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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L
준결승전 A조 신세상-매직 대 마진 수비대의 경기.
그 시작은 경쾌하게 요동쳤다.
도라이븐이 믿기지 않은 캐리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하트에 구멍을 뻐엉! 뚫어버렸다.
라인전을 파괴시키고 펜타 킬로 마무리.
첫 번째 세트를 압도해냈다.
하지만, 필연이라면 필연일까?
첫 번째 세트의 MVP 도라이븐이 봉인됐다.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듯 마진 수비대가 밴이라는 평이한 대응을 해왔다.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뻔하지만 그만큼 효과는 명확하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번째 세트는 상당히 팽팽했다.
결과적으로 신세상-매직이 이겼다고는 하나 접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세트로 마진 수비대는 반격의 봉화를 울릴 뻔했다.
준결승전의 끝인가, 아니면 바야흐로 반격의 서막인가.
마진 수비대는 팀 이름에 걸맞은 플레이로 세 번째 세트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한 차례 긴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맞붙게 된 네 번째 세트에서 종지부가 찍힐 기미가 보이고 있다.
<경기 스코어 2대1!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물러나면 벼랑 끝이거든요. 이번 경기 패배하면 준결승전 마무리 지어집니다.>
<경기의 상황이 쉽지가 않게 됐죠. 이전 세트처럼 결정적인 실수도 안 해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경기 굳혀져 가는 분위기네요.>
마진 수비대의 전략이라 함은 한 마디로 받아먹기였다.
신세상-매직은 알려진 바 이상으로 개개인의 슈퍼 플레이가 돋보인다.
그런데 이 슈퍼 플레이라는 게 사실 스로잉과 종이 한 장 차이다.
실제로 슈퍼 플레이 잘하기로 유명한 선수들은 솔랭에서는 그닥 평가가 좋지 않다.
아군으로 걸리면 제발 정상적인 걸로 정상적인 플레이 해달라고 난리가 난다.
즉, 슈퍼 플레이는 수많은 트롤링이 비료가 되어 피어나는 한 줄기 아름다운 꽃봉오리다.
그 꽃봉오리를 피워보려고 한 건지, 아니면 개인의 욕심인지.
세 번째 세트에서 아이돌 선수의 아링이 한 번 갖다 던졌다.
앞대쉬로 암살을 하려다 어둠 속에서 뻗어져 나온 예스틸러스의 닻줄에 당겨졌다.
모카차가 뽑은 예스틸러스는 CC기 많기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챔피언이다.
이어진 속박과 궁극기는 제아무리 3단 대쉬를 자랑하는 아링이라도 별 수가 없었다.
35분이 넘은 후반에 미드라이너가 죽자 바론이 나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
결국 아이돌 선수의 스로잉이 분기점이 되어 세 번째 세트를 내주게 됐다.
하지만 사람은 학습을 하는 동물 아니겠는가?
신세상-매직은 세 번째 세트 이후 휴식 시간을 요청했다.
기본 휴식 시간을 더하면 약 30분이 안되는 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네 번째 세트 이후 쓸데없는 오바는 잦아들었다.
<스플릿하는 원딜러! 올마스터 다운 발상입니다. 도라이븐도 그랬지만 배인으로도 정말 1대1에 자신감이 충만합니다.>
<사실 배인이 원딜러 중에서 1대1에 가장 강한 챔피언이긴 합니다. 하지만 유달리 성장을 잘한 게 아님에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 올마스터 선수의 기본기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첫 번째 세트부터 세 번째까지는 격전이었다.
그러나 이번 네 번째 세트는 신세상-매직도 사뭇 진중하다.
쓸데없는 오바는 빠졌지만 그만큼 재기발랄한 플레이도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롤챔스에서는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로팀들 간의 대결 구도.
결국 그 승자는 신세상-매직 쪽으로 기울었다.
양 팀의 원딜러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할수록 차이가 난다.
한타에서의 딜량 차이가 압도적이냐?
차이는 물론 있었지만 한타의 승패를 가를 정도까진 아니었다.
경기에 무게추를 기울인 건 올마스터의 특이한 플레이 방식에 있었다.
<쇈 괜히 CS 몇 개 먹으려다가 반피 나갔죠! 이거 잘못해서 벽꿍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킬각 나옵니다.>
<봇라인 2차 타워 나가는 그림이네요. 무난하게 전라인 돌려깎기가 완성되었습니다.>
배인이 금은 장식 머리띠를 포함한 3코어가 나왔다.
어쭙잖은 대인 마크는 통하지 않는다.
쇈의 도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막가파로 딜교환.
전 라인의 2차 포탑이 모두 무너졌다.
이제 남은 것은 바론과 억제탑의 양자택일 뿐이다.
마진 수비대에게 선택이 강요된다.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이미 답은 나온 상태였다.
.
.
.
* * *
이번 네 번째 세트는 안정적으로 가기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준결승전에서 질까 봐.
사실 그 이유도 없지는 않다.
불안의 싹은 삭초제근 하는 편이 옳지 않겠는가?
다전제라는 건 사람 어지간히 살 떨리게 만드는 경기 방식이다.
잘 나가다 승승패패패 하는 경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니 만큼 그것도 분명히 있다.
'그건 둘째나 셋째 가는 사유고, 결정적인 건 답답함을 느껴봤으면 해서지.'
지금까지 너무 잘 나갔다.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준결승전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연이어 두 세트를 가져가며 승리의 목전까지 취했다.
고양감에 젖어버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상황에서 내가 한 마디 한다고 들을 턱이 있을까.
세 번째 세트에서 실수가 패인이 됐던 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휴식 시간까지 가지며 한 소리 제대로 했다.
"쟤네 바론 주려나 본데? 아마 현이 네 쪽으로 갔을 거야."
"음.. 최대한 발버둥은 쳐볼게."
내 스플릿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돌려깎기 이후에 봇라인 스플릿.
상대의 인원을 돌려 아군의 바론 트라이를 가능케 만들어주는 전형적인 운영이다.
물론 그냥 되는 건 아니고 내가 그만큼 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잘 풀렸고 현재 상대팀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나를 자르고 시간을 끌어 풀템전을 가려는 속셈이다.
탱커 위주로 픽한 상대는 수성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하다.
'위에는 쇈과 헤이클린, 밑에는 예스틸러스와 쏘냐.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이거구만.'
나 하나를 자르기 위해 네 명을 뺐다.
그리고 미드라이너인 코리아나는 다른 라인의 웨이브를 관리한다.
바론을 내준다는 전제 하에 가장 이상적인 대응이다.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잡혀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쇈과 헤이클린에게 추격을 당하던 나는 봇 2차 타워 옆 부쉬에 몸을 숨겼다.
데구르..!
지체없이 궁극기를 사용하고 몸을 굴렸다.
배인의 궁극기 심판의 시간은 구르기에 1초의 은신을 부여한다.
암살형 원딜러인 배인에게 딱 맞는 궁극기지만 필연적인 한 가지 단점.
구르는 순간 바닥에 먼지가 일어나며 배인이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단점이 부쉬에 잠깐 몸을 숨김으로서 상쇄된다.
터엉!
상대는 내가 은신했다는 사실을 곧장 알아채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고작해야 1초, 찰나다.
설마 은신한 상태로 굴러서 점멸 벽꿍을 박을 거라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무너진 포탑에 헤이클린의 몸이 1.5초간 고정된다.
챵! 타앙!
맞점멸의 반응따위 불가능했다.
그냥 점멸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판결-점멸.
눈치챈 순간에는 이미 상황은 종료돼 있었다.
당황한 쇈이 나에게 도발을 걸어오지만 가볍게 풀어낸다.
챠랑~!
금은 장식 머리띠로 바로 도발의 효과를 해제하면서 영락검을 쭈욱.
느려진 헤이클린은 스턴이 풀리자마자 곧장 도망가려 하지만 끝났다.
챵! 챵! 타앙!
상대의 이동속도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영락검.
그리고 엄청난 양의 추가 이동속도를 얻게 해주는 배인의 패시브.
추격의 귀재 배인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쇈이 부랴부랴 궁극기로 헤이클린을 살리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신세상 AllMaster님이 학살 중입니다!
헤이클린이 들고 있던 레드 버프를 빼앗았다.
딜러가 죽은 이상 도발이 빠진 쇈은 샌드백.
천천히 카이팅을 하면 더블 킬이 예약이다.
안타깝게도 그리 되지는 못할 것 같지만 말이다.
쿵! 쿵! 쿵! 쿵! 쿵!
예스틸러스가 나에게 점멸 궁을 때려 박았다.
타겟팅으로 꽂히는 예스틸러스의 궁극기는 피할래야 피할 방도가 없다.
그나마 금은 장식 머리띠가 있었다면 몰라도 이미 빠졌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신세상 AllMAster님의 학살이 종결되었습니다.
예스틸러스의 궁극기를 맞고 에어본이 된 지라 닻줄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떻게 무빙으로 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어진 CC연계에 폭사.
불가피한 죽음을 맞이했다.
"오, 한 명 따내고 죽었네요. 생각도 안 했는데."
"점멸 한 개에 궁극기 두 개 이득? 오~ 좀 하는데?"
나를 완벽하게 포위해냈다.
빠져나갈 구멍 따위 내주지 않겠다.
상대는 안심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안심은 방심으로 이어졌다.
역으로 내가 덤벼들자 어어? 하다 한 명 전사.
스킬과 스펠도 상당히 손해를 봤다.
'이러면 억제탑 하나는 무조건 밀겠지.'
원딜 간의 1대1 교환이다.
고작 그렇게 볼 문제가 아니다.
아군의 조합은 나 말고도 딜 넣을 사람이 많다.
하지만 상대는 탑과 정글이 딜링 하고는 거리가 먼 챔피언이다.
꾸준하게 지속딜을 넣어줘야 할 헤이클린이 죽은 것은 너무나도 막심한 손해다.
상대 팀에서는 딜러진이 코리아나 밖에 남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인 클리어도 코리아나 혼자 해야 하니 빈틈 투성이다.
─아군이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상대로서는 방법이 없다.
설사 받아먹는 기회를 노리려고 해도 그건 성할 때의 이야기다.
스킬과 스펠이 온전하지 못하다.
도저히 맞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마진 수비대는 어수룩하지 않다.
"미드 억제탑 깠으니 용 챙기고 현이 합류 기다리면 딱이겠는데?"
"깔끔하네요. 여기서 큰 실수만 안 하면 무난하게 승리 굳히겠습니다."
고질라의 말에 도둑이 제 발 저려 뜨끔한다.
초홍이가 휘파람을 부는 척하며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입한다.
그러다 조냐 두 개 구입하고 서둘러서 되판다.
딱히 노리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만 본인도 어지간히 찔리기는 한 모양.
세 번째 세트의 패배 원인이었으니, 그리고 조금 갈궜으니 긴장감이 빠릿 서있을 만도 하다.
'이것으로 경기는 사실상 굳힌 셈이지만 역시 아직이네.'
네 번째 세트에서 안정적으로 하자.
그러한 말을 꺼낸 데는 의중이 있다.
이기기 위함, 좀 그만 깝치라는 경고 이외에도 한 가지 더.
본인들이 자제했을 때 어느 정도 경기력을 낼 수 있나 알고 싶었다.
'로스가 상당해. 생각보다 괜찮았으니 됐지만.'
이전 세트처럼 슈퍼 플레이가 터져 나오지 못했다.
안정적이지만 압도적이지는 못했다.
물론 생각보다 잘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보통 자기 스타일 멋대로 하는 사람한테 자중하라 하면 되려 실수를 연발한다.
평소에 하던 플레이를 못하게 됨으로서 선택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초홍이가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아슬아슬 솔킬을 따낸다던지 평소의 플레이는 나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무너지는 모습이 나온 건 아니다.
즉, 오늘의 경기로 우리 신세상-매직의 최대값과 최소값을 얼추 알게 되었다.
'선수 각자의 본래 색을 살려가면서 서로의 색을 침범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실수를 줄여나간다. 앞으로 한 달간 해내야 할 일이야.'
준결승전이 승리로 장식됨으로서 이제는 확정이 됐다.
부활하자마자 아군에 합류해 봇라인을 압박한다.
수성을 하고 싶어도 미드 라인으로 거대 미니언들이 진격하고 있다.
아직 채 꺼지지 않은 바론 버프가 아군의 승리를 기정 사실로 만들어 준다.
─아군이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두 번째 억제탑이 파괴되었다.
이제 남은 것 탑라인의 억제탑 뿐이다.
이렇게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경기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필요하다.
CLC에서야 나와 예은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의 결력이 워낙 우수했다.
정석적인 굳히기 운영이야 대회 무대에서만 수십 수백 번을 해왔을 이들이다.
새로운 멤버들을 받아들인 경험도 한두세네 번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야.'
조급해 할 필요없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색깔을 맞춰나간다.
윤곽이 완성됐다고 다듬는 것을 얼렁뚱땅 하다간 큰코다치는 법이다.
학교 앞에서 달고나 뽑기 할 때!
바늘로 살살 긁다가 꼭 마지막에 부스러기 잘못 떼다 실패한다.
그거 약간 잘못 뗐다고 쪼잔하게 달고나 하나 더 안 준다.
─적팀의 억제탑을 파괴했습니다!
3억제탑이 깨지고 쌍둥이 포탑만을 남겨둔 상대에겐 희망따위 찾아볼 수 없다.
수없이 밀려오는 거대 미니언들과 발걸음을 함께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재 경기의 흐름과도 같은 안정적인 균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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