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
골든 마우스
첫 세트에서의 대패.
5전 3선승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치명적이진 않다.
그럴 텐데도 불밤의 부스 안은 초비상이 걸렸다.
"테러스티나를 밴 해버릴까?"
"가뜩이나 밴카드 부족한데 그거 밴하면 다른 게 살잖아. 그냥 라인스왑으로 받아치자."
다음 세트를 대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불밤의 팀원들이 격한 토론을 주고 받고 있다.
가능한 명료하게 의견을 꺼내고 있음에도 좀처럼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적이 라인스왑 예상하면? 확률은 어차피 반반이야."
"그럼 뭐 어쩌자고? 대책도 없이 그냥 하자고?"
"그건 아니지. 그래도 일단 생각을 해두자는 말이잖아."
첫 번째 세트에서 불밤은 신세상-매직의 심리전에 놀아났다.
올마스터니까 라인스왑을 하지 않겠지.
하지만 상대는 라인스왑을 걸었고 이것은 패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결정적인 실수였다는 소리까진 아니다.
"전기쥐가 리심처럼 밀어내는 챔프한테 약한데 이걸 감안 못한 것도 커."
"아니, 근데 그건 어쩔 수가 없었어. 나 그때 분명 점멸로 들어갔잖아. 진짜 스턴만 걸고 밀렸어도 우리가 이기는 상황이었다고."
상대의 반응이 너무나도 빨랐다.
그로 인해 첫 용한타를 완전히 대패했고 이후의 게임은 속수무책.
계속해서 휘둘리다 졌다는 기억밖에 없다.
현재 불밤 팀원들의 머릿속에 신세상-매직의 경기력은 뿌리 깊게 박혀있다.
어떻게 해야 넘어설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당장 먹히는 수단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피드백의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용."
그토록 타올랐던 불길을 한 번에 진압한 자.
불밤의 주장, 빅빠따맨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한 마디에 부스의 안은 정숙해졌다.
개미 한 마리 기어가는 소리조차 들릴 지경이다.
코치와 감독조차 침을 삼키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시간이 없으니 내가 상황을 정리하지."
팀원들이 주고 받은 이야기 중 허투루 흘릴 만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게 문제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중요한 것만 취해야 한다.
하지만 각자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 규합이 꼬이고 꼬였다.
불밤의 절대권력 빅빠따맨의 솔로몬과 같은 판결이 필요한 시기다.
"테러스티나는 밴 안 한다. 전기쥐는 먼저 가져간다. 봇듀오는 상대 픽보고 받아친다. 이상."
고작 세 줄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이견이 달릴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단순한 억압과 공포에 의한 게 아니라 정말로 깔끔했기 때문이다.
"오, 오! 명안이십니다. 상대가 테러스티나를 픽하든 픽하지 않든 대처가 가능하겠군요!"
"테러스티나 가져가면 봇에서도 똑같이 성장 가능한 챔피언 픽하겠습니다."
전기쥐는 불밤의 탑솔러 빅불꽃맨의 18번이다.
가장 잘 다루는 챔피언이고 상성도 딱히 없다.
굳이 따지자면 말화이트가 극상성인건 맞지만 상대 탑라이너인 씨지맥은 말화이트를 하지 않는다.
봇라인에 대한 해결책도 더없이 탁월하다.
만약 상대가 테러스티나를 가져간다면 똑같이 성장 기대치가 높은 챔피언을 픽하면 된다.
어느 쪽으로 가도 이전 세트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는 구도.
가능하다면 픽하지 않아주는 쪽이 불밤의 입장에선 수월하겠지만 말이다.
.
.
.
* * *
첫 번째 세트가 끝나고 불밤은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5전 3선승제에서 이렇게 바로 자신들의 권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첫 번째 세트의 내용을 생각해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불밤이 30분이라는 시간동안 돌파구를 찾았을까요? 이제 곧 경기를 시작해야 합니다만.>
<이대로 무너질 팀은 아니죠. 수많은 팬들이 목청 높여 불밤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밤이라면 반드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현장 관중들의 절반은 시즌2부터 꾸준하게 불밤을 응원해오던 골수팬들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응원하던 팀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당연히 보고 싶지 않다.
이윽고 작전 타임이 완전히 끝나고 두 번째 세트가 시작했다.
밴픽 구도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밴 양상은 이전 세트와 비슷비슷 합니다. 테러스티나를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죠?>
<역시 불밤, 침착하네요. 어차피 올마스터 선수는 챔프폭이 넓거든요. 게다가 잘못해서 젤리맨 같은 거 살리면 씨지맥 선수가 미쳐 날뜁니다.>
중계진들이 칭찬을 해주고 있다만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똑같다.
아까와 비슷한 밴픽을 가져간다면 또 사단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불밤이 또다시 패배의 고배를 마셔야 하는 건 아닐까.
침 삼킬 타이밍조차 잊으며 밴픽을 초조하게 지켜봐야 했다.
-전기쥐 또 가져가네? 저러다 한타에서 또 아무것도 못하면 큰일 날 텐데.
-후진입하면 되지. 불밤이 그런 것도 생각 못하고 픽했겠냐?
-삐삑! 12등급 불밤충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불밤도 짬밥이 있는데 같은 거 또 당해주진 않겠지ㅋㅋ
올마스터가 이번에도 원딜을 마지막까지 숨겨두면 어떡하나.
예상을 깨고 올마스터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픽을 박았다.
자신의 챔프폭을 자랑이라도 하듯 지금껏 꺼내지 않았던 챔피언을 말이다.
<꼬그모! 테러스티나 못지 않은 하드캐리형 원딜러입니다.>
<오늘 올마스터 선수가 컨셉 제대로 잡아왔네요. 진정한 후반 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과정이 반드시 루즈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어제 있었던 가짜에어 독수리 대 SKY T1 S와의 경기.
까놓고 말해 엄청 지루했다.
양 팀의 색깔이 비슷하다 보니 정말로 밥 한 끼 먹고 와서 한타만 봐도 될 지경의 게임이 나왔다.
비슷한 양상의 경기가 오늘 또 벌어진다면 시청자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하지만 올마스터는 테러스티나로도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풀어나갔다.
이번 경기도 그래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긴 하다.
-응 파밍쌈 노잼이야
-올마스터는 화끈하게 몰아붙여야 제맛인데ㅋㅋ
-자꾸 커뮤니티에서 초반빨이다 이런 소리 나오니까 후반캐 하는 거잖아.
-가끔은 후반캐 해도 좋긴 한데 타이밍이 ㅠ.ㅠ
타이밍이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없다.
하필이면 전날이 가짜에어 독수리의 경기였다.
하루 쉬고 이어가는 C조나 D조의 경기면 경기 수준이 있으니 볼 만했을 거다.
아무리 카레가 맛있게 끓였다고 해도 어제 세 끼 배 터지게 먹었는데 오늘 또 먹기는 꺼려지는 법이다.
심지어 어제 카레는 맛있지도 않았다.
팬들이 선입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에 맞서는 불밤의 픽은 크레이브즈와 루나! 노련합니다. 생존기 없는 원딜러에게 지옥을 선사하는 조합이죠.>
<6레벨에 필킬각 만들기로 악명이 높은 봇듀오네요! 과연 꼬그모의 선픽이 패기인지, 아니면 이 또한 계산된 픽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겠습니다. 경기~~~보시죠-!>
올마스터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겠다.
불밤은 극단적인 수를 둬왔다.
서로 맞파밍따위 할 생각 없다.
찢어 발겨주겠다.
크레이브즈와 루나는 뚜벅이 원딜 카운터로 악명이 그리 높을 수가 없다.
6레벨 찍고 궁극기만 배우면 필킬을 만드는 조합.
그냥 루나가 궁극기 퍼억! 박아버리고 거따가 스킬 전부 쏟아부으면 꼬그모는 무조건 죽는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순간폭딜이 어마어마하다.
이를 계기로 불밤이 역전한다면 박빙.
올마스터가 꾸역꾸역 버텨낸다면 꿀잼.
어느 쪽이든 흥미가 유발될 수밖에 없는 구도로 판이 짜였다.
신세상 매직 대 불밤의 두 번째 세트가 시작되었다.
.
.
.
* * *
첫 번째 세트는 장기전 끝에 승리를 가져갔다.
중반 한타부터 넥서스를 파괴할 때까지 내 테러스티나의 슈퍼 플레이가 돋보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진 플레이에 적들은 분명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상대의 멘탈은 금이 갔을 테고 이는 다전제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멘탈이 많이 다쳤을 텐데도 대처가 좋아. 경력이 긴 팀이라 그런지 만만한 구도로는 가주지 않네.'
테러스티나에 연이어 꼬그모.
가능하다면 상대가 똑같이 성장형 챔피언으로 받아쳐 주길 원했다.
그러한 흐름으로 가도록 일부러 유도했다.
하지만 불밤은 내 의도와는 반대로 극 공격적인 행태로 나왔다.
"한 번 잘못 물리면 큰일 나겠는데요? 제가 앞포지션 잡으면서 대신 물릴까요?"
"아니, 괜찮아. 하던 대로 하면서 비누 방울 타이밍만 잘 잡아줘."
상대가 가져간 크레이브즈와 루나는 악명이 높다.
고질라의 말마따나 한 번 잘못 물리면 인생 그대로 종치는 수가 있다.
CC기를 세 개나 들고 있는 루나와 근접했을 때 퍼엉! 폭딜이 박히는 크레이브즈의 시너지.
다이브 치기에도 좋아서 라인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하면 사이즈도 안 나온다.
뚜벅이 챔피언, 그것도 후반 지향형 원딜러들에게 있어 가히 악몽과도 같은 상대다.
저레벨 때는 그래도 어떻게 비벼볼 구석이 있지만 서로 궁극기를 배우고 나면 끝장.
6레벨 필킬은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극도로 위협적이다.
'내가 잠자코 파밍만 한다면 그리 되겠지만.'
두 판 연속 파밍파밍 할 정도로 나는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런 된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김칫국 퍼마시는 습관부터 고쳤겠지.
꼬그모를 픽한 이유는 후반 한타에서 활약하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초반부터 빡세게 간다.'
크레이브즈와 루나를 상대로 라인전을 유리한 구간은 초반 뿐이다.
타이밍이 조금만 지나면 라인전도, 갱에도 휘둘리게 된다.
그 전에 최대한 격차를 벌려 놓는다.
라인전이 시작하자마자 정신없이 몰아친다.
챠압!
챠압!
W스킬, 침 마구마구 뱉기를 활성화해 짤짤이를 넣는다.
침 마구마구 뱉기는 꼬그모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스킬.
사용시 평타의 사거리가 늘어나며 %뎀까지 붙는다.
철써덕~!
고질라의 인어도 앞무빙을 밟으며 견제한다.
그렇게 약간의 딜교환 이득을 보기는 했지만 치명상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는 되도록 사리면서 극초반을 넘길 속셈이다.
"저희 무난하게 3레벨 가면 물렸을 때 점멸 빠져요."
"그럼 무난하게 안 가면 되겠네. 쉴 새 없이 몰아붙이자."
3레벨부터는 섣불리 딜교환을 할 수 없게 돼버린다.
루나가 밤하늘 검에 이어 풀콤보를 박아 넣으면 한 명은 순삭.
어떻게 살더라도 집에 가야 할 수준으로 체력이 깎이고 만다.
그러니까 그 전에 가능한 많이 때려 놔야 한다.
챠압!
챠압!
2레벨부터 꼬그모&인어의 진정한 위력이 발휘된다.
꼬그모의 압도적인 사거리와 인어의 비누 방울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상대 봇듀오도 시너지가 좋지만 나와 고질라도 못지 않다.
둔화가 묻어나는 평타에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보너스로 맞는다.
물론 이렇게 빡견제를 넣다 보면 훼까닥한 루나가 들어올 수도 있다.
설마 했지만 상대는 들어왔다.
루나가 나에게 밤하늘의 검을 던져 스턴을 때려 박았다.
꾸웨에엑-!
E스킬, 끈적한 타액을 뱉어서 접근을 저지한다.
여기서 저지하는 건 루나가 아니라 크레이브즈의 호응이다.
널따랗게 깔린 타액은 그 위에 올라선 적들의 발걸음을 늦춘다.
챠압!
챠압!
반격을 하려다가 침세례만 잔뜩 맞고 돌아가는 루나.
사실 루나가 나에게 칼을 던져오도록 일부러 거리를 줬다.
거리를 주는 척 다가가서 뒷무빙을 밟아 낙아채는 이른바 낚시 플레이다.
낚시에 제대로 당한 루나는 체력이 반쯤 깎여서 울면서 돌아간다.
"여기서 누구가 역갱만 쳐주면 라인전 이길 거 같은데~."
"..승질 건드리면 확! 버려버린다?"
농담 좀 던졌는데 예은이 까칠하게 반응해온다.
탑과 미드의 정글 싸움이 치열한 모양이다.
딜교환에 집중하고 있었던 지라 그쪽까지 모니터를 돌릴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쪽이 치열하다는 건 이쪽에는 터치가 없다는 소리지.'
3레벨 전까지 체력과 포션을 많이 빼놓았다.
만약 또다시 들어온다면 이제는 역으로 당한다.
사리고 있는 상대를 압도적인 사거리로 계속해서 두들긴다.
결국 버티지 못한 상대는 귀환 타이밍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킬각까지는 잡지 못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다.
한 웨이브 이상 미니언을 타워에 꼴아박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렇게 이득을 봐도 서로가 6레벨을 찍게 되면 저쪽의 강제 이니시가 너무 강력하다는 부분이다.
'템트리를 통해 극복한다.'
꼬그모를 선픽 박은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상대가 라인전이 강한 조합으로 받아친다면?
이 경우의 대처법도 생각해두었음은 물론이다.
마치 테러스티나 때와 비슷한 응용이다.
뚜벅이라는 꼬그모의 단점을 아이템 선택을 통해 극복해낸다.
성장형 원딜러라는 고질점도 넘어선다.
내가 선택하는 아이템 빌드는 다름아닌 삼종신기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