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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06화 (50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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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지난 주말, 계약을 위한 미팅을 성사시켰다.

한 명의 코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선수.

나의 경우 팀의 전반적인 운영까지 맡긴 하지만 어쨌든 구색이 갖춰졌다.

'한숨 놓기는 커녕 더 바빠지긴 했다만.'

일을 할수록 산더미다.

게임단을 꾸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선수를 구하는 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세세한 부분을 전부 맡기는데도 이 모양이란 말이지.'

서류 작성이라던지, 계약이라던지.

중요한 부분은 예은이 도맡아 해준다.

나도 해보기야 했지만 영 잼병.

예은에게 등짝 스매시 한 대 맞고 비켜줘야 했다.

"야, 로리콘. 그럼 여기로 임대한다?"

노트북을 든 예은이 나를 발로 툭 쳐오며 말한다.

지난 주말 이후로 심심하면 이런다.

벌써 일주일은 더 된 일인데 뒤끝이 완전 마귀할망구다.

"그래, 나 할망구니까 젊은 애랑 노셔."

"농담이지, 농담. 와아~ 우리 예은이 안목 좋다. 나라면 절대 이렇게 꼼꼼히 못해."

예은이 들고 있는 노트북 화면에 떠있는 사진.

바로 우리 게임단이 생활하게 될 숙소다.

이것을 알아보는 데만 대략 1주일의 시간이 소요됐다.

1주일도 그나마 최대한으로 앞당긴 거다.

교통 여건, 생활 여건, 임대 비용, 크기 기타 등등 따지는 것도 오래 걸렸지만 다른 한 가지.

단체 생활인 만큼 게임 장비, 생활 도구 등 추가로 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여성이 두 명인 만큼 생활 공간도 분리를 해야 하겠고.'

사실 지금 예은이 한사코 걸고 넘어지는 초홍이의 입단을 적극 고려한 데는 이러한 뒷사정도 있다.

예은 혼자서는 솔직히 불안하다.

물론, 미국에 있을 때도 잘했고 내가 걱정할 만한 녀석도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로서 보는 눈과 연인으로서 보는 눈은 다르단 말이지.'

그냥 내 기분 문제다.

아무리 주거 공간이 분리돼 있다고 하나 외간 남자랑 동거라니?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

솔직히 말해서 합숙까진 하고 싶지 않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너야말로 범죄 저지르지 말라고 이 로리콘아."

"그러니까 오해라고 말했잖아.."

이 뒤끝이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되려나.

억울하지만 따지고 보면 말실수를 한 건 나다.

한동안은 일단 참는 수밖에.

'이렇게 최대한 스케줄을 당겼는데도 스케줄이 아슬아슬한 셈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LML에 늦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다음 주의 주중에 바로 LML의 개막식이 시작된다.

본래는 이렇게까지 사정이 급박하지 않았다.

롤챔스 서머 시즌이 앞당겨진 그 나비효과.

LCL이 빠르게 치러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LML까지 여파가 상당하다니..

'그래도 다른 부분들은 일사천리로 잘 풀리고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특히 가장 잘 걸렸던 부분이 내가 알고 있던 미래와 맞아 떨어지냐 였다.

시즌3에 들어 슬슬 국내의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한다.

미성년자도 보호자 동의 하에 국내에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약간의 불이익이나 귀찮은 절차는 감수해야 하겠지만 된다는 게 중요.

혹시 몰라 확인해봤지만 문제는 없었다.

땅꼬맹이 때문에 팀 다시 짜게 될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자꾸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지 마.. 그러다 누가 듣고 오해라도 하면 어떻게 해."

"흐응.., 이거 입에 익을수록 재밌단 말이야. 니 반응도 재밌고."

재밌다는 이유 하나로 남친을 매도하지 말라고 이 사디스트 여자야.

그래도 빈도수가 날로 줄어들고 있으니 조만간 사그라질 거라 생각한다.

혹은 다른 재밌는 거리를 찾게 된다면 알아서 멈추겠지.

'그나저나 요즘 하도 바빠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네.'

연습은 당연히 병행하고 있다.

간간히 팀랭크로 손발을 맞추는 정도다만 지금은 딱 이 정도가 적당.

본격적인 연습은 숙소 생활 이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도 예은도 바쁘지만 다른 팀원들도 마음이 싱숭생숭하겠지.

각자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선수로서가 아닌 게임단을 이끄는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부분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핫숏처럼 주장 겸 감독 대리인 셈인가.'

이러한 경우가 처음이었다면 많이 얼탔을 거다.

하지만 북미에서 선수 생활을 했을 때 전례를 한 명 보았다.

핫숏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서 잘 해냈었지.

그처럼 언젠가 구단주로 승격을 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선수 생활을 만끽하려 한다.

나는 아직 젊고, 예은도 이렇게 풋풋하니까.

"으엑, 로리콘이 날 쳐다본다."

"아, 진짜 아니라고 했지!"

한두 번도 아니고 나도 참는데 한계가 있다.

예은을 확 밀어 쇼파에 엎어 버렸다.

현재 시각은 오후 9시 반을 조금 넘은 상태.

잘못도 했으니 이대로 덮쳐져도 할 말은 없을 테다.

"꺄아~ 로리콘한테 덮쳐졌어."

"로리콘이 이렇게 쭉빵한 여자를 덮치겠냐? 응?"

표현이 조금 천박하긴 하다만 예은의 몸매는 정말로 굴곡지다.

집에서는 얇은 옷을 입는 탓에 더욱 두드러진다.

이것으로 완벽히 증명은 한 것 같은데..

이 가시내의 입은 죽을 줄을 모른다.

"너 혹시 지금까지 온순했던 이유가 정말 로리콘이라서…."

"여기서 일 치러야 믿을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진짜."

지금까지 당했던 설움이 북받쳐 오른 나는 복수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덮친 자세 그대로 예은의 작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귀를 막는다.

이렇게 되면 꼼짝도 못하는데 주위의 소리까지 안 들리는 멍한 상태가 지속된다.

시각만은 살아 있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엄지 손가락을 뻗어 눈을 가린다.

예은이 바둥바둥 반항을 해오지만 얄짤없다.

그대로 입술을 삼키듯 먹는다.

'그런데 뭔가 얌전해졌다?'

이렇게 갑작스레 덮치면 내 허리를 꼬집는다던지 앙칼지게 반응을 해오는 게 보통이다.

어째선지 오늘은 유순한 토끼처럼 당하고만 있다.

팔을 붙잡아둔 것도 아닌데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쪼옥.

10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깊은 사랑의 증거물을 보여 줬다.

막 서로 취한 상태에서 탐하듯 하는 키스가 아닌 순수한 마음의 전달.

굳이 따지자면 플라토닉한 사랑일 텐데도 평소 이상으로 야릇하다.

예은의 눈도 보드카를 세 잔쯤 원샷한 것 마냥 풀려 있다.

"짜샤아.. 이건 반칙이야..."

입을 떼자 헤롱헤롱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잘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는지 발음이 샌다.

그런데 대체 뭐가 반칙이란 걸까?

예은이 반격을 해오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와락-!

두 손으로 내 귀를 감싸쥐며 엄지 손가락으로 눈까지 가린다.

내가 예은에게 했던 행위 정확히 그대로다.

그러고서 바로 입을 맞춰 오는데..

'이거 생각 이상으로 자극적이네..'

눈을 감으면 청각이 예민해진다.

그런데 시각과 청각을 둘 다 닫으니 이제는 촉각이 예민해진다.

귀에는 우웅- 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며 온 신경이 입술과 혀로만 쏠린다.

나라는 존재에게 혀와 입술만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다.

예은의 뾰족한 혀가 내 혀와 잇몸을 콕콕 찔러온다.

아프다기 보단 기분이 좋다.

고급스런 마사지를 받는 듯한 착각.

황홀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혀 아프니 여기까지만."

한 쪽이 일방적으로 키스를 하면 턱 근육이 몹시 피곤해진다.

몸도 마음도 완전 사로잡힌 탓에 그대로 당하기만 했다.

확실히 예은이 얌전하게 받아들였던 이유가 있구나.

이건 위험하다.

"근데 니 얼굴 댑따 크다? 두 손으로는 턱도 없네."

"이 기지배야.. 네 얼굴이 작은 거지, 내 얼굴이 큰 게 아니란다."

얼굴이 주먹만한 이 녀석이 너무 작은 거지 결코 내가 큰 편이 아니다.

아무튼 그렇다.

나는 한 손을 예은의 어깨 밑으로 집어 넣어 서로의 위치를 바꿨다.

이 자세 그대로 있으면 무거울 까봐 하는 배려였다.

딱히 내 얼굴 무게 때문은 아니고.

"아직 로리콘이 아니란 증거가 부족한데.."

"확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한 손으로 예은의 허리를 잡자 부드러운 살의 감촉이 천 너머로도 느껴진다.

어찌나 잘록한지 조금 힘을 줘서 감싸자 반쯤 손에 잡힐 지경이다.

남자로서 정말 참기가 힘든 상황.

예은이 결정타를 박으려 한다.

"이러고 있으면.. 속된 말로 막 꼴리고 그래?"

이걸 어찌 대답해야 할까.

귀를 막고 있는 것도 아닌데 침 넘어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갈 때까지 간 사이에서도 꺼내기 힘든 말을 참 이리도 당돌할 수가 없다.

나는 허리를 감싸 쥔 손을 등으로 넘기며 끌어당겼다.

"그래, 사랑한다 이 기지배야."

"..애매하게 둘러대긴. 그래도 심장 소리 빨라진 거 보면 거짓말은 아니네. 봐준다."

누가 누굴 봐준다는 건지.

그리고 혈류가 빨라진 건 나 뿐만 아니다.

꼬옥 끌어안고 있는 예은의 안색이 붉다.

사귀게 된 이후로도 여전히 표독스럽지만 그 반대의 면도 피어난 듯한 예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

.

* * *

짧았다면 짧았고 길었다면 길었던 LCL 본선의 2주간.

모든 경기가 끝마쳐지고 이제 결승전을 앞에 두고 있다.

아니, 이미 결승전의 무대가 한창이다.

팀 키보드 대 팀 탄젠트의 경기.

5전 3선승제로 판가름 나는 기나긴 여정은 이제 그 끝이 보인다.

<팀 탄젠트 입장에선 어떻게든 원딜러를 따내야 한타의 승산이 있어 보입니다.>

<예, 지벡 선수가 도저히 아마추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빙으로 한타를 캐리하고 있어요. 매 경기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그의 독무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를 막느냐, 못 막느냐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본디 어설픈 감이 있었던 LCL의 중계진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그 수준이 사뭇 달라졌다.

중계진의 기량이 올랐다기 보단 아예 사람이 바뀌었다.

전범준 캐스터를 비롯한 3인방이 LCL 결승전을 해설한다.

본래라면 예정이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누가 방아쇠를 당겨서 인지는 몰라도 아마추어 리그인 LCL이 지나치게 흥해버렸다.

이에, 오프게임넷의 정규 중계진이 수준 높은 해설로 보답하고 있다.

탄제트는 다른 네 명 다 잡아도 지벡 선수 못 잡으면 한타 집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죠?>

<생존력이 워낙 좋거든요. 얼음 장갑에 쿨감신을 가는 이즈레알. 시청자 분들도 어디선가 한 번 들은 적이 있으실 겁니다..!>

김은준 해설의 강조는 지나침이 없다.

통칭 파랑 이즈레알로 불리는 얼음 장갑 이즈레알의 창시자는 다름아닌 Unknown Error.

현재는 올마스터라는 아이디로 한국에서 활동하게 된 해외의 초유명 프로게이머다.

그 파랑 이즈의 장점은 바로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이다.

다만, 대회 무대에서는 중반까지 너무나도 딜이 없다, 라인전이 너무 약하다.

그러한 이유로 프로 선수들에게는 꺼려진다.

실제로 올마스터 본인도 성장력이 좋은 미드로 썼지, 원딜로 사용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파랑 이즈를 지벡 선수가 정말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어요?>

<사실 아마추어 리그라서 초중반 싸움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던 덕도 있습니다. 하, 지, 만! 일반 원딜러에 비해 낮은 딜량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는 파랑 이즈거든요? 그런데 지벡 선수는 이를 본인의 실력으로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습니다.>

파랑이즈는 얼음 장갑이라는 딜방템을 가는 덕에 생존력이 무척 좋다.

그것은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

비슷한 값어치의 코어 아이템을 갖춘 원딜러들 보다 딜이 낮을 수밖에 없다.

특히 치명타 아이템을 잘 갖춘 토이치나 꼬그모 등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럴 텐데도 지벡 선수의 딜량은 현재 열 명의 선수들 중 탑을 찍고 있다.

답은 생존력을 활용한 무한 카이팅에 있었다.

<원래 원딜러들이 한타에서 계속해서 평타를 칠 수가 없어요. 브루저의 위협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벡 선수는 딜을 꾸준하게 넣으면서 파랑 이즈의 생존력으로 아슬아슬 살아갑니다. 어쩔 때는 본인이 미끼가 되면서 까지요.>

<과감한 슈퍼 플레이! 어쩌면 이 자리에서 미래의 원딜 스타가 한 명 탄생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결승전의 승패를 막론하고 여러 프로게임단들이 열렬한 러브콜을 보내올 거라 자연스럽게 예상이 되네요.>

중계진의 고평가가 과찬이 아닐 정도로 지벡 선수의 기량은 유명 원딜 프로들 못지 않다.

이미 잉벤에서는 한국의 트리플리프트가 나오는 거 아니냐?

떠들썩하게 김칫국을 마셔대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 경기 시간은 후반에 다다랐다.

어떻게든 한 번 한타를 대승으로 이끌 수 있다면 팀 탄젠트에게도 희망이 있다.

2승 2패의 상황에서 마지막 세트를 따내는 것은 우리가 될 것이다.

팀 탄젠트의 정글러, 탈리반 3세의 각도기로 잰 듯한 이니시가 지벡 선수를 덮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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