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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L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하고도 보름 전.
내가 지난 스프링 시즌때 꿀 좀 빨았던 선고-점멸은 픽스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쓰렉귀가 안 좋아졌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철썩!
쓰렉귀가 점멸 채찍 쓸기로 킬각을 노려왔다.
그 효과로 나는 안쪽으로 당겨지며 둔화까지 걸리고 만다.
그러고서 대놓고 노려오는 선고.
점멸도 클린즈도 없는 나로서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키잉..!
되는대로 무빙을 틀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쓰렉귀의 선고는 올곧게 나를 향해 뻗어진다.
운명의 여신이 언제까지나 내 편을 들어주리란 법은 없었다.
그래서 일까?
누군가 말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거라고.
고질라를 영입한 나의 선택은 역시 잘못되지 않았다.
'나이스 슈퍼 세이브..!'
나와 쓰렉귀 사이에 고질라의 한나가 끼어들었다.
점멸을 사용해 기가 막히게 대신 맞아줬다.
하지만 아직 위기 상황이 끝난 건 아니었다.
쓰렉귀가 랜턴을 던져 무언가를 끌고 온다.
십중팔구 은신 상태인 토이치.
선고를 피했다고는 하나 그대로 싸운다면 불리하다.
이번에는 내 슈퍼 플레이가 필요한 순간이다.
카라락!
도라이븐의 E스킬, 밀쳐내라.
대형도끼를 던져 적들을 밀쳐냄과 동시에 이동속도를 늦춘다.
지금 중요한 건 바로 그 밀쳐내는 효과다.
랜턴을 타고 날아오던 토이치가 중도 낙하한다.
밀쳐내라에 의해 끊겨버렸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카이팅 구도는 무엇일까.
나는 뒷무빙을 밟으며 쓰렉귀를 점사했다.
파앙!
파앙!
본래의 계획은 원딜러부터 요리하는 것이었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토이치의 랜턴이 끊긴 이상 나에게 화살을 향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쓰렉귀는 점멸도 스킬도 모두 빠졌다.
'쓰렉귀부터 점사..!'
마음 같아서는 소리내어 말하고 싶지만 불가능.
그 잠깐의 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다.
알아서 판단해 나를 보조하는 수밖에 없다.
고질라는 그것이 가능한 서포터였다.
휘리링~!
짧게 끊은 한나의 회오리가 토이치에게 또 한 번 딜로스를 유발한다.
이속을 늦추는 봄바람은 쓰렉귀에게 던진다.
적절하기 그지 없는 스킬 분배.
마무리를 하는 건 내가 된다.
파앙!
쓰렉귀에게 맞아 튕기고 올라오는 손도끼는 평소보다 강력하다.
물리 공격력을 올려주는 한나의 실드.
지금까지는 상대가 반격하는 탓에 씌어지는 족족 사라졌다.
하지만 이렇듯 일방적인 구도가 되니 버프 효과가 짭짤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쓰렉귀 하나 잡는 걸로 멈추지 않는다.
다음 목표는 토이치.
손도끼를 받아 광란의 피바다를 재활성화한다.
─더블 킬!
신세상 AllMaster님이 학살 중입니다..!
희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저질러버린 이상 한나라도 데려가겠다.
앞점멸로 선고를 막은 한나는 불가피한 죽음을 맞이했다.
"오, 봇듀오 오늘은 좀 하는데?"
"봇 갑자기 뭥미? 약이라도 빠심?"
게임 시간 고작 4분대에 학살의 승전보가 울렸다.
두 가시내가 놀랍다는 듯이 한 소리 뱉어온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다.
찰칵!
고질라의 희생으로 3킬을 마신 덕분에 VF소드가 벌써 나왔다.
원딜러에게 있어 상당히 웃어주는 상황이다.
특히 도라이븐의 VF소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콰직!
다시 라인에 복귀해 토이치를 딱 한 대 치자 체력바가 뭉텅 뜯겨나간다.
체감 공격력이 거진 두 배.
VF소드로 오른 공격력45가 회전하는 손도끼에 의해 뻥튀기 된 결과다.
롱스워드 하나 달랑 들고 온 토이치는 감히 딜교환을 꿈도 꿀 수 없다.
.
.
.
* * *
중계진들의 명백한 실수다.
올마스터가 챔피언 픽을 마지막까지 미뤄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야 했는데 손해 봤다.
필연 그러한 반응이 터져 나와야 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애시당초 대부분의 시청자들 시선은 다른데 쏠려 있었다.
이번 판에서는 뮴뮴 누님이 캐리할까, 돌아이녀가 캐리할까.
안타깝게도 어느 쪽도 아니었다.
올마스터가 가진 바 존재감을 되찾았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자극적인 캐리를 선보인다.
단 한 번도 대회 무대에 나온 적 없던 유일한 원딜러.
도라이븐으로 봇라인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
<압도적인 강함! 봇라인이 복구 불가능으로 터져버렸습니다.>
<원딜 캐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죠! 역시 이래야 올마스터 아니겠습니까!>
2레벨을 찍자마자 앞점멸로 화끈한 솔킬.
일반적인 원딜러들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기행이다.
현장의 관중들이 자연스레 한 입 모아 올마스터를 외쳤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점멸로 강제 이니시를 건 상대 봇듀오를 끔살냈다.
귀신같은 카이팅으로 손도끼를 놓치지 않고 받아내면 끝끝내 더블킬.
첫 귀환에 VF소드가 나와버린 도라이븐은 괴물이었다.
포탑을 끼고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콰직!
허겁지겁 포탑에 밀려온 미니언 웨이브를 받아 먹던 토이치의 마빡에 제대로 한 방!
HP바가 무슨 포킹이라도 맞은 것 마냥 뜯겨 나간다.
그렇다.
포킹이다.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어지가한 스킬에 준한다.
잘 큰 도라이븐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시적으로 실감시켜준다.
그리고 정말 자극스러운 부분은 다른데 있었다.
카라락!
포탑을 끼고 있는데 어딜 감히 들어오느냐?
쓰렉귀가 그랩을 던지며 도라이븐을 낚아채려 한다.
이를 순간적으로 폭주시킨 무빙으로 자연스럽게 회피.
끝이 아니다.
떨어진 도끼를 받아낸 도라이븐이 처형을 개시했다.
사냥감의 반항을 허락하는 무자비한 공개 처형.
도라이븐이라는 챔피언 특색에 걸맞은 플레이가 모자이크 없이 이루어졌다.
<한 대! 두 대! 따라가서 또 한 대! 아니, 지금 포탑을 끼고 있단 말입니다. 플레이에 주저가 없어요!>
<이거 설마 킬각까지 보나요? 봅니다. 도라이븐의 궁극기가 토이치를 잔인하게 썰어버렸습니다. 자비따위 눈곱 만큼도 찾아볼 수 없겠습니다..!>
가장 거슬리던 그랩이 빠져버리자 움직임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한나의 실드로 공격력이 막대하게 오른 도라이븐이 앞무빙 카이팅.
정확히 도끼로 세 대 내려치자 토이치의 체력이 위험한 지경까지 내려갔다.
여기서 멈춰 섰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정확하게 날아간 저격궁이 토이치의 목숨을 갈아버린다.
사거리가 무한정 글로벌 궁극기의 특색을 가진 회전 톱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라인전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게임을 해야 하나?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드, 정글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거든요?>
<올마스터 선수가 싸우고 있는 것은 적이 아닌 아군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지금 이건 누가 어떻게 봐도 도라이븐의 하드캐리입니다.>
마진 수비대라고 상황을 어떻게 풀어보려고 노려하지 않은 게 아니다.
방금 전, 모카차의 콜라곰이 봇라인을 덮쳤다.
토이치를 따내고 방심하고 있던 올마스터는 이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쓰렉귀의 선고가 도라이븐의 목덜미를 낚아 챘다.
낚아 채고 들어가서 랜턴으로 콜라곰을 끌고 오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완벽 그 자체.
문제는 올마스터 쪽도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나가 회오리 바람으로 한 번 살렸다.
빡쳐서 점멸로 들어온 콜라곰을 궁극기로 한 번 더.
한나의 궁극기, 산들 바람은 주위의 적을 밀어내며 넓은 범위의 아군을 회복시킨다.
그렇게 벌어낸 시간동안 올마스터가 빠듯하게 카이팅을 해낸다.
쓰렉귀부터 천천히 요리한다.
콜라곰은 어떻게든 다시 달려들었지만 실패.
도라이븐이 도끼를 무한으로 받아내며 광란의 피바다를 계속해서 활성화한다.
한나가 귀찮게 깔짝거리기까지 하니 다시 붙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봇라인 1차 터졌고요. 용도 가져갑니다. 도라이븐 1코어 나왔는데 토이치는 이제 흡칼 하나 들고 있어요. 도저히 게임이 안됩니다..>
<원딜러가 아무리 성장 속도가 느리다고 해도 게임 시간 10분에 6킬을 먹은 이상 규격 외죠.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중계진은 기본적으로 희망적인 관측을 해야 한다.
이 팀이 불리하다고는 하나 후반에 가면 이길 수 있다.
혹시 모를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서 시청자의 흥미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지금의 상황은 누가 봐도 참혹하다.
차라리 도라이븐이 얼마나 한 기행을 펼칠지 그 점을 주목하는 게 옳다.
미드, 정글도 잘해주고 있다고는 하나 현재 진행되는 게임에서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도라이븐.
올마스터의 도라이븐이 게임의 판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렇게 봇라인을 파괴하고 순회 공연을 떠난다.
첫 번째 목적지는 정반대 방향인 탑이었다.
콰직!
이 타이밍의 원딜러가 세면 얼마나 세겠냐.
추격자의 손목 보호대를 갖춘 전기쥐는 대수롭지 않게 한 대 허용해버렸다.
<방금 1/5피 나갔죠? 평타로 다섯 대 맞으면 죽는다는 소리입니다.>
<클린즈도 있어서 잘못 대들다간 전기쥐 큰일 납니다. 그대로 쭈욱 빼는 것만이 답이에요.>
지금껏 단 한 번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았던 탑라인의 포탑이 허무하게 무너진다.
전기쥐로서는 뒤에서 손가락 쪽쪽 빨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데이지 않았다면 무서운 줄 모르고 수비라도 해봤을 터.
하지만 한 번 맞아보니 직감한다.
도라이븐 근처에 가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그렇게 탑라인의 1차 포탑이 파괴되자 다음은 미드라인이다.
아니, 그 전에 봇라인의 밀린 CS를 받아먹어야 한다.
올마스터는 쓸데없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아이템이 잘 나오니까 궁극기 데미지도 어마어마해요? 미니언들이 은행잎 갈퀴질 하듯 깔끔하게 처리됩니다.>
<그 돈으로 VF소드를 하나 더 올렸습니다. AD가 벌써 250. 평타 한 방이 입히는 피해가 그 두 배에 수렴할 겁니다.>
도라이븐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회전하는 도끼는 평타 데미지를 괴랄하게 만들어준다.
대략 두 배가 조금 안된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여기에 출혈 피해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두 배가 맞다.
게임 시간 13분.
딜러진들 체력은 1천 대 초반이다.
탱커들도 많아봐야 2천이 고작이다.
그런데 도라이븐의 평타 데미지가 한 방에 500이란 소리다.
적 처치시 공격력이 최대 30까지 추가되는 피를 마시는 칼이 풀 스택을 채웠다.
여기에 VF소드가 하나 더 갖춰지니 이만한 위력이 뿜어진다.
마진 수비대의 서렌이 빠를지, 올마스터가 넥서스를 터트리는 게 빠를지 결과는 매한가지인 경쟁이 펼쳐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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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초반의 이득을 바탕으로 스노우볼을 굴린다.
미드나 정글이면 몰라도 원딜러로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하지만 도라이븐은 일반적인 원딜러와 궤를 달리한다.
─아군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게임 시간 15분이 되자 약속된 것처럼 벌어진 참사.
나와 예은, 그리고 고질라 셋이서 3인 바론을 해냈다.
본래라면 턱도 없는 시간대지만 도라이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흡이 정말 무지막지 하네요. 아니, 피흡도 피흡인데 데미지가 정말.."
"으, 분하다. 이러면 첫 세트 MVP는 내줘야겠네."
도라이븐은 그 어떤 챔피언보다 오브젝트를 잘 잡는다.
아니, 잘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무서울 정도다.
본래 15분의 햇바론 트라이가 힘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그냥 순수하게 딜링이 부족하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바론의 막대한 딜링을 버틸 수가 없다는 거다.
탱커가 어찌저찌 막아준다고 해도 스플래쉬 데미지에 체력이 쭉쭉 단다.
그런데 피를 마시는 칼이 완성된 도라이븐은 한 마디로 피흡이 죽여준다.
게다가 도끼를 무려 세 개 돌린다.
카이팅을 해야 하는 혼잡한 상황에선 힘들지만 바론 같이 박혀있는 샌드백.
한 자리에서 무한 저글링을 하며 어지간한 원딜러의 두 배 딜량을 뿜어낸다.
'게임의 승패는 완전히 기울었고 남은 건 얼마나 빨리 끝내냐인데.'
이놈의 가시내들이 순순히 협조해줄 리가 없다.
만약 다른 원딜러를 했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사정사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라이븐에게는 개인 행동이란 매력적인 선택지가 하나 더 존재한다.
'스플릿 하는 원딜러. 들어는 봤나.'
탑라인에서 조용조용 파밍을 하고 있는 전기쥐가 눈에 띈다.
게임이 유리하다는 말은 시야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왔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내가 몰래몰래 접근해도 전기쥐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공개 처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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