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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09화 (50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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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가고

"느~긋하게 즐기라고 식사 한 번에 가져왔는데.. 아직이네?"

혜설씨랑 꽤나 친분이 있어 보이던 종업원 이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혹시 지금의 현장을 예은에게 딱 걸려버리는 건 아닐까.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둑이 제 발 저려버린 기분이다.

"알고 있으면 빨리 자리 좀 비켜주지?"

"학생, 이 누님 아주 무~서운 분이지만 상냥해.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을 거야. 그럼 난 이만. 이런 데서 불장난까진 하지 말고. 오호호."

단순히 종업원이 아니라 어쩌면 이곳의 안주인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한 가지는 깨달았다.

'학생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네.'

군대 갔다 오면 다 아저씨라고는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부르면 상처 받는다.

마음 같아서는 누님도 예쁘세요, 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질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깨달았다는 부분은 혜설씨의 목적이었다.

'휴우, 내 정조가 위협받는 건 아니었구만.'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솔직히.. 두근두근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장난이야 장난이고 그 이상은 너무 드라마를 많이 본 거겠지.

혜설씨도 간드러지던 목소리를 집어치우고 통화 때 들었던 톤으로 대답을 물어왔다.

"…어쨌든 대답은?"

방금의 간섭 탓에 분위기가 식자 더 이상의 연기는 집어 던진 듯한 모습이다.

이러는 편이 나도 한층 대답하기가 편하다.

"조건은 정말로 마음에 듭니다. 사실 운영 부분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선수 생활에 몰두한다면 보다 나은 성적을 낼 수 있겠죠."

"그럼..!"

나는 손바닥을 올려 혜설씨의 말을 제지했다.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것은 모르지 않음에도 나는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지금은 저의 게임단을 꾸리고 싶습니다. 이만큼 매력적인 제의를 거절하게 되어 참으로 유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다.

물론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결과적으로 거절하게 됐다고는 하나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삼선 말고도 제의가 온 곳은 여럿이었다.

그 중에서는 혜설씨의 제안과 비슷한 부류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토록 전면 지원에 가까운 혜택을 약속한 곳은 없었다.

아무리 내가 해외에서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라고 해도 한국은 판이 작다.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가 아직은 없는 시기다.

'현재 E-스포츠 시장이 생각 이상으로 흥행하게 된 만큼 재계약한 기존 선수들 중에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그러한 분위기란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삼선 게임단이 나에게 제의한 연봉은 기본 3억.

인센티브와 같은 추가 상여금은 또 따로 나온단다.

그 대신 삼선이 주관하는 행사를 가능한 참가를 해야한다는 둥 자질구레한 조항이 보였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상당하다.

더군다나 앞서 말한 계약 파기금이라던지 여러 문제 또한 도맡아준다고 하니..

삼선이 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지 가시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가슴 벅차오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럼에도다.

"정말 어떻게 해도 안되겠니? 어지간한 건 전부 고려해줄 수 있는데.. 우웅?"

"기존 계약이 끝나면 고려해보겠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니, 그 컨셉 집어던졌다가 필요하면 다시 꺼내는 건가..

애교스런 목소리를 섞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다시 한 번 예의를 다해 정중히 거절하자.

"..쳇!"

혀를 차왔다.

내가 두 눈 똑똑히 보고 있었는데 착각이 아니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는지 뭐 씹은 표정.

여자라는 생물이 이리도 무섭구나.

예은은 그냥 대놓고 갈구지만 이렇게 변화무쌍하니 참 소름이 돋는다.

안 가기로 결정한 게 신의 한 수 일지도.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딛으려던 그 때, 갑자기 객실의 여닫이 문이 왈칵 열려버렸다.

마치 부서뜨리기라도 할 기세로 막무가내였다.

"안녕?"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아까 나를 학생이라 불러준 종업원 이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종업원도 아니었다.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인상을 한껏 구긴 예은이 나를 씹어 먹을 듯이 내려다봤다.

.

.

.

* * *

눈치가 상당히 빠른 편인지, 혜설씨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자리를 떠났다.

졸지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된 나.

훽 뒤돌아 나가려는 예은을 나는 헐레벌떡 따라갔다.

차도 안 태워 주려던 걸 간신히 얻어 탄 후 돌아가는 길 내내 해명했다.

'휴우.. 그래도 말은 들어줘서 다행이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황이 일단락된 이후에 현장이 덮쳐졌다는 거다.

만에 하나, 혜설씨가 날 유혹하고 있던 장면을 봐버렸다면 변명의 여지도 없었겠지.

그리고 제안도 깔끔하게 거절했기에 켕기는 부분은 없다.

그러한 내 해명에 예은은 어느 정도 납득은 하였다.

하지만 납득한 것과는 별개로 심기가 아직 불편한 듯 도무지 인상을 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혹시 아직도 오해하는 건 아니지..?"

"오해한 적 없거든."

예은이 국어책 읽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오해 안 하고 있으면 왜 아직도 화가 대빨 난 상태인지.

이성이 아닌 감정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나도 답답하고 억울하다.

'찾아올 줄은 꿈에도 정말 몰랐네..'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대략 기억이 난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었던 당시.

동창회를 갔다고 예은이 불현듯 찾아온 적이 있다.

그때 어떻게 여길 알았냐고 물으니 내 핸드폰에 무언가를 깔아뒀다고 했었던가.

일이 터지고 나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쳤다.

끼익.

공기가 얼어붙은 것만 같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예은이 모는 차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용인 쪽에 마련했던 집이 아닌 새로운 주거지다.

게임단의 숙소로 임대한 건물 아래에 있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그.. 내릴까?"

아직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한 마디 물어봤다.

그냥 내렸다가는 나중에 한 소리 된통 들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다려도 대답이 없다.

일단 내리고 반대 쪽으로 돌아가 예은을 에스코트 할까.

문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순간 덜커덩! 하고 전 좌석의 문이 닫혔다.

예은의 짓이었다.

"..정말 별 일 없었다니까? 나 못 믿겠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를 떠나서 예은의 마음은 백분 이해한다.

아무리 비즈니스 얘기라고는 해도 예은이 외간 남자와 밀실에서 식사 자리를 가진다면?

당장 나만 해도 초조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뛸 거다.

그런 만큼 어지간한 소리를 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많이 달랐다.

꼬옥.

인상을 딱 굳히고 있던 예은의 표정이 드디어 풀렸다.

풀린 건 좋은데 살짝 울상이다.

나의 손등에 쌓듯이 손을 겹친 예은이 입이 이윽고 벌어졌다.

"정말로.. 별 일 없었지?"

"응, 정말, 진짜로."

단순히 손만 닿고 있을 텐데.

평소 스킨십을 할 때 이상으로 가슴이 세차게 두근댄다.

예은이 나를 이토록 질투해줬다는 사실이 진실로 기쁘다.

다행히도 지하 주차장은 혼잡하지 않았다.

딱히 들어오는 차도 없고 행인도 다니지 않는다.

이게 흔히 말하는 분위기라는 걸까.

나는 나머지 한 쪽 손을 뻗어 예은의 왼 편 머리칼을 쓰다듬어줬다.

손가락 사이에 귀가 걸린다.

보들보들한 예은의 귀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나한텐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당연하지. 나 아니면 너 같은 찐따가 어떻게 여친을 만들어."

이 기지배는.. 잠시도 방심할 틈이 없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매일매일이 새로운 기분이 드는 예은과는 정말 한 시도 지루할 날이 없을 것만 같다.

나는 그대로 오른손을 당겨 예은을 가슴팍까지 끌어당겼다.

역시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토닥토닥 달래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은은 여기서 한 번 더 의외성을 선사했다.

파악.

안기는 척 하더니 나를 밀어버렸다.

강하게 민 건 아니었지만 급작스러웠던 탓일까.

차 문에 살짝쿵 뒷통수를 박았다.

그 충격이 아무래도 상관 없을 정도로 이어진 예은의 행동은 지나치게 과감했다

쪼옥..!

예은이 내 목언저리를 입에 머금듯 핥아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입을 맞추거나 빠는 정도가 아닌 글자 그대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잠시라고는 하나 외출을 한 탓에 조금은 땀이 나있다.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는 듯 목을 엄청나게 혀로 간지러댄다.

"야, 야. 여기 차 안이야."

"..닥치고 즐겨."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과격하고 강압적인 예은도 나쁘진 않을지도.

내 목언저리를 핥아대던 예은이 차츰 위로 올라가 입술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더운 건지 겉옷까지 벗어던졌다.

하얀색의 얇은 가디건 안 쪽은 나시티.

옷감이 입은 듯 안 입은 듯 얇아서 맨살을 만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서로의 몸을 탐내듯 만져내길 아마도 수십 분이 흘렀다.

입을 떼었을 때는 침이 마치 실처럼 늘어져 예은과 내 혀의 끝을 이었다.

그만큼 농밀한 시간을 가졌다는 증거였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자세 또한 서로 편안함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정됐다.

조수석을 한계까지 넘기며 예은을 나의 위로 당겼다.

아니, 당길 필요도 없이 이끄는 것 만으로 와줬으니 당겼다는 표현은 틀렸다.

만에 하나 창문 밖으로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상당히 선정적인 자세이리라.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사랑스러운 듯 매만지던 예은이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여기 목 부근 있잖아. 그러니까 여기. 경동맥이 흐른데."

집요하게 혀로 핥아댔던 부근.

목언저리 부근으로 입을 옮긴 예은이 갑자기 힘을 주어 깨물었다.

그 자체는 너무나 귀엽고 앙증맞은 애인의 애교다만.. 이어진 말이 문제.

경동맥은 흔히 말하는 인체의 급소 중 하나다.

그것도 베이면 어떻게 수습할 틈도 없이 과다 출혈로 꾀꼬닥 한다는 최악의 급소다.

예은에게 킬각을 제대로 잡혀버렸다.

"오늘은 핥는 것으로 봐주겠지만 다음은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제멋대로 내뱉듯 선고하더니 내 목 언저리를 또다시 꽈악 깨물어온다.

드라큘라에게 물린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닐까.

화끈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해준다.

예은이 입을 떼고 나서 손가락으로 찍어보니 살짝 피가 배어있었다.

"상처는 그렇다 치고.. 이러고 어떻게 다녀. 들키면 나만 창피한 거 아니다?"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죄지은 주제에 쫑알쫑알 말이 많아."

앞뒤 안 가리고 저질러버린 행위도 그렇고, 눈동자가 뻘개진 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예은은 질투심이 깊을지도 모르겠다.

쫑알쫑알 대는 내 입을 막으려는 건지 예은이 또 한 번 격렬하게 입을 맞춰왔다.

그러기를 또 십여 분.

다시금 입을 뗐을 때는 예은은 상당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안 하던 짓을 하다 보니 상당히 피곤해진 모양이다.

"한 숨 잘래?"

"으응.."

나는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 예은을 휘감듯 끌어 안았다.

한 쪽 손으로 예은의 귀를 막으며 다른 한 쪽 손으로 등허리를 토닥토닥 두들겼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할 때는 한숨 자고 일어나서 정리하는 게 최고다.

지하 주차장은 형광등이 여러 개 있어 어둡지 않을 정도로 밝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타고 있는 검은 세단은 창문 또한 짙게 썬팅돼 있어 어느 정도는 괜찮다.

눈과 귀가 차단된 상태에서 두근대는 심장의 고동음을 들려주자 예은은 금새 고분고분 해졌다.

숨소리가 고르게 들리는 것으로 미루어봐 아마 잠에 들은 듯하다.

'이거 그러고 보니 농땡이 피우는 셈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숙소의 팀원들은 꽤나 바쁜 상태일 터다.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와 예은은 여기서 조금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예은은 그렇다 치고 나도 깔린 상태라 어쩔 수가 없다.

약간이나마 피를 흘려서인지, 아니면 한바탕 감정 싸움을 해서 그런지 짙게 몰려오는 피곤.

어차피 상처에서 나는 피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는 잠시 시간을 떼워야 했다.

그것을 핑계로 눈을 감자 곧바로 솔솔 잠이 온다.

피곤 때문인지 예은의 체온 때문인지 내 생에 이토록 편하게 잠을 이룬 적은 없는 것 같았다.

.

.

.

* * *

롤챔스가 한 달 가량 당겨진 여파는 커다란 스케줄 변동을 이루었다.

이는 LCL 뿐만 아니라 LML또한 마찬가지.

선수가 아닌 팬들 입장에서 쉴 틈이 없다.

LCL이 끝난 다음 주의 수요일 오후.

로드 오브 로드 마스터즈 리그, LML의 개막식이 막을 올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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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네요.

LML의 경우 조금 훅훅 넘길 겁니다.

아무래도 중요도가 떨어지는 대회잖아요?

대회를 치르는 목적 자체를 달리 설정하기도 할 겁니다.

다음 화에 바로 나옵니다. 별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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