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05화 (50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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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계약은 어찌저찌 성사가 됐다.

애초에 안될 염려는 없었다.

나의 제안이 진담인가 의문이었을 뿐이지, 고질라는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였으니까.

나도 연습생 생활을 오래해서 알지만 정말이지 절박하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상황에서 썩 괜찮은 계약이 들어왔으니 당연히 낚아 채고 싶을 수밖에.

도슈는 애초에 그다지 생각이 없어서 길가다 사탕 주면 헬렐레 따라올 아이다.

이로써 당장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선수 구성을 깔끔하게 마쳤다.

가능하다면 원딜러를 한 명 구하고 싶지만 스케줄 상 무리겠지.

'스프링 시즌 때와 달리 이번에는 밑바닥부터 맞춰 나가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

멤버진은 원했던 이상으로 갖춰졌다.

내가 이번 서머 시즌에서 보여주고 싶은 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완급의 조절.

그리고 팀의 색깔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멤버진이다.

'수비적인 성향의 서포터가 흔치 않았는데 적절히 구해서 다행이야.'

이제 남은 문제는 단 하나.

내 옆에서 입 대빨 내민 채 걷고 있는 우리 예은이.

한 마디도 안 할 기세로 고개를 휙 돌리고 계신다.

"아직도 삐졌어?"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면 풀릴까.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려 했지만 앙칼지게 반항한다.

손등으로 내 손을 툭 쳐내며 발걸음에 힘을 준다.

쿵! 쿵!

애꿎은 지면의 아스팔트만이 봉변을 당한다.

이렇게 화내는 거 초등학교 때 많이 한 거 같은데.

유치짬뽕 화가 난 예은은 정말 오랜만이다.

나보다 앞서 다섯 걸음 걸은 예은이 불현듯 멈춰 섰다.

그러고서 잠시 뜸을 들인 후 이야기를 꺼내왔다.

"사실은.. 딱히 화난 건 아닌데 그냥 복잡하게 생각이 얽혀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예은이 발을 동동 굴린다.

진득하니 이야기 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럴 때에 우리가 해결하는 방식은 단 하나.

"저 집 가서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할까?"

"..웅."

우연히 시야에 잡힌 짬뽕집 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 숙여온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일식집의 코스 요리로 배가 찰 만한 예은이 아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예은의 손을 잡고 짬뽕집으로 향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정말로 짬뽕만 전문으로 파는 모양.

비슷한 나이대의 학생들이 테이블 별로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오히려 이 편이 눈에 안 띄려나.'

혹시 '어, 올마스터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손님들 대부분이 젊은 남녀라 유별난 짓만 안 하면 괜찮을 듯싶다.

나는 예은과 함께 적당한 구석 테이블에 골라 앉았다.

"황제짬뽕 두 그릇 주세요."

"예, 주문 받았습니다~."

그냥 아무 데나 골라 잡은 셈인데 생각 이상으로 제대로 된 집이었다.

어쩌면 맛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맛이 좋으면 예은의 기분도 풀릴 테니 일석이조다.

"자, 물."

"..땡큐."

컵에 차가운 물을 따라 건네주자 무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받는다.

이럴 거면 애초에 화를 내지 말던가.

어디 그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심정이 무엇인지 들어나 보자.

"듣고.. 웃지 마라?"

"아, 웃을 일 없으니 천천히 말해봐."

역시 사정이 있었나 보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드디어 나그네가 외투를 벗어 던졌다.

나는 구릿빛 쇠잔에 따라낸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예은이 어째서 고질라의 입단을 그토록 싫어했을까?'

실력적인 부분이 의심됐다면 이 녀석 성격 상 이목저목 까다롭게 따져왔을 게 분명하다.

내가 입도 뻥끗 하지 못할 정도로 말빨과 기세로 밀어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은은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았고 나도 적당한 선에서 설명을 마쳤다.

수비적인 성향의 게임 방식.

고질라에게서 주목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다른 서포터 유망주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방향성이다.

이러한 나의 설명에 대해 예은도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세 번쯤 하다 납득했지만 그 후로도 싫은 눈치를 지우지 못했다.

즉, 내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다.

"솔로랭크에서 두어번 만났어."

"…."

내 시선을 피한 채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미루어봐 말 꺼내기 힘든 무언가가 있어 보인다.

그렇게 침만 삼키길 1분 남짓.

때마침 종업원이 쟁반에 들고 온 짬뽕 두 그릇 덕에 환기가 됐다.

자연스럽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겨주던 도중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소환자의 전장에서 만난 것만 아니라면 완전 드라마 스토리인데..'

나, 그 사람 만났어.

심란한 느낌의 배경음악이 나오면서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러고서 잠시 후에 터지는 폭탄 발언.

아주머니들의 입에서 어머! 소리 나오게 만든다.

"걔 때문에 승격전 떨어졌단 말이야.. 진짜 대박 캐리 중이었는데."

"..나 웃어도 되냐?"

예은이 얼굴을 붉히면서 토로해온 사정이라 함은 대략 이러했다.

최근에 부캐를 키우고 있는 우리 예은이.

진작 알고 있긴 했지만 예은이 나중에 자랑하듯 이야기해옴으로서 확실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과정이다.

솔로랭크에서 고질라를 아군으로 만났다가 서로 호흡이 안 맞는 바람에 와장창 깨진 모양이다.

"설마 하지만.. 부모님 안부 물은 건 아니지?"

"아니거든! 그냥 왜 이렇게 못하냐고 몇 마디 한 정도야."

과연 몇 마디만 했을까?

그리고 그 몇 마디의 강도가 겨우 못하냐 정도일까.

이 녀석의 성깔을 생각한다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솔랭에서 흔히 생기는 악연이구만.'

그런 거 가지고 삐질 나이냐.

묻기에는 삐질 나이긴 하다.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어른스러운 예은이지만 이렇게 애같은 구석도 있다.

"정말 여전하다 여전해, 이 기지배야."

"아니, 걔가 자꾸 호응을 안 해줘서 졌다고. 진짜 안 맞는단 말이야."

손가락을 뻗어 검지와 중지로 예은의 코를 살짝 눌러주자 코맹맹이 소리로 항변해온다.

뭐, 로드 오브 로드가 천사가 내려와도 고리 떼고 한 판 붙을 만큼 사람 빡치게 만드는 게임인 것도 맞다.

하지만 이 녀석은 전과가 흉악하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너한테 쓴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자중해?"

"..자중하겠습니다."

본인도 깨달은 바가 있는지 숙연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여온다.

일반인이면 몰라도 프로게이머가 그 짓은 하면 안되지.

지금이야 공개가 안됐다지만 언젠가 아이디가 공개됐을 때를 생각해서라도 트집 잡힐 일은 안 하는 게 좋다.

"식기 전에 먹자. 이 집 짬뽕 맛있어 보이네. 해물도 듬뿍이고."

"그러게? 해물 이렇게 많은 짬뽕 처음 봐."

사람 손바닥 크기를 가뿐히 넘는 키조개.

그리고 홍합과 이름 모를 조개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어느 정도냐면 면이 가려져서 안 보일 수준이다.

큼직한 전복도 있는 게 짬뽕집 제대로 고른 듯하다.

"그리고 솔랭에서 씨지맥도 만났는데.. 탑에서 10데스 하더라? 죽지만 말라는데 계속 죽어주더라? 다음에 만났을 때 한 대 패도 돼?"

"…걔는 원래 플레이 스타일이 그래. 때리는 건.. 알아서 해라."

한 번 물꼬가 트이니 쫑알쫑알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풀어온다.

그래, 차라리 나한테 풀어라.

연인 사이라는 게 늘상 좋은 꼴만 보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예은의 못된 부분까지 포함해서 전부 알아가고 싶다.

"캬~! 국물 죽인다 여기.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제격일 거 같지 않아..?"

"응, 않아. 기지배가 대낮부터 얼굴 뻘개져서 돌아다니면 참도 모양새가 좋겠다."

가끔은 따끔한 한 마디도 필요하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이 녀석 술교육만은 엄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술을 자작해서 인지 술버릇이 고약하다.

같이 살면서 절대 어디 가서 실수하지 않게 길들이고 있다.

솔직히 말해 많이 걱정된다.

'그런데 정말 소주가 땡기는 맛이긴 하네..'

일식집도 맛있었지만 역시 나와 예은의 입맛엔 칼칼한 짬뽕이 제격이다.

술술 들어가는 짬뽕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예은이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명백히 다른 주제의 이야기였다.

"저기 그 초홍이 있잖아."

"잠깐, 입 좀 닦고 얘기하자."

손으로 조개를 하나하나 까서 복스럽게 쪽쪽 빨던 예은의 입가를 티슈로 꾹꾹 눌러 닦아줬다.

이 녀석 피부가 너무 보드라워서 문질러서 닦으면 생채기 생긴다.

초홍이, 도슈에 대해서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걸까.

적어도 실력적인 부분은 아닐 것이다.

"걔야 뭐, 성격이 조금 불같은 것 빼면 괜찮지. 솔랭에서 같은 팀 걸리면 거의 이겨."

"하아.. 게임 성향은 맞아서 다행이네."

예은 주니어라고 해도 될 법한 도슈를 본체가 따지고 들다니.

내로남불이 이만저만 하지 않은 예은이다.

뭐, 에고가 강한 녀석이니 이해해주지 못할 것은 없지만.

"근데 너 초홍이랑 엄청 친근하던데..? 언제 그렇게 친해졌어?"

예은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본다.

이 상황 많이 겪어봤다.

나를 추궁할 때 꼭 눈을 보고 거짓을 판단하려 한다.

'혹시 질투?'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예은의 불이 얕게 부풀어 있다.

설마 하는 일이지만 정말로..?

장난끼가 인 나는 찔러보기로 했다.

"걔가 좀 나를 잘 따르긴 하지. 낯 가리는 애가 왜 이렇게 나한테만 달라붙는지 몰라."

"흐응.., 안 먹던 숟가락으로 맞으면 덜 아프다고 했나."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수저통을 뒤적거리는 예은의 팔을 낚아챘다.

님아, 장난이에요. 참아주세요.

건수가 제대로 걸린 나는 집에 가는 길 내내 예은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딱히 싫은 기분은 아니고 질투를 해준다니 오히려 내심 기쁘다.

어쨌든 LML은 향한 대회 준비는 별 문제 없이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있다.

.

.

.

* * *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의 본선.

개막식부터 폐막식까지 2주간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제 남겨 두고 있는 것은 결승전 뿐.

그 사이에 있었던 변화는 적지가 않았다.

─LCL도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가는 구나.

롤챔스 일정 당기면서 괜히 아마추어 선수들만 고생하네.

그래도 나름대로 재밌었다.

원래 나 LCL 안 보는 주의인데 혹시 하는 마음에 보게 됨.

└ㄹㅇㅋㅋ 또 뮴뮴 누님 나올까봐 혹시 하고 보던 게 습관됐음.

└어휴, 내공 낮은 애들만 있네. 난 직관 다섯 번이나 갔는데 한 번도 못 만났다. 질문 받는다.

└잉벤러들 엉큼한 거 보소ㅋㅋㅋㅋ

글쓴이-낚인 기분이긴 하지만.. 딱히 손해 본 것 같지는 않은 게 경기 꽤 재밌었음. 수준도 아마추어 같지 않았고.

아마추어 리그인 LCL은 롤챔스에 비하면 당연히 수준이 낮다.

어지간한 겜알못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불변의 진리다만 최근에는 꽤나 평판이 좋아졌다.

혹시 해서 봐보니까 눈 썩을 수준은 아니더라?

롤챔스가 진행되지 않는 탓에 심심한 시청자들이 시간 떼울 겸 봐도 썩 괜찮은 수준까지 평균적인 레벨이 올랐다.

여기에 더해 올마스터와 뮴뮴 누님의 깜짝 등장.

인지도를 따지자면 올마스터 따라올 프로게이머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없긴 하다.

하지만! 남자 마음에 불을 지피는 건 역시 참한 미인.

연예인 못지 않은 와꾸를 자랑하는 뮴뮴 누님이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 번이라도 실물을 보고 싶은 남정네들이 LCL 직관 로또를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그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LCL의 평균 관중 수는 급등.

시청률 또한 눈에 띄게 올라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흥행을 알렸다.

그럼에도 조금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LCL 끝나면 바로 LML하던가?

사실 난 LML도 안 보는 주의인데 이번에는 한 번 보려고.

LCL 보다 보니까 계속 보고 싶더라.

그런데 마침 LML이 열리니 함 봐야지.

2군 애들은 어느 정도 하나 평가 좀 해줘야 쓰겄다.

└그냥 뮴뮴 누님 보고 싶은 거라고 왜 말을 못하니..

글쓴이-LML이랑 뮴뮴 누님이랑 뭔 상관? 설마 LML도 직관을 올려고.

└?? 너야 말로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뮴뮴 누님도 프로게이머잖아. 올마스터랑 같이 나올 걸?

글쓴이-아니, 올마스터가 LML에 나와 그게 뭔 말임?

└엥, LML 명단에 올마스터팀 있던데.. 내가 잘못 봤나? 한 번 확인 해봄.

올마스터는 당연히 명문팀이 빼가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던 팬들로서는 청천벽력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롤챔스까지 기다려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있게 되다니?

올마스터가 LML에 참가 신청한 팀 이름 「MAGIC」.

조금 의아하게도 모든 글자가 대문자였다.

->금일 1화 분 더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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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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