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99화 (49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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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로드 오브 로드 마스터즈 리그.

LML은 흔히 말하는 쩌리대전이다.

2군팀으로 분류되는 애매한 실력의 팀들이 자웅을 겨룬다.

지금껏 그런 취급을 받아왔던 건 사실이지만 근래에는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게 되었다.

새로운 프로팀들이 우후죽순 생기며 참가팀의 숫자부터 눈에 띄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이번 LML은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할 거야. 어쩌면 우리 중 과반수 이상이 탈락할지도 모르지."

어두운 방 안, 한 명의 남자가 속삭이듯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동석한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각자 한 명, 한 명이 게임단의 감독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1부 리그인 롤챔스에 한 번씩을 발을 디뎠던 경력이 있는 팀들을 이끌고 있었다.

"글쎄, 적어도 우리팀은 3위권 내에 입상할 거야. 자네들의 팀은.. 모르겠지만."

우측에 앉아있는 남자가 살짝 시비조로 섞어 신경 거슬리는 소리를 내뱉는다.

하지만 이런 것에 과민반응을 하진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동맹 관계가 아니다.

친구보다 적을 더 가까이 둬라,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뭐, 그들 중에는 친하게 지내는 그룹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라이벌 관계다.

그들 하나하나가 LML의 3위권 이내, 1부 리그인 롤챔스로 직행할 수 있는 시드권에 가장 가까운 이들이다.

"지난 대회였으면 몰라도 이번에는 경쟁이 빡세져서 말이야. 내가 보기엔 자네 팀은 준결승도 간단간당할 거 같은데?"

"참가팀의 수가 크게 늘었지. 개중에는 위협적인 다크호스도 제법 있어."

2부 리그인 LML은 롤챔스와 다르게 참가팀의 수가 규정돼 있지 않다.

지금껏 전례를 따진다면 10개의 팀도 참가를 하지 않았던 때도 있다.

많을 때는 스무 팀 가까이 참가한 적도 있을 정도다.

물론,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고 12시즌의 말 이후로 규정이 바뀌었다.

스폰을 받지 않는 아마추어는 절대 참가하지 못한다.

그런 규정이 추가됐음에도 이번 스프링 시즌 알려진 바만 스무팀 이상, 미어 터질 지경이다.

"다들 알다시피 E-스포츠 판이 커졌어. 앞으로는 더욱 커질 거야."

"자리를 잡는다면 지금이 적기. 그걸 모르는 바보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좌측에 자리 잡은 남자가 과일을 우적우적 씹으며 되는 데로 떠벌렸다.

표현은 다소 거칠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현재 로드 오브 로드 E-스포츠 판은 급속도로 커지는 추세다.

해외의 영향도 있다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얼마 전 스프링 리그의 결승전.

무려 삼선이 대놓고 로드 오브 로드를 주목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다각도의 분석이 이루어졌고 결정적인 쐐기까지 박혔다.

"서머 시즌은 그 삼선이 후원한다고 하던가?"

"반드시 목을 메야만 하는 이유가.. 달린 셈이지."

LML을 벗어나 1부 리그인 롤챔스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

친하지도 않은 2군 게임단의 감독들이 오늘 한 자리에 모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삼선이 E-스포츠에 눈독을 들이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단순히 게임단을 굴리는 선을 넘어섰다.

삼선 라이온즈 파크의 무상 대여.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일지언데 서머 시즌을 삼선에서 후원한다?

오늘날 삼선이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대기업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외계인을 납치해서 고문한다는 등의 루머도 있긴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 치고.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향후 투자 가치가 높은 미래의 꿀을 미리미리 쪽쪽 빨아버린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다른 기업들은 삼선이 무언가 일을 벌리면 필히 주목하게 된다.

"아마 너희들도 상부에서 명령하달이 됐겠지. 여기서 잘하면 미래는 보장되는 셈이고.. 최악의 경우 옷 벗어야 할지도 몰라."

중앙의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의제를 꺼냈다.

각 게임단의 감독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본론.

LML의 진출팀은 당연 잘하는 팀이다.

여기에는 이견이 달릴 수가 없다.

그렇지만 가능성 정도야 높일 수 있다.

한 마디로 변수를 줄이는 행위.

보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계책을 짜내야 한다.

최근 들어 야기되기 시작한 가장 큰 변수에 대한 대책도 포함해서 말이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는 집어 치워두고 슬슬 본심을 꺼내자고. 다들 알잖아? 우리가 누구 때문에 모이게 됐는지."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중앙의 남자, 마진 게임단의 감독 최순재가 이야기를 이었다.

본 회의의 참석자는 대부분 2군 게임단들의 감독이지만 예외도 있었다.

형제팀이라는 개념이 있는 마진 게임단의 경우가 대표적.

마진 공격대의 경우 1부 리그에 잔류했지만 수비대는 LML로 강등당했다.

반반 걸치고 있는 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목소리가 크다.

본 회의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은 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의 존재는 오늘의 의제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 전 우리 게임단에 이런 제의가 왔어. 보낸 이는.. 올마스터."

최순재의 마지막 한 마디에 참석자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모아졌다.

나눠준 프린트물을 한 번 살펴본 이후에는 흠칫 놀라기까지 했다.

서류에 쓰여진 내용은 잘 정리된 편지의 복사본.

선수 한 명을 넘기지 않겠냐 하는 제의였다.

"일단은 거절할 생각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건 곱씹어봐야 할 문제야."

감독들은 혹시 잊고 넘어간 부분은 없나 편지의 내용을 찬찬히 살폈다.

마진 수비대의 서포터, FOX를 넘기지 않겠나?

정말로 흔히 있는 떠보기지만 절대 그냥은 넘길 수 없는 내막을 품고 있었다.

"올마스터.. 아니, Unknown Error였나? 그가 혹시 게임단을 운영하려는 건 아니겠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한국에 온 이유가 자신의 게임단을 구성하기 위함이라면 납득이 가."

각자가 그 의미를 추론하자 회의에는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게 올마스터다.

정말로 그가 게임단을 하나 운영하기 시작한 거라면.. 상당히 위험하다.

이번 서머 시즌의 LML에 강력한 경쟁자가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다들 진정해. 내가 자네들은 이 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가 뭐겠어? 바로 그 올마스터를 견제하기 위함이잖아?"

최순재는 한 번의 손길로 흥분하기 시작한 감독들을 능숙하게 제지했다.

그가 본 회의에 있어 얼마나 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 반증이다.

이어서 그는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올마스터가 자신의 게임단을 꾸리려 한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라고 하면 현재 한국에서 최소한 중간은 가는 게임단들의 감독들.

성적은 썩 좋지 않다지만 현재 프로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잔뼈가 굵다.

그렇기에 최순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맞아! 아무리 인맥이 있다고 해도 선수들을 전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는 구하지 못했겠지.."

"나머지 선수들이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 최순재, 이러려고 우리를 부른 건가?"

2군 게임단 중 탑티어에 손꼽히는 페닉스 게임단, 차형식 감독의 물음에 최순재는 고개를 넌지시 끄덕였다.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어리숙한 감독은 이 자리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진짜 목적, 그리고 방향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정리를 하자면 간단명료.

만약 올마스터가 선수를 팔아 달라, 제의를 해오면 단칼에 거절하라는 이야기다.

혹은 이야기를 질질 끌어서 교란시키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거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중요한 건 올마스터가 제대로 된 게임단을 구성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본 회의의 진짜 목적다.

"절대 쉽지는 않을 거야. 아니, 불가능하겠지. 현 판국에서 B급 이상의 선수들을 구한다는 건."

최순재가 씨익 웃으며 어두운 의도를 대놓고 드러내자 회의에 참석한 감독들이 헛기침을 내뱉는다.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데 더러운 일에 휘말리게 하려는 건가?

비밀 회의 자리라고는 해도 속내를 내비친다간 나중에 크게 데일 수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삼선 게임단의 감독놈이 헛짓거리 제대로 하다 잘리기까지 했다.

제 2의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는 일이니만큼 진중해야 한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선수가 귀하긴 해?"

"특히 봇라인 쪽에서 B급 이상의 선수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더라고. 이거 꿀정보니까 기억해둬서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야."

B급이라 함은 코치진과 감독들 사이에 있는 은어다.

한 마디로 선수들에게 등급을 매기는 행위.

커뮤니티 사이트등에 알려진다면 파동을 일으킬 게 뻔하기 때문에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나 쓰인다.

선수들을 사고 팔 때 이만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D부터 S까지 등급이 매겨져 있다.

D라 함은 솔로랭크에서도 애매하고, 경력이 없는 아마추어 선수.

C는 솔로랭크에서 준수한 실력을 보이는 아마추어 선수.

B는 솔로랭크에서 탑티어의 기대 가치를 내포한 아마추어 선수.

A는 정말로 흔하지 않은 원석들, 이를 테면 테이커나 비행기, 올마스터가 대표적이었다.

"B+의 선수들 중에 계약 기간이 슬슬 돼가는 애가 있으면 반드시 체크해 둬. 어차피 해야 할 일이지 않나?"

+는 아마추어를 벗어난 프로 선수들에게 붙는 등급이다.

마찬가지로 D+부터 A+까지 있다.

매일라이프의 경우 한 때 S+로 매겨졌지만 슬럼프 이후로 A+로 잠시 격하.

그럼에도 A+ 중에서는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는 선수다.

"우리 애들 중에는 누가 있더라.. 아, 재훈이가 슬슬 재계약 시기였지."

"어차피 올마스터는 미드 아니면 정글로 갈 테니 봇만 염두에 두면 돼. 골치 아프게 시선 분산하지 말자고."

"정글에는 그 뮴뮴이라는 이쁜이가 가지 않을까? 듣기로는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

회의의 참석자들이 한 마디, 한 마디 주고 받을 때마다 윤곽이 더욱 뚜렷해진다.

올마스터가 게임단을 꾸린다.

게임단을 구성하려면 필히 선수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시장에는 놀고 있는 선수가 없다.

그 중에서도 봇라인이 정말 구하기 애매할 거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정리되는 데에는 불과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2군 게임단의 감독들이지만 머리 돌아가는 능력은 나쁘지 않군. 자질구레한 설명은 스킵해도 되겠어.'

오늘의 회의 주최한 마진 게임단의 감독 최순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단합의 목적을 띄는 만큼 상당히 떨떠름한데 감독들이 말을 아주 잘 들어줘서 일이 편해졌다.

봇라인을 집중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이 또한 말을 꺼낼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알아서들 유추해냈다.

'올마스터의 서포터.. 무섭긴 하지만 진짜는 역시 미드지.'

얼마 전 스프링 시즌에서 올마스터는 서포터라곤 믿기지 않는 가공할 캐리력을 보여줬다.

그런 만큼 그가 다시 서포터로 나오는 경우도 상정을 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상당히 골치 아팠는데 올마스터가 알아서 이야기를 쉽게 정리해줬다.

마진 수비대의 서포터 FOX를 넘기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이말인 즉, 그 자신이 서포터를 할 일은 없다는 소리다.

여기에 모인 감독들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원딜러에 대한 제의가 먼저였다.

마진 공격대의 원딜러 스프레이를 영입하고 싶다고, 안된다면 수비대의 서포터 FOX라도 괜찮다고.

더욱이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1군 게임단들에게도 꽤나 매력적인 제안을 던졌다고 최순재는 들은 바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이미 1군 게임단의 감독들끼리는 한 차례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절대 선수를 내주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안심을 할 수는 없었다.

2군 게임단들 중에도 찾아보면 괜찮은 선수가 분명 있으니까.

'그것도 이제 물거품이 됐지. 올마스터,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혼자서는 어림 없을 거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이다.

올마스터의 기량이 빼어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혼자서 날뛸 수 있는 한계점은 명확하다.

팀원들이 발목을 안 잡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예를 들어 봇라인에서 킬이 마구마구 터져나오기라도 한다면 어쩔 텐가?

아무리 해외 리그의 수준이 높다고는 하나 한국 리그도 만만치 않다.

공격적인 움직임은 오히려 한국이 나을 정도다.

초반 킬을 밑천으로 스노우볼을 늘리는 능력은 탁월하다.

제아무리 올마스터, 아니 Unknown Error라 할지라도 봇라인이 터져버리면 얄짤이 없다.

“다들 이야기는 얼추 주고 받은 것 같고, 오해를 가지는 부분도 없는 것 같으니 슬슬.. 즐기자고?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최순재가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술잔을 들자 회의는 금새 들뜬 회식 자리의 분위기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의 무거운 의제가 거짓말처럼 밝은 표정을 띄운다.

사회 생활에서 어른들의 술자리는 게 으레 그렇다.

‘’올마스터만 붙들 수 있으면 시드권 따위야 따 놓은 당상이지.’’

물론 속내로는 모두가 각자의 잇속을 챙기고 있다.

어찌 됐든 표면적으로나마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

모든 것이 의도대로 흘러간다는 생각에 최순재는 쓰윽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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