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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환계
두 번째 세트에서 나는 배인을 픽했다.
당연하게도 이는 꿀꿀이에 대한 도발이었다.
나의 도발에 상대는 역시나 호응을 해줬다.
'이번 판은 천천히 나의 페이스로 흐름을 끌어온다.'
0킬 0데스 배인보다 3킬 5데스 배인이 좋다는 말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건 개소리다.
배인은 초반 라인전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가냐가 관건이다.
이번 게임에서 나는 안정적인 하드 캐리를 지향한다.
푸슝!
데구르..!
쏘아지는 빛줄기에 맞춰 좌로 구른다.
부시안의 견제를 피하며 최대한 CS격차를 줄인다.
이것이 라인전에서 배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킬교환을 할 기회를 상대가 주지 않을 테니까.'
낮은 구간에서야 견제가 그렇게 빡세지 않다.
상대의 견제가 유지력보다 크게 상회하지 않다 보니 버틸 만하다.
무엇보다 라인 푸쉬를 통한 이득 볼 줄을 모른다.
푸슝!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상대가 스킬을 사용해 라인을 쭉쭉 밀어대면 배인은 답이 없다.
서포터의 보조가 있다 쳐도 근본적인 라인 푸쉬력이 다르다.
깡패라 불리우는 미니언을 끼고 딜교환하면 절대 못 이긴다.
헤이클린이 배인의 카운터가 되는 것과도 마찬가지의 이유.
부시안처럼 스킬로 라인 쭉쭉 푸쉬하며 견제를 쏟으면 당해야만 한다.
'그래도 충분 버틸만한 수준이지.'
라인전만 보자면 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CS의 숫자가 거의 차이가 없다.
포탑을 끼고 미니언을 잘 받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근거리 미니언은 평타 한 방.
원거리 미니언은 서포터가 한 대 쳐준다는 전제 하에 한 방.
당연하게도 피나는 연습을 거쳤다.
내가 아니라 고질라가 말이다.
휘리리링~!
풀차징된 회오리가 부시안의 과도한 견제를 방지한다.
아무리 부시안&쏘냐가 견제력이 막강하다 한들 버텨낼 수 있다.
이대로 무난하게 흡칼만 뽑을 수 있다면 정확히 원하는 구도.
하지만 그 전에 상대가 먼저 일을 냈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미드라인에서 패전보가 울려왔다.
초홍이가 솔킬을 따이고 말았다.
"빼애애액! 이게 왜 죽어!"
"죽을 짓이 맞을 짓이 되기 전에 소리 지르지 마라.."
현재 초홍이가 플레이하고 있는 챔피언은 자드.
선 6레벨을 찍자마자 킬각을 잡은 판단은 옳았다.
자드 대 아링의 구도에서 궁극기 유무의 차이는 절대적이다.
충분히 노려볼 만한 킬각이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테이커의 대응이 이상적이었어.'
부스 바깥에서 묘한 진동이 느껴지는 게 관중들이 야단법석인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화면을 통해 방금 전 솔킬의 리플레이가 송출되었을 것이다.
나도 화면을 돌려 상황을 보긴 했지만 과연 대단했다.
테이커의 아링이 어째서 유명할 수밖에 없는지 알 만한 플레이가 터져 나왔다.
자드가 궁극기로 들어오자마자 뒤를 향해 유혹을 날렸다.
이에 딱 걸린 자드는 포탑에 그대로 두 대 얻어 맞았다.
그래도 최소 데려갈 수 있는 각이었지만 테이커의 침착함이 돋보였다.
맞딜을 하기보단 레벨업을 하는 판단.
점멸 물방울로 미니언을 크게 긁어 6레벨을 찍었다.
결국 아슬아슬 아링은 살아남고 자드는 역관광 당하고 말았다.
'잘못하면 게임이 산으로 가겠는데..'
전 판에는 카서트 같은 한타지향형 챔피언을 해줘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판에서 테이커가 플레이 하는 챔피언은 AP암살자 아링.
미드 라인의 성세는 필히 다른 라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라인전부터 시작해 한타까지 전부 쉽게쉽게 갈 수 없는 흐름이다.
.
.
.
* * *
신세상 매직이 신규 챔피언 부시안을 활용해 첫 번째 세트의 승전보를 울렸다.
그러나 고작해야 한 세트다.
SKY T1 K도 프로게이머들이 입을 모아 강팀이라 말할 만큼 만만치 않다.
두 번째 세트가 시작하자마자 바싹 따라붙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버거킹!>
비행기 선수의 탈리반 3세가 미드 갱킹을 시도한다.
신세상 매직의 미드라이너, 자드는 갱각을 쉽게 주는 챔피언이 아니다.
그러니 만큼 어지간하면 당하지 않겠지만 라인전 딜교환에서 밀리고 있었다.
체력이 낮아지고 스킬이 의미없이 빠진다.
정글러가 센스 있다면 충분 킬각을 노려볼 만하다.
비행기는 그만한 기량이 있는 선수였다.
<아, 어떻게 반항 해보지만 이건 결국 죽는 각이죠!>
<아링 킬 먹으면서 죽음의 불타는 손길 완성되게 생겼습니다. 이거 혹시 용까지 가면.. 신세상으로서는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이네요.>
세 라인 중 가장 스노우볼 굴리기 쉬운 라인이 미드다.
그 미드 라인에서 아주 약간 틈이 벌어지자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라인전에서 딜교환 손해가 이어지며 종국에는 갱각에 노출됐다.
미드라이너가 죽어버리자 자연스럽게 용까지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봇라인이 비슷했다면 힘들었겠지만 밀리는 중이다.
배인이라는 챔프의 특성상 제아무리 날고 기는 올마스터여도 별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세트에서 사실 언급을 드리려다가 말았는데.. 뮴뮴 선수의 컨디션이 딱히 좋아 보이진 않아요. 특별히 큰 실수를 한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플레이에서 망설임이 느껴집니다. 평소처럼 과감함이 돋보이는 순간 판단력!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플레이가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초중반에 가장 중요한 오브젝트인 용이 당하자 공백기가 생겼다.
그 무료함을 달랠 겸 김은준 해설이 날카로운 지적을 해왔다.
확실히 틀린 말이 아닌,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평소의 뮴뮴이라면 무언가 하나 해도 진작에 해냈다.
미드에서 퍼블을 따인 자드를 대신해 아링을 줏어 먹거나, 방금도 역갱을 쳐서 탈리반이라도 데려갔거나.
하다 못해 탑이나 봇에서 한 건 올리지 못할 선수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컨디션의 악화, 심하면 장기적인 슬럼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살짝 끌려 다닌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만..! 미드 라인전의 스노우볼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절대 뮴뮴 선수의 실력을 비평하는 게 아니니 팬분들은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혀주시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하하, 관중석도 채팅창도 완전히 뿔났습니다. 김은준 해설 밤길 조심하시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국내에서 가장 팬층이 두터운 팀은 얼밤과 불밤이지만 선수 개인으로 한정하면 뮴뮴이라 카더라.
중계 플랫폼들의 채팅창은 물론이고 현장의 관중석까지 파도치듯 야단이 났다.
아무리 맞말이라도 적당히 안 하면 쳐맞말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렇게 한 차례 장난스러운 소란이 끝나고 다시금 소환자의 전장에 긴장감이 찾아왔다.
<좋지 않아요, 좋지 않아요! 저 잘 큰 아링이 분명히 한 번 움직일 거란 말이죠?>
<십중팔구 봇라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봇라인에서 분명 대규모 교전이 일어날 거에요.>
하지만 신세상 매직이라고 마냥 불리한 구도만은 아니다.
올마스터가 있는 봇라인은 제법 풀렸다.
부시안이 빠듯이 견제를 하긴 했으나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라인 주도권을 잡은 쪽이라도 마나는 유한하다.
조금 흥분해서 견제를 쏟아낸 부시안은 마나를 낭비해버렸다.
결국 궁극기를 라인 클리어 용도로 사용하며 또다시 귀환 타이밍을 잡아야만 했다.
<세나찡 복수다!>
부시안으로서도 울며 겨자 먹기의 판단이었다.
마나가 떨어진 부시안의 존재감은 서포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용 타이밍에 이어 한 번 더, 양 팀의 봇듀오는 귀환 타이밍을 잡았다.
<올마스터 선수, 영락한 기사의 검 완성됐습니다! 배인은 역시 영락검부터가 시작 아니겠습니까?>
<확실히요. 하지만 부시안도 삼종신기가 완성되기 직전이에요. 가격 차이 때문에 아직 뽑지는 못했찌만 금방이거든요? 신세상 매직이 무언가를 하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꿀꿀이는 올마스터의 템트리를 따라하지 않았다.
자신이 본래 하던 대로 삼종신기 템트리를 밟고 있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값비싼 아이템인 만큼 완성이 늦어지는 건 필연이었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로 낙관을 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탈리반도, 아링도 기동력 좋기로는 손에 꼽는다.
결국 봇라인에서 한 번 승부의 분기점이 예고되었다.
.
.
.
* * *
상황이 썩 좋지 만은 못하다.
솔직히 많이 불리하다.
처음은 그렇다 치고 한 번 더.
미드 라인에서 킬이 터져 나오며 게임의 주도권을 완전히 뺏겨버렸다.
하지만 웃어주는 부분도 하나 정도는 있다.
'부시안의 숙련도가 그닥이네.'
맞라인전을 서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꿀꿀이는 부시안이 많이 익숙하지 않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챔피언을 본인의 억지로 꺼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리고 이는 다가오는 한타에서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와드를 통해 상대의 움직임이 또렷이 보인다.
쿠! 챠앙!
상대의 판단은 과감했다.
탈리반 3세가 깃창으로 벽을 넘어 돌격했다.
동시에 상대 봇듀오 또한 행동을 개시했다.
속전속결,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낼 속셈이다.
<버거킹!>
<세나찡 복수다!>
나와 한나를 가둬버리고 스킬을 퍼붓는다
그 위로 쏟아지는 쏘냐의 점멸 센도까지 깔끔하다.
좌로 굴러 피해내긴 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샤락!
마지막으로 진짜가 도착한다.
테이커의 아링이 궁극기인 황천 질주로 벽을 넘는다.
그리고 구르기가 빠진 나에게 유혹-점멸.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생략된 준비 동작은 일련의 콤보가 얼마나 완숙돼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똑같이 맞점멸로 피해낸 나는 쏴버렸다.
터엉!
점멸 직전에 쏘아진 판결이 한 명의 적을 포탑 벽에 박아버렸다.
유혹-점멸과 비슷한 메커니즘인 판결-점멸.
노린 대상은 아링이 아닌 탈리반 3세다.
누구부터 점사해야 하는지는 나 뿐만 아니라 고질라도 똑같이 알고 있다.
휘리리리링~!
풀차지는 아니지만 위력은 충분하다.
한나가 날린 회오리가 탈리반을 또 한 번 억압하며 봇듀오의 호응을 방해한다.
하지만 고작 이것으로 다이브를 막아냈다고 하기엔 한참은 이르다.
과거 죽불손을 든 아링이 그렇게나 악명이 높았던 이유.
딴 거 다 필요 없다.
유혹 안 맞혀도 한 명을 가볍게 삶아 먹을 수는 압도적인 화력 때문이다.
샤락!
타랑탕!
다시 한 번 대쉬를 해온 아링의 데미지는 증폭돼 있었다.
죽불손의 액티브는 역시 상당히 까다롭다.
실드를 들고 있음에도 사르르르 체력바가 녹아난다.
나는 영락검을 쭈욱 빨으며 최대한 카이팅 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포탑의 탱킹을 맡고 있던 탈리반을 잡아냈다.
판결에 이어 회오리, 3초 이상 붙들린 탈리반은 포탑에게 네다섯 대는 얻어 맞았다.
3타를 한 번 터트리는 것만으로도 마무리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원군이 도착했다.
쿠확!
미드&정글 싸움이 밀리게 되면 백업도 한 타이밍 늦어진다.
그 탓에 다소 지체되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역공이다.
예은의 이블퀸이 부시안과 쏘냐를 궁극기로 끌어 안았다.
먼저 노리는 것은 당연히 부시안.
하지만 부시안은 카이팅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감하게 앞대쉬 후 나를 노린다.
꿰뚫는 불길이 푸슝! 쏘아지며 안 그래도 없는 나의 체력바를 갉아먹는다.
데구르..!
만약 쏘아낸 것이 단순한 평타였다면 위험했다.
부시안의 숙련도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증거다.
구르기로 꿰뚫는 불길을 피해내며 부시안을 가능한 때린다.
겨우 1초 더 연장한 생명에는 의미가 있었다.
구오오..!
엄청 늦었지만 결국은 와줬다.
초홍이의 자드가 멋지게 복수에 성공한다.
궁극기로 아링을 따낸 후 이블퀸과 함께 부시안을 협공.
더블 킬을 울리며 지금껏 행했던 실수를 만회한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SKY T1 TAKER님의 학살이 종결되었습니다..!
일방적인 승리는 아니었다.
2대3의 교환, 아군은 나와 한나가 죽었고 상대는 쏘냐가 살아 돌아갔다.
머릿수만 따지면 고작 하나 차이다.
하지만 방금의 한타로 인해 답답했던 게임에 숨통이 트였다.
"빼애애애애액!!"
초홍이가 기쁨의 초자후를 내지른다.
라인전이 정말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테이커의 아링을 상대했던 심정, 이해는 하지만 방금 한타의 주역은 나였다.
"배인이 너무 오래 잘 살았어요. 유혹 맞았으면 거기서 게임 터질 뻔했는데."
"..뭐, 잘했어."
소란을 떨어대는 고질라와 달리 예은의 반응은 새침하다.
결승전 직전에 나눴던 대화 때문인지 마음 한 구석이 꽁한 모양이다.
내 입장에서는 별 이야기 안 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 같다, 남자는 이해 못한다 그런 소리 많이 들어는 봤다.
그러나 예은과는 지금껏 별 일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항상 마음이 통하던 예은과 생각이 갈리니 나 또한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결승전 만큼은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찰칵!
적이 작정해서 모든 걸 쏟아낸 공격을 버텨냈다.
까놓고 말해서 슈퍼 플레이, 해버린 셈이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엔 부족하다.
상대의 조합은 누구 한 명 작살내기에 특화돼 있고 그 대상은 백이면 백 내가 될 거다.
나 혼자 딜과 탱을 전부 소화해내야 한다.
상당히 부담가는 요구 사항이지만 못할 것도 없다.
다른 원딜러라면 몰라도 배인이다.
그리고 이를 보조해줄 충직한 서포터가 있다.
한 번 빼앗겼던 경기의 흐름을 다시금 되찾아올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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