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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08화 (50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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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코치와 감독, 그리고 기둥이었던 팀까지 해체됨으로서 위기를 맞이했던 삼선 게임단.

현재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초강수를 둬야 했다.

어쩌면 도박수일지도 모르는 판단이지만 이 이상은 없다고 구단주, 이혜설은 자신했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성공했어..!'

이혜설은 손바닥을 아득 쥐며 생각했다.

올마스터를 스카웃하려고 했던 일련의 계획.

그가 게임단을 하나 꾸리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접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보내는 봤지만 정말 정중하게 거절 당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쏘냐.

'호호, 올마스터가 시프트한테 그렇게나 관심이 많다지?'

정말 깔끔하게 중역 의자를 360도 대회전해서 원위치한 이혜설은 배시시 웃으며 한 장의 서류를 훑어봤다.

서류의 내용이라 함은 얼마전 LCL에서 우승한 시프트 선수와의 계약.

그를 이곳 삼선 게임단에 붙들어낼 수 있었다.

시프트 선수의 어머님과 한 번 전화를 했는데 어찌나 좋아하던지.

자식이 삼선에 취업하는 줄 알고 완전 들뜬 목소리로 난리가 났다.

뭐, 실상은 조금 다르긴 해도 상황에 따라 정말 그리 될 수도 있다.

바로 시프트를 미끼로 한 올마스터 낚시 작전.

이게 진짜였다.

'올마스터 개인이 안된다면 팀을 통째로 데려오는 거지.'

성공한 선수가 자신의 프로팀을 꾸린다.

그러한 욕심은 어느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하지만.. 일류 선수가 반드시 일류 코치, 혹은 감독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기에 게임단의 운영까지 들어간다면 손발을 절레절레, 머리가 터질만하다.

'잘만 꼬드긴다면 말이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줘야 할 텐데.'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고 짧은 것은 대본 후에야만 안다.

올마스터도 기왕 게임단을 꾸렸으니 프로 리그에 나가보고 싶을 거다.

'로드 오브 로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어린 애 한 명 넘어오게 하는 거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 호호.'

군대를 막 전역했을 남자 꼬맹이.

어찌저찌 하는 일이 성공해서 승승장구.

그런 애들일수록 인정받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또한 선수라는 족속들은 여성에 대해 내성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탁, 탁.

의자에서 일어난 이혜설은 방 우측에 있는 대형 거울에 자신을 비췄다.

잘 빠진 몸매, 어른스러움이 묻어나는 성숙미.

꼬맹이 하나 김칫국 마시게 하는 일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미니스커트의 치맛단을 가지런히 정리한 이혜설은 자신의 백을 들고 전장에 나섰다.

.

.

.

* * *

임대했던 숙소는 내부 인테리어부터 생활 도구까지 전부 그럴 듯하게 갖춰졌다.

그리고 이미 합숙 생활은 시작해 나름대로 손발을 맞추어 나가는 와중이다.

그런 바쁜 시기에 갑작스레 온 연락.

삼선 게임단의 대표가 한 번 만남을 가지자며 미팅을 주선해왔다.

'아니, 갑작스러운 건 아닌가..'

필연이라면 필연이다.

삼선 측에서 시프트 선수를 채갔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상황이다.

한 달 쯤 전이었던가.

나는 삼선 게임단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만약 예은과 접점이 없었다면 재약의 패널티도 고려해봤을 정도로 매혹적인 제안이었다.

그렇지만 단칼에 거절.

현재의 조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데다 조강지처 놔두고 바람을 필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오늘도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 기본적인 예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나를 불러냈는데 얼굴 정도는 봐주는 게 최소한의 도리.

나는 오늘 삼선 게임단의 대표와 한 자리에서 식사를 가지게 됐다.

'예은을 데려 올 걸 그랬나. 이런 자리는 영 익숙하지가 않은데.'

이러한 이유가 있어 나오기는 나왔다만 조금 후회된다.

더욱이 만남을 가지는 장소 또한 불편하다.

처음 와보는 분위기의 고급스런 한정식집.

얼마 전, 계약을 할 때 괜찮은 일식집에 갔다고는 하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밑반찬의 퀄리티, 그리고 장소가 유명한 호텔 내부라는 것을 따져봤을 때..

한 끼에 수십 만원을 가볍게 호가하는 고급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 한식집이다.

말이 한식이지 이쯤 되면 메뉴하고는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동네 식당가의 5천원, 6천원 하는 한정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아직 계약이 성사된 것도 아닌데 무리하시는 게 아닌가요."

"호호, 부담가지지 않아도 돼, 동생. 앞으로 더욱 친하게 지내면 되지."

눈 앞에 있는 여자.

자신을 이혜설이라 소개한 그녀는 굉장히 친밀감이 높은 타입의 인간이다.

나와 만나서 이곳까지 오는 데에 걸린 시간은 대략 10분 남짓.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말을 트게 됐다.

예의가 없다기 보다는 공략 당했다는 느낌이다.

'영업하는 사람들은 대인 관계 능력이 그렇게나 뛰어나다고 들어본 적은 있지만..'

애초에 나이 차이가 조금 많은 탓도 있다.

여성에게 실레가 되는 소리지만 최소로 잡아도 20대 후반 이상.

내 진짜 나이와 비교해봐도 무조건 연상이다.

그런 사람이 친밀하게 다가오기까지 하니 나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동생은 선수 생활한 지 얼마나 됐어? 아직 1년 안 됐지..?"

"예, 1년이 조금 안 됐네요. 그런데 저기.. 거리가 너무 가까운데요."

한 게임단의 구단주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건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까지 접근한 혜설씨가 고개를 내밀어 온다.

진하고 그윽한 여성의 향수 냄새.

예은도 종종 향수를 뿌리긴 하지만 정말로 살짝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정적이지도 않다.

'영업이라는 걸 보통 이렇게까지 해? 애초에 이 사람 구단주는 맞아?"

내가 만나본 구단주들은 대부분 양복 입은 아저씨다.

극히 예외로 핫숏 같은 부류도 있었다.

여성 구단주.

찾아보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나이 드신 분도 아니고 누나뻘 되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나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려 한다.

설마 이러면 내가 바보같이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건가.

"동생, 깍두기 좋아해?"

"…엄청 좋아합니다."

한 마디 묻더니 손가락으로 집어서 내 입에 떠먹여 준다.

나는 그것을 좋다고 받아먹었다.

아니, 마음은 분명히 거부하고 있는데.. 몸이 너무 정직한 걸 어떻게 해.

'딱히 진심은 아니지만..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어울려 줄까.'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식사가 나온 이후에 천천히 본론을 꺼내올 터다.

이윽고 방 문이 열리며 종업원 두 명이 죽과 곁들어 먹을 반찬을 내려놓는다.

사람도 왔으니 이것으로 곤욕스러움은 끝이 나겠지.

그럴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너무나 안이했다.

"언니, 간만에 어린 동생 하나 잡았나 보네?"

"오호호, 몸보신 과하게 하다 탈나는 건 아닌가 몰라."

서로가 아는 사이인지 굉장히 서스럼없는 한 마디씩 내뱉고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내며 문을 닫는다.

그것으로 다시 단칸방은 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폭풍 전의 고요와도 같은 잠깐의 정적.

혜설씨가 마치 뱀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저기..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이래 봬도 저 임자 있는 몸이거든요?"

"골키퍼 있으면 골 안 들어가? 그리고 잘 나가는 남자는 여자 한둘 정도는 돼."

살다살다 골키퍼 있으면 골 안 들어간다는 말을 여자에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한둘이라.

여기에서 하나가 아닌 둘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

그렇게 묻는 거라면 내 대답은 즉답이다.

"장난은 적당히 치시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동생 재미없는 타입이네. 무너뜨리는 느낌이 있는 남자도 싫지는 않지만."

붉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으며 나를 눈으로 훑어온다.

립스틱을 짙게 발랐을 텐데 요령 있게 핥았는지 번진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이 장난을 치는 건지, 흔히 말하는 영업의 한 종류인지는 몰라도 그만둬줘서 다행이다.

'솔직히 이걸 어떻게 버텨.'

아무렇지 않은 척 흘려 넘겼지만 본심은 그러지 않았다.

그나마 예은과 최근 노닥거리다 보니 조금은 내성이 생겨서 이 정도다.

한 달 전의 나였으면 정말로 김칫국 꿀꺽꿀꺽 마시다 넘어갔을 지도.

그런데 이 여자가 꺼내오려는 본론이 과연 뭘까?

아무리 내가 정신이 없어도 지금 이끌고 있는 게임단을 버려두고 팀을 옮기는 행위는 안 한다.

애시당초 계약 때문에라도 하기가 힘들다.

"동생, 동생이 우리 게임단에 있었잖아. 내가 그때는 쪼오금 바빠서 동생이랑 못 만났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

"그렇습니까. 그런데 구단주시면 저랑 감독 사이에 있던 일도 아마 아실 텐데요."

최대한 냉철하게 받아친다.

확실하게 거부의 의사를 표현한 이후로도 은근하게 거리를 좁히려 시도하고 있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느슨하게 하면 언제 다시 감아올지 모를 뱀같은 여자다

"그 일은 참으로 아까워. 그 멍청이가 동생 같은 인재를 못 알아봐서 일이 그 지경이 됐지 뭐야? 나라면.. 아주 화끈하게 대접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 방식의 화끈함인지.

남자로서의 본능 탓에 순간 엄청난 관심이 쏠렸지만 가까스로 이성을 붙들어 맨다.

그래, 난 임자가 있는 몸이니까.

그리고 외모를 따지면 전체적으로 예은의 압승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성숙한 여성도 나쁘지는 않네..'

예은과는 상극에 있는 스타일이다.

아주 짙은 화장과 남성의 시선을 이끌어내는 복장.

남자 경험이 많은 듯 리드하는 데에 이골이 나있어 보인다.

"여기 음식들이 남자 몸에 그렇게 좋데. 동생도 한창 나이잖아?"

"저는 그렇지만 혜설씨 하고는 그다지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요."

일부러 까칠하게 반응했다.

그러자 혜설씨의 이마에 핏줄이 잠시 파랗게 보였다.

상당히 빡쳤다는 반증이겠지.

삼십 줄 근처의 여자들이 나이에 유난히 민감하다는 거 알고서 저지른 거다.

내가 예의를 안 지키는 타입은 아니지만 경우가 경우다.

기껏 나를 불러 놓고서 하는 짓이 고작 성적으로 꼬시는 행위.

임자가 있다고 말을 했음에도 밀어 붙이는 상대에게 지킬 예의는 없음이다.

"동생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곧장 본론으로 들어갈까? 내가 동생한테 하고 싶은 말은 여기 서류에 다 정리돼 있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안색이 평정해졌다.

이래서 여자는 무섭다고 하는 거구나.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혜설씨가 내민 서류를 훑어봤다.

서류는 두 종류로 얇은 것과 두꺼운 것이 있었다.

"한 장 짜리가 요약본이야. 천천히 기다려 줄 테니 둘 다 봐도 되고."

이야기 진행이 빨라진다면 나야 나쁠 거 없는 일이다.

한 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니까.

나는 한 장 짜리 서류를 집어 빠르게 속독했다.

대체 어떤 연유가 있어 나를 이 자리까지 부르고 싶었던 건지 알고 싶다.

서류에 쓰여진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팀 그대로 삼선 게임단에 전부 옮겨와라.

계약 파기금 같은 금전적인 문제, 절차 상의 문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자신들 쪽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짧막하게 정리한 내용은 가독성이 있어 읽기 편했다.

말이 서류 한 장이지 직인 등을 제외하면 손바닥 절반 분도 되지 않았다.

형식 따위 전혀 차리지 않고 본론만 빠듯하게 축약했다.

상당히 의아해서 두꺼운 서류 뭉치도 대략적으로 확인해봤지만 큰 틀에서 벗어난 점은 없었다.

"그야말로 듣기는 좋은 소리네요. 감미로운 꿀과 같은 유혹. 삼선에서는 저에게 이만큼 베풀 요량이 있다, 그런 말씀입니까?"

"호호, 동생 생긴 것과 다르게 똑똑하네? 조금 당돌하지만 그런 면도 난 싫어하지 않는데."

아직까지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손가락 끝으로 내 턱선을 사르르르 매만진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고작해야 턱 끝.

만지는 방법에 따라 이렇게 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무리 최근 예은과 노닥거리며 내성을 키운 나지만 이렇게 대놓고 몰아붙이면 감당하기가 힘들다.

나이가 많단 식으로 비꼬긴 했어도 사실 본심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히.. 내가 예은이 타입인 이유도 엄청 예뻐서.

예쁜 여자 마다하는 남자 없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예은이 조금 누님 타입이다.

화장 좀 짙게 하고 옷 좀 섹시하게 입으면 장난 아니게 농염해진다.

실제로 예은에게 고백했던 날에 내가 망설임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데는 예은의 복장도 한몫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농염 그 자체라서 문제지..'

여자의 변신은 무죄, 화장에 따라 180도 변할 수 있다지만 예은은 아직 젊다.

젊다기보다는 조금 어린 감이 있다.

풋풋함을 완전히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그에 반해 혜설씨는 정말 100% 취향 저격.

물론 취향이라는 거지 이미 임자 있는 상태에서 섣부른 짓을 할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다.

꿀꺽.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예은이 백만 배는 낫다.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밀실에서 취향인 미인과 같이 호흡하다 보니 야릇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남자로서 어쩔 수가 없다.

상대 쪽에서 설마 그런 짓까지 하겠냐만은 괜시리 상상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식사는 아직 마치지 않았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일어나는 게 좋을까.

망설이던 찰나에 불현듯 객실의 문이 열렸다.

->금일 1편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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