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58화 (558/803)

558====================

인연이란

아마추어 시절, 최강진은 올마스터와 겨룬 적이 있었다.

솔로랭크가 아니라 대회 무대에서 말이다.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 약칭 LCL이라 불리우는 아마추어들의 등용문.

비록 아마추어 리그라고 하나 프로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실제로 역대 LCL 우승팀들 중에서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엄청나게 나왔다.

현재 SKY T1 K와 준결승전에서 맞붙고 있는 삼선 레드의 아웃섹과 다대기만 해도 LCL 우승팀 출신이다.

그렇게 중요도가 높은 LCL에서 최강진은 올마스터에게 져서 탈락했다.

고작 16강에서 패배했다는 불명예를 끌어 안았다.

"감독님.. 제가 애도 아니고 설마 경기에서 진 거 가지고 꽁해있겠습니까?"

응, 너는 왠지 그럴 거 같은데..

김다균 코치는 속으로 일어난 딴지를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선수로서는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최강진은 속이 무지하게 좁다.

전략을 짤 때 선수들 개개인의 성격까지 감안해서 넣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단순히 호승심 때문에 픽한 건 아닐 테지.'

모르긴 몰라도 최강진의 성격상 그때 일을 아직까지 묵혀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최강진이 소인배라기 보다는 프라이드가 워낙 높아서 일어나는 시기다.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언정 나쁜 길로 빠질 염려는 없다.

자기 자신의 실력에 대한 긍지가 엄청나게 높다.

아무리 그래도 위험부담이 있는 픽을 준결승전이나 되는 자리에서 굳이 해야 하나.

코치의 권한으로 묵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잠시 고민한 김다균은 이윽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 배인도 별로 안정적인 픽은 아닌데 네 고집으로 항상 가져갔고 그만한 성과를 냈지. 어떤 결과가 나오던 탓 안 할 테니 어디 한 번 자신있게 해봐."

"역시! 코치님이라면 알아줄 거라 믿었어요. 상대도 토이치라 부시안이 씹어 먹습니다..!"

최강진은 이미 숱한 라인전을 통해 부시안의 상성 관계까지 파악해 놓았다.

원딜이 비교적 상성을 덜 탄다고 해도 없지는 않다.

일례로 가장 유명한 헤이클린과 배인간의 관계가 있지 않던가.

비슷하게도 부시안이 상성으로 우위에 서는 존재가 있다.

토이치, 사거리가 같고 킬각을 잡기 쉽다.

결정적으로 토이치의 유일한 CC기인 끈적끈적 독병.

부시안은 E스킬인 대시기를 사용하면 둔화를 해제한다.

이쪽은 잡힐 일이 없는데 저쪽은 한 번 붙으면 도망도 못 간다.

"그런 거라면 확실히.. 그런데 배인 상대로는 힘들다고 했었지?"

"당연히 상황 별로 기용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부시안은 스킬 구조상 배인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

부시안의 주력 스킬인 꿰뚫는 불길.

일직선의 적을 푸슝! 태워 버리는 레이저를 배인은 구르기로 쉽게 회피할 수 있다.

뭐,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류 원딜러의 피지컬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결정적으로 궁극기의 유무.

사실상 궁극기가 없는 수준이 부시안과 달리 배인은 메리트가 어마어마하다.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추격전에서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이러한 상성 관계에 불밤의 원딜러 빅캡틴맨이 실제로 된통 당했다.

3킬 먹은 부시안으로 배인한테 1대1을 지더라.

솔로랭크에서 어이없게 졌다면서 불평을 늘여 놓았다.

하지만 이는 배인을 상대로 부시안을 꺼낸 빅캡틴맨의 잘못이다.

"토이치를 상대할 땐 무조건 우위에 선다.. 그래, 혹시 말리더라도 부담 갖지 말고 해."

"말릴 일도 없습니다. 적 서포터도 바보같이 랄라를 해줬다고요. 심술쟁이는 클린즈로 풀고 둔화는 대쉬기로 떨쳐내면 그만입니다."

상성상 절대 질 수가 없다.

자신만만 게임에 들어가는 최강진을 보며, 김다균 코치는 쓴웃음을 지었다.

부디 저 고집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길 바라며.

.

.

.

* * *

A조와 달리 더없이 치열했다.

준결승전 B조의 경기는 접전이었다.

경기의 내용을 보자면 그러했지만 결과적으로 3대1.

SKY T1 K가 삼선 레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대기가 던진 건 술통이 아니라 게임이야..

다전제에서 첫 세트를 그렇게 날려버리면 여파가 크지..

라인전 겁나 잘해놓고 궁극기 한 번 잘못 던져서 그게 뭐냐.

첫 세트만 가져 갔어도 2대2로 블라인드 픽 갔을 텐데.

그러면 아웃섹 리심이랑 다대기 자드 강림하면서 결승전 그림 딱 나왔잖아.

└구리가스 궁극기가 원래 좀 운빨 타긴 해.

└차라리 방생을 하던가. 아군까지 죽인 게 너무 컸음.

└거기서 테이커 잡았으면 용까지 갈 수 있었겠지?

글쓴이-안 그래도 무난하게 가면 삼선 레드가 웃어주는데 미드 잡고 용먹었으면 당빠 이겼지!

첫 세트를 다대기 선수의 큰 실수로 인해 패배하고 말았다.

이미 잉벤에서는 완전 놀림감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연이은 두 번째 세트의 패배도 충격적이었다.

실수를 해서 놀랐다기 보단 다른 의미다.

─부시안 꽤 괜찮은 챔피언이네?

엄청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 준수하네.

크레이브즈 같은 챔피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르키 같은 챔프였어.

부시안한테 삼종신기 효율 괜찮은 듯?

└올마스터가 먼저 꺼낼 줄 알았는데 이걸 꿀꿀이가 가로채네.

└침 묻혀둔 것도 아닌데 뭐 어때ㅋㅋ

└부시안 AP계수 높아서 삼종신기 괜찮나 봐.

└근데 템트리 잘 가도 그렇게 기존 픽보다 유별나다는 느낌은 못 받았어.

SKY T1 K의 원딜러 꿀꿀이가 두 번째 세트에서 부시안을 꺼내 들었다.

혼자서 무쌍을 찍는 임팩트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선보였다.

라인전에서 토이치를 거세게 압박하며 CS 차이를 벌렸다.

그리고 둔화 해제가 있는 대쉬기로 갱킹을 요리조리 잘 피했다.

궁극기의 용도는 라인 클리어.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 부시안 궁극기 이거 페이크 쩌네ㅋㅋㅋ

미니언 추가 데미지 400% 왜 있는가 했는데 라인 클리어용ㅋㅋ

꿀꿀이 하는 거 보니까 궁극기 그냥 미니언 잡을 때 시원하게 써버리고 귀환 타이밍 잡네.

하긴 실제 교전에서 맞추기 겁나 힘든데 저러는 게 맞지.

└ㄹㅇ파밍 스킬이었음ㅋㅋ 반전잼ㅋ

└역으로 챔피언한테는 1/4만 들어간다는 건데 얼마나 노답인지는 비율 보면 답 나오지

└안정적인 챔피언이라 나름대로 괜찮은 거 같다.

└손에 익으면 그럭저럭 쓸만할 듯싶음.

부시안을 대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걸까.

그 해법을 꿀꿀이가 제시했다는 느낌이다.

튀지는 않았지만 모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꿀꿀이는 두 번째 세트의 승리에 크게 일조했다.

신규 챔피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점까지 더해지며 MVP라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SKY T1 K가 연이어 두 세트를 챙기며 앞서 나갔다.

벼랑 끝까지 몰린 삼선 레드는 어떻게 세 번째 세트에서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결국 네 번째 세트에서 다시금 패배.

총 스코어 3대1로 준결승전은 SKY T1 K의 승리가 되었다.

지난 스프링 시즌의 복수르 통쾌하게 해버린 셈이다.

─SKY T1 K가 이겨서 잘된 점도 있음.

적어도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겠구만.

메딕은 무슨 문명 드립치고 있냐ㅋㅋ

옥수수 대신 다이아몬드랑 금괴달라는 폭풍간디 생각나서 빵 터졌다.

└삼선 레드가 문명하셨습니다..

└경기 지면 현실갱 예약ㅋ

└역시 프로게이머 세계도 나이가 깡패지. 한국 사회가 다 그래.

└협박해서 이긴 것도 아닌데 뭔 깡패야ㅋㅋㅋ

어쨌든 SKY T1 K의 결승 진출이 확정되었다.

서머 시즌의 결승전은 신세상 매직 대 SKY T1 K.

그 무대는 무려 해운대다.

상당히 많은 팬들이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다.

─해운대에서 수영복을 입지 않는 것은 실례 아니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관중들이야 바닷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겹 껴입지만 선수들은 아니잖아.

아니, 해운대에서 옷을 겹겹이 껴입으면 얼마나 더워 보여?

선수 본인들도 문제겠지만 보는 사람들도 쪄죽어.

그러니까 뮴뮴 누님 비키니 좀 보여 달라고요..

└음.. 구구절절 솔직해서 좋다.

└100만 E-스포츠 팬들의 서명 운동 한 번 가자. 움직여야 할 때다, 기사단이여!

└쯔쯧, 남정네들 생각하는 꼬라지 하고는..

└어허! 우리는 신성한 망상을 통해 모든 생각과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엔타로 뮴뮴!

갤럭시 크래프트 시절부터 유서 깊은 서머 시즌의 결승전 개최지.

다음 세대의 E-스포츠인 로드 오브 로드가 이어 받는다.

뭐, 옛날에도 선수들이 수영복 입고 나오는 일은 없었지만, 애초에 팬들이 바라지도 않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여성 선수가 무려 두 명이나 나온다.

외모도 몸매도 연예인 못지 않게 반반하다.

팬들로서는 어떻게든 공론화 시키고 싶은 생각이 애달프다.

물론 아무리 떠들어도 당사자들이 거부하면 끝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

.

.

* * *

경기 준비로 인해 한동안 유난히 바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뤄두기만 할 수도 없다.

대부분의 일처리는 결승전이 끝난 이후에 하겠지만 당장 해야 하는 급한 부류도 존재한다.

그 도움을 위해 예은까지 부른 나는 현재 구단주실에 짱박혀 있다.

뭐, 하나부터 열까지 손을 빌리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문이다.

처리해야 할 일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때문에 예은은 내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타악!

예은이 갑자기 신경질적인 움직임으로 핸드폰을 집어 던지듯 내려 놓았다.

표정이 썩어있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무언가를 본 듯하다.

마지막으로 얼핏 본 화면은 잉벤이었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수영복에 대한 이야기일 테다.

"그렇게 싫어?"

"당근이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안 그래도 노출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예은이다.

몸매 라인이 드러나는 것조차 꺼려한다.

그런데 비키니라니, 당연히 싫어할 줄은 알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딱히 남성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고.'

결승전이 끝난 후 할 게 뭐 있겠는가.

한동안은 기나긴 휴식 시간이다.

더더욱이 결승전 장소가 무려 해운대다.

여름철 피서지로 그렇게나 이름 높은 해운대.

바닷가에서 애인과 걸쭉하게 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정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같이 지역 특산물이라도 찾아 다닐까?"

예은과 함께 한다면 이곳저곳 쏘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것이다.

기왕 부산까지 갔으니 회장님 얼굴도 한 번 보고, 먹을 것도 얻어먹어 보고.

굳이 바닷가가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재밌는 거리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내심 섭섭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예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의 손을 꼬옥 잡아오며 나지막하게 입을 벌린다.

"누가.. 싫대? 너랑은 괜찮아."

지난 스프링 시즌 이후로 차곡차곡 느리지만 확실하게 예은의 마음은 열리고 있다.

이제는 엄한 곳까지 손길이 가도 나무라는 정도다.

누구나 오픈 마인드가 된다는 여름이라는 계절, 그리고 바닷가라면 좋은 추억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느낌의 김칫국을 요즘 벌컥벌컥 마시는 중이다.

생각해 보니 남성 팬들과 별반 다를 게 없네.

'그런데.. 이건 뭐지?'

메일함에 꼬부랑 중국어로 써있는 메일이 하나 눈에 띄었다.

저게 그 유명한 랜섬웨어인가 뭔가 하는 뭐시긴가.

당장 삭제하려던 나는 마우스를 멈춰 섰다.

메일을 보낸 이는 어디선가 한 번 본 듯한 단체였다.

'이전에 스크림을 제의해왔던 곳이네..?'

분명 스크림 한 번 하는데 2천만원이라는 거액을 제시했던 게임단이었다.

너무 무례해서 단칼에 거절했고, 혹시 또 다른 제안이 있다면 내 앞으로 보내라고 이청호 코치에게 말은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연달아 두 번 거절했으면 이야기 슬슬 끝날 만도 한데..

"메일 내용도 짱.. 아니, 중국어야?"

"너 그거 하지 말랬지? 혼 좀 나자 진짜."

한 손으로 예은의 볼따구를 쭈욱 늘이며 마우스 커서를 메일 위에 갖다 댔다.

굳이 클릭하지 않아도 미리보기를 통해 대략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랜섬웨어와 참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인지라 그냥 열기에는 조금 꺼림칙하다.

"영어본이랑 한국어본 따로 있네. 근데 이거 다운 받아도 되려나.."

"백신 돌려보면 대자나. 그리구.. 아파!"

슬슬 기가 살았는지 내 볼을 꼬집으며 반격해온다.

서로의 볼을 교차하듯 잡고 있는 모양새.

그 상태 그대로 백신의 도움을 받아 파일을 열어보았다.

먼저 한국어본부터 살펴봤지만 어색하다.

무슨 번역기라도 돌린 듯 읽기가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영어본으로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영어는 괜찮게 써있구만. 그런데.. 이게 뭐야?'

두 차례나 나에게 거절 당했던 중국의 게임단에서 새로이 보내온 제안.

적어도 스크림에 관련된 건 아니었다.

그보다 본격적인 느낌의 계약서였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