 프로팀들이 죄다 채가버렸기 때문이다.

본래의 미래 이상으로 로드 오브 로드가 E-스포츠로서 흥행해버린 여파다.

'이런 고사리손도 아까울 지경으로 말이야.'

실력적인 비유가 아니라 직접적인 비유다.

절대 160이 안될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나이대도 나이대인지라 한 마디로 그냥 땅꼬맹이다.

외모야 반듯한 편이지만 인격적인 부분은 동네 초딩이나 다를 바 없다.

"나 할래!"

"아, 당연히 안 한다고 할 줄 알았..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고.

도슈는 의외로 흔쾌히 대답을 해왔다.

"한다고 했잖아. 말귀 못알아 먹으셈?"

"아니, 진짜로..?"

두 대 쥐어박는 게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대체 왜?

솔직히 기대 하나도 안 하고 있었다.

한 번 더 재미삼아 위협줘 보고 그래도 안 한다고 하면 깔끔하게 포기하려고 했다.

이 녀석의 실력이 괜찮은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켕기는 부분도 많으니까.

그리고 이 녀석이라면 오기로라도 안 한다고 대답할 거라 생각했다.

근데.. 뭐?

"물론 조건이 있으셈."

"응, 알겠어. 하지만 일단 네 대.. 아니, 두 대만 맞고 이야기하자."

한 번 넘어가 주면 밑도 끝도 없는 스타일이다.

혹시 보통 여자애들처럼 징징 울까 한 대, 한 대 반응을 보며 때렸지만 의외로 잘 참는다.

그렇게 참고 나서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온다.

"히잉.. 조건은 내가 도슈라는 걸 까발리지 않는 거임."

"그건 나도 싫어 임마.."

엄밀히 따지자면 할 말이 없다.

님들 도슈가 알고 보니 여고딩이었음!

이런 말하다간 정신 나간 사람 취급 안 받는 게 다행이다.

뭐, 내가 말하면 어느 정도 신빙성은 붙겠지만 굳이 리스크를 짊어지기는 싫다.

"그리고 돈주셈... 셈표 간장~."

"초딩이냐.."

본인도 무안한지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린다.

그 주둥아리를 꾹 잡아 늘려주면 적당한 형벌이 될 것 같다만 나도 거기까지 악마는 아니다.

그런데 돈이라?

연봉 협상을 직접 한 적은 없지만 받은 적은 있다.

그리고 코치를 지망했을 적에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은 알아두었다.

때문에 불편함은 없지만 이 녀석 과연 얼마 원할까?

궁금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님선."

"1억?"

요즘 애들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문제다.

연봉 1억이 뉘집 개이름인 줄 아나.

나는 도슈의 귓볼을 딱 붙잡고 하나부터 열까지 업계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절대 잊지 못할 만큼 따박따박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알겠냐?"

"알았으니 귀 놔줘요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잘못됐다.

해서는 안될 짓인 건 맞는데 가끔 있다.

말 드럽게 안 듣다가  몇 대 맛배기를 보여주면 이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녀석이.

도슈 녀석이 딱 그 케이스다.

"그래, 당연히 존댓말을 해야지. 오빠라고 불러봐."

"오빠는 개뿔이 으으.....!"

손발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게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다.

이거 참 우연인지 필연인지 주위 여자들 중에 나를 오빠라고 불러주는 애가 없다.

따지고 보면 예은도 연하인데 막 부르고 있고.

많이 아쉽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방금으로 설명을 전부 마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니까 하루이틀 충분히 고민 해보고 답 줘. 핸드폰 번호는 알지?"

도슈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여온다.

다소 장난스러운 분위기는 있었다지만 화두 자체는 무거웠다.

자기 인생인 만큼 강요는 할 수 없다.

이 녀석도 자기 머리로 생각이라는 걸 해봤으면 좋겠다.

"자, 잠깐."

미련없이 문을 닫고 나가려던 찰나.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멈춰 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주 뭐 씹은 표정의 도슈가 나를 바라본다.

그럴 거면 멈춰 세우지를 말라고.

"...다음부터는 본명으로 불러."

"내가, 왜?"

부르라면 불러줄 줄 알았나.

조금 애틋한 표정으로 말했다면 고려의 대상이 됐겠지만 뭐 씹은 표정으로 뭘 부탁해?

그래도 듣고 보니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다.

"도슈라고 불르면 다 들키잖아 바부탱아!"

"어쭈? 니가 아직 점심을 못 차렸지?"

점심을 아직 안 먹은 것 같아서 꿀밤을 세 대 먹여줬다.

울먹울먹, 하지만 절대 울지는 않겠다는 듯 필사적이다.

자존심을 세우는 최후의 보루.

마지막 결정타까지는 먹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 주위 여자들은 왜 다 이 모양 이 꼴일까?'

성격 부분의 너프 사항이 조금 심각하다.

쟤는 한층 더해서 맛까지 간 것 같다.

어쨌든 간에 한 명쯤 긍정적으로 두고 볼 이가 생긴 걸까.

'저래 봬도 실력에는 문제가 없어.'

때리면 말 잘 듣는 타입이니 교육 시킬 맛도 난다.

만약 팀에 들어온다면 머리는 때리지 말아주자.

머리 때리면 안 그래도 빠져 있는 나사가 더 풀릴지도 모른다.

<빼애애애애애액!>

도슈, 아니 초홍이네 현관문을 쾅 닫고 나오자 안 쪽에서 괴성이 들려온다.

역시나 제정신이 아닌 아이다.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에게 된통 혼나기를 기대하며 나는 차에 올라탔다.

'다음에는 반드시 정신머리를 들게 해줘야겠다.'

차에 올라탄 나는 시내를 적당히 드라이브 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도 되겠지만 기분 전환 겸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10분쯤 헤맨 끝에 주차장이 딸려 있는 메이저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한 명, 이게 오늘의 진짜 목적이지.'

도슈가 불확실한 카드였다면 나머지 한 명은 확실한 카드다.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카페 안에 들어가 달콤해 보이는 커피를 한 잔 주문한 나는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뚜-

뚜-

전화를 연결한 대상은 선수가 아니다.

코치로 들어와줬으면 싶은 사람.

정확히는 군소리 없이 노예 계약서를 쓸 만한 사람.

썩 괜찮은 적임자가 한 명 밟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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