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
연환계
예로부터 봇라인전은 선 2레벨을 찍는 자가 우주 끝까지 라인 주도권을 가져 버린다.
헤이클린이 라인전 강챔이라 평받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긴 사거리와 미니언을 꿰뚫는 라인 푸쉬력.
서포터가 조금만 받쳐주면 헤이클린을 상대로 선 2레벨을 찍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바꿔 말하자면 불가능에 가까운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소리다.
뾰롱~촹☆!
몰려든 미니언들의 머리 위로 별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소리커의 Q스킬, 별똥별이다.
쿨타임이 2.5초로 지극히 짧은 편이라 라인 푸쉬에 지극히 효과적이다.
뻐엉!
여기에 핑크스의 대포까지 더해지니 라인클리어가 순식간이다.
핑크스&소리커 조합에 걸리면 헤이클린이고 나발이고 없다.
거의 강제적인 선 2레벨을 찍을 수 있다.
'뭐, 선 2레벨을 찍어도 딱히 이점은 없지만.'
소리커라는 챔피언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발목을 잡는다.
확실히 1레벨 Q스킬의 재발견 이후로 소리커라는 픽은 떠버렸다.
하지만 소리커를 가져간 쪽이 라인전을 이기는 건 딱히 아니었다.
상대가 유지력이 없으면 모를까 한나다.
내가 때려봤자 실드로 막는다.
어찌저찌 딜링을 더 쑤셔 넣어도 아주 약간의 디나이가 한계다.
그짓하다가 갱각이라도 주느니 적당한 선에서 라인 주도권만 잡는 게 옳다.
아니, 그럴 거면 라인 주도권을 잡을 이유가 무엇이 있나?
첫 번째는 그냥 프리하게 파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득이다.
"탈리반 지금 동선이 탑, 미드 쪽에 있을 테니 그냥 쭉 푸쉬하죠. 어차피 온다고 해도 갱호응 안되고요."
상대의 조합이 헤이클린과 한나다.
두 챔피언 모두 갱호응이 쥐약이다.
탈리반이 궁극기라도 배우거나, 엄청 말도 안되게 삼거리를 뺑 돌아오지 않는 이상 갱에 달할 우려가 없다.
물론 상대 입장에서는 그다지 나쁜 흐름이라 생각 안 할 거다.
애초에 그러려고 뽑은 헤이클린&한나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 커도 한타에서 순삭하면 그만이라 여길 거다.
그런데 과연 노리는 대로 게임이 흘러갈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아니겠는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나 또한 원하는 대로 맞성장을 지향한다.
기왕 서로 똑같이 파밍할 거면 내가 조금 더 챙기는 선에서 말이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인생사 꼭 좋게만 흘러가리란 법은 없었다.
선취점이 나온 라인은 다름아닌 탑이었다.
탈리반 3세의 땅굴갱에 싱나드가 당해버렸다.
"아, 꼬챙이 피했으면 살았는데.. 투 점멸로 들어오니 답이 없네."
나지막한 씨지맥의 한탄.
싱나드는 점멸이 아닌 유령화를 든다.
이 유령화는 싱나드와 정말 잘 맞는 스펠이긴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점멸에 비해서 대응력이 떨어진다.
방금 땅굴을 판 탈리반이 깃창으로 싱나드를 띄웠다.
그러자 파이어뱃이 곧바로 점멸 쇠꼬챙이로 호응했다.
유령화를 켜고 좌우 무빙을 틀어봤지만 이미 둔화가 중첩된 상태.
연이은 쇠꼬챙이에 느려진 싱나드는 뒤를 잡히고 말았다.
만약 시간을 조금 더 끌었다면 예은의 백업이 도착했을 것이다.
잘하면 역관광, 못해도 킬교환을 노릴 수 있었다.
"아쉽네. 그래도 딱히 라인 손해는 안 봤잖아?"
"그렇긴 하지만 이거 잘하면 더블 킬 각도 노릴 수 있었는데 아깝다..!"
뭐 어떻게 더블 킬 각을 봤는지는 모를 일이다.
사람마다 킬각을 보는 법은 다르고, 내가 탑 상황을 면밀히 살핀 것도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이미 다 끝난 일, 이제 와서 왈가왈부 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
'킬을 먹은 사람이 탈리반이라.. 이러면 정글 싸움에서 상대가 탄력을 받겠는데.'
탑에서 한 번 죽은 것은 큰 손해가 아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기동력의 신발이 빨리 나온 탈리반 3세의 갱킹력은 정말로 무섭다.
성향에 따라 공템부터 올리는 이도 있지만 백이면 백, 비행기는 신발부터 올린다.
정글템부터 도마뱀 장군의 영혼이 아닌 빨간 장갑을 선택했으니 틀림없다.
"역시 기동신 사왔네. 어설프게 역갱 치지 말고 빨리 6레벨부터 찍는 게 낫겠다. 라이너들이 최대한 사려주고."
"탑은 이제 갱 안 당할 자신 있는데 문제는 미드랑 봇이네."
씨지맥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둘째 치고 탈리반이 너무 풀렸다.
양 팀 정글러의 백업 속도가 차이가 나게 된 이상 이제는 봇라인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탈리반이 어디에 갈지 예측하는 것이, 역갱을 치는 것이 더없이 힘들어졌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내가 봇라인에서 계속해서 파밍을 하는 사이.
결국 한 번 더 스노우볼이 굴러가게 되었다.
"빼애애액! 즉발 스턴 사기 아님???"
"그 말 만큼은 네 의견에 동의한다.."
테이커의 리픈이 대쉬 이후 점멸-스턴 콤보를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탈리반이 한 일이라고는 평타 한 번에 궁극기 때려 박은 게 끝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리픈의 궁극기, 숙청자의 칼은 상대의 체력이 낮아질수록 데미지가 상승한다.
스턴 이후 들어가는 한 방의 평캔과 점화, 그리고 숙청자의 칼에 아링은 두 동강 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였다.
'게임이 점점 산으로 가는 구만.'
반반만 가도 상대의 조합이 워낙 막강하다.
이렇게 잘 커버리기까지 하면 내가 한타때 생존하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큰 거 한 방, 역전의 실마리가 절실한 시점이다.
탑에서 또다시 일이 터졌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씨지맥의 고질병이 나와버렸다.
유리한 상황에서는 스노우볼을 잘 굴리지만 그 반대.
불리한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무언가를 꼭 해보려고 한다.
프로게이머로 자리 잡은 이후 어느 정도 고치기는 했다만 사람 본성이라는 게 어디 가지 않는 법이다.
툭 하면 튀어 나오는 버릇이었고 결국 일이 불거졌다.
간발의 차이로 솔킬을 따이게 된 건 씨지맥 쪽이었다.
"아아.. 이거 레벨 같았으면 파이어뱃 따고 유리수정 효과로 살았는데.."
중얼거리는 씨지맥의 혼잣말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애초에 레벨 차가 나는 시점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든.
원래 솔킬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이 죽을 가능성을 담보로 싸움을 거는 행위다.
만약 씨지맥이 파이어뱃을 땄다면 레벨업 하며 수호자의 유리수정이 터진다.
그 효과는 8초에 걸쳐 체력과 마나를 채워준다.
씨지맥은 그것을 기대하고 싸움을 걸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다.
이번 세 번째 세트는 자신의 의도대로 게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전화위복이라는 것도 있다.
솔킬을 따고 유유히 귀환을 타던 파이어뱃이 봉변을 당한다.
별안간 날아온 미사일에 폭죽처럼 터져 사라졌다.
"오, 나이스 저격! 이러면 나 신발 나오겠다."
"저걸 어떻게 날릴 생각을 했네요? 센스 장난 아니다.."
마치 이즈리얼, 혹은 애씨와도 비슷한 센스 플레이다.
흔히 말하는 저격궁으로 상당한 난이도를 요한다.
그러나 핑크스의 헬파이어 미사일은 비교적 난이도가 낮다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글로벌 궁극기 중에서 탄속이 가장 빠르다.
정확히는 날아가는 거리에 비례해서 실제 미사일 마냥 가속도가 붙는다.
아주 먼 거리에 있는 적을 쏘아 맞힐 때 다른 두 글로벌 궁극기보다 용이하다.
찰칵!
꽁킬을 먹은 덕분에 VF소드가 나왔다.
그리고 적팀의 관심 또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쟤 혹시 한 번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팀내에서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
.
.
* * *
경기의 흐름은 더없이 이상적이다.
탑에서 첫갱을 성공시킨 후 미드에서도 성과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탑은 솔킬이라는 스노우볼까지 굴러갔다.
"설마 궁극기로 죽을 줄은 몰랐네. 체력도 꽤 남아있어서 방심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에 메딕은 반응을 해냈다.
점멸은 쿨타임이라 쓸 수 없었지만 실드를 사용했다.
파이어뱃은 짧은 쿨타임의 실드 스킬이 있어 어중간한 공격은 흡수해낸다.
솔킬을 따낸 이후 회복한 체력까지 생각한다면 버틸 수 있었다.
만약 이즈레알이나 애씨의 궁극기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 핑크스의 궁극기는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이거 혹시 핑크스 키우면 큰일나는 흐름은.. 아니겠지?"
모두가 머릿속으로 한 번 떠올리긴 했지만 애써 외면하던 현실.
서포터인 곰돌이만두가 입밖으로 내뱉은 것을 신호로 경종을 울렸다.
혹시 저렇게 하나하나 킬 줏어먹고 성장해서 일내는 건 아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올마스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핑크스가 한타 캐리력이 무궁무진한 챔프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맞지?"
"기껏해야 생존기 없는 테러스티나 수준이잖아? 우리 조합 생각한다면 잘 커도 위협은 되지 않을 거야. 아마도.."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 모를 리 없다.
알고 있음에도 저 올마스터라는 남자는 마음을 흔들리게 만든다.
또다시 일을 벌여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감은, 초조함은 쌓여만 간다.
결국 팀내에서 한 차례 오더가 오갔다.
"정 불안하면 내가 한 번 봇 찔러볼까? 최소 점멸을 뺄 수 있을 걸?"
"궁극기로 가두기만 해도 최소 점멸 맞네. 근데 역갱은 진짜 조심해야 해."
SKY T1 K의 정글은 탈리반 3세고, 신세상 매직은 거미여왕이다.
기동성은 탈리반이 좋으나 한 번 꽝 맞부딪히면 거미여왕 쪽이 세다.
곰돌이만두는 그 점을 염려해 이야기를 꺼냈으나 비행기는 피식 웃었다.
"크크크크.. 진정해 파트너. 너의 힘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야."
"비행기야.. 만화 적당히 보자.."
평소도 아닌, 오른손의 흑염룡을 개방한 자신이다.
킬과 어시스트로 아이템 차이까지 벌려냈다.
설사 갱킹 루트가 들켰다고 한들 따라잡힐 리도 없다.
아직 가죽신도 들고 있지 않은 상대와 기동신이 완성된 자신의 차이는 명명백백.
챔피언 자체의 기동성까지 생각한다면 백업조차 불가능하다.
애시당초 상대는 봇라인 갱킹을 생각해두고 있지 않고 있을 거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은 호응만 완벽하게 해줘."
"오케이.. 정글러 나으리가 알아서 하겠지."
삭초제근, 불안의 싹은 미리 잘라둠이 옳다.
아무리 한타 조합을 원딜러 포커싱 위주로 짰다고 하나 세상에는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
나중에 저거 왜 키웠지 후회할 바에 한 번 잘라서 성장을 억제시킨다.
그렇게 되면 원딜러 간의 화력 차이에서 아쉬워질 일 전혀 없어진다.
사거리는 헤이클린도 똑같이 길다.
비슷하게 성장하면 밀릴 이유가 하나 없다.
판단을 내린 비행기는 우물로 귀환해 봇라인을 살폈다.
"비행기야, 탑갱 안 올 거니? 얼굴 안 본지 좀 오래된 거 같다?"
"메딕혀엉.. 저 탑갱만 한 세네 번 갔어요. 봇 가고 바로 탑 들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SKY T1 K의 탑솔러 메딕은 전체적인 판단력도 좋고 개인 기량도 뛰어나다.
다만 탑신병자 기질이 조금 많이 심하고 정글러를 노예처럼 부려먹는다.
"그래, 상대 정글이 오면 나는 킬각을 잡아야 하는 궁극기를 라인클리어 용도로 써야 하겠지. 아주 비참하고 처량할 거야."
"..저 일단 봇 갈게요."
만약 상대가 탑에 갱을 간다고 해도 파이어뱃은 대처가 가능하다.
밀려오는 미니언 웨이브를 그냥 궁극기로 먹고 튄다.
그렇게 한 차례 시간을 벌면 자신이 봇을 찌른 후에 탑 백업을 봐줄 수 있다.
비행기는 봇라인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쿠! 챠앙!
기동력의 신발에 깃창의 기동성.
두 가지가 합해지니 봇라인에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미니맵을 찍어 한 번 싸악 살피니 삼거리를 돌아 찌르면 성공할 만한 흐름이다.
"일단 핑크스 노려보고 안되면 소리커로 바로 포커싱 옮겨야 돼. 알지?"
"한 명만 잡으면 타워나 용이 보너스니까.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가자."
핑크스를 잡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상대는 십중팔구 꼬리를 내주고 도망갈 게 뻔하다.
꿩 대신 닭인 격이지만 소리커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한 명만 잡아도 포탑을 철거할 수 있다.
미니언 웨이브를 꼴아박게 만드는 것은 덤이다.
만에 하나 적 정글러가 탑쪽에 보인다면 용까지 시도해봄직 하다.
설사 파이어뱃이 갱킹을 당해 죽는다고 해도 남는 장사.
안 그래도 유리했던 게임에 쐐기가 강하게 박힌다.
한 발 앞서 물꼬를 트기라도 하듯 미드 라인에서 솔킬이 터져 나왔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링의 유일한 CC기 유혹이 견제에 빠지자마자 테이커가 킬각을 잡아냈다.
수려한 움직임으로 파고들어 거침없이 폭딜을 우겨 넣는다.
가진 바 개인기를 여과없이 자랑하며 스노우볼을 굴려버렸다.
킬각을 노려온 것은 아링도 마찬가지였기에 아슬아슬했다.
러브샷이 될 가능성도 농후했으나 실드의 쿨타임이 돌아오며 살아났다.
테이커라면 이조차 계산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비행기의 탈리반 3세가 봇라인에 도착했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