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98화 (49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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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4월이 절반 쯤 지나간 오늘.

나는 거실 쇼파에 앉아 앞으로의 스케줄을 되짚었다.

서머 시즌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있다지만 여유롭다고 보기엔 힘들었다.

'팀원도 팀원이지만, 시드권이 반드시 필요해.'

시드권, 한 마디로 롤챔스의 참가 자격이다.

한국에서 팀을 창단하는 건 자유지만 이 시드권 만은 절대 마음대로 얻을 수가 없다.

아무리 대단한 기업의 스폰을 받는다 해도 공짜로 주진 않는다.

'돈으로 구입한다.. 그런 방법도 있기는 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당연히 개최측에서 파는 건 아니고 시드권이 있는 팀과 거래를 해서 얻어오는 거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은 돈으로 거래가 된다.

문제는 그 시드권을 팔아줄 팀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E-스포츠가 그렇게나 흥행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여러 게임단이 새롭게 창단됐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그 여파로 시드권 부족이 심각하다.

이미 경쟁의 극단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기존에 시드권을 파는 팀이 있다면 그 가격은 천정부지.

한 마디로 돈으로 구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가 된다.

"우리 은이는 어느 쪽이 좋아?"

"..진짜 뒤져볼래?"

인상을 잔뜩 찌푸린 예은이 나를 씹어 먹을 듯 쳐다본다.

아니, 우리 사이에 애칭 좀 붙일 수 있지.

그리고 시작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네가 먼저 현이라 불렀잖아.."

"그건 오글거리지 않아서 돼."

세상에 무슨 이런 내로남불이 있단 말인가.

자기야, 서방님 이런 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너 따라서 은이라고 줄여서 부를 수는 있잖니.

"절대 안돼."

딱 잘라서 거부해온다.

뭐가 그리 싫은지는 몰라도 절대 안된다고 단언하니 어쩔 수 없다.

다른 방안을 천천히 생각해보는 수밖에.

"그래서 어느 쪽이 좋은 건데?"

"글쎄…. 역시 무난한 건 LML쪽일까."

예은의 말은 정론이다.

딱히 말해주지 않아도 알 정론이지만 가장 현실론인 것도 사실이다.

롤챔스의 하위 리그 LML.

로드 오브 로드 마스터즈 리그에서 상위 성적을 쟁취하는 것.

'2부 리그라.. 천천히 돌아가는 셈이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아.'

물론 다른 하나의 방법도 있다.

내가 지난해에 노렸던 방법.

바로 LCL,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를 우승한다.

'혹은 우승팀을 흡수한다.'

LCL의 우승팀에게도 마찬가지로 시드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는 시드권을 사는 것 이상으로 만만치 않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름만 단 게임단들이 부지기수다.

대충 이러한 스토리다.

삼선 게임단의 성공을 본 몇몇 기업들이 아랫것들을 닦달해서 만들긴 만들긴 만들었다.

그런데 간판만 있지 뛰어줄 선수들이 없더라.

이미 스프링 시즌 전만 해도 이러한 선수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스프링 시즌 이후로 심화된 것이다.

로드 오브 로드의 인기가 많아지면 그만큼 도전하는 이들도 많아지겠지만 하루 이틀로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니다.

즉, 지금처럼 포화된 상황에서 LCL의 우승팀 스카웃을 노리는 건 힘들다.

정말로 여러 팀들에서 득달같이 달려들 거다.

뭐, 예은의 아버님께 많이 부탁해서 자금을 끌어오는 방법도 물론 있다.

있기야 하겠지만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다.

더 나은 방법이 반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의 기준이 정확히 몇 시라고?"

"10시."

내가 슬그머니 눈을 흘기며 물어보자 또다시 딱 잘라 대답한다.

친구 관계, 친구 관계라….

물론 기억을 하고 있다만 말로만 그렇지 알콩달콩 풋풋한 동거를 기대했는데 얄짤이 없다.

낮에는 완전 손가락 하나 못 대게 한다.

김칫국만 연거푸 마시고 있는 실정이다.

'으아.. 앞으로 한 시간 어떻게 기다리지..'

그래도 밤이 되면 상당히 살가워진다.

스킨십도 허락하고, 먼저 달라붙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요염해지는데 낮에는 정말 전보다 쌀쌀맞다.

가끔 가다 보면 내가 얘랑 사귀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손만 잡으면 안돼? 응? 한 손은 비잖아."

"휴우.. 특별히다?"

자꾸 보채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 손을 쇼파 바닥에 내려 놓는다.

그 위에 손을 얹지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연인 사이라는 게 별것 안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그냥 좋다.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세어 나온다.

"바보, 실없게 시리."

예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살짝 어깨를 기대온다.

이런 부분에서 하나하나 마음을 재확인하는 것이.. 나도 참 마음이 밴댕이 소갈딱지다.

혹시라도 애정이 꺼진 건 아닐까 하루하루 낮과 밤이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

"핸드폰으로 뭐 보는지 물어봐도 돼?"

"흐응.., 될까 안될까.. 잠깐만."

아까부터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딸칵 거리고 있다.

당연히 개인의 사생활이지만 뭐에 그리 정신이 팔린 건지 궁금하다.

소외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 혹시 엄청 찌질한 거 아닐까..'

누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반박하기 힘들겠지.

그래도.. 이렇게 예쁜 애인을 두면 불안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평소에 정말 간수를 잘해야 한다.

드라마에서 많이 봤다.

"바보냐, 머리에 당분 부족한 거면 사과라도 먹을래?"

내 머리를 한 대 톡 때리며 일어난 예은이 부엌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사과를 한 알 뽀득뽀득 씻어서 그대로 가져온다.

접시도 없이 그냥 통째로.

아작.

붉은 빛이 감도는 사과를 예은이 아그작 씹어 먹는다.

입을 한껏 벌려 깨물은 지라 사과에는 잇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다.

그렇게 한 입 베어 물은 사과를 나에게 건네왔다.

"예쁘지?"

"어, 엄청.."

모르긴 몰라도 예은이 예쁘다는 대상과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대상은 다를 거다.

예은에게서 건네 받은 사과의 품종.

제철이 아님에도 이 뚜렷한 붉은 빛은 홍옥이라 생각된다.

눈으로 봤을 때 가장 예쁘며 새콤한 맛이 특징인 사과다.

"바보, 홍옥은 가을에만 나거든? 그냥 시장에서 예쁜 걸로 골라 담은 거야."

"틀릴 수도 있지..!"

잇자국이 난 위치에서 조금 밑 부근을 깨물어 입에 머금은 나는 다시 사과를 건넸다.

확실히 달콤하고 퍼석거리는 게 많이 먹던 부사 사과다.

다시 쇼파에 털썩 앉은 예은이 이야기를 이어왔다.

"그냥 별건 아니고.. 고민 좀 했어."

"뭐를?"

예은이 휴대폰 화면을 내밀어온다.

거기에는 텍스트로 저장된 짧막한 문장들이 보인다.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정글러?'

엄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쭈욱 긁으니 그 밑에도 빼곡히 적혀 있다.

옛날 메타부터 시작해서 현재 주를 이루고 있는 것까지.

최근에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는 챔피언들도 빼놓지 않았다.

"엄청 열심이네? 너 머리 쓰는 타입이었나?"

"..바보한테 바보라고 들은 기분이라 열 받는데."

진심으로 빡쳤는지 주먹을 꽈악 쥐어온다.

아니,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닌데..

게임 잘하는 머리랑 공부 잘하는 머리는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적어도 로드 오브 로드에 한해서 예은은 무투파다.

나는 이래 봬도 분석파고.

"그래, 너 게임 잘해서 좋겠다."

고개를 휙 돌리더니 입을 대빨 내민다.

완전히 삐졌다는 의사의 표현.

마음 같아서는 꼭 끌어 안아주고 싶지만 아직 20분은 더 남았다.

"대충 둘러 봤는데 정리를 깔끔하게 잘했네. 역시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금방금방 배운다 야."

"흐응.., 부족한데."

정말 진심으로다.

단순히 챔피언만 정리한 게 아니라 사용할 때나 카운터라던지.

막상 글로 정리하려면 여간 복잡한 게 아닌데 잘도 해냈다.

나의 경우 알고는 있어도 이렇게 정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평소의 공부 습관이 배어져 나오나 보다.

"금방 따라잡아 줄 테니 각오해?"

한 차례 비행기를 태워주자 기분이 풀린 듯 콧방귀를 껴온다.

뭐, 굳이 방금 전 차트가 아니더라도 사실 알고 있다.

최근 예은이 나와 거리를 두고 방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 무언가.

예은의 솔로랭크 점수가 부쩍부쩍 오르는 중이다.

이전부터 꾸준히 해오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더욱 열성이다.

특히 모스트가 정글러로 자리 잡았다는 게 큰 변화다.

이전에는 그냥 꼴리는 거 꼴리는 대로 했으니까.

'이 녀석은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최근 솔로랭크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모 아마추어 정글러.

다름아닌 예은이 새로이 판 아이디다.

비밀로 하려는 건지 나에게는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감히 누구한테 숨기려고 하는 건지. 만나자마자 알아챘다고.'

아무래도 천상계가 좁다 보니 만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좁다고 해도 최소 수백 명.

알아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예은에 한해서는 가능하다.

예은의 플레이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다.

손발을 많이 맞췄을 뿐만 아니라 조교를.., 아니 지도를 내가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많은 조각을 내가 채워줬다.

내가 아니더라도 시간이 차차 흐르면 발각되긴 할 거다.

굉장히 높은 구간에서 손에 꼽는 실력을 가진 이는 극소수니까.

이야기가 불거지는 순간, 후보가 좁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의 경우 게임 한 번 같이 하는 것으로 단박에 눈치를 채서 문제지.

"아, 시간 됐다."

거실 TV 위에 걸려 있는 벽걸이 시계가 정확히 10시를 가리킨다.

나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예은의 등허리에 손을 올렸다.

"저 시계 5분 빠른 거 몰라?"

"…."

거실 탁상 위에 있는 핸드폰을 손으로 슬쩍 넘기자 정말로 9시 56분.

대략 5분 정도 차이가 났다.

아니, 그래도.. 조금만 봐주세요.

10시가 다가오자 예은도 그렇게 야박하지 만은 않았다.

"특별히, 오늘만이야?"

활짝 두 팔을 펼친 예은의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요즘 이 맛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예은 특유의 살짝 차가운 체온.

사귀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이렇게 포옥 안으면 살갗이 차가워서 기분이 좋다.

그렇게 안은 상태로 쭈욱 있으면 금방 따듯하게 뎁혀지는데 엄청 포근하다.

예은만 안고 자도 절대 불면증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만 같다.

"슬슬 지워지려고 하는 거 같은데.. 다시 해도 돼?"

쇄골에서 조금 아랫부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자 예은이 흠칫 몸을 떤다.

딱 여기까지가 커트라인이다.

처음 자국을 남겼을 때보다 약 0.5cm정도 밑으로 가있다.

"으이구, 너 때문에 내가 찜질방을 못 가는 거 알아?"

예은과 사귀게 됐던 날에는 술김에 서로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깨고 보니 이건 조금 아니었다.

어디 계단에라도 구른 것처럼 목덜미 부근이 시뻘겠다.

한동안 나가지도 못할 것 같다며 예은에게 엄청 구박 받았다.

그 이후로는 하나만.

그것도 허들을 확인하는 용도로만 간간히 남긴다.

예은의 마음속 응어리는 생각 이상으로 깊었고 진도는 지지부진하다.

뭐, 지금의 상태도 전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뭣하면 같이 가면 되지. 히히."

"너, 우쭐 거리고 다닐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아냐, 이 푼수야?"

같이 외출을 하게 되면 괜시리 어깨에 힘이 주어지는 건 사실이다.

솔직히.. 이렇게 예쁘고 참한 여친을 사귀게 되면 어떤 남자도 그렇게 될 거다.

물론 단순히 자랑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

이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노력도 한다.

"술 마실래? 괜찮은 거 사왔어."

"..이 변태. 술을 마시고 싶은 거야, 내 입술을 마시고 싶은 거야? 뭐..., 싫지는 않지만."

나도 예은도 애주가에 속하다 보니 같이 술을 마시는 빈도가 잦다.

소주나 맥주를 마실 때는 조금 그렇고 독한 양주를 마실 때.

예은과 하는 키스가 장난이 아니게 농밀하다.

버릇이 될 것만 같다.

그렇게 안주를 곁들인 술을 몇 잔 나누자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찐한 키스를 나눈 후에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내일 하루도 힘낼 수 있을 만큼 만족스런 밤이었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우며 정신이 팔린 탓에 못 다 마친 생각을 이었다.

'도슈는 일단 보류니.. 서포터를 구해야 할 텐데.'

여기에 대해서는 방법을 상당수 고민해봤다.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크게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맨 땅에서부터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기존의 선수 한 명을 영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본래라면 쓸 수 없을 세 번째 방안을 알고 있다.

'과연 둘 중 누구로 해야 할까.'

배부르고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향후 미래에 떠오르게 될 서포터 선수를 영입한다.

적은 투자로 최고의 이익을 낼 수 있는 선수가 내 안테나에 두 명 잡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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