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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마우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그 서머 시즌.
드디어 막을 올리는 이번 롤챔스는 반드시 눈여겨봐야 하는 요소가 수 가지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개막식을 수놓을 멤버진들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다시 올마스터가 속한 신세상-매직이 경기를 펼치게 됐다.
어쩌면 오프게임넷의 흑심이 섞여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알 수야 없는 일이다.
그때와 달리 첫 경기가 아닌 세 번째 경기라는 것도 다른 점이긴 하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는 솔직히 의심이 간다.
그렇다고 먼저 경기를 펼치는 팀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라 태클을 걸기도 뭣하다.
그저 개막식 날에 경기를 펼치게 됐다는 점이 아이러니 할 뿐이다.
-오, 개막식 사람 지대로 몰렸겠다.
-농담없이 상암 경기장 꽉 찼다는데?
-나 현장인데 진짜 사람이 개미떼다. 못 들어온 사람도 많아.
-현장인데 왜 파프리카 방송을 켜놓고 있냐ㅋㅋㅋ
-같이 온 사람이 없어서 심심해..
-아, 미안…. 내가 미안해..
결과적으로 문제없이 진행되었고.
서머 시즌의 개막식은 전례 없는 대흥행이다.
아니, 결승전도 아니고 이만한 관중이 동원되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된다.
신세상-매직의 경기 외에도 특별한 요소들이 아직 잠을 자고 있다.
대회 진행 과정에 전범준 캐스터가 밝힌다고는 하지만 공공연한 비밀이다.
해외의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서머 시즌의 개막식에 게스트로서 초청되었다.
9시 뉴스를 통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다.
뭐, 그 전에 래딧과 SNS 등을 통한 언질이 있었기도 하다.
어차피 올 거라면 좀 더 좋은 좌석에 구경해달라.
오프게임넷은 호의를 내비쳤고 프로게이머들은 받아들였다.
열 명이 넘는 해외의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단체로 개막식으로 보러 온단다.
그것도 '초' 자가 붙을 정도로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이 포함돼 있다.
다름아닌 CLC 소속의 두 팀이 전부 온다고 하니 부연 설명이 필요있을까.
여기까지는 밝혀진 사실이고 이제부터는 카더라 통신이다.
어쩌면 그 해외의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사인회를 열어줄지도 모른다더라.
일련의 소문은 차례차례 계단을 밟듯 퍼져 나갔다.
─팬사인회가 열린다는 소문이 퍼진 발단이.
지난 LML 폐막식 때 사인회 함.
->사인 못 받은 분들은 다음 기회를 노려 달라고 함.
->그런데 개막식에 올마팀 옴.
->게다가 올마 친구 프로게이머들 옴.
->그러니까 다같이 짝짜꿍.
이거 맞냐?
└이분 최소 언어 영역 1등급.
└ㅇㅇ 그거 맞음. 아무튼 맞음.
└안 하면 관중들 들고 일어날 분위기임 지금ㅋㅋ
└한국에 왔으면 한국 문화를 따라야지! 사인은 내놓고 가라!
한 마디로 분위기를 타버렸다.
되도 않는 억측이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솔직히 드문 일이지 않은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살면서 해외에 갈 일이 많지 않다.
평균 1~2번. 많아봐야 대여섯 번 정도.
유난히 많이 가는 사람들도 있기는 해도 대부분 저 범주 안에 든다.
즉, 살면서 해외 프로게이머를 만날 일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한 번쯤 솔직히 쪼옴~!!
억지를 부리고 싶은 사람 마음도 이해는 가는 일이다.
팬들의 기대치는 높이 솟아버렸다.
현장 관중들의 눈빛은 마주치기 무서울 지경이다.
<안녕하세요!! 불타는 금요일에 무더운 햇살을 맞이하며 달아오르는 E-스포츠의 뜨거운 열기! 여기는 현재 상암 E-스포츠 경기장! 전범준 캐스터 인사~~ 드립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진행을 듣다 보면 전직 랩퍼 출신이 아닌지 진지한 의문이 들 정도다.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온 전범준 캐스터의 고함이 사방에 울리고 있다.
이제는 안 들으면 섭섭할 개막식의 시작을 알리는 백미다.
관중들의 시선이 전범준 캐스터에게 집중되며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지금 이 순간이 대체 언제 시작되나 수많은 관중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만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진실이 무엇인지 똑똑히 들을 수 있으리라.
과연 YES인지 NO인지 모든 것이 전범준 캐스터의 한 마디에 달렸다.
<여러 커뮤니티와 SNS에 퍼진 소문! 혹시, 알고~ 계시나요?!>
그런 거 모르고 온 관중들도 많다.
하지만 알고 있는 이들은 적잖이 기대 중이다.
전범준 캐스터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 단박에 눈치챈 관중들은 목청 높여 대답한다.
모르는 관중들이 어리둥절한 분위기가 되기 전에 전범준 캐스터가 받아치듯 진행을 이어나갔다.
<자세한 말씀을 드리기 전에! 오늘 수많은 해외의 유명 프로게이머분들이 이 자리에 찾아와 주신 썰을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외에도 바다 건너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시간 관계상 다 말씀은 드리지 못하지만! 수많은 나라의 팬분들이 감사하게도 한국의 롤챔스를 관람하러 오셨습니다. 바로 이 선수 때문이죠-! 전세계에서 가장 이름값 높은 프로게이머! 대한민국의 자랑! Unknown Error, 올마스터 선수입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외침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전세계에서 가장 이름값 높은 프로게이머가 바로 한국인이다.
얼마 전 9시 뉴스를 뜨겁게 달궜다는 Unknown Error를 일컬음에는 이견이 붙지 않는다.
바로 그가 해외의 유명 프로팀이 단체로 한국에 방문한 까닭이다.
현재는 올마스터란 선수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오늘 개막식의 주인공이다.
무대 좌축에서 한 명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올라온다.
이윽고 무대 중앙의 단상 위에 다다른 남자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에..안녕하세요. 올마스터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부끄러운 듯 떨떠름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관중석 한 쪽을 지긋이 쳐다본다.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시선일까?
그 답은 무대 중앙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알기 쉽게 이야기해준다.
한 외국인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반가운 듯 손을 흔들어댄다.
과거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게이머였다던, 이제는 Unknown Error에게 그 자리를 뺏긴 핫숏 디디였다.
<저를 북미에서 가장 고생케 만든 남자, 혼자서 구단주로 꿀을 빨고 있는 핫숏 디디 정말 오랜만입니다. 어.. 영어를 어떻게 하더라?>
올마스터의 위트 있는 인사에 관중들의 웃음보가 터진다.
당연하게도 영어를 잊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해외 생활을 오래한 그는 통역사의 도움 없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핫숏을 시작으로 나머지 프로게이머들.
그와 산전수전공중전을 함께 했던 CLC와 CLU의 전우들을 향해서도 올마스터는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모르는 얼굴도 조금 있네요. 저와 사소한 일이 있었던.. 세인트조지아도 아무튼 반갑습니다.>
올마스터와 세인트조지아 간에 있었다던 사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는 나름대로 흥미 깊었던 LCF의 감초였다.
어쨌거나 스무스하게 인사 차례가 종료되고 팬들이 기다리던 한 마디를 올마스터가 대신 전했다.
<여기 반갑지 않은 몇몇 친구들과 오늘 사인회를 진행할 예정이니 관심있으신 팬 여러분은 꼭! 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차례 마치겠습니다.>
꾸벅 인사까지 하며 자연스럽게 전범준 캐스터 쪽으로 진행을 토스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중계진인 줄 알겠다.
그러한 반응이 파프리카TV 등의 채팅창에서 터져 나올 만큼 깔끔하게 차례를 마쳤다.
역시 무대 경험이 많은 선수는 다르다는 걸까.
1대1로 진행하는 인터뷰조차 우물쭈물 해대는 몇몇 프로들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예, 자세한 일정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약 30분에 걸친 준비 작업 이후에! 북미 최고의 명문 CLC와 한국의 신세상-매직, 얼밤, 불밤, 삼선 레드 등 인기팀들이 사인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성원! 해~주실 거죠!>
바톤을 이어받은 전범준 캐스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화끈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관중석의 열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이 무너질 것처럼 요동친다.
여기까지만 해도 성공적인 진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소개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
전범준 캐스터의 목소리 톤이 두 단계 가량 올라갔다.
<저희 오프게임넷에서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세계로 뻗어져 나가는 E-스포츠의 황금기를 맞아 다시 한 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보지 않겠느냐고. 갤럭시 크래프트 시절에는 있었습니다. 로드 오드 로드라고 있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골든 마우스-! 황금색의 도료가 아닌 순수 100% 황금으로 만들어진 1대1 비율의 실물 모형입니다. 이번 서머 시즌의 최다 MVP에게 상금과 함께 수여될 예정입니다아아!!!>
혹여나 목소리가 찢어지는 건 아닐까.
전범준 캐스터가 마지막 한 마디를 숨마디가 끊어질 듯 외쳤다.
누군가 과도한 퍼포먼스를 펼친 건 아닌지 걱정 스러울 수 있겠지만 아니다.
방금의 외침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격이었다.
골든 마우스는 E-스포츠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 시작에서 아주 약간, 사실 약간은 아니고 조금 많이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상징성만큼은 누구나 인정한다.
프로게이머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그 상징과도 같은 무한한 영광이 부여된 과거의 유물이 바로 골든 마우스다.
갤럭시 크래프트의 황금기를 상징했던 골든 마우스가 다시금 언급됐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로드 오브 로드도 이제 한 걸음 크게 나아갈 때다.
더 이상 갤럭시 크래프트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는다.
E스포츠로서 로드 오브 로드가 단단히 자리매김했음을 과거 갤럭시 크래프트의 팬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물론 금전적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순수 금으로 된 마우스를 선수에게 수상해도 될 정도로 현재 로드 오브 로드 판은 잘 굴러간다.
그리고 더욱 더 커져 갈 것이다.
그러한 해석을 붙여 본다면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E-스포츠의 팬으로서는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종목이 변했을 뿐 10년 이상 이 자리를 지켜온 전범준 캐스터에게 있어서 이만큼 각별한 순간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토록 흥겨운 개막식 첫 게임의 시작을 알리게 될 팀은 어디인가! 소개하겠습니다!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해외의 로드 오브 로드 팬들에게도 익숙한 두 글자 얼밤-! 그리고 LML을 살짝 아쉽게 마무리한 페닉스-라이트닝의 대결입니다..!>
자신들을 보고 있는 시선이 많다.
심지어 무겁기까지 하다.
한 치 앞도 양보할 수 없는 승부를 펼치게 될 얼밤과 페닉스-라이트닝의 선수들은 바짝 긴장한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고 하나, 그 무게감을 이해하지 못할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다.
이제 곧 다가올 접전을 대비해 선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부스에서 세팅을 한다.
그 사이에 예정돼 있던 순서.
안타깝게도 이제는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초청 걸그룹들의 공연이 달아오른 개막전의 분위기를 열심히 유지한다.
E-스포츠 판의 스케일이 사뭇 달라졌다는 사실에 팬들이 어깨가 빳빳해진다.
과거 대규모 조작 사건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E-스포츠.
종목이 바뀐 이후로 한층 더 사그라들었던 열기.
스프링 시즌이 계기가 되었다면 서머 시즌은 재도약이다.
그 첫 번째 막이 서서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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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LML 때와는 달리 우리 개막식의 스타트를 끊지는 않았다.
그리고 토너먼트가 아닌 조별 리그라 앞으로 한 시간은 확실하게 여유가 있다.
이 여유 시간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있다.
나와 예은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이 멈춘 장소는 선수 휴게실이었다.
"오랜만이네요, 핫숏."
"생각보다 빨리 만났지?"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건네 핫숏과 그 일행들을 불러들였다.
대회가 끝난 이후에도 당연 회포를 풀 테지만 그 전에 인사라도 한 번 안 하면 섭섭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보는 핫숏의 얼굴은 다행히도 밝아 보였다.
첫 마디부터 능글맞게 던져왔다.
"그러게요. 롤드컵쯤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받아치는 솜씨는 더 늘었구만. 둘이 한국 대표팀으로 온다면 상당히 힘들어지겠어.. 그런데, 둘은 슬슬 사귀고 있나?"
솔직하게 대답을 해줄까 말까.
내가 고민하던 사이에 예은이 팔짱을 끼었다.
무언은 긍정.
방금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가 느린 이는 여기에 없었다.
"거짓말..?!"
"놀라운데? 사실 고자나 게이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는데.."
당사자 눈 앞에 두고 뭔 이야기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CLC도 그렇고 과거 2군이었던 CLU도 그렇고 하나하나가 반가운 얼굴들이다.
그들과 묵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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