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56화 (55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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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준결승전을 깔끔한 3연승으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조별 리그부터 진행한 모든 경기를 승리로만 장식했다.

어쩌면 이번 서머 시즌에서 그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우승, 그것도 전승 우승이라.'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다.

나의 커리어에 한 줄 더 굵다란 선이 그어진다.

아직까지는 확정된 게 아니지만 다른 하나.

먼젓번의 목표였던 골든 마우스는 이제 따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단순히 겜만 잘하는 겜돌이가 나의 목표는 아니니까.'

그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절호의 찬스가 다가왔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을 맞이한다.

방송국에서 사람이 찾아온다.

흔히 말하는 취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5분만…."

"다시 자더라도 대충 고양이 세수는 하고 오렴.."

여자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예은을 초홍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깨워냈다.

아무래도 어젯밤 잠자리에 늦게 든 모양.

비몽사몽 해서 완전 헬렐레 하고 있다.

나는 억지로 일어난 예은의 등허리를 툭툭 쳐서 화장실로 몰이했다.

'나중에 뭐라뭐라 불똥 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나중에 자기 왜 안 깨었냐고 구박하는 일 없었으면 싶다.

뭐, 평소에도 딱히 화장 같은 거 안 하고 방송에 출연하는 예은이니 큰 신경을 안 쓰리라 믿는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사람은 나다.

아무리 생얼에 자신 있다고 해도 최소한 눈곱은 떼줬으면 한다.

"착하지, 착하지. 세수만 하자."

"졸려어어.."

잠이 덜 깼는지 아무 데나 기대 다시 꾸벅꾸벅 자려고 한다.

그런 예은과 씨름을 한 끝에 어떻게 화장실에 들여보낼 수 있었다.

혹시라도 또 안에서 자지 마라고 문 앞에서 감시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홍이가 갑자기 졸졸졸 달려와 어처구니 없는 소릴 내뱉는다.

"나 이쁨?"

"…."

눈두덩에 껌댕을 덕지덕지 발라놨다.

이게 그 유명한 스모키 뭐시기인가.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지 적어도 넌 아니란다.

엄지 손가락으로 꾸욱 비벼 뭉개줬다.

"빼애애애애액! 번졌잖아-!"

"망설임을 없에준 걸 고맙게 생각하렴."

그 귀신 같은 꼬라지로 방송에 나가면 도슈 이상의 흑역사가 그어져 버린다.

그렇게 두 처자와 아옹다옹 실랑이를 사는 사이,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시끄럽게 울리는 인터폰이 낯선 이의 방문을 예고했다.

딩동! 딩동!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온다고 말은 들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최소치에 거의 근접해서 와버렸다.

준비가 채 마쳐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업자득, 나는 분명히 두 처자에게 경고해 두었다.

'이거 생각보다 제대로 된 촬영 같은데..'

인터폰 너머로 약속했던 손님들의 얼굴을 보인다.

오프게임넷 측의 관계자들.

한두 명도 아닌 데다 촬영 기재들도 하드하다.

프로게이머들은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

이번 결승전에서 특별 코너로 방영하기 위함이라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사전 인터뷰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했다.

'어..? 이거 혹시 본격적인 취재인 거 아니야?'

상상했던 이상으로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던 일단은 엎질러진 물.

나는 터벅터벅 슬리퍼 걸음으로 마중을 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신경써 준비한 보람이 빛을 발할 때다.

.

.

.

* * *

지금으로부터 나흘 전, 준결승전 A조의 경기가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제 고작 한 짝의 노가 완성됐을 뿐이다.

서머 시즌의 결승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쌍의 노가 필요하다.

그를 위한 준결승전 B조의 무대가 서서히 막을 올린다.

<삼선 레드! 그리고 SKY T1 K! 결승전에 올라갈 나머지 한 팀이 오늘 결정됩니다!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목소리를 신호로 무대가 북적여진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양 팀의 선수들이 무대의 좌우측에서 걸어 올라오고 있다.

선수들이 내뿜는 기세는 그야말로 흉흉.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기싸움이 대단하다.

한 치도 물러 설 수 없는 접전을 예고하는 듯하다.

<정말 재밌게 됐습니다. 지난 스프링 시즌 당시 두 팀은 준결승전에서 맞붙었던 전적이 있어요! 리벤지 매치가 성사되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결과가 반복되리란 법은 없겠죠..! 최근 SKY T1 K! 물, 올랐거든요? 지난 8강 경기의 임팩트가 어마어마 했습니다! 절대로 삼선 레드에 밀리지가 않아요!>

양 팀 선수들이 무대 중앙, 단상에 빽빽이 발을 디뎠다.

그들에게 마이크가 하나씩 건네진다.

양 팀의 주장이 마이크를 통해 한 마디씩 내뱉는다.

─다시 만나 뵙게 되는군요.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저희의 발판이 돼주신 걸 미리 감사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선 레드의 주장 다대기가 도발을 걸어왔다.

아니, 어쩌면 도발이 아니라 진심일지 모른다.

진심이라면 더욱 빡치는 일.

SKY T1 K 측에서도 울림이 있었다.

─어차피 너희가 올라가도 또 2등밖에 못하잖아? 그럴 바에야 우리한테 양보를 하도록 해. 순순히 황금.. 아니, 항복을 하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SKY T1 K의 주장, 일단은 최연장자인 메딕 선수가 아주 거세게! 폭풍간디와도 같은 회답으로 받아친다.

삼선 레드는 스프링 시즌에서 SKY T1 K를 꺾고 결승전에 올라섰다.

그랬지만 결국 삼선 블루에 4대 0으로 패배하며 아픔을 겪었다.

아픈 곳을 꾹꾹 문질러주는 듯한 잔인한 발언이다.

─물론 저희도 연로하신 메딕형에게 양보를 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갑자기 당일 날에 아프실 수가 있어서요. 역시 저희가 올라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내가 그 정도로 걱정을 받을 나이는 아닌데..? 너희 나중에 뒷감당 할 수 있겠니?

그렇게 수차례 더 도발이 오가며 준결승전의 분위기를 업시킨다.

이해타산 저리 던지고 감정론적으로도 절대 양보 못한다.

서로가 이를 바득바득 갈 만한 매치업이 성사되었다.

<메딕 선수가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들 중에 나이가 조금.. 있는 편이죠?>

<여기 계신 전범준 캐스터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저보다 윗연배입니다. 이 정도면 시청자분들도 대략 아실 수 있을 거라 사료되네요. 물론! 방금 전 도발 등은 선수들끼리 사적인 친분 관계가 있기에 하는 말이니

심각한 해석 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분명히 잉벤 등에서는 분명 이야기가 있겠지만요!>

이러다 SKY T1 K가 져버리면 정말로 유혈사태가 터지는 거 아니냐.

이미 잉벤의 화제글로 하나 올라갔다.

현실갱으로 유명한 프로게이머, 모카차 선수의 과거 이야기가 각색되어서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메딕 선수의 나이에 대해서도 정확한 썰이 풀리고 있었다.

-어? 메딕이 나이 그렇게 많아?

-몰랐냐? 로드 오브 로드 전 세대 AOS게임인 혼돈에서도 유명했잖니.

-나이 많은 거 드립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음ㅋㅋ

-나도 혼돈 할 때만 해도 저 사람 나이 많은 척한다고 속으로 욕했었는데 뻘쭘하다..

-30대 중반 나이에 프로게이머 한다는 게 진짜 대단한 거야.. 나는 이제 군대 갔다온 20대 초인데 벌써부터 피지컬 죽은 느낌임.

메딕 선수가 나이에 비해서 상당히 동안이다.

그러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커뮤니티, 그리고 중계 플랫폼 등의 챗팅창에서 설명충이 난입하며 이해를 도왔다.

준결승전 B조 경기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선수들 세팅이 끝나는 데로 첫 번째 세트 들어가겠습니다. 김은준 해설은 밴픽 구도,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예, 양 팀 모두 미드&정글이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물론 다른 라인도 못지 않습니다만 미드, 정글 위주의 팀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만큼 오늘 경기는 미드 라인을 주목해서 보신다면 조금 더 재밌는 시청 가능할 거라 감히 예견하겠습니다.>

삼선 레드도, SKY T1 K도 미드와 정글에 힘이 많이 실렸다.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경기를 보자면 대략 그러한 양상을 띄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분명 미드에서 무언가 일이 생길 거다.

간단한 추론이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맞말이다.

자연스럽게 양 측의 미드라이너가 어떤 챔피언을 가져갈 지가 밴픽의 주요 포인트가 되었다.

<삼선 레드의 다대기 선수도 자드에는 일가견이 있죠. 오늘을 기해 한국 최고의 자드가 누구인지 가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최종 접전에 간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구도입니다. 다대기 선수도, 테이커 선수도 챔프폭이 좁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잘하는 건 역시 자드죠! 솔로랭크에서도 두 선수의 자드가 떴다 하면 필승 카드가 돼버립니다!>

프로게이머가 자신의 주력 챔피언으로 솔로랭크를 하는 경우는 지극히 적다.

하지만 어쩌다가 한 번 뜨기라도 하면 필승.

완전히 졌다고 여겨지는 게임도 혼자서 비벼버린다.

아마추어와 프로게이머 사이에 벽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런 두 선수가 준결승전에서 제대로 맞붙는다.

<이건 1킬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먼저 기세를 가져온 쪽이 지독할 정도로 스노우볼을 굴려버릴 거에요.>

<저도 강빈 해설의 말씀에 동의하겠습니다. 그러나 레드팀인 SKY T1 K가 자드를 밴했죠. 무조건 뺏길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챔프폭 싸움으로 귀결 되겠습니다.>

자신들이 가져가지 못할 바에야 밴해버리겠다.

이런 느낌의 밴픽 구도는 롤챔스에서 의외로 잦다.

현재 미드 라인의 최강 챔피언이라 불리우는 자드, 그리고 그 자드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양 팀에 있기에 어쩔 수가 없는 흐름.

남은 것은 이제 챔피언 폭의 대결이다.

<구리가스! 다대기 선수가 먼저 칼을 빼들었어요!>

<최근 카지트와 제임스가 너프를 먹으면서 새로이 주목 받고 있는 미드 챔피언입니다. 딱히 카운터도 없습니다. 사실 어떤 걸 꺼내도 압도하기는 힘들어요. 미드 라인전은 순수한 기량 싸움이 될 거라 전망하겠습니다.>

시즌3의 절반을 주름 잡았던 두 미드 챔피언, 카지트와 제임스가 너프되었다.

포킹 챔피언에게서 포킹 스킬을 뺏어버리니 어떻게 사용할래야 사용할 수가 없어졌다.

선수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이를 대체할 챔피언을 찾아다녔다.

가능한 비슷한 녀석.

찾아보니 몇 가지 후보가 좁혀졌고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리가스다.

시즌2에도 왕왕 사용됐으나 한 차례 미드 AD메타가 불어올 때 묻혔다.

그러다가 최근 필요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현재 미드 주류픽들 중에서 당당히 1티어로 군림하고 있는 구리가스다.

<챔피언 자체가 사기라기 보다는 안정적이고 선픽에 부담이 없습니다. 근접 챔피언이지만 유지력이 워낙 좋아요. 게다가 태세 전환해서 공격적으로 운용하면 갱호응도 기가 막힙니다.>

<이를 상대하는 테이커 선수의 카드는 과연 무엇이 될지.. 설마! 뽑아 듭니까? 뽑아 들어요? 뽑아.. 들었습니다!>

구리가스는 스킬을 쓰면 체력이 회복되고 심지어 마나까지 공급된다.

견제력이 좋은 챔피언들로도 디나이를 조금 시키는 게 한계.

그마저도 구리가스가 조화의 술잔이 나오면 무색해진다.

서로 성장을 할수록 갱호응과 유지력이 좋은 구리가스가 라인 주도권을 뺏어 오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견제를 하는 쪽은 구리가스를 초반에 최대한 말려야 하고.

역으로 구리가스는 어떻게든 버텨서 라인 주도권을 최대한 빨리 가져와야 한다.

이는 이미 선수들 사이에서 서로의 실력을 떠보는 지표가 됐을 정도다.

첫 세트에서 다대기가 구리가스를 꺼낸 의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테이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내오면서 경기의 구도가 반전됐다.

<미드 리픈! 지난 스프링 시즌부터 이미 수 차례 선보인 적이 있는 카드입니다. 평캔 빠르기로 대한민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선수가 바로 테이커거든요?>

<일반적으로 구리가스를 상대하기 괜찮다고 평받는 챔피언들은 초반 견제가 좋은 챔피언들입니다. 이를 테면 코리아나처럼요. 그런데 테이커 선수는 견제로 만족하지 않겠다, 솔킬각까지 한 번 노려보겠다! 이건 맞불 작전입니다. 단언컨대 결코 밋밋한 게임은 되지 않을 겁니다..!>

리픈은 픽률도 높지 않고 쓴다고 해도 탑으로나 쓰이는 챔피언이다.

그런 리픈을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미드로 사용하는 이가 바로 테이커.

기존의 미드와 완전히 다른 스킬 구성을 가진 챔피언인지라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이 불가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곱씹어 볼 만하다.

승부수를 띄운 쪽이 과연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쳤을까?

<미드 리픈이라는 진귀한 선택이 악수로 작용할지, 아니면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지! 양 팀의 밴픽 끝났습니다. 이제는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만이 남았습니다. 경기~~~! 보시죠!>

샘플이 없는 만큼 겨뤄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김은준 해설의 말마따나 밋밋한 구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구도다.

한 쪽은 반드시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된다.

결승전이라는 배를 저을 나머지 한 짝의 노를 결정하는 준결승전 B조의 경기.

그 첫 번째 세트부터 불꽃 튀는 치열한 혈전이 예고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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