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10화 (510/803)

510====================

LML

예정이 조금 틀어졌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운이 조금 많이 없었다.

"너희 둘이 물고 빨고 난리가 나서 늦은 거잖아!"

귀가 가려운데 누가 어디서 내 욕을 하고 있나?

너무 작아서 안 보였는데 고개를 한참 숙이고 나서야 알았다.

땅꼬맹이가 날 올려다 보며 바락바락 소리 질러왔다.

근데 이게 어딜 누구한테 큰 소리야?

나는 손날을 세워 초홍이의 두개골 강도를 실험했다.

"빼애애애액! 머리 안 때리기로 했잖아?!"

"아, 그랬나? 네가 나의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니 쌤쌤치차."

유언비어, 그래 유언비어다.

나는 어제 점심 겸해서 미팅을 가졌다.

삼선 게임단의 구단주가 나에게 제의를 해왔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 후가 문제.

화가 잔뜩 난 예은과 티격태격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 녀석 빼고는 눈치가 있어서 언급을 안 한다만. 다들 알고는 있지.'

그도 그럴 게 분명히 주차장에 들어가 놓고 3시간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

차량 자체도 굉장히 보기 드문 지라 착각했을 리도 없다.

더욱이 목에 반창고 까지 붙이고 온 게 결정적.

어떻게 변명을 하려고 해도 변명을 할 건덕지가 있을까.

"나는.. 진실을.. 말한 거.. 뿐인데…."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단다. 닥, 쳐."

땅꼬맹이의 귀에 속삭이듯 위협을 주자 몸을 부르르 떨어댄다.

장난은 이쯤 치고 슬슬 진지하게 토의해봐야 한다.

경기의 시작까지 이제 고작 30분 남짓 남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합숙하며 손발을 맞춘 시간은 하루 남짓이다.

'상황이 조금 안 좋게 작용했어.'

어저께 조금 농땡이를 쳤던 건 둘째 치고.

롤챔스가 당겨진 것부터가 문제였다.

준비 시간이 빠듯하면 불만스러운 거야 여느 게임단이나 마찬가지일 테다.

하지만 신생 게임단의 경우 빠듯하기를 넘어 빡빡해진다.

똑같이 연습 시간이 적다면 기본 호흡부터 골라야 하는 신생 게임단은 패널티가 크다.

여기에 밴픽 구도나 조합 별 시너지까지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연습은 불가능할 지경이다.

이것까지만 해도 한숨이 나올 지경인데 한 가지 더.

하필이면 우리팀이 LML 개막식 첫 경기를 열게 됐다.

"그래도 뭐, 기본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 같지 않아?"

씨지맥의 말에 팀원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인다.

누가 듣는다면 광오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곳은 2군 리그라 할 수 있는 LML.

롤챔스보다는 상당히 격이 떨어지는 대회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런 LML에서조차 여유가 없다면 롤챔스의 우승은 꿈도 꿀 수 없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 연습 게임의 연장 선상이라는 느낌으로 한 번 가보자."

연습 게임의 연장 선상.

한 마디로 LML을 연습의 기회로 써먹자는 소리다.

얼척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 멤버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오히려 세세한 조정을 대회에서 함으로서 팀의 호흡을 맞추는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연습을 대회에서라.. 역시 올마스터 다운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어제 둘이 빨리 왔으면…. 빼애애애액! 커플이 쌍으로 머리 때리지 말라고!!!"

고질라와 까불다가 예은한테 한 대 맞은 초홍이도 의견 통일이 이루어졌다.

아예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숙소에 모이기 전에 온라인 상에서 어느 정도 손발을 맞춰봤다.

숙소에서 한 번 더 발을 맞추려고 했는데 어제 조금 일이 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뭐, 일이 없었다고 준비가 완벽할 수 있었던 건 결코 아니지만 어쨌든.

'가벼운 몸풀기가 됐으면 좋겠는데.. 세상 사는 게 그리 쉽지 만은 않겠지.'

32강으로 치러지는 풀 토너먼트 제의 LML 첫 번째 경기.

결승전을 제외하고는 3전 2선승제라는 심플한 방식이다.

초홍과 고질라에게 좋은 무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승리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자, 가자."

30분이 지나 무대의 중앙으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팀원은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의 부스 안으로 향했다.

E-스포츠 역사의 탄생지라고 불리우는 이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경기를 치른다.

대회의 중요도와는 반비례로 흥분감이 고조가 되는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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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마스터즈 리그.

한 마디로 말하자면 2군 리그다.

그런 2군 리그에 대한 관심은 솔직히 LCL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했지만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현장에 함께 해주시고 있는 E-스포츠를 언제나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 한국의 E-스포츠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이곳 용산 E-스포츠 경기장에서 뜻 깊은 시간..! 약속 드리면서 선수진 소개하겠습니다. 자아, 팀 매직입니다!>

본래라면 LCL과 마찬가지로 LML은 경력이 안되는 중계진들이 해설을 도맡는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결승전은 반드시 정규 중계진이 맡는다는 정도.

하지만 한 가지 사정이 있어 개막식에 정규 중계진들이 나왔다.

방금 전 우렁찬 목소리의 말빨은 전범준 캐스터의 트레이드와도 같았다.

<이번 시즌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팀 매직은 무려 두 가지로 유명합니답! 하나는 백화점 브랜드로 잘 알려진 신세상의 스폰을 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에러갓이 이끄는 팀이라는 사실입니다~! 단상에 첫 번째로 오르는 이는 바로 올마스터!!>

롤챔스도 아닌 LML까지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 관중들은 하나하나가 로드 오브 로드의 마니아층이다.

그런 그들이 에러갓과 올마스터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건 크나큰 실례다.

전범준 캐스터의 말미가 떨어지자마자 약 2천 명 관중들이 경기장이 떠나갈 듯 요동친다.

이곳 용산 E-스포츠 경기장은 상암 쪽의 경기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관객석만 따지면 대략 500 자리 전후.

간이 의자와 입석을 꽉꽉 채워야만 겨우겨우 2천 명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 2천 명이 다 들어갔다.

고작 2군 리그의 개막식이라고는 믿기 힘든 진풍경이 단 한 명의 선수로 인해 펼쳐지고 있다.

정규 중계진들이 행차한 내막을 다분 짐작할 수 있어 보인다.

-에러갓 등장ㄷㄷ 어, 머리 넘겼네?

-헤어 스타일 바꾸니까 인물 좀 사는 거 같다. 누가 코디해줬는지는 몰라도 백 배는 나은 듯.

-뮴뮴 누님은 왜 얼굴 다 가리는 안경에 머리 땋고 나왔냐.. 뭐, 그것도 귀엽지만.

-근데 뮴뮴 누님 옆에 따라다니는 꼬맹이는 누구임? 쟤도 설마 프로?

당연하게도 경기장 뿐만이 아니다.

파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의 중계 채널에서도 본방사수가 한창이다.

이어서 전범준 캐스터가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부분에 대해 마이크를 건넸다.

<팀 매직! 어째서 매직인가? 마술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이야기를 들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전범준 캐스터는 말미 하나하나에 힘을 붙인다.

이는 현장의 반응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에 최적화돼 있다.

간혹 인터넷이나 TV로 보는 시청자들은 그렇게 노래하듯 말해야 하나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현장에 한 번 와보게 된다면 깨닫게 된다.

마이크와 하나 되어 만들어내는 우렁찬 파동은 현장의 관중 하나하나에게 닿는다.

닿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슴이 울린다.

심장을 강제로 두근대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이다.

롤챔스 가면 나는 그냥 조용히 팝콘 먹으면서 경기만 볼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막상 가면 들떠서 소리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천부적인 진행 재능을 가진 전범준 캐스터가 올마스터의 대답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뮴뮴의 M, 올마스터의 A, 씨지맥의 C, 아이돌의 I, 고질라의 G, 합쳐져서 MAGIC입니다. 정확히는 신세상-매직 이겠네요.>

<아하! 각 선수들의 초성을 따서 조합했군요! 그런데 아이돌이라 함은 혹시 이 귀여운 아가씨의 선수명 입니까? 정말 아이돌 다운 귀엽고 산뜻한 매력을 가진 선수라는 사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올마스터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검은 생머리의 여성 게이머.

뮴뮴 선수 뿐만 아니라 한 명 더 여성 게이머가 있다니?

그냥 넘어가기 힘든 이슈거리다.

올마스터도 올마스터지만 신인 선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쏟아졌다.

전범준 캐스터는 흥미를 가지며 여성 게이머를 향해 시선을 향했다.

카메라 또한 눈치 빠르게 여성 게이머의 쪽으로 돌아갔다.

지목된 여성 게이머는 상당히 우쭐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건네 달라 올마스터에게 떼를 썼다.

하지만 올마스터에 의해 가볍게 제지.

바둥거리는 여성 게이머의 머리를 한 손에 쥔 올마스터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담담히 말했다.

<하도 철딱서니 없는 애라 인터뷰는 패스하겠습니다. 어째서 아이돌인지는 거꾸로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정확히 두 문장으로 여성 게이머의 이미지가 정해졌다.

아, 저 구역의 미친ㄴ은 쟤구나.

유쾌하기까지 한 신세상-매직의 차례는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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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당히 놀라운 일이지만 이제 와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느낌이다.

현재 우리 신세상-매직을 후원하고 있는 기업.

역마다 꼭 하나씩은 보이는 백화점들을 소유한 대기업이다.

신세상 마트도 있지만 I-마트라는 이름으로 더욱 자주 보인다.

'예은의 아버님이 운영하는 회사는 아니라고 했었나.'

예은에게 듣기로 서니 아빠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 스폰을 달기로 했다고.

아빠가 운영하는 계열은 여성 의류와 화장품이라나.

그래서 마크는 저쪽으로 넘겼단다.

'그래, 재벌들끼리 사이좋게 짝짜꿍 좀 할 수 있지.'

이제 와서 놀라기엔 너무도 많은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정이 너무 앞당겨졌다.

그 탓에 제대로 된 유니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대충 마크를 달은 급조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

"님아! 제 소개가 왜 이럼? 빨리 설명하셈! 빼애애애애액!"

맞지, 아이돌.

거꾸로 읽으면 정확하지.

너도 이제 와서 선수명을 바꿔 달라 하기엔 늦었단다.

"너도 마음에 들어했잖니?"

"아이돌이 돌아이가 될 거라고 내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냥 이니셜 맞출라고 대충 짜집기 한 거 아냐?!"

어, 그거 맞는데 생각 이상으로 날카롭네.

목 위로 달린 것은 장식품만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정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 녀석과 꽤 잘 맞는 아이디 아닌가?

나름 예쁘장한 얼굴에 개판과도 같은 성격.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 팬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다.

"부스 안도 카메라로 보이니까 꼐속 떽떽 거리면 니 이미지만 더 굳혀진다."

"빼애애애애액! 너 때문에 이미 끝났어! 빼애애애액!"

안타깝게도 카메라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쟤 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이 구역의 미친ㄴ이 쟤라고는 하나 여자를 때리면 모양새가 많이 아니지 않은가.

이걸 뭐 때릴 수도 없고 귀찮아서 슬슬 발이라도 밟을까 생각하던 찰나, 예은이 초홍이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러자 부들부들대던 초홍이가 잠자코 자기 자리로 돌아가 세팅을 시작했다.

"..뭐라고 했어?"

"오늘 회식 메뉴의 선택권을 줬어."

대략 어떤 이야기가 오간 건지는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비빔밥을 못 먹어서 투정을 대고 있었지.

언제 한 번 거하게 입맛 교정 좀 해줘야 할 듯싶다.

하지만 그 전에 오늘의 경기가 먼저다.

어떤 픽과 조합을 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빠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개막식 첫 경기를 치르게 된 건 우연이 아닐 거야.'

개막식이라 함은 대회의 얼굴이다.

어떻게 스타트를 끊냐는 두고두고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

대진표는 기본적으로 공정하게 주사위가 굴러진다고 해도, 대회의 흥행을 위해 사적인 감정을 섞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뭐, 정말로 단순하게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쟤네 만난 것도 정말로 단순히 우연일까?"

"글쎄,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지. 너무 시시하게 끝나지 않도록 대회 측이 배려를 해줬다는 것."

나의 물음에 이제는 말을 놓게 된 씨지맥이 무거운 어조로 대답한다.

그의 말마따나 개막식의 흥행을 위해 너무 시시한 상대가 나오지 않도록 배려.. 라는 게 있었을지 모른다.

이 정도야 설사 꿍꿍이가 있었다고 한들 넘어갈 줄 수 있는 일이지만 상황이 조금 엉켜버렸다.

LML 32강 첫 번째 경기, 우리 신세상-매직과 겨루게 된 팀은 바로 페닉스-썬더다.

페닉스 게임단은 롤챔스에도 매번 이름을 올리는 중견 게임단.

준결승전까지는 간 적이 없지만 8강 멤버로는 심심치 않게 들어갈 정도다.

그들은 2군 리그인 LML에서는 손꼽히는 강자로 명실상부한 우승 후보 중 하나다.

그런 페닉스- 썬더를 상대로 아직 정비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경기를 임하게 된 꼴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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