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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76화 (57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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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어라

째액~째액~!

귀를 쪼는 듯한 새소리가 나의 단잠을 깨운다.

도심가에 사는 탓에 들을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무슨 일일까.

드문드문 나는 기억이 대략적인 과정을 알려준다.

'결승전 끝나고.. 2차, 3차, 달리다 어디선가 분명 잔 거 같은데….'

단언컨대 나는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취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드시 풀어야 할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물론 팀원들과의 뒤풀이가 먼저였기에 2차, 3차 달리기는 했다.

하지만 3차가 끝날 때까지 분명 취했던 느낌은 없다.

아니, 술꾼들이 으레 나 안 취했어~~!! 하는 억지 부리기가 아닌 정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을 했더라..'

당장 일어나서 확인을 하는 게 편하겠지만 속이 메스껍다.

숙취가 장난이 아니다

머리도 띵한 게 이대로 더 누워 있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돌리는 행위마저 자제하고 싶을 정도지만 그래도 최소한은 해야지.

나는 눈꺼풀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어?"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더블보다 커서 아마 퀸, 혹은 킹 사이즈라고 생각된다.

그 크나큰 침대 건너편에 사람이 있었다.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아, 예은이구나..'

잠이 덜 깨서 시야가 또렷하진 않지만 구분은 간다.

내 주위에 달리 추측되는 미인은 없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어쩌다 필름이 끊겼을까.'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는 집어 넣어두고 과정부터 추측해보기로 했다.

2차로 노래방을 갔다가, 3차로 바에 갔다.

곰곰이 기억을 거슬려보니 기억이 난다.

술에 약한 애들은 3차에서 낙오되었던 것 같다.

이청호 코치가 애들을 데리고 가서 방을 잡았던 듯싶다.

그리고 나는 예은과 분명히….

"야, 일어나봐. 여기 어딘데?"

손을 뻗어 예은을 흔들어 깨웠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지만 마음은 조급하다.

이제서야 여기가 어딘지, 어째서 여기에 있게 된 건지 대략 감이 잡힌다.

그 감이 맞다면 이곳은 일반적인 호텔이 절대 아니다.

"킥.. 이제 깼어?"

내가 일어났는데 나보다 잘 마시는 네가 아직까지 자고 있을 리가 없지.

예은은 역시 깨어있었고 눈꺼풀을 보니 눈곱도 없다.

머리칼도 가지런한 게 진작 일어나 세안을 마친 모양이다.

도발스런 미소로 히죽 웃어온다.

"여긴 대체 어디야?"

"모르는 편이 나을 텐데..?"

적잖이 깐족거리며 내 심기를 긁는다.

하지만 나도 떠오르는 바가 있다.

어디까지나 확인 삼아 물어보는 거지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이곳은 어느 섬 위에 있는 별장 안이다.

"땡, 반만 맞았어. 여기 원래 호텔이야. 지금은.. 나랑 너밖에 없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3차를 끝내고 나와 예은은 적당히 더 마시다가 잠자리를 잡으려 했다.

8월 중순의 성수기인 만큼 제대로 된 곳을 잡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예은이 이 주위에 별장이 하나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바에서 적당히 마시다가 택시를 잡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분명 취하지 않았고 이곳의 위치는 기억 안 나지만 가는 시간 정도는 기억난다.

택시를 타고 한 시간 가깝게 걸렸다.

너무 멀지 않나 생각하던 참에 도착한 곳은 더욱 가관이었다.

항구에 한 척의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엄청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갖출 거 다 갖춘 중형 요트.

이런 거 한 척에 몇 억 한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이제 와서 그런 걸로 하나하나 놀라기에는 내가 새가슴이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 너무 으리으리한 거 아니야? 개인 별장 주제에?"

"다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돈 받고 해서 유지하는 거지. 돈이 뭐 땅 파서 나와?"

예은이 손바닥으로 나를 찰싹찰싹 때려온다.

적어도 내 안의 부자는 땅 파서 돈 만든다는 느낌이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조그만한 섬에 자신만의 왕국을 지을까.

내 기억에 남은 섬은 임팩트는 어마어마했다.

"에이, 그건 너무 오바하는 거고. 나름 낭만이 있는 건 맞지만."

낭만이라.

아침에 일어나 고개를 돌렸을 때 아리따운 여자친구가 보이는 것 이상으로 남자의 낭만은 없다.

그것이 현실화 되었지만 엄청나게 찜찜해서 도저히 마음이 편치 못하다.

섬에, 호텔에 오게 된 과정은 기억나는데 그 이후가 애매모호 흐릿하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걸까.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의심스런 표정으로 예은을 지긋이 노려봤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아니, 평생 아무것도 안 하고 살래?"

예은이 나의 손을 꼭 잡아오며 눈을 마주 본 채 입을 열었다.

장난스러운 평소의 느낌이 아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듯한 감미롭고 달콤한 속삭임.

그 유혹에 당장은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너 오늘 뭔가 이상한데.. 무슨 일 있어?"

"..글쎄, 너랑 알게 된 이후로 가끔씩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고 하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배, 아니 그 배 이상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나는 몰라도 예은은 어리다.

성격상 어린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알고 지내다 보면 은근히 여린 면이 많다.

남에게서 상처 받기 싫어 단단한, 아주 단단한 알껍질로 자신을 보호했을 뿐이다.

그랬던 예은이 처음으로 이해자를 만났다.

마음 맞는 친구, 그리고 연인 여기까지 발전하는 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평생 소중한 인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인연이란 언제고 어떤 방식이로든 비틀어질지 모른다.

남들 보다 조금은 더 긴 인생을 살아온 나는 알고 있다.

"혹시.. 나 부담스러워?"

"그러네. 예쁘고, 돈 많고, 성격은 조금.. 유감스럽지만 다른 부분이 워낙 출중하니까."

최근에는 그 성격도 많이 안정적으로 변했다.

뭐, 나에 한해서라는 느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도 사람 됐다.

이 상태라면 한동안은 혼자서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만약에 내가 한국에 없더라도 말이다.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너 없어도 별로..... 상관없거든?"

그렇게까지 말하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 받는다.

하지만 어찌 됐건 만약에, 아주 만약에 이적을 받아들인다 해도 걱정은 없을 것만 같다.

뾰로통한 표정의 예은이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확 가둬버릴까도 생각했는데, 됐어. 나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가둔다니.. 나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걸까.

혹시 내 필름이 끊긴 것과 상관 관계가 있는 이야기일까.

그보다 당장 곱게 차려 입은 예은의 잠옷 차림이 더 신경 쓰인다.

야시시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신선해서 좋다.

그리고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알겠다.

"너도 퍼뜩 일어나. 안 그러면 아침 안 줄 거니까."

"그래,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누워 있다 갈게."

한 번 노리듯 흘겨봤지만 다행히도 별 말없이 방을 나가 주었다.

딱히 졸려서 안 일어난 건 아니고 다른 쪽 사정이다.

신체 건장한 남성인 이상 아침에 조금 힘겨운 점이 있다.

굳이 따지자면 힘이 넘쳐서 곤란한 점도 있다.

어지간하면 조절하고 싶었지만 어쩔래야 어쩔 수가 없었다.

예은이 입은 원피스형 잠옷 차림 아래에 매끈한 다리가 시야에 잡히고 말았다.

안 먹으면 상 치운다는 협박조가 들려오고 나서야 나는 겨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

.

.

* * *

롤챔스 섬머 시즌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 내용은 더없이 충실해서 아쉬울 부분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얼밤과 불밤, 맛밤 게임단의 팬들로서는 응원하는 팀의 부진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풀렸다.

결과적으로 불밤은 다음 달 말일에 열리게 될 롤드컵의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얼밤의 팬들 또한 나름대로 아쉬움을 달랠 만한 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오늘부터 진행될 섬머 시즌의 후일담.

본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기들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롤챔스 중계진에 합류한 파릇파릇한 신입 해설자 클끼리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에요?>

이제는 전前 프로게이머가 되어버린 클끼리가 전범준 캐스터의 우측에 자리 잡았다.

잉벤 등의 커뮤니티를 안 하는 라이트 팬들로서는 어지간히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어째서 얼밤의 주장 클끼리가 중계진의 자리에?

이미 한 차례 파란이 일었던 사건이다.

클끼리는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고 해설자로 전직했다.

이제는 프로게이머 클끼리가 아니라 게임 해설가 클끼리로서 팬들을 만나 뵙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롤챔스 본선에서 마이크를 쥐는 건 그 본인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

다소 시기가 이르기는 하다만 승강전의 해설을 맡으며 천천히 자리를 잡아갈 예정이다.

이보다 더 알맞은 실전 연습 무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로게이머로서는 최고령자지만, 해설자로서는 막내입니다. 제가 롤챔스의 젊은 피 역할 수행할 수 있도록 팬분들의 많은 성원, 앞으로도 쭈욱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액면가는 딱히 저보다 낮아 보이지 않는데.. 귀여운 포지션을 자처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래 봬도 같은 80 라인이에요?>

<같은 80이라도 나뉘지 않겠습니까? 저는 팔팔한 88년 태생의 20대입니다. 복학생 선배가 신입생한테 자꾸 친구 먹자고 하면.. 곤란해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선배님.>

흔히 경력 있는 신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프로게이머 시절부터 넉살 좋기로 유명했던 클끼리.

아주 자연스럽게 김은준 해설과 잡담을 주고 받으며 분위기를 띄워나간다.

본선이 아닌 승강전이라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시청자 수는 많다.

이번 섬머 시즌부터는 본선 무대의 참가팀이 늘어난 지라 더더욱이다.

그 만큼 승강전도 더욱 더 빡세게, 그리고 냉혹하게 진행된다.

한 차례 유치한 나이 싸움이 끝나고 헛기침을 내뱉은 김은준 해설이 이를 설명했다.

<조별 리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여덟 팀들 중 무려 절반이 LML로 내려가게 됐습니다. 각각 네 팀씩 두 조로 나뉘어 1,2위는 잔류, 3,4위는 강등. 생존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이기는 팀은 잔류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LML로 내려가서 피튀기고 박튀기는 처절한 승부 펼치지 않아도 됩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져서는 안되죠?!>

익숙하디 익숙한 전범준 캐스터의 목소리가 관중들의 호응을 끌어낸다.

그렇다, 자존심 싸움이다.

사실 LML로 강등되어도 1류팀들은 어지간하면 올라온다.

하지만 강등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불명예다.

팬들로서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만에 하나 LML에서 허무하게 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가슴 졸이기 싫은 법이다.

응원하는 팀들이 승강전에 발을 디딘 팬들로서는 요 며칠간 진행될 승강전은 중요도가 남다르다.

더더욱이 승강전이 끝난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잉벤 뿐만 아니라 해외의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래딧까지 달아오르게 만든 하나의 경기.

우승팀이 정해진 이상 관심 하나 줄 이유가 없던 3,4위전이 그렇게나 화젯거리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승리를 기원하는 팬분들이 엄청나게 많죠? 말하기가 조금 민망합니다만..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은준 해설위원이 살짝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어조로 말을 늘여 놓는다.

그도 그럴 게 가짜에어 독수리는 정말로 인기가 없는 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3,4위전에서 가짜에어 독수리가 이기길 원하는 팀이 많다.

바로 신세상 매직의 롤드컵 진출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말문이 트여도 한참 전에 트인 클끼리가 눈치 빠르게 편을 들어왔다.

<정말로 순수하게 E-스포츠의 팬으로서, 그리고 전前 프로게이머로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분석을 하자면 저는 가짜에어 독수리가 약간은 더 승산이 높다. 그렇게 보거든요? 혹시 몰라서 말씀 드리는데 막 지르는 발언 아닙니다?>

라인을 탄다기 보단 개인적인 의견이다.

리심만 밴하면 삼선 레드의 초반 스노우볼은 과격하지 않다.

과격하지 않다면 가짜에어 독수리의 초반을 넘어서기 힘들다.

또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핑크스, 그리고 부시안!

대처법이 완전히 나오지 않은 하드캐리형 원딜러의 출현이 예고된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승리를 점찍는 클끼리의 이야기는 나름 그럴 듯했다.

<어쩌면 오늘 승강전에서도 나올 수 있어요? 최근 선수들이 격하게 연습하고 있다는 소식 모를 수가 없거든요!>

<솔로랭크 뿐만 아니라 스크림 분위기도 살~벌합니다. 이미 원딜 선수들은 다 한 번씩은 건드려봤어요. 좋은 평을 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특히 부시안 안 좋다고 했던 선수들, 우두루급 태세전환 마쳤다고 정보 들어왔습니다.>

로드 오브 로드의 전前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점은 선수들간의 친목에도 크게 작용한다.

작게는 개개인별 정보부터, 본래라면 기밀사항인 스크림 정보까지 그의 귀에 들려올 수 있다는 소리다.

새로운 해설자가 합류함으로서 변화를 맞이하게 될 한국의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그 시발점이 되어줄 승강전이 나흘에 걸쳐 승자와 패자를 가린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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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제가 무언가를 말씀드릴 때 말씀을 자세하게 드릴 수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어요. 댓글창 같은 경우에는 후자에 속해요. 슼팬들을 위함은 드립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설명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에요.

이틀 후에 3부 완결 후기가 올라 가는데 이 경우가 전자에 속합니다.

완결 후기를 보고도 납득이 안되시는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그때 가서 저한테 돌을 던지셔도 무방합니다.

*오늘 눕혀진 사랑니 뽑으러 갑니다..

완결날 때까지 묵히고 싶었는데 너무 아파서 결단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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