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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32화 (53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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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그가 있다

개개인별 연습이 끝났다고 결코 살판이 난 게 아니다.

예고되었던 대로 되려 더 바빠진다.

롤챔스까지 남은 약 열흘 동안 세부적인 호흡을 조율해야 한다.

그나마의 열흘도 이미 사흘이 지나 이제는 채 일주일이 남지 않았다.

'예상 외의 문제랄 건 딱히 발견되지 않았고 뭐, 무난한 흐름이네."

나는 구단주실의 중역 의자에 편히 앉아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곧이곧대로 흘러가주리란 보장은 없다.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 한해서는 일이 잘 풀리는 모양이다.

애시당초 우리팀의 색깔 자체를 그렇게 잡은 덕도 있긴 하다.

'각 라인이 군데군데 따로 움직이니 대략적인 오더만 통일해도 돼서 좋았어.'

물론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세상사 유도리라는 게 필요한 법 아니겠는가?

상황에 따라서는 갈라서야 할 때도 있다.

서포터가 혼자서 지원을 간다든지.

내가 대회에서 스플릿을 했을 때처럼 개별 행동을 한다던지.

예외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정도는 당연히 숙지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행동 방침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해결이 났기에 앞으로의 일은 어렵지 않으리란 공산이다.

한 마디로 이제는 시간 문제, 어려운 과정은 전부 지났다.

딸칵.

나는 예은의 내려다 준 커피를 내려 놓으며 컴퓨터 화면을 쭈욱 스크롤 했다.

화면에 나와 있는 내용은 팀원들의 챔프폭들.

연구 중인 카드들도 포함해서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이를 정리해준 사람도, 커피를 타준 사람도 예은이다.

'그리고 이것들로 조합을 짜는 사람은 내가 되겠고..'

내가 짜는 것은 혹시 모를 예외의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다.

어지간한 경우는 정면에서 뚫을 만큼 신세상-매직은 탄탄하다.

지금껏 쌓아왔던 나의 노하우를 전부 녹여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 맛있어?"

"응, 향이 좋네. 내가 타면 이런 맛이 안 나는데 참 신기해."

커피를 타준 장본인, 예은이 연습실에서 가져온 의자에 앉아 빙긋 미소를 짓는다.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식사를 대접 받고 싶으면 맛없어도 맛있는 척하라고.

하지만 나와 예은의 사이에서는 필요가 없는 일이다.

예은의 음식 솜씨는 날로 발전해 어디 하나 토달 여지가 없다.

안 하면 안 했지,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꼬투리 잡힐 부분을 주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잘했단 소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못 먹을 정도인 것도 아니었지만.'

동거 생활할 적 예은의 음식을 꾸역꾸역 받아 먹은 실험 대상이 나다.

미국에 있을 적 못난이 주먹밥 해줄 때부터 알아봤지만 주방하고는 영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매일매일 열심히 배우더니 어느 순간 나를 초월해버렸다.

청출어람, 그런 말이 붙을 정도로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괜시리 뿌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전에 배인 탈주 사건 있잖아. 요즘 중국 프로들이 은근히 많이 보이더라?"

"이제 알았어? 딱 보면 짱.. 아! 잘못해쪄.."

또 말실수를 해댄 예은의 볼따구를 응징해주자 새버린 발음으로 사과해온다.

이 이쁜 입에서 못된 말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고 기겁할 팬들을 위해서 조기 교육이 한창이다.

성깔이야 본성이니 그렇다 쳐도 최소한 욕은 하지 말아야지.

'중국 프로들이 자주 보이는 이유.. 짐작 가는 것은 있지만 조금 애매한데.'

내가 이전에 핫숏을 만났을 때처럼 해외 프로들이 한국 서버를 하는 경우는 있다.

반대로 한국 프로들이 해외 서버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때문에 중국 프로들도 한국 서버를 당연히 할 수 있다.

하지만 만나는 빈도가 너무 잦았다.

배인 탈주 사건을 계기로 진지하게 따져보니 중국인 게이머로 생각되는 플레이어가 적지 않았다.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의아함이 감돌았다.

'원래 이맘때쯤에는 중국인 프로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요즘이야 열기가 식었지만 시즌2 때만 해도 한국 프로들이 해외 서버의 솔로랭크를 많이 했다.

이유인 즉, 유저들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잘하는 사람들끼리 모아 놓은 곳에서 배울 게 많은 법,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이는 차후 한국 서버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태다.

한국이 로드 오브 로드 판을 석권하자 솔로랭크에서 일어나는 변화.

다른 나라의 프로들이 한국 서버 플레이를 즐겨 하게 됐다.

유학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유명하다는 선수들이 대부분 한국 출신이 되었고, 그 선수들은 당연 한국 서버에서 플레이 한다.

연습을 하기에는 이보다 더 알맞은 장소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중국인 게이머의 유입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중국 프로판이 급성장하면서 프로를 지망하는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아진 결과다.

과장 하나 섞지 않고 한국 서버에서 한국인 보다 중국인 플레이어가 더 많이 잡힌 게임이 흔해질 정도였다.

상대팀 다섯 명이 전부 중국인이고 그런 웃지 못할 코미디가 정말로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천상계 기준으로 일반 유저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긴 하다.

'우리나라 프로들도 했었으니 비난할 것만은 아니지만 중국 프로들이 조금 문제를 많이 일으키긴 했어.'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상급으로 군림하려면 아직 한참은 멀었다.

당장 다가오는 롤챔스, 넘어서 롤드컵의 우승을 한다고 해도 세계가 한국을 돌아 봐줄지는 미지수다.

과거와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잠깐 생각을 곱씹어봤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단순하게 우연이 겹쳤을지도 모르고.

그냥 내 생각이 지나치게 깊었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롤챔스가 끝난 이후로 접어두는 것이 옳을 듯싶다.

"근데 래딧은 또 왜?"

"이히히, 네가 체크 안 한 거 같아서 보여주려고."

내가 잠시 심사숙고 시간을 보내는 사이.

마우스로 무언가 달칵대던 예은이 래딧의 한 페이지를 화면에 띄었다.

그러고 보면 최근에 일에 채여서 오랫동안 래딧을 못 들리긴 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히죽 웃음을 짓는 걸까.

'핫숏..?'

글의 작성자는 현 CLC의 구단주 핫숏이었다.

아니,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굳이 보여주기까지 하나.

나와 아주 깊은 연관이 있는 듯한 내용은 맞았다.

"..그 양반도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네."

"오면 우리도 서프라이즈 할래?"

잔뜩 장난기를 머금은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이 글이 핫숏의 서프라이즈면 이쪽에서도 하나 준비해주는 것이 옳을 듯하다.

준비는 예은이 하고 난 숟가락만 얹는 정도라면 얼마든지야.

놀래키러 왔다가 심장 떨어져서 가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다소의 사건사고는 있다만 연습은 순조롭게 이어져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롤챔스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걸로 예상된다.

앞으로 남은 1주일.

팀의 화합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가용할 수 있는 조합의 폭도 늘린다.

빠듯한 여정이지만 그만큼 보람차다.

핫숏의 글 이외에도 래딧을 쭉 한 번 살펴보니 나를 응원하는 글들이 많다.

한국 팬들도 한국 팬들이지만 해외의 팬들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바다 건너에서 지켜봐 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롤챔스는 결코 어정쩡한 자세로 임할 수 없다.

.

.

.

* * *

롤챔스 개막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연습 게임 후 피드백을 주고 받는 일상이다.

이대로 시간을 쭈욱 보내는 것만으로도 팀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오늘도 예정대로 팀랭크, 혹은 스크림을 하려던 찰나.

한 가지 의아한 제안이 도착했다.

이청호 코치가 진지한 어조로 물어왔다.

"스크림을 제의한 팀은 중국의 1군 게임단. 한국으로 따지면 삼선 레드나 불밤쯤 될까요? 아, 물론 실력이 아니라 위치가 그렇다는 겁니다."

어느 중국 게임단에서 스크림을 하지 않겠냐, 제안이 왔다.

이것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스크림 권유가 온 해외팀들이 있었고 맞붙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권유가 아닌 제안인 데는 이유가 있다.

돈을 줄 테니 한 번 붙어 달라.

그들의 태도는 상당히 의아함을 자아냈다.

"걔네 전에 한 번 정중히 거절하지 않았나요?"

"그랬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0을 하나 더 붙여왔습니다. 어떡할까요?"

거절했던 이유는 그들의 태도에 있었다.

만약에 정말로 스크림 상대가 급한 거라면 받아줄 수 있는 노릇이다.

돈따위 안 받아도 상관이 없다.

그저 순수하게 친선 경기 느낌으로 인연을 쌓아두는 것도 괜찮다.

여기서의 인연이 또 어떤 방향으로 꽃 피울지.

핫숏 때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기회가 생겼지 않았던가.

문제는 스크림을 제의한 중국 게임단이 돈을 주는 목적 자체가 불순했다.

자신들의 스케줄에 정확히 맞춰라.

한 마디로 돈을 줄테니 연습 상대가 되어라, 갑의 입장에서 명령해왔다.

아, 그래?

뭔가 착각한 모양이지만 우리는 신생 게임단은 맞아도 돈이 아쉬운 게임단은 아니다.

당연히 단칼에 거절했다.

만에 하나 통역 상의 미스일 수 있으니 최대한 정중하게 말이다.

그런데 또 그들이 이번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제안해 왔다라.

"거절해요. 그리고 저희 스케줄 상 절대 안된다고 말해요. 만약에 또 무언가 할 말 있으면 저한테 직접 하라고도 전해주세요. 연락처는 이메일로 알려주시고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놀랐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인데 이걸 단칼에 걷어차시네요."

"그야 그래야죠.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우리 게임단, 그리고 선수들의 체면에 관계된 일인데."

이청호 코치는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게 해당 게임단이 제안해온 금액은 2천만원.

지난 LML의 우승 상금이 4천만원이다.

그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몇 판 게임하는 것만으로도 준다니 탐이 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건 내 지론에 어긋난다.

'내가 그렇게 격식 차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되는 게 있고 안되는 게 있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게이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 맞다.

언제 어느 때 은퇴할지 모르는 것이 프로게이머란 직업이다.

선수 본인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불안하지만 만에 하나 이 프로판이 망하면 잘하더라도 실직자가 된다.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선수들은 한 푼이라도 더 긁어모으려고 열심이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준다면 당연히 넙죽 받아들여야지.

속물스럽긴 하지만 나도 어지간하면 돈을 위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프로게이머로서다.

그들이 이렇게 말했으면 또 모른다.

우리에게 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이 시간대에 꼭 스케줄을 맞춰주셨으면 합니다.

그 대가로 저희가 이 정도의 사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거라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다.

돈을 준다는데 나라고 마다하지 않는다.

이 돈은 나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인센티브이기도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선수를 선수로 보지 않고 돈으로 움직이는 일꾼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액수가 아무리 많아도 움직여서는 안된다.

이러한 관계가 고착화되면 프로게이머들의 이미지와 대우에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장의 몇 푼이 고파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마주작 마냥 게임판을 망칠 수야 없다.

'2천만원이면 치킨이 대체 몇 마리야..'

솔직히 많이 아깝긴 하다.

돈을 나름대로 모아두기는 했지만 이는 쓸 구석이 정해져 있다.

김칫국을 마시는 게 아니라 새살림 같은 거 좀 생각을 해둬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모를 미래를 대비해 나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저축을 해두고 있다.

그런데 꽁돈이 들어오면 마음 가는 대로 소비 좀 해도 된다.

물론 2천만원을 내가 다 받지는 않겠지만 수백 만원만 돼도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해먹을 수 있다.

아쉬움이 남지만 결국은 거절이다.

후회가 남을 만한 선택은 하지 않는다.

"그 건은 말씀대로 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할까요?"

"예정대로 가야죠. 스크림 하고, 피드백 받고. 그런데 코치가 보기엔 팀 상태는 어떻습니까?"

나의 물음에 이청호 코치가 빙긋 웃음으로 화답한다.

다행스럽게도 코치와 나의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물론 완벽과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꽤나 깐깐하거든요."

"오, 다행이네요. 저도 꽤 깐깐한 편인데. 깐깐징어끼리 잘해 나가봅시다."

이전에 카페에서 그와 계약서를 나눈 이후로 처음이다.

다시 붙잡은 그의 손에는 힘과 자신감이 실려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맡길 수 있다.

그때는 아직 서지 못했던 확신이 손바닥에 감겼다.

바야흐로 롤챔스의 개막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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