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19화 (519/803)

519====================

LML

강력하다고는 하나 채 완벽하게 자리 잡지는 못했다.

신세상-매직은 준결승전에서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경기력이 실망스러웠다 하고는 거리가 멀다.

도라이븐의 깽판과 펜타 킬도 펜타 킬이지만 다른 부분.

오늘 준결승전의 참재미는 따로 있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라는 느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나요, 올마스터 선수?>

<안녕치 못했습니다. MVP를 통 양보해주지 않아서 강제로 빼앗아 오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준결승전이 끝나고 인터뷰 자리.

조은나 아나운서의 재치 있는 물음에 올마스터가 센스 있게 대답한다.

비록 LML에서는 다소 존재감이 묻혀있던 올마스터라지만 둘 사이는 초면이 아니다.

지난 롤챔스 스프링 시즌에서 지긋지긋하게 만나왔지 않은가.

인터뷰에 상당히 익숙해서 그런지 시시껄렁한 드립에도 도가 텄다.

그런 올마스터의 드립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조은나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속행시켰다.

<첫 번째 세트에서 아주 신선한 챔피언을 선보이셨어요. 압도적인 라인전부터 펜타 킬까지! 도라이븐은 역시 준비를 해오신 카드인가요?>

<은나씨 한 번 만나려고 제가 큰 마음먹었습니다. ..농담이구요. 저희 미드, 정글이 하도 빡세게.. 아니 잘해서 MVP를 가져오려면 어지간한 강수로는 어림 없더라구요.>

이러한 올마스터의 개드립에 처음에는 조은나 아나운서도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해서 듣다 보면 그러려니 하는 법이다.

올마스터 본인이 애인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 의도도 곡해해서 해석될 여지도 없어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이름 높은 올마스터, 에러갓 선수의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이어서 뜨거운 사이라 소문이 자자한 뮴뮴 선수와 인터뷰를 이어가기 전에..! 먼저 두 번째 세트의 MVP 씨지맥 선수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려니 하는 수준을 넘어 받아치는 대응까지 능수능란해졌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인터뷰 차례.

씨지맥 선수 또한 32강부터 8강까지는 잠잠했던 게 사실이다.

<탑라이너는 우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게임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애써서 그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침 두 번째 세트에서 제가 나설 차례가 생겼을 뿐입니다.>

서포터가 어머니라면 탑라이너는 맏이라는 비유가 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지만 만에 하나 집안에 큰일이 났을 때.

가장을 대신해서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는 위치라는 것이다.

방금 전, 씨지맥의 인터뷰는 그러한 탑라이너의 임무에 대해 잘 풀어서 설명했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탑을 하는 사람이라 씨지맥을 배우라.

캐리형 탑라이너의 귀감이다 하는 그의 평가는 무엇 하나 과장되지 않았다.

<출중한 실력과 겸손함까지 겸비한 씨지맥 선수의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인터뷰인데요. 최근에 가장 핫한 선수죠. 팬들의 하트를 사로 잡은 뮴뮴 선수입니다.>

혹시나 앙칼진 캣파이트가 일어나는 건 아닐까.

올마스터가 헛소리를 해도 단단히 했다.

아무리 인터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별 의미없는 드립이었다고는 하나 자리가 자리다.

여자친구가 옆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서 감히 다른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지.

지금 이 순간, 아이러니 하게도 LML의 시청률은 최고치에 근사해졌다.

가장 시청 인원수가 많았던 건 아무래도 개막식과 금일 첫 번째 세트였다.

올마스터의 도라이븐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가치가 있는 경기였다.

하지만 32강부터 줄곧 팬들이 가장 기대해왔던 신세상-매직의 하이라이트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인터뷰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쏟듯 첫 인터뷰에서 파란을 예고하기까지 했으니 시청률이 급등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제가 한 게 뭐 있나요. 마지막 게임은 정말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앞선 두 선수가 이미 MVP를 받게 돼서 소거법으로 제가 남은 것 같아요. 덕분에 오늘도 시청자분들과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뮴뮴 선수가 밝은 미소와 함께 여느 때와 같은 상큼한 인사말로 화답한다.

흥분을 했다던지 무언가 꼬투리를 잡는다던지 그런 전조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플랫폼들에서 의견 교환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님 좀 빡침.

-알다시피 여자들은 대놓고 화 안 냄. 묵혀 놨다가 폭발시키지!

-ㄹㅇ 폭풍 전의 고요다.

-이거 최소 팀이나 올마스터 등짝 둘 중 하나는 깨지는 각.

-ㅋㅋㅋ에이, 뮴뮴 누님 착하잖아. 올마도 장난일 테고.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겉으로는 손사래를 치지만 내심 기대된다.

누군가 취재라도 해줬으면 싶은 심정이다.

뭐, 선수들의 사생활인 만큼 알래야 알 수 없는 부분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뮴뮴 누님 해외에서는 한 성깔한 거 모름? 빡치면 장난아님.

-ㅋㅋ캐스터 멱살 잡을 기세로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거 졸귀.

-누님도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어쨌든 예뻐서 ㄱㅊ.

-나도 뮴뭄 누님한테 혼 좀 나고 싶다. 화내는 모습도 귀여울 듯.

이렇게 은혜로운 외모의 미인이 울그락불그락 인상을 구기는 일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뮴뮴 선수가 데뷔 초기에 얼마나 기세가 등등했는지!

해외 활동 당시 뮴뮴 선수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

일례로 해외의 모 유명 해설자는 그녀를 장미라 비유했다.

아름다운 모습에 매혹됐다간 자칫 가시에 찔릴 수 있다.

한국에 와서는 이미지 관리를 하려는 듯 나긋나긋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다.

어쩌면 정말로 성격이 변했을지도.

의외로 무난무난 했던 뮴뮴 선수의 차례를 끝으로 신세상-매직의 인터뷰는 막을 내렸다.

.

.

.

* * *

준결승전이 끝난 이후 행선지는 정해져 있다.

우리 게임단은 회식을 자주 하는 편이다.

다름아닌 구단주의 딸내미가 먹는 걸 그리 좋아해대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

하지만 오늘은 1차 후에 갈라지기로 합의가 오갔다.

"오늘은 2차 없이 여기서 해산.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은 각자 알아서 흩어져라."

경기 이후 1차로 행해지는 건 당연 원기 회복이다.

고기라던지, 고기라던지, 아니면 고기라던지.

피로와 땀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역시 고기만한 보양 음식이 또 없다.

그렇게 식사 자리는 끝냈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2차가 없다.

딱히 결승전의 무게감 때문에 적당히 달리자, 그러한 이유는 아니다.

한 번 손뼉을 치는 것으로 다소 아쉬웠던 반응은 잠재워진다.

터벅.

그렇게 1차를 마치고 고깃집을 걸어나간다.

내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근변의 주차장에 세워 놓은 검은 세단.

예은은 이미 운전석에 올라타 있었다.

"으이구 삐돌이. 며칠 좀 놀렸다고 고걸 삐지긴."

"흥, 하나도 안 삐졌거든?"

삐진 사람이 무조건 내뱉는다는 한 마디!

나는 차문을 약간 소리가 나게 닫으며 신경질을 내비쳤다.

그런 나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 듯 예은은 차를 출발시켰다.

가는 길 내내 말은 없었다.

서로 간에 딱히 주고 받을 말도 없고.

이윽고 차가 정지한 곳은 흔하디 흔한 상가 앞이었다.

하얀색의 핀이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는 그리운 분위기의 장소다.

"..칠 줄 알지?"

"누굴 빙다리 핫바지인 줄 아나. 당연히 할 줄 알지."

볼링장에는 오랜만에 와본다만 그것이 패널티가 되진 않는다.

예은에게서 온 도전장을 받아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딱히 경쟁 심리가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스포츠다.

간간히 한 번 쳐주면 심신이 상쾌해진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말 전부 들어주기."

남녀노소 호불호를 가리지 않는다는 볼링.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 나름대로.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 나름대로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하는 사람들끼리 붙으면 반드시 내기가 오간다.

예은은 상당히 자신이 있는 듯 가벼운 마음으로 내기를 수락한다.

그 과도한 자신감이 오늘 만큼은 발목을 무겁게 잡을 것이다.

파아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 개의 핀이 사방으로 갈라진다.

이래 봬도 볼링은 쫌 하는 편이다.

기본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조금 많이 했다.

기나 길었던 프로게이머 연습생 생활.

답답하디 답했던 내 마음이 기댈 수 있는 곳은 딱히 없었다.

돈도 없었고 시간도 부족했다.

근처에 있는 낡은 볼링장에서 혼자 공을 굴리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러기를 무려 5년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5년이면 훈장 대타 정도는 능숙히 수행한다.

무슨 생각으로 내기를 걸었는지는 몰라도 단단히 실수한 거다.

스트라이크에 연이어 스페어.

두 번째 세트를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으, 이러면 내가 최소 더블은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누가 도전하래?"

시큰둥한 대꾸와는 다르게 긴장감이 고조된다.

3전 2선승의 승부에서 첫 판을 따냈다.

게다가 이번 판에서는 내가 28점이 앞선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게임은 하면 할수록 예은의 실력이 상승하고 있다.

듣기로는 볼링은 재미삼아 몇 번 가본 게 전부라고.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여간내기가 아니다.

학창 시절 야자 다 째고 볼링장만 뺀질나게 들락거린 건 아닌지 심히 의심된다.

'그래도 이미 게임은 끝났지.'

마지막 투구만을 남기고 있다.

첫 판은 이미 따냈으니 이번 판을 이기면 나의 승리다.

제발 빗나가라고 염불을 외우며 지켜봤다.

얼굴을 얕게 찌푸린 채 공을 노려다 보던 예은이 이윽고 밀어 던졌다.

파아앙-!

단 하나의 핀도 남기지 않은 깔끔한 스트라이크.

예의상 박수를 해주며 축하해줬다.

뭐, 아슬아슬 이기는 편이 예은에게도 좋은 승부로 기억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어진 두 번째 투구에서 표정 관리가 안돼버렸다.

"오.., 컨디션이 좀.. 좋나 봐?"

"괜춘한 듯? 다음 투구를 잘해야 할 텐데…."

스트라이크에 연이어 더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녀석 재능 없는 분야가 있기는 하나.

여기서 만약 한 번 더 스트라이크가 나온다면 진짜로 역전의 그림이 그려질지 모른다.

파앙-!

다행스럽게도 스트라이크는 아니었다.

일곱 개의 핀이 쓰러졌다.

하지만 하나의 핀이 흔들린다.

저 핀이 넘어지면 무승부.

넘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승리다.

안타깝게도 핀은 쓰러지고 말았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응 돼. 내가 이긴 거 맞지?"

핀이 쓰러지며 또 다른 핀까지 건들고 말았다.

도미노처럼 두 개의 핀이 한꺼번에 쓰러지자 총 아홉 개.

두 번째 세트를 1점 차이로 내주고 말았다.

씨익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예은이 세 번째 세트의 시작을 알렸다.

.

.

.

* * *

긴장했던 탓일까.

피로가 누적됐기 때문일까.

3전 2선승제의 승부를 끝내고 볼링장을 나왔을 때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다시 차에 올라탄 나는 뚱한 어조로 탓하든 내뱉었다.

"..여기 볼링장 청소가 많이 안되어 있네. 다음에 와서 사장한테 좀 따져야겠다."

세 번째 세트 또한 마지막 프레임에서 승부가 갈라졌다.

예은이 선타로 더블-스페어를 기록.

나 또한 똑같이 더블-스페어를 넣는다면 승리였다.

그 정도야 충분히 넣고도 남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지나치게 긴장해버렸다.

최대한 좋은 자세로 공을 굴리려다 넘어졌다.

남탓이 아니라 정말로 맨손으로 만져보니 미끄러웠다.

심야 시간이라 그런지 알바생들이 농땡이를 피운 탓이다.

"이히히.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거다? 딴 말하기 있기, 없기?"

"..그래서 뭘 시키려고?"

히죽 얄궂게 웃으며 나에게 팔짱을 껴온다.

싫은 건 아니지만 뭐랄까..

어떤 의도를 가진지 모르니 꺼림칙하다.

예은의 입이 슬며시 벌어지며 흘러나왔다.

"날 너무 자극하지 마라? 한 번은 봐주겠지만.. 두 번은 알지?"

"알겠..습니다."

아무리 짙은 썬팅이 되어있다고는 하나 차 안이다.

주위에는 행인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아주 자세히 본다면 안 보일 리 없다.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 듯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끌어 안고 목에 입맞춤 해왔다.

어떤 의미인지는.. 대략 짚이는 바가 있다.

"안주 좀 사서 오랜만에 집으로 가자. 대리운전 부르기는 싫으니까."

의외로 쿨하게 뒤끝은 없었다.

예은과 단 둘이 술잔을 홀짝이는 것은 나도 기대가 이는 바다.

합숙 생활을 한 이후로는 줄곧 참아야만 했다.

정말로 오래간만에 돌아간 집은 다소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둘만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메리트가 충분했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