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25화 (52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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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ML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페닉스-라이트닝은 자신들이 했던 도발을 책임지기라도 하듯 모든 게임에서 도라이븐을 열었다.

두 번째 세트에선 그나마 어떻게 버텨서 한타를 가기는 했지만 결국 패배.

패배한 요인은 너무 도라이븐만 보다가 다른 라인에서 성세가 기울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당장 결승전에서 짜맞출 수 있는 수준의 뒤틀림이 아니었다.

세 번째 세트 직전 작전 타임을 요청하고 어떻게 궤도를 수정하려 했으나 실패.

차라리 기존의 방향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 경기를 내주고 만다.

그렇게 LML 결승전의 우승은 신세상-매직으로 결정되었다.

이를 알리는 전범준 캐스터의 고함이 터지듯 요동쳤다.

<로드 오브 로드 마스터즈 리그 대망의 우승팀이 단상 위로 올라옵니다! 페닉스-라이트닝을 3대0으로 꺾고 우승컵을 차지하는 신세상~~~매직입니다!!>

신세상-매직의 다섯 선수와 한 명의 코치를 향해 밝은 조명이 비춰진다.

오늘 경기가 하도 빨리 끝난 탓에 경기장의 외부도 내부도 어둡지 않다.

하지만 대강 지금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정도는 구분이 간다.

네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 무대 중앙을 향해 걸어간다.

정말 특이하게도 여성 선수가 무려 두 명이나 포함된 신세상-매직.

대회 참가 초기에 받았던 편견을 떨쳐내고 자랑스럽게 이 자리에 올랐다.

그 누구도 이번 LML의 흥행이 그들의 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리라.

<우승이라는 영광! 하지만 그들에게는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곳 LML을 시작으로 롤챔스! 롤드컵! 지금껏 이만큼이나 성장이 기대되는 팀은 없었습니다-!>

사실 LML의 우승은 그들에게 있어 어려운 숙제가 아니었다.

애시당초 신세상-매직이 어떤 팀인가?

전세계 로드 오브 로드 유저 중 모르는 이가 없다는 올마스터를 중심으로 그에 준하는 선수들이 똘똘 뭉쳤다.

멤버진부터 이미 롤챔스의 상위 게임단에 뒤지지가 않는다.

물론 게임단의 역사가 짧은 만큼 팀워크라던지 다소 아쉬운 점은 보이긴 했다.

하지만 개개인의 기량이 지나치게 특출나다.

어지간한 실수는 개인기로 만회하거나 오히려 슈퍼플레이로 선회해버린다.

앞으로 성장해나갈 모습이 너무나 기대되는 명실상부 차기 롤챔스의 우승 후보다.

<우승팀에게는 상금 4천만원과 함께 순수 은으로 된 트로피가 주어집니다! 우승컵을 높게 들어올린 선수는 올마스터~~!>

무대 중앙에 오른 올마스터가 트로피를 높이 올려 흔들자 현장에 있는 수천 명의 관중들이 진심으로 환호한다.

비록 롤챔스가 아닌 LML이라고 하나 그로 인해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오늘의 결승전을 함께 한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좌우에 손잡이가 달린 거대한 잔과도 같은 트로피를 선수들과 코치가 한 번씩 자랑스럽게 흔든다.

이윽고 들뜬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자 전범준 캐스터가 진행을 이어나갔다.

<이어서 선수들의 우승 소감!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세상-매직의 주장 올마스터 선수, 우승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금일 결승전의 경기는 도라이븐으로 인해 극히 예외긴 했다만 신세상-매직은 인터뷰 기대되기로 유명한 팀이다.

선수들의 경기보다 인간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다.

1세대 E-스포츠 갤럭시 크래프트와 달리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처음 있는 경우다.

맞수가 등장하는 롤챔스에서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상암 E-스포츠 경기장에 모인 수천 명의 관중들이 신세상-매직의 인터뷰 차례를 기다려왔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아, 마이크 이제 건네받았습니다. 소감이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LML에 참가했을 당시부터 우승할 건 알았습니다.>

올마스터의 실력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자칫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해외에서는 패기가 넘친다며 웃어 넘기겠지만 겸손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올바르지 않은 태도다.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던 올마스터가 섣부른 말실수를 한 건 아닐까.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들은 가슴 졸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도라이븐만 해도 그래요. 사실 롤챔스에서 꺼내려고 했는데 상대 선수들이 하도 위협적이라 정말 피눈물을 흘리며 꺼내게 됐습니다.>

<아하! 그렇다면 페닉스-라이트닝이 도발했던 도라이븐의 카운터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여기에 대해 논쟁이 정말 뜨겁거든요?!>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걸 여기서 공개하면.. 아, 알겠습니다. 진정들 하시고요. 개인적으로는 정글러 중에 최근 해외 리그에서 뜨고 있는 바위가 정~말 까다롭습니다.>

가진 바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는 한 마디였다.

상대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진심전력을 발휘하면 무조건 이긴다.

올마스터의 이야기를 함축하자면 그렇게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선심쓰듯 도라이븐의 카운터까지 공개하며 경기장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서 뮴뮴 선수, 씨지맥 선수, 고질라 선수, 아이돌 선수.

마지막으로 신세상-매직의 코치 이청호가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범준 캐스터와 그는 최근에 만나본 적이 있는 구면이었다.

<지난 스프링 시즌의 롤챔스 결승전에서도 만나 뵈었던 분입니다. 이청호 코치! 신세상-매직이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네요!>

<하하, 그렇게 고평가 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로서는 아직 선수들의 명성에 숟가락을 올릴 뿐입니다. 앞으로는 그렇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요.>

마지막 차례까지 훈훈하게 인터뷰가 종료되고 이제 남은 것은 상금 수여식 뿐이다.

롤챔스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LML이기에 액수로 따지면 썩 많지는 않다.

비율로 따지자면 1/5, 본래라면 2천만원 가량이다.

이전까지는 분명 그러했지만 이번 서머 시즌을 후원하는 기업이 어디던가?

이러저러 말은 많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대기업 삼선이다.

그들은 손을 뻗는 사업마다 돈을 물 쓰듯 쏟아 붓기로 유명하다.

필연적이게도 이번 롤챔스의 상금은 두 배로 껑충 뛰어 올랐다.

<이번 LML의 흥행을 위해 아낌 없는 지원 해주신 삼선 그룹의 백상현 상무님께서 불가피한 개인 사정으로 나오지 못하셨기 때문에..! 현 삼선 게임단의 이혜설 구단주님이 대리로 수상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 입은 아리따운 한 명의 여성이 무대 좌측에서 걸어 나온다.

정장이라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정을 조금 한 듯 섹시하다.

구단주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젊다.

남성 관중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무려 4천만원에 달하는 상금의 양도식이 즉석에서 벌어지자 관중석에서 부러움이 탄성이 자아졌다.

그런데 왜 일까.

카메라를 줌 해봐야 자세한 진상 규명이 가능하겠지만 언뜻 보기엔 흐르는 공기가 차가워 보인다.

삼선 게임단의 구단주와 뮴뮴 선수의 눈가가 웃는 게 웃는 것 같지가 않다.

어쨌든 간에 수상식도 끝나고 이제는 이번 LML의 MVP 선정만이 남았다.

MVP는 결승전에 오른 두 팀 중에 정해지며 반드시 우승팀만 받으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한 대회의 마지막 차례를 진행하기 앞서 전범준 캐스터가 고함을 질렀다.

현장의 관중들이 탄성으로 화답한다.

당연히 아쉬우다 마다겠는가.

오늘의 경기는 조금 지나치게 빠르게 끝났다.

안 그래도 한 쪽이 3연승을 해버리면 경기가 빨리 끝났는데 첫 번째 세트와 세 번째 세트는 일방적이기까지 했다.

경기 내용이 실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지만 아쉬움과는 별개다.

그러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범준 캐스터가 관중들을 향해 물었다.

<번개탄처럼 화끈하게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열기는 아직 뜨겁습니다! MVP 선정식 이후, 선수들이 사인회를 가질 예정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끊어질 듯 울려퍼지는 전범준 캐스터의 외침에 관중석이 들떠서 술렁거린다.

설마 이런 로또가 숨어있었다니.

경기 끝나네 하고 먼저 가버린 이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대사건이다.

물론 빠져나간 이들이 많다고는 하나 관중석에 남은 이들만 수천이다.

모두가 사인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원래 인생사 선착순으로 진행되는 일 많다는 건 이번 대회 관람권 예매 당시부터 잘 알고 있었다.

개인이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할 부분이다.

이윽고 마지막 차례였던 MVP 선정식이 진행된다.

MVP로 선정되는 선수는 두 명이다.

한 명은 대회 측이 평가하고, 다른 한 명은 완전하게 시청자 투표로 정해져 공정성을 기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누군가 한 명이 싹쓸이를 해버릴지도 모를 일 아닌가?

MVP 선정식을 지켜보던 올마스터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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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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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래라면 MVP를 선정 이후 결승전은 막을 내려야 했다.

그것이 정해진 대회 진행 순서였지만 솔직히.. 이대로 가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

그래서 인지 오프게임넷은 이야기를 건네왔다.

혹시 오늘 팬 사인회가 가능하겠냐고.

이는 결승전에 참여한 모든 선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못한다.

결승전 기획 단계에선 없었던 예정이다.

오프게임넷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본 거고, 단 한 명이라도 거부한다면 그걸로 오늘의 일정은 끝.

하지만 그 한 명이 나오지 않았다.

"북미 활동 당시부터 팬이었어요. 싸인 멋지게 해주세요!"

"오, 정말요? 한국에서도 쭉 사랑해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빳빳한 종이 위에 호쾌한 싸인을 그려 넘긴다.

그것을 받은 여성팬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사라진다.

이것으로 벌써 백 명째.

오른팔에 쥐가 날 것 같다만 슬슬 막을 내릴 시기다.

'뭐, 돈도 돈이다만 프로게이머라는 게 경기 잘하고 땡인 직업이 아니니까.'

당연하게도 오프게임넷에서 소정의 행사비를 제공한다.

솔직히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였다.

프로게이머로서 팬들의 마음, 모를 수가 없다.

"Why are you here? Come back home. Our hero, please…."

"Sorry sir, But I will be back..!"

간간히 외국인 팬들도 나의 사인을 받으러 왔다.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들의 마음을 내가 모를 리 없다.

어쩌면 지키지 못할 약속일 수도 있지만 한 마디와 함께 악수를 해서 보내고 있다.

만족스러운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내가 얼마나 사랑 받았는지 알 게 된다.

참으로 보람차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 와주신 E-스포츠 팬분들에게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사인회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할 시간입니다. 안내 요원들의 지도에 따라 움직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피곤한 상태니 원활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안내음이 울려온다.

몇몇 오프게임넷의 직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줄을 끊는다.

딱 여기까지.

바로 앞에서 끊긴 팬들에게는 참으로 섭섭할 일이다.

평소 상태라면 내가 어떻게든 다 하고 가겠다.

말을 하고 싶지만..

경기장에 모인 관중이 원체 많아야지.

게다가 소문을 듣고 모인 건지 줄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니만큼 오늘은 이쯤에서 종료.

모르긴 몰라도 분명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결승전은 전부 끝이 났다.

경기장을 나가는 길, 나는 예은의 손을 꼬옥 잡으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괜찮았어?"

"다 좋은 팬들 뿐이었어. 조금 극성인 분들도 있기는 했지만."

팬사인회에서 가장 걱정이 됐던 건 예은이다.

물론 바로 옆에서 지켜 보고 있었기에 별일 없었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노파심이다.

예은의 줄은 무슨 아이돌 팬 사인회 하는 것 마냥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면 내가 시청자MVP를 차지하지 못한 이유도 실감이 난다.

'영락없이 둘 다 받을 줄 알고 입맛 다시고 있었는데 그게 김칫국이었다니..'

MVP선정식에서 상 하나는 내가 받았다.

하지만 다른 하나, 시청자MVP는 예은이 차지했다.

이게 참 인터넷 투표로 이루어지다 보니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가 크나 보다.

하지만 뭐, 결과적으로 나쁘지는 않다.

벌써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 싶지만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다.

MVP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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