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97화 (49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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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유명 프로게이머 Unknown Error, 경기도 XX시 카페에 출현하다!

SNS등으로 충분 퍼질 법한 이야기 아닌가?

나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더없이 냉정했다.

"저기.. 에러갓 맞으시죠?"

"진짠가봐. 혹시, 저희 사인 가능하세요?"

예, 가능하고 말고요.

대학생인 듯한 남자 두 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등에 멘 백팩에서 전공책을 꺼내 나에게 내민다.

"..여기 있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보물로 간직할게요! 야, 같이가!"

상당히 쑥스러운 듯 사인만 받고 허겁지겁 사라진다.

이것으로 벌써 네 번째.

주위의 이목 때문에 카페 안에 있기가 곤란해 수없이 들락거려야 했다.

'이럴 거면 선글라스라도 끼고 올 걸 그랬나.'

처음에는 정말 재밌었지만 갈수록 아니다.

아니, 왜!

대체 왜!

고추놈들만 득실득실 하는 건데..

'....인지도 정말 영양가가 하나 없네.'

외국에서는 이렇지를 않았다.

예쁜 누님들이랑 같이 사진도 찍고 정말 좋았다!

사인도 막 전공책, 두꺼운 공책, 그것도 뜯어서!

그런 곳에 안 하고 쿨하게 옷에다가 그려주고 재밌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이 모양 이 꼴이냐..

귀여운 여성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광경을 꿈꿨건만 이상과는 한없이 거리가 멀다.

싫은 건 아니지만 반복될수록 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위이잉.

그렇게 자기 한탄을 하며 시간을 죽이는 사이.

이윽고 카페의 자동문이 스물 두 번째 열리고 닫혔다.

지금까지 입출입한 행인들은 그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이청호 코치….'

스프링 시즌 삼선 레드 우승의 주역.

그랬어야 했을 비운의 사내였다.

.

.

.

* * *

내가 이청호 코치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다.

그리고 순서를 따지자면 먼저 연락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안녕.. 하십니까."

前 삼선 레드의 코치 이청호씨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온다.

조금 갑작스레 부른 감이 있어 늦었지만 제대로 왔다.

추측하건데 허겁지겁 뛰어 왔던 듯 셔츠가 땀으로 절어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제가 청호씨를 부른 건 말씀하셨던 부분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 어떤 소리를 듣든 달게 받겠습니다. 제 업보니까요."

인사를 생략하고 진행한다.

실례되는 언행이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 나에게 찔리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

"생각을 해봤는데, 이건 사과로 끝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더라구요."

"…그렇긴.. 합니다. 저도 알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연락을 드린 겁니다."

얼마 전 스프링 시즌 결승전에서 삼선 레드는 조금 많이 이상했다.

이를 정확히 눈치챈 건 나뿐이지만 충분히 차고 넘친다.

발언자가 나다, 이것만으로도 화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선을 넘었는지 명확하게 해설도 가능하다.

내 한 마디에 이청호 코치의 인생이 걸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실 선수들을 생각해서라도 넘어가주려 했는데….'

결승전이 끝난 직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 삼선 레드의 선수들이 말을 걸어왔다.

솔직하게 이실직고 하며 사과를 구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끝냈지만 어쨌든.

선수들로서는 감독과 코치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 이해해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당신도 감독 때문에 말려들었다고?

"예.. 일단은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정이야 어찌됐든 명령을 한 쪽인 코치는 다르다.

감독이 어찌저찌 하라고 했다 한들.

선수들을 말려들게 한 것 만으로도 죗값은 무겁다.

일을 터트리면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가니 그럴 수야 없겠지만..

이쪽 업계가 워낙 좁은 편이다.

재취업은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정도로 말이다.

"만약 당신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 저는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나는 준비해두었던 서류를 내밀었다.

애초에 오늘 외출의 주된 목적은 그였다.

도슈는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미삼아 푹푹 찔러본 거고.

"이건....!? 정말, 괜찮겠습니까?"

이청호 코치가 흥분된 어조로 물어온다.

혹시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까.

거기까지는 사실 생각해본 적 없지만 앞으로도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의 얼굴에 기쁜 빛이 역력해 보인다.

"쭉 내려봤으면 알겠지만 급료 부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다 저의 업보고, 애초에 저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내민 서류의 내용은 계약서다.

코치로서 내가 만들 게임단에서 일을 해라.

이래 봬도 많이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이청호 코치는 능력이 있다.

삼선 레드의 팀원들이 수준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코치의 능력이 없었다면 과연 수 번의 우승이 가능했을까.

이번 스프링 시즌만이 아닌 내년에도 한 번 더.

본래라면 삼선 레드는 승승장구 해야만 했다.

SKY T1 K와 필적하는 유일한 팀, 결코 근본 없이 만들어진 역사가 아니다.

'물론, 지켜봐야겠지만.'

한 번 실수를 한 사람이 두 번이라고 안 할 리 있을까.

맞는 말이지만 한 번의 실수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은 가혹하다.

진실로 그가 나쁜 사람이다, 일축하기엔 그는 범상치 않은 인생을 보냈다.

"진심으로 기쁩니다.. 사실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려고 했거든요…."

돌연 이청호 코치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로서는 딱히 들어줄 이유가 없지만 어차피 한가하기도 하고.

주문해둔 커피를 반 컵쯤 비울 때쯤 대강의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어떻게 속죄를 하고 싶었지만 일을 벌려서야 피해자만 늘어난다.

선수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용서를 구해야 할 선수들은 한국을 떠나거나 게이머 생활을 접었다.

유일하게 한국에서 게이머 생활을 하는 씨지맥과 내가 속한 게임단에 들어간다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송구스럽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들어가고 싶다며, 막말로 급료는 안 줘도 상관이 없다며 고개를 숙여왔다.

'확실히.. 이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게 최선이겠지.'

물론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전제 하에서다.

태도는 숙연했지만 그런 거야 얼마든지 꾸며낼 수 있는 부류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라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예, 성심성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꽈악 악수를 나누자 힘이 느껴진다.

과오를 범한 현재에서 끝내지 않겠다는 듯 의지가 묻어나온다.

이것으로 일단 한 명.

게임단의 구색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

.

.

* * *

Unknown Error가 떠난 북미.

맹수의 왕 사자가 사라진 초원은 한창 비가 내리는 중이다.

빗줄기는 슬픔이나 설움 같은 감정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경우가 다르다.

초원에서 비는 축복을 상징한다.

우후죽순 고개를 내민 새로운 강자들은 저마다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이거나 받아라!

북미 롤챔스 8강 두 번째 경기에서 CLC가 칼을 뽑았다.

신규 챔피언 치고는 평가가 애매했던 바위.

CLC의 정글러 세인트조지아가 들고 나오며 화려한 신고식을 알렸다.

<세인트조지아의 강제 이니시! 싼티나 잡히면 독나타스 한타 답 없어져요~!>

<바위의 궁극기가 원딜러 포커싱에 기가 막힙니다. 이어서 배티의 점멸 궁까지! 원딜 캐리 조합에서 원딜러인 꼬그모가 끊기고 시작합니다..!?>

CLC와 독나타스는 오랜 숙적이라고 할 만한 관계다.

절대 지고 싶어하지 않는 철천지앙숙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이상 봐주는 건 없다.

첫 번째 세트를 CLC가 챙겨갔지만 이어진 복수.

독나타스는 싼티나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두 번째 세트의 승기를 점했다.

견고하고 탄탄한 성벽.

하지만 두 번은 먹히지 않았다.

CLC가 준비해온 바위는 원딜러의 포커싱이 기가 막혔다.

성벽을 무시하고 뛰어들어 원딜러부터 박살을 내버렸다.

<하하, 상황이 재밌게 흘러갑니다. 세인트조지아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통쾌할 것 같습니다.>

본디 CLC의 멤버로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세인트조지아는 한 번 퇴출당했다.

그리고 LCF에서 독나타스의 정글러로서 참전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만 팀원과의 트러블 문제로 독나타스에서 방출 신세.

그 후, 어떻게 재교섭이 이루어진지는 몰라도 세인트조지아는 CLC에 복귀했다.

세인트조지아의 인생도 참 기구하게 꼬였다.

<그나마 꼬그모가 점멸이 있으면 더 버텨보겠습니다만. 역시 시간을 내주지 않고 계속해서 강제 이니시를 걸어버리네요.>

<스노우볼에 최적화된 챔피언 같습니다. Error선수가 나갔다고는 하나 역시 CLC! 로드 오브 로드의 메타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Unknown Error라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그는 사라졌다고 북미의 프로팀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저마다 의문과 호기심을 품으며 연구를 마다하지 않는다.

적게는 게임 커뮤니티의 이용 회원들.

많게는 프로 게임단의 코치진과 선수들도 메타를 선도하기 위해 열심이다.

그러한 여파인지 이번 북미의 스프링 시즌은 정말 특이한 챔피언이 정말로 많이도 나왔다.

─오늘 CLC가 꺼낸 바위 정글 꽤 괜찮은 거 같네?

조별 리그에서 들고 나온 정글 젤리맨은 애매했었는데 간만에 또 성공 케이스 나온 듯?

그만큼 솔로랭크가 개판이 되긴 하겠지만..

└이미 개판이지. W선마 정글 개서스 괜찮던데?

글쓴이-개서스는 CLU에서 꺼냈던가? 그건 난이도도 낮고 한타도 괜찮아서 난 좋아함.

└미역슨이 했던 가르마도 괜찮아 보이더라.

└가르마는.. 솔직히 상향 좀 필요한 듯….

이번 NA롤챔스 스프링 시즌의 조별 리그는 유별나게 난장판이었다.

아무래도 본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다 보니 실험적인 카드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실패작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의외로 건질만한 챔피언들도 존재했다.

이 챔피언을 이런 방식으로 쓰면 의외로 썩 괜찮더라?

이는 마치 유행처럼 번져 현재 북미의 솔로랭크는 초토화 상태.

너도 나도 특이한 챔피언에 목을 메는 탓에 사건사고가 끊이지를 않고 있다.

뭐, 과정이야 어찌 됐던 북미의 롤챔스 스프링 시즌은 흥행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다행스럽게도 8강부터는 양 팀이 진지하게 수를 교환한다.

CLC가 그러했던 것처럼 간간히 의외성이 있는 카드들로 상대의 조합을 카운터 친다거나 하는 흐름도 엿보였다.

하마터면 숨이 죽을 뻔했던 북미 리그는 활력이 살아 넘쳐 건강한 상태다.

─쯔쯧, 북미는 뉴메타로 선수들 실력 눈가리기 하냐?

유럽 리그는 피가 튀길 정도로 치고 박는데 장난질이나 하고 있네~

북미 수준이 딱 그렇지.

그렇게 아옹다옹 소꿉놀이하고 있어라LUUUL

└느그 게시판에 가서 놀아라.

└그래서 LCF때 결승전 한 팀도 못 가고 털렸지?

└LOLOLOL 메타 못 따라가는 게 자랑인 줄 아는 유럽충 수준!

└난 유럽 리그도 챙겨 보는 편인데 이런 놈들 때문에 가끔 가다 정 떨어짐.

북미가 초원이라면 유럽은 정글이다.

초원과 정글이 뭐가 다르냐?

묻는다면 바로 긴장감이다.

언제 어느 때 자신의 목숨을 노려올지 모를 천적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수많은 나라가 속해있는 만큼 여러가지 색깔의 팀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현재의 강자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도 언제 고꾸라 넘어질지 모를 잔혹한 생태계.

시험적인 픽을 활용하기에는 기회비용이 상당히 무겁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화가 없진 않다.

─요즘은 유럽 리그도 선수들 도전 정신이 투철해.

아마 스크림에서 검증 받은 카드만 쓰는 거겠지만 간간히 독특한 챔피언들도 나옴.

게임 스피드도 빨라진 느낌이고 답답함도 없다.

내가 보기엔 북미도 유럽도 각자의 장점이 있음.

어그로 끄는 애들은 어차피 어딜 가든 그러고 노는 애들이니 무시 GO.

└이게 정답이지. 유럽 리그는 진중한 맛이 있어서 평균적인 수준이 높아. 그렇다고 고인 물도 아닌 게 팀들이 많아서 매 시즌 별로 1부 리그 참가팀들이 많이 달라짐.

└REAL. 유럽뽕 심하게 맞은 애들만 아니면 뭐라고 안 할 텐데.

└빨리 다음 LCF 시즌 와서 실력 검증 갔으면 좋겠다. 그때는 에러갓 돌아오려나.

글쓴이-롤드컵 때는 몰라도 LCF는.. 와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번엔 유럽 쪽으로!

Unknown Error가 남기고 간 영향은 적지 않았다.

방향성은 다르다지만 긍정적인 변화점을 맞이하고 있는 북미와 유럽의 프로팀들.

그것이 다가오는 롤드컵에서 어떠한 변화점을 야기할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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