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15화 (515/803)

515====================

LML

여느 대회와 마찬가지로 A조와 B조로 나뉘어져 있는 LML의 준결승전.

그 중에서도 한껏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A조의 경기가 먼저 치러진다.

신세상-매직 대 마진 수비대가 제대로 한 판 맞붙는다.

미리 보는 롤챔스, 이러한 세간의 평가는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두 팀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량을 자랑합니다. 신세상 매직은 막 팀을 창단했기 때문에, 마진 수비대는 지난 롤챔스 조별 리그에서 아슬아슬 탈락해서. 우연이 겹쳐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LML 중계진의 그저 그런 양 게임단의 소개가 이어진다.

하지만 딱히 들을 것도 없는 게 다 알고 있다.

애시당초 LML을 보는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신세상 매직.

그리고 마진 공격대의 형제팀으로 유명한 마진 수비대.

이 둘을 모르는 로드 오브 로드의 팬이 과연 한국에 있을까?

묻는다면 우문이 된다.

-드디어 볼만한 경기가 나오나?ㅋㅋ

-마진 수비대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지.

-근데 난 건너 뛰고 인터뷰만 보고 싶다.

-인터뷰만 볼 거면 2시간 후에 다시 오던가.

-카메라로 선수석 간간히 잡아주는 게 눈정화됨ㅎㅎ

LML의 2군팀들이 늑대라면 롤챔스의 1군팀들은 사자다.

하지만 사자들끼리도 서열은 분명하게 나뉘어있다.

같은 1군 클라스의 팀이라고는 하나 신세상-매직과 마진 수비대의 수준 차이는 극명하다.

이미 잉벤등을 포함한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는 승자 예측이 유명무실해졌다.

물론, 신세상-매직이 신생팀이고 가진 바 실력이 완전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

그런 점을 보자면 마진 수비대도 아주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으로 예측을 하기엔 신세상-매직의 멤버진이 조금 지나치게 화려하다.

그도 그럴 게 올마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도 캐리력이 막강하다.

어느 정도냐면 그 올마스터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MVP를 못 받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준결승전의 매치는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너무 일방적인 경기만 봤으니 약간 버텨주는 상대가 필요하다.

한 마디로 맷집이 되는 샌드백!

결말이 정해진 코미디 연극과도 같았다.

<오늘은 과연 올마스터 선수가 팀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미드, 정글 미인 듀오의 막강한 캐리에 무릎을 꿇을지! 길고 짧은 건 역시 대봐야 알겠죠?>

<하지만 마진 수비대 또한 미드, 정글 강하기로 손색이 없는 팀이거든요? 두 팀의 매치 개인적으로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신세상-매직은 32강부터 8강까지 전부 미드, 정글이 MVP를 독차지했다.

올마스터고 나발이고 간에 지금껏 보여준 모습만 따지면 미드&정글 캐리가 돋보이는 팀이다.

그런데 마진 수비대 또한 미드&정글이 만만치 않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정평이 나있는 모카차와 훈의 듀오는 프로 무대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명품 듀오다.

<밴픽,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강력한 다크호스 뮴뮴 선수의 리심을 자르고 시작하는군요?>

<뮴뮴 선수의 챔피언 폭이 좁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카정으로 시작하는 리심은 상당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마진 수비대 입장에서 리심을 자른 건 적절한 판단입니다.>

주저리주저리 중계진들이 밴픽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 챔피언은 어느 선수가 잘하는데 밴이 됐다는 둥.

이 챔피언이 살았으니 반드시 가져갈 거라는 둥.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다.

LML의 중계진 수준은 그렇게 높지가 않다.

뻔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밴픽 세트가 거의 종료되는 가운데.

만약 김은준 해설위원이었으면 반드시 짚었을 한 가지가 어영부영 넘어갔다.

<딱히 유별난 부분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첫 세트인 만큼 서로의 기량을 확인하려는 거겠죠.>

<올마스터 선수가 마지막 픽을 고르면 밴픽은 끝이 납니다. 이제 곧 준결승전의 첫 번째 세트가 시작되겠습니다.>

원딜러인 올마스터가 마지막까지 픽을 미뤘다?

이 사실은 언급없이 넘어가서는 안될 부분이다.

프로 리그에서 마지막 픽은 대부분 탑 아니면 미드다.

이유인 즉, 솔로 라인이라 상성빨을 많이 탄다.

선픽으로 카서트를 가져갔는데 상대가 르풀랑을 픽한다던지.

이런 경우가 나오면 픽에서부터 기세가 확 꺾여버린다.

그에 비해 봇라인이나 정글은 유별난 픽을 하지 않는 한 무리수가 될 염려는 적다.

이러한 이유로 원딜러가 마지막 픽이 되는 경우는 없어야 하는데..

특이하게도 신세상-매직은 그렇지 않았다?

경력이 적은 LML의 캐스터와 해설자는 이를 보고 나서야 알아챘다.

올마스터가 또다시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

.

.

* * *

원딜러는 흔히 솔랭 캐리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타에서 빛이 나는 포지션이 원딜러일 텐데 대체 왜?

그 한타의 구도를 그리는 건 원딜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지나치게 수동적인 포지션이다.

토이치처럼 암살을 하거나.

고르키처럼 포킹을 쏘거나.

애씨처럼 이니시를 열거나.

주어진 역할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법을 짜내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지극히 일반적인 견해고 나도 여기에 적극 동의한다.

이 하나의 챔피언을 제외하면 말이다.

파앙!

회전하는 손도끼가 미니언을 강타하고 튀어올라 포물선을 그린다.

그 손도끼를 다시금 받아 들며 또다시 평타.

도라이븐은 평타 한 방, 한 방이 마치 서커스의 저글링과도 같은 패널티가 붙어있다.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과장 하나 없는 사실이다.

그 대신 도라이븐은 치명타에 준하는 막대한 데미지를 초반부터 가진다.

<이리 와! 같이 놀자고-!>

도발적인 대사를 내뱉으며 손도끼를 던진다.

이에 상대 원딜러 토이치도 똑같이 평타를 한 대 때려 선방한다.

이렇게 서로 똑같이 주고 받으면 평타가 강화된 내 쪽이 이득.

하지만 토이치의 평타에는 맹독이 묻어있다.

챠륵..!

토이치의 패시브, 맹독은 상대의 체력을 서서히 깎는 도트 피해를 가한다.

누킹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딜교환에서는 상당히 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도트 피해.

도라이븐도 똑같이 가졌다.

'도라이븐이 아직 리워크가 되기 전이라 다행이야.'

현재 도라이븐의 패시브는 4초에 걸쳐 상대의 체력을 서서히 깎는 출혈 효과를 가졌다.

토이치와 달리 고정 데미지가 아닌 물리 데미지지만 방어템이 갖춰지지 않는 라인전 단계에서는 오히려 좋다.

물론 딜교환을 하는 건 원딜러만이 아니다.

한나는 나에게 실드를 주며 솜털 같은 평타를 툭툭.

적 서포터 쓰렉귀는 기를 모은 평타로 나를 퍼억! 때려온다.

서포터의 보조는 OP스펙을 가진 쓰렉귀가 조금은 우위에 선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토이치의 체력이 미묘하게 조금 더 달았을 뿐인 결과다.

그럼에도 이런 귀찮은 딜교환을 해나가는 데는 당연 이유가 있다.

라인전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런 자질구레한 자존심 싸움일 리 있을까.

정확히 아홉 번째 미니언이 죽는 순간 주위의 공기가 흔들린다.

"토이치 점사."

끝맺음조차 없는 나의 지시에 고질라가 고개를 한 번 가볍게 끄덕이는 걸로 칼같이 답한다.

2레벨이라 함은 도라이븐이 가장 강력한 순간이다.

킬각을 노리기 위해 빠듯하게 라인을 푸쉬했다.

그 결과, 약 1초가 안되게 2레벨을 먼저 달성할 수 있었다.

찰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라지만 만족한다.

레벨업의 표식이 뜨자마자 과감하게 앞점멸을 해서 손도끼를 때려 박았다.

파앙!

토이치의 마빡에 맞고 상쾌하게 튕겨 오른 도끼를 다시금 받아든 순간.

토이치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부스터와도 같은 도라이븐의 W스킬, 광란의 피바다가 재활성화된다.

파앙!

파앙!

상대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을 거다.

아무리 선2레벨을 찍었다고 해도 잠깐이다.

곧바로 자신들도 2레벨이 찍혀서 반격을 할 텐데 이걸 들어오다니?

미니언이 깡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데 우스울 거다.

그리고 잠시 후, 당황스러울 거다.

철썩!

갑작스런 상황 탓에 쓰렉귀의 반응이 아주 잠시 지체됐다.

시간으로 따지면 눈 두 번 깜박일 0.5초 남짓.

하지만 금새 정신을 차린 쓰렉귀가 채찍으로 나를 밀쳐낸다.

그러면서 탈력을 걸고 사신의 선고를 던져온다.

침착하게 상대를 먼저 둔화시키고 논타겟 스킬을 던지는 행위는 가히 교과서와도 같다.

지금까지 만난 팀들과는 명백하게 수준이 다르다.

어차피 둘 다 내 손바닥 위라서 문제지.

챠랑~!

도라이븐을 중심으로 상큼하게 퍼지는 파동.

제압을 제외한 모든 CC기를 풀어낼 수 있는 클린즈다.

선호도가 낮은 스펠은 아니다만 도라이븐에게 있어선 필수다.

둔화가 풀린 나는 자연스럽게 선고를 피하며 도끼를 다시 줏어 들었다.

파앙!

파앙!

내가 멈출 기세 없이 앞무빙을 하며 도끼를 때려박자 토이치가 그제서야 알아챈다.

이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주위의 미니언들은 분명 도와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깎이는 속도가 격이 다르다.

이대로 한 대 더 맞아버리면 진짜로 위험하다.

점멸을 사용해 도망간 토이치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틀렸다.

도망 자체는 옳았지만 한 발 늦었다.

출혈에 의해 줄줄 새어나가는 체력.

4초에 걸쳐 상대의 체력을 깎아내는 출혈이 무려 4중첩 쌓였다.

실드 스펠을 사용해 버텨낸다 한들 고작 2초 생명을 연장할 뿐이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상대의 생각보다 한 방 내지 두 방은 더 강력하다.

때리기만 한다면 무한정 쌓이는 도라이븐의 패시브는 여타 챔피언들의 도트 데미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체력바가 줄줄 새던 토이치는 결국 타워 안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와, 진짜 세네요. 도라이븐이 확실히 도끼만 받을 줄 알면 원딜 최강인 거 같아요."

"그래, 도끼만 받을 줄 알면 말이야."

그 도끼를 받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서 안 쓰이는 원딜러가 도라이븐이다.

그런데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고 도끼 받다가 CC기라도 맞으면 치명적.

방금만 해도 내 클린즈 반응이 늦었다면 결과는 반대로 됐을 거다.

'한 마디로 조금 지나치게 예리한 양날의 칼이지.'

이러한 특성을 지닌 도라이븐을 소화해내는 건 보통 어렵지가 않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자가 피나는 연습 끝에 이루어 낼까 말까.

그렇게 오해받긴 하지만 사실 도라이븐은 그 정도까지 극한의 피지컬을 요하지 않는다.

도라이븐에게 진짜 필요한 건 뛰어난 피지컬이 아닌 정밀한 계산이다.

즉, 상대가 어떤 공격해 해올지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내는 능력.

한 마디로 총알을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총구를 보고 궤적을 예상해서 회피하는 거다.

애초에 전자는 실현 가능성 자체가 거의 없다.

'후자라고 쉬운 건 당연히 아니지만.'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 올마스터로서 전부 꿰고 있는 나라면 가능하다.

물론 피나는 연습이 뒷받침된 결과다.

북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아무리 비밀 병기라 한들 녹이 슨다면 고철덩이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파앙!

파앙!

2레벨에 퍼블을 따냄으로서 라인전의 승기는 확연하게 넘어왔다.

그렇게 라인을 한 번 밀어낸 이후에도 나는 집에 가는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선택에서 지극히 벗어나 있지만 원래 도라이븐은 광대같은 챔피언이다.

회전하는 손도끼만 봐도 그렇다.

서커스의 저글링처럼 곡예를 해야 다른 원딜러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손도끼를 받지 못하면 다른 원딜러보다 아래라는 이야기다.

'챔프 메커니즘 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서커스를 하자 이 말이지.'

저글링이 아닌 외줄타기다.

토이치가 부활해서 라인에 도착한다면 의아할 거다.

아니, 아직까지도 집에 안 갔어?

동시에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기회라고.

역전의 찬스를 노린다면 지금밖에 없다고.

호시탐탐 킬각을 노려올 거라는 게 뻔하게 읽힌다.

"역시 도라이븐이라 그런지 피흡이 빠르네요. 그런데 슬슬 토이치 도착할 타이밍 같은데요?"

"그래 보이지? 싸움 일어나면 토이치 점사. 최소한 러브샷을 노려보자."

왕룬에 공속룬이 아닌 피흡룬 두 개.

현재 시점에서 대부분의 원딜러들이 취하는 공용룬이다.

공속룬이 아직 버프되지 않은 시점이라 대부분 피흡룬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 피흡룬이 도라이븐과 상당히 시너지가 좋다.

한 방, 한 방이 무지막지 강한 도라이븐의 특성상 미니언을 때릴 때마다 눈에 띄게 체력이 오른다.

흡수의 칼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체력 수급 능력이 상당하다.

철썩!

그러니까 그 전에 승부를 내겠다.

슬금슬금 위험한 무빙을 보이던 쓰렉귀가 불현듯 행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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