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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L
헤이클린은 흔히 원딜러의 교과서라 불린다.
이유인 즉, 원딜러들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
사거리와 생존기를 다 가지고 있으니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한 마디로 일축을 하기엔 주어진 다른 단점이 조금 심각하게 까다롭다.
프로게이머들이 한 입 모아 말할 정도다.
초보가 잡아서는 절대 안되는 원딜러 헤이클린.
사거리가 긴 탓에 난이도가 낮다고 오해를 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탕!
타앙!
상대가 미니언을 먹으려고 할 때마다 한 대씩 툭툭 건드려준다.
이러한 일련의 견제.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해내지는 못한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해야 적정한 수준이 모르는 거다.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해.'
자기 딴에는 헤이클린으로 빡세게 견제 좀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애들의 1.5배에서 2배 정도 하면 적정 수치다.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니냐?
안타깝게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라인전 센 챔프가 의미 없이 센 경우는 없다.
각자 그에 상응하는 패널티를 짊어진다.
OP챔피언은 그 패널티가 비교적 가벼울 뿐이다.
압도적인 사거리와 생존기라는 이점을 동시에 지닌 헤이클린은 패널티가 상당히 무겁다.
챠라랑!
내가 견제를 하자 상대 서포터 랄라가 실드를 사용해 상쇄한다.
그리고 보라색 창을 흩뿌려서 반격까지 해온다.
피하기야 했지만, 실드가 쿨타임일 때 견제를 우겨 넣어 상대 원딜러 토이치의 체력을 깎기는 했지만.
토이치는 미니언을 치면서 조금씩 피흡을 해댄다.
이러다가 결국 흡낫까지 어찌저찌 버티면 토이치의 승리다.
헤이클린은 유지력을 뛰어넘는 견제를 못한 것 만으로도 라인전을 지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내가 CS 조금 더 먹었으니 하는 변명은 할 것도 안된다.
중반 타이밍에 토이치와 헤이클린이 짜낼 수 있는 딜링은 격이 다르다.
'이래서 헤이클린이 까다로워.'
상대의 체력을 귀찮으리 만큼 깎는 견제야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숨도 쉬지 못하게 압박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킬각을 잡을 수 없으니까.
반피 깎고 시작해도 맞딜을 지더라.
헤이클린을 플레이 하다 보면 정말로 왕왕 경험한다.
견제력이 센 주제에 킬각은 오지게 못 잡는다.
한 마디로 모순.
이러한 모순을 끌어 안은 채 라인전을 풀어나가야 하는 챔피언이 헤이클린이다.
"우리 CS 20개, 쟤네 CS 8개. 밀린 거 다 먹어도 13개 일 테니 무난한데요?"
"아니, 이 정도로는 한참은 부족해."
그러니까 아주 빡세게 견제를 해야 한다.
귀환을 하더라도 CS 차이가 두 배 이상.
그리고 미니언도 1.5웨이브 이상 버리게 만든다.
솔로랭크였다면 확실히 애매한 부분이다.
상대 압박한답시고 너무 견제에 치중하다 보면 갱각을 허용하게 된다.
아무리 생존기가 있다고 해도 한 번 CC기 연계 잘못 걸리면 죽는 건 원딜러의 숙명이다.
'그런데 그 정글러가 두들겨 맞고 있으니 여기선 과감하게 나가볼까.'
상대 정글에 와드를 박아 이블퀸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나로 인해 알려졌고 이제는 정석으로 자리 잡은 플레이다.
지금 맵에는 적 정글러가 리심이 없는 틈을 타 허겁지겁 유령을 먹고 있는 장면이 잡힌다.
만에 하나 유령을 먹고 귀환을 해도 1분 가까이 봇에 올 일은 없다는 소리.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휘리리리링~!
본래라면 갱킹이 왔을 때를 대비해 한나는 주력 스킬을 아껴 놓아야 했다.
그런데 그 갱킹이 올 염려가 없다.
즉, 뒷걱정 없이 견제에 전력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같이 앞무빙을 밟으며 과감하게 몰아친다.
'헤이클린과 한나로 과감히 한다고 얼마나 후두려 팰 수 있겠냐만은.'
적어도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나와 한나의 체력이 깎이는 만큼 상대도 깎아낸다.
살을 주고 살을 취한다.
이미 체력이 꽤나 깎인 상태인 적팀은 어쩌다 의문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에 가야 한다.
그렇게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나 일방적인 수준은 아니다.
우리 쪽도 매섭게 휘몰아친 대가로 체력이 아슬아슬하다.
슬슬 이블퀸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타이밍.
욕심을 내다간 탈이 날 수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귀환을 하는 게 바람직한 선택이다.
퀴리릭!
라인을 대강 밀고 투망으로 빠진다.
미니언들은 포탑에 먹히지만 서포터인 랄라가 원딜러를 대신해 수급한다.
적팀의 입장에선 헤이클린을 상대로 선방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찰칵!
원딜러에게 있어 귀환 타이밍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나의 경우 900골드를 상회하는 돈이 모였다.
헤이클린의 견제력을 한층 더 끌어 올려주는 공격 속도의 신발이 마침 딱 그 가격.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상대는 700골드 전후겠지. 흡수의 칼은 절대 안 나와.'
라인 주도권을 잘만 이용하면 귀환 타이밍을 조정할 수 있다.
방금 전 조금 무리가 될 정도로 하드하게 몰아붙인 플레이가 이를 위해서였다.
결국 고민하던 토이치가 사온 아이템은 롱스워드 하나 더.
차라리 두란검을 사올 걸, 곧 후회하게 될 거다.
.
.
.
* * *
페닉스-썬더로서는 난데없는 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팀의 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무려 32강이다.
참가팀의 수가 서른이 넘는다.
그런데 그중에서 하필 올마스터가 속한 팀이 걸리다니.
재수가 옴 붙어도 이렇게 최악으로 맞아 떨어질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봇라인을 파면 승산이 있긴 개뿔이..'
팀의 주장, 제니스-썬더의 서포터 이승채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진행되고 있는 게임에서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준비해온 전략이라도 쓰고 진 거라면 후회가 없겠다.
'탑이나 정글은 그렇다 치고 미드는 대체 왜?'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상대 신세상-매직의 탑라이너는 씨지맥, 그리고 정글러는 뮴뮴이다.
전자는 익히 그 실력이 알려져 있고, 후자는 한국 내에서는 평가가 아직이라고 하나 알 사람은 다 아는 진짜배기.
그런 만큼 탑, 정글이 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미드 만큼은 아니됐다.
"너 설마.. 여자라고 봐주는 건 아니지?"
"후우, 나도 차라리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한탄스럽게 말을 늘이는 미드라이너를 보며 이승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초반 몇 수는 봐줬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라인전 10분 내내 격차가 벌어진다는 의미는 하나.
상대의 실력이 정말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른 챔피언은 몰라도 르풀랑으로 저렇게 밀리면 후반 답도 없는데.'
이승채는 고민을 놓기로 했다.
멘탈을 부여잡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냥 게임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다.
정글러는 길가다 리심 만나면 즉사.
탑라인은 이미 1차 타워가 터지고 겨우겨우 파밍만 하고 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봇라인도 성치 않았다.
"좀 그만 맞아봐. 실드쿨일 때는 조금 사려."
"이속 차이 나이잖아. 이걸 어떻게 사려. 아, 진짜 흡칼만 나왔어도 버틸 만했는데."
라인전은 분명 할 만하게 갔다.
CS차이가 나기는 했어도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랬을 텐데.. 귀환 타이밍을 한 번 잘못 잡은 탓에 완전히 말려버렸다.
공속신을 신고 온 데다 상대의 서포터는 한나.
재빠른 이동속도로 툭툭 건드려 대니 토이치가 도저히 파밍을 못한다.
어떻게 2대2로 꽝 붙으면 반반은 갈 거 같은데 안 싸워주고 견제만 한다.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뛸 지경이었다.
"20분까지 적당히 버티다 서렌 치자. 멘탈만 상하겠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정글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하아…. 올마스터가 헤이클린 해준 건 진짜 기회였는데.. 위에서 너무 터져버렸네."
헤이클린은 라인전이 센 대신에 중후반까지 딜링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한 마디로 캐리형 챔피언이라기 보다는 그냥 무난한 픽.
올마스터가 그런 챔피언을 했다는 사실은 둘도 없는 기회였다.
헤이클린이 약한 중반 타이밍에 승부수를 던지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신세상 MyumMyum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지.
모든 정글이 장악 당한 상태다.
이블퀸은 길가다 리심 만나면 반항도 못하고 즉사다.
이러한 광경, 솔로랭크에서는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긴 하다.
"카정 올 줄은 정말 꿈에 몰랐다.."
"그러니까 성별 관계없이 실력만 보라 했잖아 하아…."
설사 실력이 있다고 해도 수비적으로 잘하는 플레이어 아니겠냐?
그러한 선입견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가장 크게 터진 곳이 바로 정글이었다.
하지만 결국 세 라인도 실력 격차가 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러한 게임은 쓸데없이 피드백을 주고 받기 보다는 서렌이 깔끔하다.
이윽고 게임 시간이 20분이 되자마자 페닉스-썬더는 돌을 던졌다.
프로 무대에서 서렌이 흔한 건 아니지만 찾아보자면 경우가 없진 않다.
"이번 경기의 패인은 두 가지야. 하나는 너희들이 알고 있는 데로 전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어."
첫 번째 세트가 끝난 직후,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페닉스-썬더의 코치가 입을 열었다.
코치로서 게임 중에 오더를 하거나 하는 일은 없어도 패인의 분석 정도는 한다.
물론 선수 본인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하겠지만 한 마디로 전체적인 정리.
개인 화면만 보는 선수들과 달리 코치는 조금 더 넓게 시야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를 하자면.. 탑은 조금 더 수비적인 픽하고, 정글은 카정 좀 많이 대비하자. 이 부분은 승채가 신경을 써줄 수 있지?"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페닉스 게임단은 발바닥에 채이는 2군 팀이 아니다.
2% 부족해 롤챔스에서 자꾸 강등 당한다고는 하나 어떻게든 기어 올라가고 만다.
기본적인 실력 자체는 있는 팀이라는 소리다.
경험도 많아 대처 능력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두 번째 패인은 너희도 알다시피 감독이 조금 오지랖을 했지?"
한 번의 패전으로 인해 무거워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선수들 사이에서 작게 실소가 새어 나온다.
게임단의 코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선수들과의 융화력.
게임 분석력이라든지 스케줄 관리 능력이라든지 물론 필요하지만 대인 관계가 첫 번째다.
게이머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보통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팀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방금만 해도 어떻게 엇나갔다며 서로 탓을 하는 흐름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 근데 알다시피 감독도 무조건 확신해서 말을 한 건 아니야. 신빙성 높은 정보를 어디선가 들고 왔겠지. 뭐, 결과적으로 전혀 틀렸다만?"
코치의 너스레에 선수들이 한층 풀린 표정으로 얕게 주억거렸다.
선수들의 대화에서 은근하게 짜증이 배어있던 이유가 바로 감독 때문이었다.
감독이 올마스터 팀의 봇라인은 분명 약할 거라고.
그러니까 봇만 파면 이긴다는 둥 헛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곱씹어서 생각해 보면 감독 탓을 할 것 만은 아니었다.
"근데 진짜.. 올마스터가 원딜로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하긴 이걸 누가 예상해. 어쨌든 올마스터가 원딜이라 봇만 파는 작전은 힘들겠다."
올마스터가 이끄는 신세상-매직과 경기가 잡히게 된 직후.
감독은 아주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믿음직한 정보통에 의하면 올마스터 팀에 구멍이 두 명 있다고.
그리고 그 두 명이 전부 봇라인이라고.
결국 예상은 틀렸고 올마스터가 무려 원딜로 빠졌다.
"하지만 나쁘게 볼 것 만은 아니야. 알다시피 헤이클린 하면 중반까지 존재감 전혀 없어."
"맞아, 이번 판은 실수를 너무 심하게 했다. 초반 실수만 줄이면 할 만할 거 같은데..?"
코치에 연이어 주장인 이승채의 말에 나머지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알고는 있다.
자신들이 너무 초보적인 실수를 해버렸다고.
정글러는 카정 조금 더 신경 쓰고, 혹시 모르니 서포터가 와드 하나 박아주고.
미드도, 탑도 수비적인 거 골라서 잡으면 충분히 할 만해진다.
방금도 봇에서 보니 올마스터가 유별난 플레이를 해오지도 않았다.
알려진 것 마냥 혼자서 미쳐 날뛰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꽤 잘하긴 하더라."
"기본기는 확실히 있었어. 원딜 유저 아닌 데도 그 정도 한다는 건.. 놀랍긴 해."
잘하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평범하게 잘하는 원딜러랑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소리기도 하다.
올마스터라는 이름값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상대는 소 잡는 칼을 닭 잡는데 사용한 격이다.
그렇게 한 차례 진중한 회의가 오간 후 다음 경기 시간이 도래했다.
첫 번째 세트에서의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
각자 각오를 다지며 페닉스-썬더의 선수들은 경기에 임했다.
그 각오가 무색하게도 경기의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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