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73화 (57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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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환계

네 번째 세트가 끝이 났다.

나는 예은의 손을 잡고 으슥한 데로 끌고 갔다.

행인의 왕래가 적을 수밖에 없는 무대 뒤편의 한 켠이다.

'심란한 건 이해되는 노릇이지만..'

결승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예은과 조금 격한 대화가 오갔다.

딱히 감정 싸움을 한 건 아니지만 사안이 중대했다.

중국 측에서 보내온 제의에 응할 것인가, 응하지 않을 것인가.

이는 결승전이 시작하기까지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정할 수 있는 무게감이 아니었다.

때문에 미뤄두었다.

당장 결정할 이유가 없지 않나.

결승전의 결과를 낸 후 생각해 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우승도 거의 코앞이니, 너무 심란해 하지 말고 침착해."

"…."

예은이 얼굴을 휙 돌린 채 대답을 안 한다.

첫 세트부터 세 번째 세트까지 줄곧 자잘한 실수를 연발했다.

아니, 실수도 실수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다.

말도 잘 안 하려고 하고 왜 이러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 같다.

남자들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런 이야기가 있기는 해도 예은이다.

항상 시원털털 동성 친구 같은 느낌을 주던 그녀다.

갑작스런 심정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안하다.

"하하.. 게임이... 잘하려고 했는데... 반드시 이기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잘.. 안되네."

예은이 실없이 웃으며 말꼬리가 흐려지고 더듬기 까지 하는 모습, 생전 처음 본다.

알고 있지만 정색하고 거짓말하면 티가 절대 나지 않을 녀석이다.

둔감하기 이를 데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예은의 마음을 많이 흔들어 놓았던 듯하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나는 말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다.

말로서 예은을 편하게 해줄 방법은 잘 모르겠다

"자, 나 어디 안 가."

"바보야.. 누가 보면 어쩔라구.."

사람의 왕래가 적은 거지, 아예 없다는 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망설이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

들킨다고 딱히 켕기는 사이도 아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예은을 꼬옥 끌어 안았다.

.

.

.

* * *

예은과 다시 부스 안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단락이 나있었다.

네 번째 세트의 패배 요인은 무엇인가.

게임의 승패가 미드와 탑, 그리고 정글에서 많이 갈려버렸다.

이번 게임은 나도 그다지 잘한 건 없다.

"내가 조금 더 뚝심 있게 버틸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싱나드나 말카림으로는 그게 힘드네."

"점멸을.. 들면 안되겠죠? 애초에 순수한 근접 챔피언이라 갱각이 안 나올 수가 없으려나.."

씨지맥과 고질라의 말대로 탑이 조금 더 버텨줬으면 싶다.

미드의 경우 차라리 치열하게 주고 받는 편이 낫다.

이유인 즉, 테이커다.

테이커의 미드를 마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초홍이를 높이 평가한다.

본인은 불만 사항이 가득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빼애애애액! 솔랭에선 솔킬 땄는데!!"

"롤챔스 결승전에서 그딴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 나 화내도 되냐?"

저 단세포 두뇌는 그렇다 치고 미드는 어차피 다른 방안이 없다.

초홍이의 성향상 사리면서 파밍하는 플레이는 잘 못한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편이 낫다.

가끔 고꾸라지기도 하지만 실수가 크지 않은 편이다.

어설프게 수비적으로 갔다간 다른 라인이 로밍에 휩쓸릴 수 있다.

그러니까 사고 칠 거면 그냥 미드에서 치라고.

"빼애애애애액! 머리 때리지 말라고!!"

"너 때문에 내 주먹이 아프다. 책임 좀 져줘라."

별로 세게 때린 건 아닌데 반응이 참 맛깔난다.

내 안의 폭력적인 무언가가 눈을 뜰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든 간에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지만 참 애매모호하다.

'3승 이후에 1패.. 결국 전승 우승은 물 건너가 버렸네.'

이번 서머 시즌에서 딱 한 번 패배했다.

그 한 번으로 인해 굉장히 아쉬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롤챔스 첫 번째 전승 우승의 위업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우세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한 판 더 지기라도 하면 분위기가 반전될 우려가 있어.'

패패승승승이라는 기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기던 쪽 입장에서는 우리가 뭐 어떻게든 한 판 이기면 되는데.

그러다가 어? 어?! 어어어어어??? 어처구니 없이 패배하고 만다.

우리팀이라고 그러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미리미리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 대처해야 함이 옳다.

어떻게든 한 판만 이기면 되지라는 물렁한 각오로 있다가는 역전패의 당사자가 될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생각을 가진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돌려 말할 시간 없어서 툭 터놓고 말할게. 다들 말을 안 꺼낼 뿐이지 알고는 있을 거야. 정글러, 예은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많이 둔해. 솔직히 제 역할을 못해주고 있지."

누군가는 꺼냈어야 할 이야기였다.

씨지맥이 아니었다면 내가 말하려던 참이었다.

작전 타임을 요청한 탓에 시간은 충분하지만 내 입으로 말하려니 난처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총대를 메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데 잘 이야기 해주었다.

"맥의 말이 맞아. 내가 예은이랑 이야기 하고 온 것도 그것 때문이기도 하고. 자세한 건 게임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제부터는 잘한데. 일단.. 믿어 주자."

팀의 주장으로서 조금은 더 따끔한 지적을 하는 게 맞았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물러터진 모양이다.

눈치를 본다기 보다는 애시당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놓쳐버린 바톤을 대신 받아준 이가 있었다.

물러터진 나를 대신해 이청호 코치가 가볍게 꾸지람을 놓았다.

전체적인 게임의 구도를 포함해서 상당히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예은의 컨디션이 안 좋은 이상 우리도 단합해서 수를 내야 해. 비슷하게 개인기 위주인 상대 팀은 이미 뭉쳤어. 이대로 다섯 번째 세트 시작하면 또 질질 끌려 다니다가 비벼질지 몰라. 그래서 말인데 나한테 수가 있거든?"

스프링 시즌 당시 결승전에서 있었던 사건.

그 어색함을 풀어내는 데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이제는 다 끝 난 일이고 더 이상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서 문제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얄팍한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반발심이 생기고 만다.

용서할지 언정 잊지는 않는다.

이청호 코치가 일반적인 게임단들의 코치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여태껏 큰 고난없이 순항만 해왔기에 더더욱이다.

막말로 그가 없다고 불편해 할 팀원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이제부터는 많은 것이 바뀔 예정이다.

"테이커, 물론 잘해. 메딕의 개인기, 상당히 위협적이야. 하지만 그 두 사람이 설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정글러 덕이야. 우리도 똑같이 받아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그런데 못하잖아, 할 수 없잖아.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돼. 일단 첫 번째로 적의 아킬레스 건, 탈리반을 자르자."

이청호 코치가 팀의 중심으로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에는 계기가 필요했다.

오늘로서 그 계기는 마련되었다.

능력이 없으면 모르되 충분하다.

SKY T1 K의 김다균 코치는 물론 명장이지만 이청호 코치도 그에 뒤쳐지지 않는다.

방금 전,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내 할 일 하기도 버거워 복잡했던 머리를 망치로 꽈앙! 때려준 기분이었다.

'상대가 조합을 저렇게 짠다면 굳이 바위를 밴할 이유가 없었지.. 내가 너무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 했어.'

과거 LCL에서 분명 깨달았을 터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같은 실수를 반복할 뻔했다.

게임의 상황이 불리하게 굴러가자 시야가 좁아져 버렸다.

"상대가 탈리반 대신 바위를 가져가면 어떡하죠? 올마형이 굉장히 괴로울 텐데요."

"그건 나머지 팀원들이 할 일이지. 원딜러에게 포커싱이 집중되면 그만큼 다른 라인이 살잖아. 우리가 쟤네한테 밀릴 것이 전혀 없는데 지금까지 게임 좀 말렸다고 너무 기죽어 있어. 은연중에 마음이 지고 들어가고 있다고. 다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알 거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코치란 선수들을 총괄하는 자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써먹어야 한다.

때로는 마음을 후벼 파는 아픈 지적이라도 해야만 한다.

방금 이청호 코치의 말은 굉장히 맞말이었다.

'사실은 내가 말했어야 했는데..'

변명이긴 하지만 첫 단추가 조금 안 좋게 꿰었다.

팀원들의 컨디션이 썩 안 좋아 보이니 내가 잘하자, 내가 알아서 어떻게든 해보자.

설사 그렇게 판단했다고 해도 이야기를 꺼냈어야 함이 옳다.

팀을 꾸린 이상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터놓아야 했다.

게임이 갈수록 더 답답해졌던 것은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른다.

"알겠셈. 위는 위대로 해보겠셈."

"그럼 나도 싱나드, 말카림 말고 파이어뱃에게 효과적이고 내 개인기를 더욱 살릴 수 있는 걸로 해볼게."

첫 세트부터 세 번째 세트까지 연달아 이기고 고작 한 번 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한 번의 패배는 팀원들의 마음을 싱숭생숭 들쑤셔 놓기 충분했다.

그러했던 갈팡질팡도 여기까지다.

각자가 다시 컨디션과 페이스를 되찾았다.

나의 신세상 매직이 아닌, 우리의 신세상 매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

.

.

* * *

허무하게 끝나버릴 뻔 했던 섬머 시즌의 결승전.

기왕 해운대에 특설 무대까지 설치한 만큼 아쉬운 일이다.

첫 번째 세트부터 세 번째 세트까지 경기의 내용은 알찼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신세상 매직이 가져갔다.

이어지는 네 번째 세트에서 신세상 매직이 승리한다면 오늘의 결승전이 끝이 났을 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강해집니다! 전투력이 눈에 띄게 팍팍!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죠?>

<아무리 경력이 많은 선수들도 다전제에서 연패하기 시작하면 기가 꺾입니다 하지만 SKY T1 K,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거든요? 선수들 개개인이 전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임에도 긴장은 커녕 집중력이 더욱 더 올라갑니다. 현재 경기 스코어 3대1. 이제 겨우 한 세트 따라왔습니다만 몰라요. 어쩌면 정말 이제부터가 시작일지 모릅니다..!>

첫 번째 세트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했고.

두 번째 세트에서 서서히 밀리다 결국 경기를 내줬다.

세 번째 세트는 거의 따내기 직전에서 역전 당했다.

그리고 네 번째 세트에서는 기어코 승리를 가져가고 말았다.

다름 아닌 신세상 매직, 그 올마스터가 중심이 되는 팀을 상대로 말이다.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즐비해 전력만 보면 기존 프로게임단들을 가뿐히 찍어 누르는 실정이다.

어떻게 보면 패배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럼에도 SKY T1 K는 포기하지 않고 바득바득 기어 올라가 마침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SKY는 경기를 치르면서 내내 분석을 했습니다. 어째서 지는 걸까? 매 게임 필사적으로 활로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닿았어요. 신세상 매직이 작전 타임을 요청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몰아 넣었습니다.>

<세트 스코어는 그대로지만 분위기는 역전됐거든요? 다 잡은 우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작전 타임까지 요청한 신세상 매직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면 막말로 패패패승승승승! 이어질 수 있는 거에요!>

흥분해서 떠드는 김은준 해설위원과 전범준 캐스터의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단순히 우연한 이득을 스노우볼로 굴려 게임을 가져간 게 아니었다.

오히려 초반 상황만 놓고 보면 세 번째 세트가 배는 밑그림이 좋았다.

SKY T1 K가 네 번째 세트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철두철미한 운영, 그리고 짜임새 있는 조합에서 가져가는 안정적인 재태크였다.

서로 비등하게 성장한 상황에서 한타 조합을 놓고 봤을 때 SKY T1 K가 웃어줬다.

이는 신세상 매직이 가진 본질적인 색에서 비롯됐다.

신세상 매직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개인기 위주로 조합을 짰다.

어느 라인도 기량이 뛰어난 지라 슈퍼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수 개개인이 잘해줄 때에 한정해 단점보다는 장점이 부각된다.

하지만 오늘 뼈저리게 깨달았다.

기량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이렇게 되는구나.

<그러나! SKY T1 K가 해냈다는 건 신세상 매직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다섯 번째 세트에서는 이를 증명할 수 있을지! 확인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밴픽~~ 보시죠!>

중계진들은 언제나 이야기를 부풀려서 늘여 놓는다.

말이 그런 거지 막상 게임에 들어가면 신세상 매직이 가볍게 경기 가져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경기를 보는 수많은 신세상 매직의 팬들은 그러한 마음 가지고 있지만 내심 불안하고 초조한 것도 사실이다.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다섯 번째 세트의 시작.

완전히 바뀌어져 버린 신세상 매직의 밴픽 구도는 팬들로 하여금 침을 꼴깍꼴깍 삼키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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