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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게임의 흐름은 예상대로.
나 뿐만 아니라 예은도 이러한 흐름이 될 거라 점쳤다.
고질라가 속한 팀이 반드시 질 거라고.
"거봐, 쟤네 딱히 잘하는 팀 아니라니까?"
"맞는 소리긴 하다만.. 너도 참 인정사정 없다."
이쁜 입에서 미운 말은 참 골라서도 잘한다.
나는 편의점에서 사온 닭강정을 하나 콕 집어 예은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나로는 부족할까 연이어서 하나 더.
"맛있냐?"
"웅, 맛있는데 그것보다 니가 말한 걔 너무 쫄보잖아."
오물오물 입을 부지런히 움직여서도 제 할 말은 다 한다.
그것도 이번에는 고질라의 문제점을 딱 짚어 온다.
이는 반박할 여지가 없는 정론이다.
'확실히 고질라가 수비적인 스타일을 너무 고집하긴 했지.'
서포터로 이름 높은 선수들은 대부분 공격적이다.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무언가 변수를 만들 수 있는 법.
실제로 내가 스프링 시즌에 보여줬던 서포터의 움직임이 이에 해당한다.
캐리를 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딱히 눈에 띄지도 않고, 우리팀 전부 공격적인데 팀 색깔에 안 맞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반대."
"그래, 닭강정 더 먹을래?"
먹여주면 역시 잘 먹는다.
그런데 과연 이 조그만 입에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호기심이 인 나는 예은이 거절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닭강정을 꾸겨 넣었다.
그렇게 다섯 개째까지 꾸역꾸역 받아먹던 예은은 주먹으로 내 가슴을 강타했다.
"쥬굴래!"
정말로 화가 났는지 내 어깨를 두 대 더 때리더니 으적으적 닭고기를 씹어댄다.
씹을수록 표정이 편해지는 게 맛있기는 한 모양.
나는 비닐봉투에서 스포츠 음료를 꺼내 예은에게 건네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말이야 밉게 했어도 구구절절 옳긴 했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게임에서 고질라가 속한 팀.
팀의 색깔이 다분 공격적이다.
수비적인 성향의 고질라는 제대로 녹아나지 못했다.
현재, 중계진들도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이다.
<탈리반 3세의 이니시! 잭트도 적절하게 호응합니다! 배인 순삭 되나요?>
<아..! 간발의 차이로 살아 돌아갑니다. 역시 뒷심이 부족하네요. 서포터가 루나같은 거였으면 연계가 조금 더 깔끔했을 텐데 말이지요.>
공격적인 팀의 색깔에 고질라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실력의 문제라기 보단 챔피언의 한계.
저렇게 주도적으로 이니시를 거는 상황에서는 한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첫 번째 세트와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나름대로 계산을 하고 들어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무리한 이니시였다.
라인전 단계에서 조금 더 괜찮게 한 덕에 아직 버틸 수는 있어 보이긴 해도.
'결과적으로 지겠지. 어쩔 수 있나.'
해설자들도 한 바퀴 돌아서 지적을 할 만큼 고질라의 플레이가 아쉬운 상황이다.
한사코 부정할 수만은 없는 일인 것도 맞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을 조금 달리 하려고 한다.
'무리한 이니시.. 아마추어들이 대회에서 흔하게 하는 실수야.'
게임을 이기고 있으면 더욱 더 몰아붙이기 위해.
게임을 지고 있으면 무언가 변수를 만들기 위해.
어느 쪽으로 어떻게 진행되든 아마추어 게임은 계속해서 양 팀이 부딪히게 된다.
애시당초 아마추어들이 이 자리에 나온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위함이다.
즉, 눈에 뗘야 한다.
눈에 띄고 싶다면 뒤에서 짜져 있는 것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서는 게 맞다.
'한 마디로 개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뭐, 그런 이야기지.'
솔랭에서야 그래도 자기 플레이 꿋꿋이 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대회 무대에서는 서로가 호흡을 맞춰서 하나를 반듯하게 해야만 한다.
수준이 높은 팀이야 여러 오더 복잡하게 주고 받지만 아마추어 팀의 오더야 뻔할 뻔자.
이거 이니시 걸까?
우리 사리고 후반 볼까?
누구 한 명 스플릿 돌래?
이 세 개의 틀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프로팀들을 비스무리 따라하긴 해도 엄청 어설프다는 사실은 시청자들도 단박에 알아볼 정도다.
그런데 현재 고질라의 팀은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개판으로 흘러가는 게임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꼴이다.
게임의 양상은 극단적으로 치우쳐질 수밖에 없다.
<배인이 너무 잘 컸어요! 3타 뻐엉! 터지면 탱커고 딜러고 죄다 녹아납니다.>
<호흡이 안 맞았던 탓에 배인의 성장을 제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팀 사우르스가 넥서스로 진격합니다~!>
이 자리에는 전범준, 김은준, 강빈 같은 정규 중계진은 나오지 않았다.
경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이들이 아마추어 대회인 LCL을 도맡는다.
그런 중계진들의 뻔한 해설조차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 있으리 만큼 경기의 흐름은 일목요연하다.
경기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경기 시간이 길지가 않다.
스노우볼을 잘 굴렸다기 보다는 하도 공격적으로 잘 꼴아 박아줬다.
나름대로 변수를 노린 플레이였겠지만 결과는 이 모양 이 꼴.
무쌍이 된 배인의 진격을 막지 못하며 결국 두 번째 세트도 패배로 이어졌다.
"그치? 내 말이 맞지? 쟤 못한다니까?"
"너 근데 쟤 싫어 하냐? 조금 너무할 정도로 쪼아대는데.."
답답함을 참지 못한 예은이 선글러스를 벗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따져온다.
맞는 말이긴 하다만 어째서 이렇게 까지?
내가 영입을 하겠다, 밀어붙인 것도 아닌데 의문이 드는 일이다.
궁금증이 일어난 나는 직접 물어보고자 마음먹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 발자국 늦어버리고 말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관중석에는 수많은 선남선녀가 이 자리를 빛내 주시고 있습니다. 아, 때마침 남자친구분과 함께 오신 듯한 어여쁜 미녀가 카메라에 잡혔는데요….>
경기가 끝난 직후, 광고로 들어가기 전에 카메라가 관중석을 한 번 훑었다.
비록 아마추어 리그라고는 하나 그 열기가 프로 리그 못지 않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곳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은 대부분의 관중석이 차있는 상태.
고작 아마추어 리그의 32강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흥행을 보이고 있다.
지난 윈터 시즌의 LCL 때는 관중석이 반 이상 텅텅 비었었다고 하니 자랑스러울 만도 하다.
최근 E-스포츠의 성장률이 어느 정도인지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무대가 아닐까.
내 옆에 있는 예은은 오랜만에 카메라 잡히는 게 재밌는 지 포즈까지 잡고 난리가 났다.
<잠시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혹시 연예인 아니신지..? 그런데 어디선가 한 번 본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어허! 해설자가 관중에게 집적 거리다가는 내일부터 못 나오는 수가 있어요?>
캐스터의 농담에 관중들의 박장대소가 터진다.
하지만 정말 해설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게 이 녀석 외관 만큼은 번지르르하다.
이렇게 촐싹촐싹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더더욱이다.
[어!? 뮴뮴 누님이다!]
중계진들이 초보라 들키지 않고 어영부영 넘어가나 했는데..
관중 한 명이 불현듯 소리쳤다.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이라면 묻혔을 외침이지만 이곳은 경기장의 규모가 비교적 작다.
수초 후, 관중석이 웅성웅성 기하급수적으로 떠들썩해졌다.
<아! 얼마 전 9시 뉴스에 롤챔스 얼짱녀라 소개된 뮴뮴 선수! 거봐요, 제 기억이 잘못된 게 아니라니까요?>
<실화입니까? 그렇다면 설마 옆에 계신 남성 분은 올마스터..?>
발뺌을 할 수도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다행스럽게도 관중의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 약간의 서비스는 괜찮을 듯싶다.
나는 옅은 선글라스를 멋있게 버스며 카메라를 향해 눈을 치켜 떴다.
흔히 말하는 얼짱 각도다.
"와.. 대박 평범하게 생김."
"여친은 예쁜데.. 남자 쪽은 조금…."
주위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마저도 금방 묻힌다.
자뻑 같은 감이 있지만 현재 나와 예은은 태풍의 눈과 같다.
결승전의 우승에 이어 Unknown Error라는 커밍아웃.
그리고 예은은 9시 뉴스에 출연해 롤챔스 얼짱녀로 유명하다.
매니아층을 제외하곤 선수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비교적 적지만 그게 상관이 있겠는가.
'웬만큼 외모되는 일반인만 떠도 잉벤이 난리가 나는데.'
무려 롤챔스도 아니고 9시 뉴스에 출연했다.
외모는 드센 성깔에 정확히 반비례한다.
SNS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제법 널리 알려져 버렸다.
그런 두 사람이 나란히 한 자리에 모였으니 소란은 갈수록 커지겠지.
"튈까?"
예은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나는 손을 잡고 달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아두어 다행이다.
통로를 지나 위로, 위로.
뒤에서 무어라 떠들어오는 중계진들을 무시한 채 나와 예은은 숨가쁘게 달려갔다.
.
.
.
* * *
올마스터와 여자친구 뮴뮴 선수의 LCL 출현.
현장 카메라에 딱 걸려버린 지라 발뺌할 구석이 없다.
정말로 그 둘이 딱 붙어서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뮴뮴 누님 실물 보고 왔다. 질문 받는다.
옆에서 자꾸 염장 지르는 커플 있어서 속으로 염불이랑 주기도문 외우며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떠들썩 하더라?
그러면서 갑자기 경기장 스크린 화면에 내가 잡혀 있음.
어, 뭐지? 하고 보니까 내가 아니라 옆 쪽 커플들 포커싱 하는 거였음.
아 또 롤챔스 ~~녀로 나오겠네. 선글라스녀로 나오나? 하고 돌아봤더니 선글라스 벗었더라.
졸예. 살다가 그렇게 예쁜 사람 처음 봄. 다 까고.
근데 그 두 사람이 뮴뮴 누님이랑 올마스터라며?
와.. 세상에 이런 우연이 다 있구나 싶더라.
참고로 올마스터는 대박 평범하게 생김..
└예쁜 여친 사귈라면 역시 돈인가.. 아니면 명성인가..?
└무슨 염불이랑 주기도문을 동시에 외워ㅋㅋㅋ 사이비냐?
└실화면 옆에서 쭈뼛쭈뼛 혼자 눈치보던 얼굴 동그란 고삐리가 넌가 보네ㅋㅋ
글쓴이-아, 들킴 ㅅㅂ..
└설마 안 들킬 거라 생각했냐ㅋㅋㅋ
순식간이나마 LCL의 시청률이 두 배 이상 껑출 뛰었으리 만큼 화제였다.
이미 잉벤에는 현장 분위기 인증이라던지, 심심해서 LCL 갔다가 로또 맞았다느니.
화제글 란은 올마스터와 뮴뮴 선수의 이야기가 도배되었다.
─올마스터 여친 정말 참하게 생겼다.
방송에서도 막 올마스터 이것저것 챙겨주던데..
뮴뮴 누님의 내조가 있었기에 에러갓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겠지?
역시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돼. ㄹㅇ루다가.
└?? 너 혹시 뮴뮴 누님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글 씀?
글쓴이-올마스터 여친 아님? 다들 그렇게 부르길래 불렀는데.
└너 따봉충이냐? 뮴뮴 누님은 올마스터 여친이기 이전에 CLC소속 프로게이머야.
글쓴이-헐 몰라츰.. CLC소속이면 유명한가봐? 아, 올마스터도 CLC소속아니었나?
└부디 드립이길 바란다…. 올마스터랑 같이 윈터시즌부터 LCF 우승까지 함께 하신 분임. 탈리반 슈퍼 세이브 영상으로도 엄청 유명함.
아무래도 프로게이머로서 올마스터, Unknown Error의 인지도가 압도적이다.
얼밤에서 매일라이프 이외의 나머지 선수들의 인지도가 비교적 낮은 것과 비슷한 맥락.
올마스터는 그 이상으로 혼자서 날뛰기로 유명한 선수라 인기 투표의 지분율을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했다.
결정적으로 얼마 전 스프링 시즌에서는 올마스터 혼자 나왔다.
9시 뉴스에서 롤챔스 얼짱녀로 소개되었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에 속한다.
정말로 그냥 올마스터 여친이구나, 그렇게 알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차차 입소문을 탄다면 언제가 프로게이머로서의 인지도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도 제기된다.
아니, 여성 프로게이머가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기껏해야 올마스터 버스에 탑승한 정도겠지.
─뮴뮴인가 뭐시기 하는 여자가 게임도 잘함?
난 여자가 게임 잘한다는 거 자체를 믿지 않는 주의거든.
솔직히 말해서 롤 여자 다이아 과반수가 여왕벌이잫아.
게다가 주포 서폿이면 빼박이고.
어쨌든 내 눈에는 그다지 좋게 보이지를 않는다.
└엥? 뮴뮴 누님 주포 정글인디?
└어지간한 한국 프로보다 잘해. 정글 클라스로 한국에서 비견될 선수가 없을걸?
글쓴이-아, 정글이라고? 정글로도 뭐 버스 탈 수 있지 기본만 할 줄 알면.
└작성자놈 여왕벌한테 치근덕 대다 싸대기라도 맞았나.. 티어 어디길래 그렇게 깝침?
└야,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땅으로 올라와!
뿌리 깊이 박힌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MyumMyum 선수의 데뷔 초반기에는 글쎄올시다~ 하는 분위기였다.
이 부분은 차차 실력으로 증명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자면 둘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만이 오가는 가운데..
현재의 상황을 달리 해석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올마스터의 선수 영입 활동을 방해하던 감독들은 함박웃음을 지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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