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
연환계
첫 번째 세트도, 두 번째 세트도 신세상 매직의 승리로 결론지어졌다.
아무리 7전 4선승제라고 하나 한 번 넘어가 버린 흐름을 되찾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SKY T1 K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꿀꿀이 선수의 멘탈이 걱정된다.
오늘 결승전 사실상 끝난 거 아니냐?
커뮤니티 등에서 그러한 의문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는 SKY T1도 무언가 보여줘야 합니다. 8강에서처럼 패패승승승의 기적, 물론 나올 수 있습니다만 그건 너무 낙관적이에요. 비장의 카드든 뭐든 가지고 있는 수를 전부 꺼내 놔야 하는 시점입니다.>
세 번째 세트의 밴픽이 시작됐다.
김은준 해설의 말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
가능하다면 꿀꿀이 선수도 사적인 고집을 접어두고 팀을 위한 플레이를 해야 할 때다.
<헤이클린~! 이 픽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SKY T1이 이제 봇라인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겠다! 팀 내에서 드디어 합의가 오간 듯합니다.>
<이전 세트에서 분명 미드와 정글은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승기를 변수없이 유지하기만 해도 한타에서 충분히 강력할 수 있는 팀이 SKY T1 K거든요? 꿀꿀이 선수도 못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오늘은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아요. 선수 본인에게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좋은 판단 내렸습니다.>
막말로 호되게 쳐발렸다.
자존심이 완전 깔아 뭉개졌다.
이쯤 되면 이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될 대로 돼라 던져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말로 멘탈을 다잡은 건지, 아니면 강요에 의해 수비적인 픽을 한 건지는 몰라도 꿀꿀이는 헤이클린을 픽했다.
세 번째 세트에서는 타워 철거의 위주의 안정적인 게임 운영을 지향하겠다는 소리다.
이 헤이클린이라는 챔프가 라인전에서 굉장히 강력한 만큼 최소한 밀릴 일은 없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올마스터 선수도 맞성장 하면서 한타에서 강력한 모습 보여줄 수 있는 챔피언 꺼내 드는 것이 좋겠지요?>
<이미 한 번 좋은 모습 보여준 배인으로 라인 스왑을 노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아니면 꼬그모, 테러스티나 꺼낼 수 있는 챔피언이 너무나도 많아요! 하! 지! 만! 챔프폭이 많아도 고르기가 애매한 상황이 와버렸습니다....!>
올마스터의 유별난 챔프폭은 유명하다.
유명하다 못해 악명까지 떨칠 지경이다.
하지만 현재, 넓은 챔프폭이 오히려 선택에 망설임을 주고 있다.
가장 무난한 원딜러 헤이클린은 SKY T1 K가 가져갔다.
보통 밴픽 구도에서 원딜이 먼저 픽되는 경우가 많지만 신세상 매직은 에이스가 원딜이다.
다른 라인도 밀리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올마스터가 두각된다.
만약 상대의 브루저가 강력하다면 똑같이 무난한 픽을, 아니라면 하드캐리형 원딜러로 왕귀를 노려본다.
그러나 SKY T1 K가 가져가는 픽들이 심상치 않다.
대체 뭘 꺼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절로 나올 수준이다.
<리픈 꺼내듭니다! 이거 단언컨대 탑이 아닙니다. 메딕 선수의 챔프폭에 없는 챔피언이에요. 미드 리픈이 준결승전에 이어 결승전까지 등장해버립니다!>
<테이커 선수가 지금까지 리픈 꺼내서 안 좋은 모습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탑까지 파이어뱃..! 이건 한 마디로 원딜러 딜 넣지 말라는 소립니다. 깐족대다간 순삭 내버린 다는 거에요!>
리픈에 이어 파이어뱃, 심지어 정글러는 탈리반 3세다.
이를 상대로 원딜러가 주가 되는 조합을 꺼낸다?
글자 그대로 짚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이다.
과장이나 비유가 아니라 정말이다.
탈리반이 궁극기로 적을 가두고 파이어뱃이 불바다 미사일을 쏟아버린다.
지난 윈터 시즌부터 스프링 시즌까지 사랑 받던 조합이다.
뭐, 사랑을 받은 만큼 꾸준하게 너프가 되어 이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꺼내 들었다.
올마스터가 딴 마음 먹지 못하도록 아예 조합을 노답으로 짜버렸다.
꼬그모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고 생존기 있는 원딜조차 애매하다.
애초에 저 조합 자체가 뒷라인을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심지어 미드는 리픈이다.
원딜러 한 명 순살 치킨 만드는데 이보다 더 좋은 챔피언을 찾기가 힘들다.
밴픽에서부터 조합적인 이득을 가져가겠다.
단순히 원딜 한 명 마크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조합의, 게임의 운영이 완성도가 높다.
<리픈도, 파이어뱃도 갱킹에 약합니다. 둘 다 근접 챔피언이거든요? 그러면 필연적으로 정글러가 탑과 미드를 봐줘야 해요. 상대적으로 봇라인이 구멍 투성이가 돼버리는데 헤이클린입니다. 그리고 한나까지 SKY T1이 가져갔어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봇은 수비적으로 파밍만 하겠다. 만에 하나 너네가 봇을 키워도 상관이 없다. 한타에서 뭉개버리면 되니까! 이거는 선수 개개인이 아니라 팀 차원에서 머리를 싸매서 구성한 조합일 가능성이 큽니다.>
챔피언의 특색이 하나하나 맞물려 돌아간다.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다.
절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만들어진 조합.
신세상 매직은 과연 어떻게 이를 맞받아칠까.
양 팀의 밴픽이 거의 완료돼 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방안이 나오지는 않은 듯싶다.
픽 시간을 최대한 미루며 고민한 끝에 신세상 매직의 봇듀오가 정해졌다.
<소리커! 롤챔스에서는 보기 드문 카드입니다. 고질라 선수 수비적인 서포터들을 다 한 번씩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켜야 되는 원딜러가 특이합니다?>
<정말 두 가지 의미로 믿기지가 않습니다. 또다시 신규 챔피언의 등장입니다. 핑크스! 출시된 지 채 보름이 안된 따끈따끈~한 신규 챔피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걸 과연 꺼내는 게 옳은 선택일지 저는 솔직하게 모르겠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웃음과 함께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픽의 의미를 정말로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챔피언을 대체 왜 꺼내는지 의아하다는 소리다.
<올마스터 선수 생각 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무패에요? 괜히 객기 부리다가 롤챔스 전승 우승이라는 위업을 말아먹는 수가 있습니다?>
<결국 픽 박았습니다! 진심이라는 거죠! 신규 챔피언 핑크스가 롤챔스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신난 분위기인 전범준 캐스터와 달리 김은준 해설은 진지하다.
진지하게 정색해서 핑크스의 픽을 지적했다.
어째서 그가 핑크스를 가져갔는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안 그래도 SKY T1 K의 조합은 원딜러가 살 수가 없는 조합입니다. 전형적인 뚜벅이 원딜러, 심지어 토이치의 은신이라던지, 애씨의 궁극기 스턴이라던지 최소한의 생존기도 없습니다. 이거는 나 잡아먹어라, 혹은 내가 잡아먹겠다. 극단적인 수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농후해요.>
말이야 바른 말이다.
최대한 좋게 돌려 말했을 뿐 김은준 해설이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는 유추가 된다.
어차피 자기들은 2승했다, 그리고 슬슬 팬 서비스 보여줄 때다.
겸사겸사 롤챔스의 첫 번째 핑크스 픽을 가져가겠다.
그런 심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핑크스는 얼마 전에 초반 라인전이 너프까지 됐습니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라인전이 조금 세다, 딱 그 정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없는 챔피언입니다. 설마 올마스터 선수 핑크스가 너프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픽을 한 건 아닌지.. 진지하게 의문이 들거든요?>
나온지 보름이 안되는 신규 챔피언 핑크스.
당연하게도 부시안과 비슷하게 유저들과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연구가 있었다.
연구의 결과는 초반 라인전이 세다.
평타를 치면 공속이 올라가는데 이 수치가 1레벨에 무려 50%다.
서포터가 조금만 받쳐주면 초반 맞딜로 상대를 찜쪄 먹는다.
이러한 점이 주목 받아 잠깐 쓰였다.
그러다가 곧바로 사장되었다.
라인전에서 이득을 봐도 한타에서 할 게 없더라.
사거리가 짧을 때는 데미지가 세고, 길 때는 광역딜이 묻어나간다.
얼핏 보면 겁나 좋아 보인다.
그런데 막상 써보면 이렇게 애매할 수가 없더라?
짧은 사거리로는 한타에서 포지셔닝을 잡기가 힘들다.
긴 사거리로는 DPS가 테러스티나 급이다.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안되는 계륵이다.
뭐, 풀템이 갖춰지면 나름대로 강력하긴 할 거다.
하지만 그럴 바에 테러스티나나 꼬그모 같은 거 하지.
화력이 아쉬우면 미스터 포텐이나 배인 같은 거 하지.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이 되는 시점에 너프까지 당했다.
초반 라인전 마저 엄청나게 약해지자 쓰는 사람이 아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올마스터 선수에요? 기괴한 플레이로 보는 사람 까무러치게 만들 수 있는 선수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다른 선수가 핑크스를 꺼냈다면 제가 강력하게 비판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쯤에서 말을 아끼면서 올마스터 선수의 분전을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핑크스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옳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현재 현재 세간에서 핑크스를 바라보는 눈은 대략 이러하다.
항상 해설 준비를 뼈 빠지게 해오는 그이니 만큼 과장된 부분은 있어도 틀린 부분은 없다.
보는 사람 가슴이 콩닥콩닥하다.
뛰어 넘어야 할 위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른 선수였다면 차마 두 눈뜨고 보기 힘들어 고개를 돌렸을 상황이다.
그럼에도 올마스터, 언제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선수다.
정말로 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게임이다.
SKY T1 K가 터닝 포인트를 마련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올마스터가 또 신박한 무언가를 준비해왔을지.
관중과 시청자들, 심지어 중계진들까지 긴장이 턱 밑까지 차오른 가운데 시작한다.
어디로 흘러갈지 좀을 잡을 수 없는 신세상 매직 대 SKY T1 K의 세 번째 세트가 막을 올렸다.
.
.
.
* * *
어떤 픽을 박아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사실 어떤 픽을 해도 반드시 아쉬움이 남는 구질구질한 구도였다.
원딜러의 입장에서는 절로 짜증이 날 정도로 상대의 조합이 아니꼽다.
특히 헤이클린과 한나를 가져간 선택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둘 다 주특기는 아닌 챔피언일 텐데.. 굳이 꺼낸 것 보면 코치의 입김이 닿았을 게 분명해.'
지금까지 선보였던 공격적인 챔피언들이 아니다.
헤이클린도 한나도 수비적인 픽으로 이름이 높다.
갑자기 픽의 성향이 바뀐 이유는 명쾌하다.
'명백히 나를 저격해서 준비해온 조합이야. 봇라인에 꽁꽁 묶어두고 위에서 결판을 내겠다는 의도겠지.'
꿀꿀이의 경쟁심리에서 야기된 두 번의 패배.
이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
상대는 팀 차원에서 내 움직임을 봉쇄해 왔다.
어떤 원딜을 꺼내도 마크할 수 있는 조합을 꺼내버렸다.
나의 챔프폭이 넓다 한들 저 조합을 상대로 할 만한 픽은 떠올리기 힘들다.
일례로 꼬그모.
꼬그모가 아무리 삼종신기를 올리면 나름 단단하다 해도 결국 원딜러다.
리픈한테 풀콤 맞으면 A4용지든, 도화지든 결국은 종잇장인 법이다.
테러스티나를 했다간 상대 조합의 스노우볼에 버틸 수가 없다.
설사 버틴다 해도 후반쯤 되면 테러스티나나 헤이클린이나 존재감이 엇비슷하다.
애시당초 헤이클린과의 라인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픽이다.
그 어떤 챔피언을 가져가도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때문에 나는 핑크스를 했고 현재 리쉬를 마친 후 라인전으로 향하는 길이다.
"핑크스.. 괜찮겠어요? 저 한나가 아니라 슈퍼 세이브도 불가능한데."
"괜찮아, 지금은오히려 소리커의 픽이 좋아."
한나와 인어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날이 온다.
그렇기에 한 가지 더 챔피언을 연습했고 그게 소리커다.
수비적인 성향인 고질라로서는 연습할 수 있는 챔피언 폭에 한계가 있었다.
'나중은 몰라도 현재는 손에 익은 챔피언 밖에 못하니까.'
솔직히 말해서 쓰렉귀를 연습시키고 싶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건 역시 쓰렉귀가 맞다.
하지만 성향 자체가 상이한데 이걸 단기간에 연습해서 실전에서 써먹으라는 건 무리다.
결국 비슷한 부류 안에서 찾아야 했고 소리커로 후보가 좁혀졌다.
두! 두두!
라인에 도착하자마자 근거리 미니언을 툭툭 친다.
핑크스는 적을 때릴 때마다 공격속도가 늘어난다.
최대 3회 중첩되는데 이 증가폭이 초반부터 상당하다.
최근에 너프가 됐다고는 해도 적다고는 할 수 없는 수치다.
그렇게 공격속도를 증가시킨 상태에서 간간히 무기를 바꾼다.
기관총을 들 때는 사거리가 짧고, 바주카를 들 때는 사거리가 길다.
사거리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이 핑크스의 매력이다.
뻐엉!
뻐엉!
스플래쉬가 묻어나는 바주카는 뭉쳐있는 세 원거리 미니언에게 광역 피해를 입힌다.
덕분에 핑크스는 서포터의 도움 없이도 1레벨 라인 푸쉬력이 좋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선2레벨을 찍었을 때 킬각을 잡는 것도 용이하다.
'상대의 픽이 수비적이지 않고, 서포터가 공격적이었다면 말이지.'
문제는 고질라가 하는 챔피언 중 킬각을 잡기 좋은 부류가 없다.
기껏해야 인어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상대가 하필 헤이클린과 한나, 라인전 잘 버티기로 손에 꼽는 챔피언들이다.
그러니까 아싸리 수비적으로 파밍을 하자.
이러한 취지에서 소리커는 선택됐다.
당연하게도 두 가지 더 이유가 있다.
상황만 잘 맞아 떨어진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난생 처음 19금씬을 써봤습니다.
실화냐? 독자님들도 아리송하시겠지만 저도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초반부 퇴고하고 있는데 주인공 진짜 쓰레기네요.
지 재밌으려고 선량한 BJ들 저격 해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