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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78화 (57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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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어라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섬머 시즌의 3,4위를 가른다.

준결승전에서 탈락한 삼선 레드와 가짜에어 독수리가 자웅을 겨룬다.

모종의 이유로 역대급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두 팀간의 경기는 참으로 치열하다.

경기는 이미 진행되어 현재 세트 스코어 2대2!

블라인드 밴픽으로 치러지는 마지막 세트조차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번 게임을 따내는 쪽이 3위라는 성적을 거두게 된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많이 유리합니다. 안 그래도 철옹성처럼 단단한 팀인데 초중반에 손해를 본 게 없어요. 여기서 바론 한타를 하든, 바론을 먹든 둘 중 하나만 해도 게임이 굳어집니다.>

<양 팀 미드라이러가 전부 자드라 스플릿도 안 통해요. 어지간하면 자드 장인으로 소문난 다대기 선수가 유리하다, 슈퍼 플레이 해낼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만 오늘 경기에 한해서는 그렇지가 않죠?>

금일 해설자로 나오게 된 두 사람은 강빈과 클끼리다.

강빈 해설위원이 선배답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전체적인 상황을 쭈욱 살펴냈다.

그의 말마따나 경기의 상황은 가짜에어 독수리가 유리하다.

조금도 아니고 많이.

초중반 라인전에서 무언가를 내주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가짜에어 독수리가 달라졌다.

우리 아이가 오늘은 길바닥에 엎드려서 땡깡을 부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미드라이너인 갱붐이 각성이라도 하듯 사력을 다해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오늘의 MVP는 누가 뭐래도 갱붐이죠. 원래 살짝 둔하다는 평가를 듣는 선수인데 움직임이 굉장히 날래졌습니다. 이 선수, 제대로 도핑하고 왔어요. 요즘 솔로랭크, 스크림을 불문하고 연습량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숨겨진 뒷사정이 있다는 사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나지막하고 조심스럽게 클끼리가 운을 띄웠다.

그러자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석 여기저기서 시끌벅적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도 그럴 게 일련의 사건은 유명세를 탔었다.

잉벤의 화제글 최상단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하나의 게시글.

얼마 전 솔로랭크에서 갱붐 선수가 트롤을 당했다.

트롤을 당하고 빡쳐서 두문불출 연습에만 매진하고 있더라.

알 만한 사람은 그들의 사정을 이미 다 알고 있다.

<저는 약자의 편을 들어주고 싶거든요? 그런데 오늘의 갱붐 선수는 너무 매섭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올마스터와 테이커 선수의 트롤, 아니 봇듀오 사건. 갱붐 선수가 피해자였지만 딱히 편을 들어주진 않겠습니다. 제가 살아 생전 갱붐 선수에게서 살기를 느껴본 게 처음이에요?>

갱붐 선수의 입장에서 미치고 팔딱 뛸 일이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혀버렸다.

올마스터의 핑을 믿고 부쉬 속으로 잠복한 장면은 정말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해당 게임은 당연히 패배하고 말았지만 의외로 의미가 없진 않았다.

어찌나 서러웠으면 프로게이머가 솔로랭크에서 빡겜을 한다.

그 결과, 아이러니 하게도 갱붐 선수의 실력이 향상되었다?

미드 라인에서 테이커를 솔킬까지 따며 화려한 복수를 해냈다.

안타깝게도 올마스터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바로 지금, 삼선 레드와의 3,4위 결정전에서 다대기 선수를 한 번 솔킬 따버렸다.

마지막 세트를 캐리하고 있는 이는 다름아닌 갱붐이었다.

<물론 던지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만 솔랭에서 너무 즐겜을 하는 것은 사실 실례가 맞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나쁜 거라면 어쩔 수가 없겠죠? 테이커 선수의 입장에서는 10데스 광우스타가 최선을 다한 걸 수도 있어요. 뭐... 개개인 별로 최선의 기준은 다르니까 말이에요?>

결과적으로 갱붐 선수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이제 곧 바론에 의해 3,4위전의 승자가 결정될 흐름이다.

전체적인 구도가 가짜에어 독수리에게 너무나 웃어준다.

<여기서 바론 버스트하는 판단, 절대 도박수가 아닙니다. 삼선 레드가 부리나케 달려와도 멀거든요? 도착하는데 한참 걸려요! 갱붐 선수가 빠릿빠릿하게 선두에 섭니다!>

<오늘 경기에 한해서는 누가 다대기고, 누가 갱붐인지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갱붐 선수 특유의 느긋함이 사라지고 독기만이 남았어요. 어, 그런데 여기서 벽 못 넘어버리면 포장하는 제가 민망해지죠?>

한창 물이 올랐다 클끼리가 열심히 띄워준 갱붐이 그만 바론 벽 넘는 걸 실패해버렸다.

벽넘기를 실패하고 터벅터벅 되돌아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관중들의 실소가 절로 자아진다.

누구나 한 번 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을 사소한 실수지만 하필 본인을 띄워줄 때 이러다니.

아무리 정색하고 빡겜해도 갱붐은 역시 갱붐이다.

그 사소한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짜에어 독수리의 바론 타이밍은 완벽했다.

여기서 버스트 넣으면 누가 봐도 100% 먹는다.

그 100%에 수렴했을 확률을 갱붐의 벽넘기 실수가 99%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우연이 겹쳐지자 말도 안되는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론 잡는 속도 빠르거든요! 이제 와서 점멸 쓰고 방로 타고 해봤자 스틸은 불가능.. 어어어??>

중계진도, 관중석도 헐레벌떡 난리가 났다.

여기서 바론 먹히면 어차피 억제탑 돌려깎이면서 무조건 진다.

그러니까 마음 굳세게 먹고 한 번 들어가 보자.

시야가 없음에도 리심은 일직선으로 쭈욱 돌진해 들어갔다.

음파를 던지고 간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와드 방로타고 미끄러지듯 넘어갔다.

얼마나 마음이 촉박했으면 그렇게 들어갔겠는가.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하필이면 딱 스틸이 가능한 체력이 남아 있었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죽쒀서 개준 꼴이 되어버렸다.

더욱 더 최악인 건 바론을 빼앗긴 채 한타가 일어났다.

─이~쿠우!

어처구니 없는 바론 스틸에 시간이 흐름이 잠시 멈춰버렸다.

그 정적을 깨고 가장 먼저 움직인 이는 당사자인 리심.

바로 옆에 있는 핑크스를 점멸로 냅다 까버렸다.

너무 조급하게 찬 지라 각도가 엉망이었지만 충분했다.

유령검을 켠 다대기의 자드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더군다나 체력바가 반쯤 하얀색이다.

탑솔러인 호모 선수의 쇈이 궁극기를 발동했다는 시각적 효과였다.

<자드한테 일단 궁썼죠! 랄라가 점멸로 궁극기 쓰고, 미카엘 쓰고 해봤자 결국은 사망~!>

<핑크스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 죽는다는 거거든요! 팀 믿고 딜템만 간 핑크스에겐 금은 장식 머리띠마저 없었습니다!>

될 대로 돼라 들어간 아웃섹의 판단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바론 스틸에 이어 핑크스까지 토스했다.

핑크스의 보증된 한타 캐리력은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명성을 떨쳤고, 스마일 선수에 의해 오늘 한 번 재현되었다.

때문에 다섯 번째 세트, 블라인드 밴픽에서도 핑크스를 꺼냈는데 그것이 그만 악수로 작용하고 말았다.

이전의 한타에서 점멸이 빠져버린 핑크스는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하고 사망했다.

앙꼬 없는 찐빵이 있을 수 없듯 원딜 없는 가짜에어 독수리도 성립할 수 없다.

한타의 구도는 일방적인 유린이었다.

<갱붐 선수가 분발해보지만 이미 끝났습니다. 이대로 미드 달려가면 억제탑이 아니라 넥서스 나갑니다. 하필이면 라인까지 편을 안 들어주고 있어요.>

<아니, 마지막 어떻게 그 1초가 늦어버려서 이렇게 드라마틱한 역전극이 벌어지나요? 이게 참.. 이렇게 돼버릴 게임이 아닌데 롤챔스 역사상 손에 꼽는 역전극이 나오고야 말았습니다..!>

네 명이나 남게 된 삼선 레드의 팀원들이 미드를 향해 쭈욱 전진한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이미 전멸한 상태.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다.

포탑이 철거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제가 같은 정글러로서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원래 바론 싸움은 50대 50에요. 단순히 운이 안 좋았을 뿐입니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이럴 때 정글러 탓을 하시면 안됩니다.>

<이게 단순한 운이면 상관이 없는데.. 만약에, 아주 만약에 갱붐 선수가 벽을 넘어서 먼저 바론을 쳤다면 정확히 1초 단축되거든요? 그러면 아웃섹 선수가 들어갔다가 그대로 죽었을 겁니다. 아쉬워요, 너무 아쉬워요!>

정글러의 탓을 하면 안된다는 클끼리의 변호.

갱붐이 벽을 넘지 못한 탓에 바론 버스트가 1초 늦어졌다는 강빈의 해설.

두 가지가 적절히 맞물리며 경기의 패인이 분석되었다.

대놓고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수사망은 완전히 좁혀졌다.

<부활하자마자 달려가도 절대 못 막아요. 쌍둥이 포탑 철거되고 넥서스 점사! 경기 마무리 지어집니다.>

<갱붐 선수가 벽을 넘었다면 지금쯤 미드 라인을 압박하고 있는 건 가짜에어 독수리가 되었을 텐데요.. 참 아쉽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역대급의 관심을 모았던 가짜에어 독수리 대 삼선 레드의 3,4위 결정전.

양 팀 모두 박 터지게 싸우며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그런데 마무리가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어이가 없을 수 없다.

어찌 됐든 경기는 끝났고 이로써 롤드컵의 진출팀 또한 정해졌다.

중계 플랫폼들의 채팅창에선 뒤늦게 뒷북을 치는 채팅들이 셀 수 없이 올라왔다.

-이거 실화냐..?

-뭐야, 경기 잠깐 안 봤는데 어쩌다 진 거? 무조건 이기는 흐름 아니었어?

-갱붐이 벽을 못 넘어서 짐.

-뭔 소리야 대체. 벽을 못 넘어서 졌다는 게 말이 돼?

안타깝게도 말이 너무 잘된다.

벽을 못 넘은 그 한 번의 실수로 인해 3,4위전 결승전의 승자는 정해지고 말았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왈가왈부 회자될 대사건이 터져버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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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승전이 끝난 이후 약 일주일째의 휴가인가.

나는 아직도 예은의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다는 호텔에서 편히 쉬고 있다.

그러나 쉬는 것은 육체 뿐.

마음은 정말 편치가 않았다.

중국 게임단에서 온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수없이 고민을 했고 이유를 찾아보았다.

가야 하는 이유, 가지 않아야 하는 이유.

방금 전 결승전의 승패로 인해 고민은 끝났다.

"역시.. 갈 거야?"

드세기 그지없는 평소와 정반대로 힘이 실려있지 않다.

예은은 지금껏 그 좋아하는 치킨 한 조각 입에 대지 않고 노심초사 롤챔스를 관람했다.

경기의 결과가 나오자 아주 잠깐 당혹스러움이 낯빛에 서렸다.

하지만 평정심을 되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달리 할 것도 없고 잠깐 갔다 올게."

"..응, 기다릴 게."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근 일주일간 할 수 있는 고민은 전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을 떠나기엔 내가 창단한 신세상 매직이 걸리고.

그냥 거절을 하기엔 상대가 던져온 조건이 너무 혹한다.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을까.

여러가지, 정말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어느 쪽의 선택도 틀리다고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한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졌을 뿐이다.

계기가 되었던 건 방금 전 3,4위전의 결과.

삼선 레드가 승리함으로서 신세상 매직은 롤드컵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하게 됐다.

한국에 남는다면 한동안 쭉 휴가 상태가 되고 만다.

물론 편안하게 쉰다는 선택지도 매력적이다.

나라고 철인이 아닌데 열심히 뛰고만 싶을까.

몇 가지 생각하는 바가 있어 중국행의 판단을 내렸다.

'정해지고 나니 오히려 시원털털.. 한가.'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비행기를 타는 날짜는 바로 내일이 되었다.

스카웃을 제의한 게임단이 멋대로 잡았다.

상당히 몸이 달아오른 듯 알아서 이것저것 내 편의를 신경쓰려 하고 있다.

이쪽에서는 아직 확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괜히 시간 끌다가 마음 고생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혹시 모를 변심을 생각해 그런 짓을 벌였을 테다.

장사를 할 때도 종종 있는 수법이기도 하다.

손님이 산다고 말도 안 했는데 봉투에 담아주는 일, 흔하다면 흔하다.

아니면 뭐, 계약 금액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선행투자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오전 비행기라 일찍 일어나야 할 것 같아. 먼저 자러 갈 테니 너도 시간 되면 자. 인사는 하고 갈 거니 걱정하지 말고."

"..응."

간단하게 정리하기가 힘들어 설명하듯 말을 건넸다.

예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리 요 일주일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하나 혼란스러울 터다.

말을 꺼낸 나도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예은도 분명 매듭짓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질 끄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뚜벅뚜벅 개인실을 향해 걸어갔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이번 화 마무리가 좀 미묘한데..

내일 자 결론은 산뜻하게 갑니다.

본 글의 취지는 재밌고 가볍게 이니까요.

3부 완결 후기도 같이 올라가요.

눕혀진 사랑니 발치했습니다..

막 쪼개진 않고 그냥 쑤욱 뺐네요.

아주 조금은 쪼갰지만요.

비축분이 있기 때문에 연재가 멈춰지진 않을 거에요.

다만 예약 연재라 제가 글 올릴 때쯤 제가 아마 자고 있을 겁니다.. 푹 자서 체력을 회복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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