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한국에는 그가 있다
듀오를 해서 솔로랭크를 돌린다.
아마추어였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승리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나와 고질라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이번 판 피드백."
"제가 판단을 수비적으로 했네요. 잡을 수 있을지 말지 긴가민가 해서 확신이 안 섰어요.."
랭크 게임의 듀오는 하고 있다만 목적은 승리가 아니다.
물론 트롤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민폐를 끼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글자 그대로 평범하게 게임 한다.
말하자면 현지인 코스프레와도 같다.
이 짓을 하는 이유는 어차피 나와 고질라 둘을 빼놓고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을 상대로 꾸역꾸역 이긴다고 대회에서 가미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군살 같은 자만심이나 안 붙으면 다행이다.
정말로 라인전 위주로 서로 호흡만 연습하고 승패는 팀운에 맡기고 있다.
"저 때문에 자꾸 발목 잡히는 거 같네요. 이러다 커뮤니티에서 안 좋은 들으면 어떡하죠.."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조금이라도 저 빨리 호흡 맞출 생각이나 해. 그리고 라인전 위주로 연습한 이상 네가 실수를 안 했어도 점수 변동은 거의 없었을 거야."
오더를 하거나 나서서 움직이지 않고 그저 부여된 일만을 한다.
그렇게 수동적인 게임을 하면서 점수를 올릴 수 있을 만큼 그랜드 마스터는 만만한 구간이 아니다.
마스터 구간까지야 팀원 중 잘하는 사람들의 등을 밀어줘서 캐리를 받는 버스로 점수 올리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부터는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한계가 명확하다.
'마스터 상위권에서 그랜드 마스터 중하위권까지. 오르락내리락 반복하고 있구만.'
마음 먹으면 지금의 상태로도 분명 점수를 올릴 수 있다.
당연하게도 올릴 생각은 없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데 어거지로 올라가서 무엇 하나.
그리고 이 정도의 구간이 연습에 딱 알맞기도 하다.
쿠웅!
금일 다섯 번째 큐가 잡혔다.
오늘의 전적은 1승 3패로 스타트가 좋지 않다.
라인전 이후 단순하게 팀 따라다니며 1인분만 정확히 했으니 당연한 노릇.
1승 3패할 때도 있고 3승 1패할 때도 있고 승패는 대강 반반에 수렴한다.
"얌. 신기한 거 보여줄까?"
"..또 뭘로 날 놀려 먹으려고."
뒤쪽 책상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예은이 놀러 왔다.
같은 방인 만큼 서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왕래할 수 있다.
그냥 의자로 쭈욱 미끄럼 타서 올 수도 있다.
이번 경우에는 걸어온 듯 하지만 무언가 또 장난을 치러 온 건 확실하다.
초홍이랑 어울리게 된 이후로 장난기가 부쩍 심해졌다.
이래서 부모님들이 나쁜 친구 사귀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난 번에는 설탕을 듬뿍 탄 커피를 줬었지.'
자선해서 커피를 타왔을 때 이미 반쯤 눈치챘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을 때 확신했다.
마셔보니 아주 설탕을 네댓 스푼은 넣은 것 같았다.
그걸 꾸역꾸역 원샷 해주자 미안하긴 한지 먹을 걸로는 장난 안 친다.
"저기 다음으로 밴될 거 내가 맞춰볼까?"
"트페랑 젤리맨 살았으니 둘 중 하나 밴되겠지. 아니, 너 설마.."
나쁜 예감은 높은 확률로 맞는다고 하던가.
안타깝게도 그 설마는 맞았다.
예은이 말한 대로 정확하게 파사딘이 밴됐다.
현재 솔로랭크에서 파사딘은 밴될 일이 없는 평범한 카드다.
'파사딘은 원래 이맘때쯤 솔로랭크에서 필밴으로 떴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지.'
내가 알고 있던 미래에서 파사딘이 흥행했던 이유는 도차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거의 안 쓰이던 파사딘으로 도차가 꿀을 쪽쪽 빨았다.
그런데 그 도차가 없으니 아무래도 시기가 조금 늦춰지는 모양이다.
"너 설마 반대편에 걸렸냐?"
"딩동댕! 곧 점심인데 지는 사람이.. 알지? 이히히."
이미 이기기라도 한 듯 예은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기 자리로 되돌아간다.
오늘 내일로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벌써 만나게 되다니.
연패를 한 탓에 같은 큐에 걸릴 MMR 마지노선이 된 듯하다.
"들었지? 이번 판은 절대로 이겨야 한다."
"하하, 드디어 올 게 왔네요. 적으로 만났을 때 두 분이 어떨지.. 솔직히 궁금했는데 재밌게 됐어요."
혹시 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고질라는 의외로 전의가 충만했다.
뭐, 어차피 지더라도 밥값을 내는 건 내가 되겠지만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그동안의 장난질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절대 져서는 안된다.
'MMR 비교해서 저격을 한 것 같은데 후회하게 될 거야.'
연습을 시작한 지 오늘로 아흐레, 열흘이 조금 안됐다.
결승전이 끝나마자 빡세게 달리는 것은 조금 그래서 각자의 페이스를 지켰다.
집에서 솔로랭크를 하듯이 평범하게 놀면서 게임했다.
때문에 하루이틀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시기가 절묘하게 겹쳤다.
나와 고질라가 1,2픽으로, 예은과 초홍이가 4,5픽으로.
만날 수 있는 교집합에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걸친 듯하다.
'듀오라서 무조건 상대팀에 걸릴 테고 앞으로 만날 일이 잦아지겠네.'
경쟁 구도가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서로를 상대함으로서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감정 싸움으로만 번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감정 싸움은 안 나겠지만 식비 싸움은 조심해야겠지.'
이초홍 저 가시내도 볼이 미어터져라 먹어댄다.
몸집에 비해서 유별나게 많이 먹는 건 아닌데 내가 산다고 하면 비싼 걸로 꾸역꾸역 쳐먹을 얄미운 기지배다.
그리고 예은은 알다시피.
내 지갑 사정을 생각해서라도 질 수 없는 매치업이 걸렸다.
.
.
.
* * *
결승전이 끝나고 열흘쯤 흘렀을까.
현재 잉벤 내에서 가장 큰 화제 거리는 신세상-매직의 내전이었다.
아니, 스크림은 타유저들의 관전이 절대 불가능할 텐데?
내전은 내전이지만 솔로랭크에서 치러진다.
─바이러스 진형에 걸렸다. 질문받는다.
으아 혹시 몰라서 저격해봤는데 이게 걸리네 개꿀ㅋㅋ
사진 보면 알겠지만 5픽이 나임ㅋ
나 근데 뮴뮴 누님 팬인데 그냥 미드 박을까?
열사 나면 화제글 올려주냐?
└여기가 무슨 롤갤인 줄 아나; 막 나가고 있네.
└나도 롤갤러인데 이런 거 안 좋아한다. 제발 게임 정상적으로 하자.
└ㅋㅋ그 뮴뮴 누님이랑 올마스터랑 사귀는데 퍽도 좋아하겠다. 쓰레기로 낙인 찍히지.
글쓴이-ㅈㅅㅈㅅ 유명인이랑 큐 걸려서 흥분했어요. 정말 농담입니다. 진지빡겜할게요.
바이러스와 백신의 대립.
모르긴 몰라도 노리고 아이디를 지었을 거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까지 전부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현재 잉벤은 올마스터 듀오 대 뮴뮴 듀오의 관전으로 하나 되어 달아올랐다.
─올마스터는 졸지에 악당 취급이네ㅋㅋㅋ
어쨌든 무료하던 참에 잘됐다.
요즘 신세상-매직 덕분에 재밌는 일이 많아서 좋아용^^
응원합니다. 그대로 쭉 롤챔스 전까지 달려주세요!
└요즘 롤판은 신세상-매직이 캐리함ㅋㅋ
└프로팀들 스크림만 주구장창 돌려댈 시기에 솔랭 재밌게 해주니까 너무 좋다.
└근데 올마팀은 스크림 상대가 없나? 왜 솔랭하고 있지.
└알아서들 하겠지. 누가 누굴 걱정해.
선수로서의 올마스터는 물론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 특히 남자 마음이라는 게 단순하기 짝이 없다.
아니.. 그렇게나 이쁘신 누님이 열심히 게임하시는데 응원하고 싶지 않겠는가.
결승전 당시 시청자 MVP가 결코 오류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듯, 백신 지형이 바이러스 진형보다 조금 더 인기가 많다.
이는 당장 잉벤이나 롤갤 게시글만 쭈욱 훑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가장 정확한 곳은 파프리카다.
파프리카의 채팅창에서 실시간으로 쭈루룩 응원 채팅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ㅋㅋㅋㅋ뮴뮴 누님 대놓고 봇갱만 가는데?
-저건 진짜 작정했네. 애인이고 나발이고 없다!
-캬~ 화끈하게 후두려 패네. 올마스터 개쪽염ㅋㅋ
-바위로 그냥 궁쿨마다 봇 찌르니까 어지간히 까다롭긴 하다. 괜히 결승전에서 언급했던 게 아니네.
파프리카TV 또한 올마스터의 발자국이 깊게 남아있는 곳이다.
그의 시작은 파프리카 였으면 정말 몇 달 전만 해도 개인 방송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올마스터가 자신이 해외에서 활동한 이력을 밝히고, 정식으로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이후에는 뜸해졌다.
아주 가끔 가뭄에 콩나듯 방송을 켜서 넋두리를 하곤 하지만 게임 방송은 일절 안 한다.
그만이 아니라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개인 방송을 지양한다.
자신의 의지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게임단들이 프로게이머들에게 자율권을 주지 않는다.
차후에는 이러저러 이해 관계가 맞물리며 해금되지만 적어도 현재는 그러하다.
<이래서 올마형이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라니까? 내가 이래 봬도 지인이잖아. 둘 만나 보면 정말 꽉 잡혀 살아.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데 벌써 땅파고 지하까지 들어갔어 올마형은.>
그렇게 얻기 힘든 자유와 인기를 전부 다 얻어버린 한 남자.
타임끝이 주저리주저리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그는 이미 파프리카TV에 단단히 자리 잡아 롤BJ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렇게 막 질러도 돼?
-역시 이쁜 여자 사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구나. 뮴뮴 누님 성깔 좀 있나 봐?
-ㅇㅇ북미 활동 당시에도 말 많았는데 한국 와서 잠잠해진 거지 크~!
-근데 뮴뮴 누님 정도면 잡혀 살아도 ㄱㅇㄷ 아니냐? 딴 여자한테 눈 돌아갈 일이 어딨어?
김태희랑 사겨도 오나미랑 바람핀다는 남자들의 심리.
하지만 정말로 그리 될지는 알 수 없다.
왜?
김태희급 여신과 사귀어본 남자가 어디 과연 흔하겠는가?
그 흔하지 않은 케이스에 당첨된 올마스터에게 저주를 퍼붓는 팬들이 대리만족으로 타임끝의 방송을 시청힌다.
그러한 올마스터 특수를 얻어 현재 타임끝의 방송 시청자 수는 압도적으로 1위.
본래도 많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방송 초창기 때도 그랬지만 올마스터의 덕을 상당히 많이 본 타임끝이었다.
<또 벽 넘어서 봇갱 가네. 이거 빼박 죽는 각 인정? 뮴뮴 누나가 애정 표현이 참 격하다 격해. 점멸로 궁극기 꽂히고 거기에 점멸센도 떨어지면 이건 답 없지. 갱 진짜 날카롭고 무섭게 간다.>
아무리 올마스터, 에러갓 해도 사람은 사람이다.
특히나 솔로랭크의 경우 마음을 조금 놓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하는 프로들도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런데 지금은 실수가 아니라 모가지를 확! 낚아채서 강제로 죽였으니 어떻게 할래야 할 방도가 없다.
뮴뮴 선수가 플레이 하고있는 저 바위라는 챔피언.
현재 북미 솔로랭크에서는 이미 주류픽이 되어 밴도 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역마다 선호하는 챔피언이 제각기 다른 법이다.
궁극기가 1인 타겟팅이라는 점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느리게 주목 받았다.
올마스터가 결승전에서 바위가 정말 까다롭더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천상계에서는 픽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바위를 뮴뮴 선수가 제 몸처럼 다루며 아주 깔끔한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다.
-바위 궁 닿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1인 타겟이라 별로라 생각했는데 점사할 때는 확실히 좋네.
-상대팀에 에이스 있으면 그 에이스 녹일 때는 쓸만한 거 같다.
-한 마디로 올마스터 전용 저격 카드?
-올마스터 혹시 현실에서도 저 바위 주먹처럼 맞고 사는 건 아니겠지..?
-뮴뮴 누님 사진 보면 은근히 S끼가 엿보이긴 하던데….
그 둘의 사이가 실제로 어떠한지.
자세한 부분까지는 타임끝이 말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드립의 한 갈래로서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치는 정도다.
그것 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충분히 재밌어 하며 만족한다.
<내가 보기에 이번 경기는 이미 끝났어. 돌아이.. 아니 아이돌도 미드에서 방금 솔킬 땄고 20분에 칼서렌 각이야. 인정하는 부분?>
최대한 낙관적인 관측을 하려고 해도 이번 게임은 여지없이 끝이 났다.
얼핏 듣기만 했따면 바위가 봇만 파서 원딜이 엄청 망한 거 같지만 CS는 비슷하다.
문제는 다른 라인이 라이너의 실력차에 의해 터졌다는 사실.
낮은 티어대도 아니고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가 섞여 있는 천상계다.
스노우볼이 안 굴러갈 리가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희망 어린 풀 한 포기 남아있지 않다.
올마스터도 딱히 게임의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라인전 연습에 치중한다고 하니 더더욱이다.
<이걸로 토탈 승률 5:7! 오늘만 따지면 1대2! 두 점 차이로 뮴뮴 누나가 앞서가네. 백신이 살짝 약빨 좀 듣나 봐?>
어느 쪽이 이긴다고 뭐,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단순한 솔로랭크로 기껏해야 자존심 싸움이다.
이마저도 팬들의 추측일 뿐이지 본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진실은 어찌 됐건 재밌으면 장땡 아닌가?
여러 의미로 흥미가 돋궈지는 바이러스 대 백신의 매치.
한국의 로드 오브 로드 팬들은 때 아닌 성수기를 맞이했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