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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그가 있다
LML의 모든 경기가 끝났다.
결과 또한 이 이상 없으리 만큼 마음에 든다.
본래라면 휴식 기간을 가지며 천천히 롤챔스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 신세상-매직 한해서는 경우가 다르다.
결승전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연습실에 게임단의 모두가 모여있다.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건 아니다.
회포는 어젯밤 회식 자리에서 풀었으니 오늘 말 하려는 내용은 진지한 이야기다.
딱히 격식을 차리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주장의 입장에서 총평이 필요하다.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을 확실하게 갈라서 피드백을 주고 받아야 한다.
"솔직히 연습 시간도 거의 없이 들어갔는데 다들 잘해줘서 다행이야. 그런데 알다시피.. 우리 목표가 LML은 아니잖아?"
LML의 우승은 물론 적지 않은 성과다.
창단한 지 얼마 안된 신세상-매직이 세간의 주목을 모았다는 것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그렇지만 만족하고 안주해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각자 짚이는 부분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문제점이 없진 않았어."
사뭇 진중한 나의 말에 팀원들이 전부 고개를 끄덕인다.
평소 나와 아옹다옹 사투를 벌이는 초홍이도 이번 만큼은 한 발 뺀다.
아마 짐작 가는 것이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비단 실수나 팀워크 만이 아니다.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려 한다.
"..내가 안 나대면 되는 거셈?"
정말 뜻밖에도 초홍이가 먼저 의견을 표출해왔다.
지난 준결승전 이후로 은근히 의기소침해있다.
대강의 사정은 이해가 간다.
솔로랭크에서 자신감이 만만하던 애들이 대회에서 썩 괜찮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으레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성적 자체는 더없이 좋았지만 그 과정.
훈과 코코볼을 상대할 때는 이전과 같은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미드 라인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 둘이 솔로랭크에서 탑클래스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솔로랭크 점수만 따진다면 초홍이가 우위.
심지어 솔랭에서 만나서 진 적이 없다면서 경기 전만 해도 자신만만 했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호적수더라.
고고하던 자존심이 파킨-! 할 만도 하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세상에는 될놈과 안될놈이 있는데 넌 어차피 나대게 돼있으니까 그냥 참지 말고 나대렴."
"빼애애애애액! 그냥 돌려 말하는 욕이잖아!"
여느 때와 같이 꿱꿱! 괴성을 질러오지만 놀리려고 한 말만은 아니다.
선수의 본성을 억제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단점을 줄이기 위해서 장점을 깎아내서야 본말전도다.
그리고 원래 이런 애들이 사고 쳤을 때만 반짝 미안한 척하지 며칠 지나면 또 그대로다.
어차피 안될 거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물론 장난이고 본심은 다른데 있다.
초홍이가 자신의 본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외줄타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부분도 포함해서 나와 코치가 트레이닝 계획을 짜봤는데 각자의 의견 들으려고 부른 거야."
결승전 끝난 바로 다음날인데 벌써부터 야단을 떨어야 하나?
그래야만 한다.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급격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한 번 집고 넘어가는 것 만으로도 기억력의 기간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
이는 이미 연구를 통해 입증이 된 사실이다.
학교 갔다 집에 와서 꼭 복습을 하라느니 귀찮은 잔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의견이라.. 팀의 색깔은 경기 하면서 정해졌으니 이대로 연습만 하면 되지 않아? 다른 것도 필요해?"
씨지맥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짚어왔다.
일전에 이청호 코치와도 이야기했던 팀의 색깔.
프로팀들은 강팀과 약팀을 떠나서 저마다의 색이 확실하다.
2군에서는 그러지 않은 팀들도 있었지만 1군은 대부분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자면 얼밤은 수비형 축구다.
과감한 행동을 지양하며 얻게 된 이득은 착실하게 굴려나간다.
우리팀과 비슷하게 개개인의 기량이 특출났던 삼선 레드는 공격형 축구다.
그리고 가짜에어 독수리는 물어볼 것도 없는 원딜 에이스 체제.
이러한 특이케이스들 말고도 흔히 있는 미드, 정글 중심의 조합, 투맨팀 또한 하나의 색이다.
가진 바 색깔이 꼭 특수할 필요는 없다.
팀원들이 어느 방향성을 어디로 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
그 결과가 색깔이라 정의될 뿐이다.
팀을 꾸릴 때 색깔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난관이기도 한데 다행스럽게도 우리팀은 자연스레 해결됐다.
"그 말도 맞지. 그런데 알잖아. 우리가 원하는 건 좋은 성적이 아니라 우승. 운을 기대해서는 안돼."
"확실히.. 수비력 높고 장판 조합 잘하는 팀 만나면 고전하기는 할 것 같아."
팀의 색깔이 확고하다는 것은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다.
A팀은 B팀을 이기는데 C팀에는 약하다던지.
C팀은 A팀을 이기는데 B팀에는 약하다던지.
먹고 먹히는 상성 관계가 바로 여기에서 기인된다.
물론 이러한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프로팀 별로 노력을 한다.
아침으로 반드시 밥만 먹는 사람도 바쁠 때는 식빵 하나 물고 외출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에 따라 유도리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팀은 아직 그게 안된다.
초홍이를 갈구면 알기 쉬운 설명이 가능하다.
"초홍아, 너 챔프폭이 좁은 것 같지 않니?"
"흥, 나 챔프폭 넓은 거셈. 아링도 할 줄 알고, 르풀랑도 할 줄 알고, 또, 또..! 요즘은 자드도 연습하는 거셈!"
아주 자랑스러운 듯 의기양양 어깨를 쭈욱 피는 것 치고는 세 개밖에 안되지만 충분하긴 하다.
프로 레벨에서 주 챔피언이 세 개쯤 되면 최소한 발목을 잡힐 일은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 세 챔피언이 가진 방향성이다.
"죄다 암살자잖아 인석아. 꼭 맞을 짓은 잘도 골라서 해요."
"빼애애애액! 머리 때리지 마!!"
사실 맞을 짓은 아니긴 하지만 마침 때리기 알맞은 위치에 머리가 있었다.
두들겼을 때의 타격감과 울림이 좋아서 기분전환이 된다.
어쨌든 본인은 납득을 한 것 같으니 폭행죄는 아니다.
"초홍이 너무 때리지 마. 이렇게나 귀여운데."
"..걔가?"
뒤에서 초홍이를 포옥 안아준 예은이 맞은 부위를 쓰담쓰담 해준다.
예은의 감성으로는 카지트와 뮴뮴도 귀엽다고 할 정도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자꾸 커버를 쳐주는 탓에 이 녀석 기가 살아나는 게 조금 문제긴 하지만.
"언니, 저 못생긴 게 자꾸 나 때려."
"현이가 조금 안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 앞에서 외모를 비하하면 안돼?"
"네, 언니!"
초홍이가 다른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만 예은의 말만은 끄덕끄덕 잘도 듣는다.
그런데 나 방금 좋은 말로 씹힌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 당장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게 급선무다.
"각설하고 당장은 팀연습 보다는 개인 연습이 급선무라고 봐. 알다시피 우리팀은 개인 플레이 혹은 소규모 교전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잖아? 마지막 과정은 대회 1~2주 남았을 때 해도 충분해."
"오,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런데 난 누구랑 연습하지?"
조금 따가 되는 셈이지만 씨지맥의 경우는 혼자서 개인 기량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캐리형 탑라이너, 한 마리의 고독한 사자와도 같다.
개인 행동을 하는 일이 잦은 씨지맥에겐 솔로랭크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OK. 나도 개인적으로 실험해보고 싶은 카드들이 많아서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우리도 딱히 문제 없어. 그럼 한동안은 초홍이랑 놀아야겠다."
모든 팀원들이 긍정을 표함으로서 앞으로의 트레이닝 계획은 대략 정해졌다.
자세한 건 이청호 코치가 조절을 할 테고 나를 포함한 선수들은 연습에 매진하면 된다.
연습의 방향성은 각 듀오의 호흡과 챔피언 폭의 다양화.
그 두 가지를 모두 이룰 수 있다면 우리 신세상-매직은 비약적으로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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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얼마 전, 북미와 유럽의 롤챔스 스프링 시즌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시기를 따져보자면 대략 2주 정도 전일까.
각 지역의 결승전이 마무리 지어지고 우승팀의 정해졌다.
북미의 경우 결승전에 올라온 팀은 CLC와 TSL이었다.
윈터 시즌의 리벤지 매치가 제대로 성사된 셈이다.
흥미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 구도.
일약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역대 최대 규모의 관중들이 경기장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두 팀 간의 칼을 가는 혈전.
의외로 첫 경기는 허탈하게 끝이 났다.
TSL의 에이스 미역슨이 집중 마크에 노출되며 크게 말리고 시작했다.
당황을 한 것인지 다른 라인도 연달아 끊어먹히며 첫 경기를 압도적으로 패배.
이어진 두 번째 세트도 결과적인 패배를 맞이했다.
세 번째 세트도 그렇게 되며 결승전의 승기를 굳혀가나 싶었지만.
─역시 결승전은 반전이 있어야 제맛이지!
진짜 바론 스틸이 신의 한 수였어.
역으로 바론 먹고 피 깎인 CLC 싹 마무리하면서 역전됐지.
세인트조지아 아직도 부들부들 하고 있을 듯 LOOOOOL
└설마 자기가 잘못하고 남탓 할까. 세인트조지아 팀탓 하기로 유명하잖아 LOLOLOL
└근데 세인트조지아 탓만으로 보기도 힘든 게 바론 오더가 오바였어.
└그렇게 막 유리한 것도 아니었는데 바론에 너무 집착했지. 굳이 바론 안 했어도 충분히 스노우볼 굴릴 수 있었는데.
서양권 최대 규모의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 사이트 래딧에서는 아직도 당시의 이야기가 거론된다.
결승전 당시, 일방적으로 두 경기를 내줬던 TSL은 세 번째 세트에서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후로 한 세트를 더 가져가며 2승 2패.
여기서 서로 한 번씩 더 주고 받으며 3승 3패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막하와는 거리가 멀다.
스코어만 보자면 접전이 맞지만 실상 경기의 내용이 그러지 못했다.
승리에 조급했던 CLC의 허를 TSL이 제대로 찔렀다.
내용적인 측면을 감안하면 CLC의 승리가 상당히 더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러니 만큼 마지막 세트는 CLC가 어지간하면 가져가지 않을까.
집중해서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CLC의 우승으로 마무리되어진다.
모두가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미역슨 자드는 정말 명불허전이야.
에러갓이 도가 지나치게 잘하는 거지 미역슨이 못하는 게 절대로 아니라니까?
이번 스프링 시즌에서 자드 열어준 경기 다 이겼잖아.
결승전에서도 여섯 세트 내내 밴되다가 마지막 세트에서 열리니까 그냥 고삐 풀려 가지고 하드캐리하지.
자드 잡은 미역슨을 1대1로 마크할 수 있는 선수의 유무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
└CLC도 졌지만 잘 싸웠어. 전략적으로 변한 CLC도 난 좋다고 본다.
└에러갓이 없는 이상 그게 최선이긴 해.
└그 에러갓은 지금 한국 2군 리그에서 게임한다던데?
└에이, 설마. 아무리 인재 알아보는 눈이 없어도 그렇지. 그게 말이 돼? 그게 사실이면 당장 비행기 타고 한국 가서 따진다.
실제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방문했다.
물론 정말 따지려고 간 건 아니고 LML의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현재 래딧에서는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한창 이슈다.
─에러갓이 한국에 팀을 만들었거든?
한국 간 이유가 자기 팀만들고 싶어서 그랬었나 봐.
아무래도 국적 등의 문제 때문에 북미에서는 힘들었나 보지.
2군 리그 뛰는 이유도 그 때문이래.
한국도 북미랑 비슷하게 시드권 개념이 있는데 롤챔스 참가하려면 꼭 필요하나 봐.
└아하, 그런 이유라면 납득이 가네.
└그래도 에러갓인데 그냥 주면 안되나?
└안되지. 대통령도 법을 지켜야 하듯 아무리 잘 나가는 선수라도 룰은 따라야지.
└팬이 선수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
얼마 전 치러졌던 한국의 LML은 외국의 팬들도 엄청나게 시청해댔다.
때마침 시기도 딱 알맞아 서양권의 스프링 시즌이 끝난 직후였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것 만으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한국에 간 이들도 상당수.
하지만 전체의 비율에서 따지자면 지극히 소수다.
─에러갓한테 사인 받았다고 인증한 팬들 부럽기는 하다만.
나는 역시 한국 롤챔스 결승전에 갈란다.
에러갓이 누구인데 결승전 전에 떨어질 일은 없겠지.
└그걸 의심하냐. 믿음이 부족하구만.
└북미나 유럽도 아니고 한국 쪽 리그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나.
└뮴뮴 여왕님도 계시는데 캐럿배트지 LOLOLOL
└난 에러갓이 I will be back이라고 했다는 게 실화인지나 알고 싶다.
해외의 수많은 광팬들은 절대 Unknown Error를 잊지 않았다.
한국에 쳐들어가겠다며 비행기 표를 예매한 이들의 수가 엄청나다.
Unknown Error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재의 한국 리그.
당연하다면 당연했을까.
관심을 쏟는 이들은 비단 팬들 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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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