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22화 (52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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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L

경기가 아직 시작하기 전임에도 잉벤에서는 토론이 한창이다.

방금 전, 페닉스-라이트닝이 도발을 했다.

올마스터가 그토록 자랑하는 도라이븐이라는 카드.

실상은 반쪽짜리 원딜러가 아니냐고.

단순한 격장지계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럴 듯한 근거도 덧붙여왔다.

<단언컨대 저희가 도라이븐을 밴할 일은 없을 겁니다. 신세상-매직에서 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죠.>

올마스터가 도라이븐을 꺼내지 않을 것이다.

페닉스-라이트닝은 당당하게 외쳤다.

아니, 그 도라이븐을 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이 몇 명인데 그런 날벼락 같은 소리를?

이야기를 곱씹어 들어보자 팬들의 입장에서는 되려 나쁠 것이 없었다.

<도라이븐에 대해 저희는 완벽하게 대비가 끝났습니다. 만약 올마스터가 도라이븐을 꺼낸다면 감사히 잘 받아먹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꺼내볼 테면 꺼내봐라.

돌려 말하지 않는 일직선의 도발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대비를 했길래 준결승전에서 그토록 임팩트가 강했던 도라이븐이 통하지 않다는 말인가?

잉벤에서 화제가 불거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페닉스-라이트닝에서 꺼낼 조합 알려준다.(성지 임박)

요즘 솔랭에서 도라이븐 많이 픽돼서 대충 윤곽 그려진다.

일단 도라이븐 최대 약점은 CC기고 땡 평타 챔피언이라 탱커한테 약함.

결정적으로 뚜벅이라 AP누커한테도 밥이야 그냥.

이런 느낌의 조합 꺼낼 듯!

└음.. 나름 괜찮은 분석글인데 조합은 아니잖아?

글쓴이-대충 새겨들어 임마.

└좋은 글이네요^^ 물론 추천은 누르지 않았습니다.

└CC기면 클린즈 들면 되지 않아?

글쓴이-클린즈 들면 대신에 물몸이고 뭣하면 CC기 더 많은 챔프 하면 되잖니.

도라이븐을 처음 상대했던 마진 수비대는 당황한 나머지 대처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준결승전 이후로 세간의 관심이 너무나도 쏠렸다.

이제는 도라이븐이라는 챔피언이 더 이상 생소하지가 않다.

꺼낸다 해도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잉벤 내에서는 이미 그렇게 여론이 굳어졌다.

어쩌면 페닉스-라이트닝은 이를 예상하고 꽁승을 받아먹기 위해 도발을 던져온 걸지도 모른다.

─페닉스 잔머리 잘 굴리네ㅋㅋ

도라이븐 대비책 나왔으니까 한 번 꺼내봐라 이거지.

안 꺼내면 쫄보라는 거고ㅋㅋㅋ

얄밉게 도발 잘했다.

역시 결승전의 백미는 이거지ㅋㅋ

└하긴 이런 말 들으면 올마스터도 찜찜하긴 할 듯.

└도라이븐 안 해도 신세상이 페닉스 정도야 충분히 찜 쪄 먹을 텐데.. 뒷 끝이 좀…

└난 잘 모르겠고 도라이븐이나 봤으면 좋겠다. 챔피언이 보는 맛이 있던데.

└올마스터 입장에서 골 좀 때리겠네. 솔직히 안 꺼내면 가오 꺾이는 각 ㅇㅈ?

계산된 발언이라면 페닉스 게임단도 참 보통내기가 아니다.

현재 올마스터의 명성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일이 맞다.

결과적으로 이긴다 한들 꽁무니를 뺐다며 구설수에 오를 건덕지가 생긴다.

이긴다 해도 이긴 것이 아니게 된다.

페닉스 게임단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먹일 수 있는 가장 큰 엿을 먹여버린 셈이다.

─솔직히 페닉스-라이트닝도 LML 내에서는 진짜 센 팀이라.

신세상이 실수 두어번 해주면 충분히 이길 가능성 있음.

만약 올마스터가 도발 받아들이고 도라이븐 꺼내면 페닉스도 기회가 생기는 거지.

그냥 일방적인 관광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볼 만하겠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도라이븐이랑 인터뷰라구!

└난 도라이븐 안 나오면 그냥 건너 뛸라고ㅇㅇ

└그럼 도라이븐 나오는 기준으로는 페닉스도 할 만하다 이거네?

└ㅠ.ㅠ LML패황 페닉스 게임단이 허접 취급 받을 날이 오다니..

페닉스 게임단은 롤챔스 기준에선 애매한 수준의 팀으로 분류된다.

속된 말로 쩌리 게임단.

하지만 물고기가 물에서 살고 산짐승이 산에서 살듯 이곳 LML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페닉스 게임단은 LML의 우승을 가장 많이 차지한 팀이기도 하다.

썬더와 라이트닝이 번갈아가면서, 혹은 두 팀이 결승전에서 만난 전적도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롤챔스에서는 죽을 쑤지만 적어도 LML에서는 경기력이 상위 게임단들 못지 않다.

흔히 회자되는 징크스의 한 종류.

비슷한 예로 게이머 생활 끝끝내 우승을 하지 못한 선수라던지.

국내 대회에서는 잘하는데 해외만 나가면 못하는 게임단이라던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이명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승산이 있을 수 있다.

신세상-매직에게 큰 거 한 방 제대로 먹일지도 모른다.

양 팀의 선수들이 경기 세팅을 모두 완료한 가운데 결승전 첫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된다.

현장의 관중들도, 모니터 혹은 TV 너머의 시청자들도 숨을 죽이고 올마스터의 픽 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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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LML 무대 오른 편의 대형 부스 안.

페닉스 게임단의 코치 강채식의 얼굴이 신중하게 굳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던 그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감독과 나눴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내가 어떻게 키운 놈들인데.. 절대로 못 내주지.'

체면을 구기는 셈이다.

자네의 방식대로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감독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강코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우리가 선픽인데 어떡하지? 쟤네 끝까지 원딜픽 숨기면 조합 짜기 정말 애매해지는데.."

"어쩔 수 있나. 일단 마지막까지 서폿픽은 아껴두자. 나는 일단 크레이브즈 픽 박을게."

진행되고 있는 밴픽 구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명의 선수.

팀의 미드라이너인 코코볼과 원딜러인 뱅크였다.

강코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두 선수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얘네들마저 떠나보내게 된다면 페닉스 게임단에는 미래가 없다.'

페닉스 게임단은 여타 1군 게임단들에 비해 꿇리는 부분은 솔직히 없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한 소리 들어도 반박할 말은 없지만, 강코치는 자신의 눈이 객관적이라 확신했다.

성적을 못 내는 진짜 문제는 차형식 감독의 탓이 크다고 강코치의 안에서는 결론지어졌다.

'애들이 조금 클 만하면 내보내고,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러니까 게임단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선수들 개개인의 실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게임단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팀워크가 필수불가결.

그런데 슬슬 구색이 갖춰지려고 하면 선수 한 명 내보내고, 어떻게든 다시 짜맞추면 또 내보내고.

이 짓을 반복해대니 게임단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가 없다.

1군 중하위권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물론 감독이라고 아무런 이유없이 선수들을 방출한 게 아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가 평가가 낮았다느니, 이 선수의 성장 가능성이 더 안 보인다느니.

여러 구실을 붙여 오는 탓에 거부하기도 힘들다.

당연히 완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구단주가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결국 감독이다.

아래 직급인 강채식 코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다.

'오늘 경기에서 신세상 매직을 꺾는다면.. 아니, 최소한 접전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면 나의 발언권이 우위에 선다.'

강코치는 긴 시간동안 자신의 능력과 옳음을 증명해왔다.

답도 없는 게임단에서 뻘짓하지 말고 팀을 옮겨라.

그렇게 이야기 했던 이도 있었지만, 실제로 제의도 온 적이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바보 같은 옹고집이다.

한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

그럼에도 자신이 오랫동안 몸 담아온 강코치는 페닉스 게임단을 바꾸고 싶었다.

보다 긍정적으로 선수들에게 가능성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노력은 보상을 받기 직전이다.

현재 팀 내에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강코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구단주의 평가도 올라가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오랫동안 이루어진 감독과의 힘겨루기에 결정타를 박을 수 있다.

"코치님 여기서도 도라이븐 안 나오면.. 저희부터 픽 해야 합니다."

"그래.., 일단 기다려보고 결정하자."

아랫입술을 질끈 말아 물은 강코치는 모니터 화면의 한 구석, 상대의 마지막 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올마스터가 도라이븐을 가져가냐, 가져가지 않냐로 판가름 난다.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상당히 노고를 쏟긴 했지만 결국 선택하는 것은 상대다.

'올마스터의 성격이라면 도발을 무시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다를 수 있다.

먼저 마지막픽을 골라야 하는 상황인 지금은 더욱 더 꺼려질 것이다.

결국은 결과만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강코치는 긴장한 채 마지막 1초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코치님! 상대 도라이븐 가져갔습니다!"

"됐다..! 그럼 예정대로 루나를 가져간다. 혹시라도 실수하진 말고."

픽을 하는 선수가 클릭 미스를 해서 의도치 않은 챔피언을 가져가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실제로 리심을 하려고 했던 클끼리가 트롤킹을 하게 되거나.

트롤킹을 하려던 싸이 선수가 티몽을 하게 되거나.

여러 선례들이 있으며 컴퓨터 문제가 아닌 이상 재경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루나 픽 박았고.. 정글로 탈리반 가져갔고.. 미드도 르풀랑.. 코치님 준비 다 끝났습니다."

"잘했어. 시간 갈수록 조합에서 이기니 무리만 안 하면 계획했던 대로야."

신세상-매직이 1군에서도 손에 꼽힐 강팀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승산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를 이루기 위해 강코치는 뼈를 깎는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결실을 수확할 때다.

'설마 도라이븐을 서폿으로 스왑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10초, 9초, 8초.

시간이 카운트 되는 광경을 강코치는 참을성 있게 지켜봤다.

저 올마스터는 정말 말도 안되는 스왑을 하기로도 유명한 선수다.

해외 리그에서는 알려질 대로 알려진, 모르는 사람 없는 정보.

알고도 당해야 할 정도로 교묘하게 위장한다는 게 문제다.

다행히도 별일 없이 게임은 스타트됐다.

올마스터가 원딜로서 확실하게 도라이븐을 플레이한다.

이로써 자신들에게 승산이 생겼다.

게임의 시작은 의도했던 대로 정확하게 흘러 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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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준결승전 이후로 줄곧 기본기 연습에 매진했다.

그것 만으로도 우리 신세상-매직은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심 불안감이 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결승전 상대로 만나게 된 페닉스-라이트닝.

세간의 평가는 흔하디 흔한 2군 게임단에 불과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내 입장에선 달랐다.

페닉스 라이트닝의 미드와 원딜러는 유명한 선수다.

물론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다.

미드 라이너인 코코볼 선수는 최고라고는 하기 뭣하지만 상위권에는 충분히 드는 선수다.

넓은 챔프폭과 안정적인 팀플레이 성향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팀의 입장에서 가치가 높다.

그리고 원딜러인 뱅크는 말할 것도 없는 정상급 기량의 원딜러.

현재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는 하나 미래의 일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긴장감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래도 시드권은 무조건 받을 수 있으니 안전빵이고, 만약의 경우에는 우승 정도는 포기해도 괜찮았는데.'

약간 무리를 한다면 이기는 거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LML에서 내 기량을 전부 발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당연히 다른 게임단들에서 오늘의 경기를 눈여겨 보고 있을 테고, 하나하나 플레이 패턴을 분석하는 이도 존재할 것이다.

아직 본선 리그에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전력을 내비칠 수야 없다.

'그런데 이렇게 도라이븐이 풀려버린다면 마음 놓고 날뛸 수 있지.'

어차피 도라이븐은 쓰고 버리는 카드다.

나도 잉벤 등을 살펴봤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정말로 훈반 한타가 답이 없는 유통기한이라서가 아니다.

곧 리워크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패시브가 완전히 바껴버려서 쓰기가 힘들어지게 됐어.'

그러니까 지금 뽕을 뽑을 작정으로 꺼낸 챔피언이었다.

멋대로 오해해서 내가 도라이븐을 하게 해준다면 감사할 따름.

말을 내뱉은 대로 앞으로도 쭉 밴을 안 해주길 바랄 뿐이다.

파앙!

경기는 이미 시작했다.

봇라인에 도착해 1레벨부터 치열하게 손속을 주고 받고 있다.

아니, 치열한 것은 상대 뿐이다.

나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휘몰아친다.

파앙!

상대팀 서포터 루나에게 맞고 튕긴 도끼를 되받는다.

CC기에 약한 도라이븐의 특성상 루나는 상당히 골 때리는 챔피언이 맞다.

정확히는 챔피언이 골 때릴 뿐이지 라인전이 어렵다와는 거리가 멀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더없이 좋은 라인전 구도.

시작 진영 또한 웃어줘 블루가 아닌 레드팀이다.

이 사실은 도라이븐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제법 때릴만한 샌드백을 픽해준 상대에게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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