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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84화 (58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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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식

경사스러운 일과 악보가 겹쳤다.

일단 나를 이곳 상해까지 불러들인 회장님과 이야기는 마쳤다.

그는 의외로 젊은 장년층의 남성이었다.

'40대.. 어쩌면 30대 후반일지도 모르겠어.'

나이까지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쯤 되겠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포스라고 해야 할까?

역시 기업의 회장 정도 되는 사람은 눈빛부터가 달랐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침 삼키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긴장스러운 자리였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긴장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도 그럴게 상대쪽에서 워낙 호의적이었다.

경사스러운 일이라 함은 그와의 계약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역으로 너무 잘해주는 탓에 불안할 정도였다

'계약금도 제시했던 대로, 조건은 그 이상. 나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한 걸까.'

계약의 내용이라 함은 CLC 때와 비슷했다.

기본적으로는 2년이지만 조건부로 단축이 가능하다.

이를 제시한 사람은 나고,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젊은 회장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눈여겨 보는 것은 결과.

결과를 내고 합당한 보상을 받아내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 늬앙스로 계약은 진행되었다.

혹시 독소조항이 있지 않을까.

중간중간 예은과도 상담을 해봤지만 없었다.

오히려 많은 것이 나에게 유리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E-스포츠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뭡니까?>

그는 웃으며 두 가지를 말했다.

하나는 가치가 있는 선행투자.

다른 하나는 경쟁 업체들과의 기싸움.

특히 전자에 대한 부분이 생각 이상이었다.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춰 중국 내 E-스포츠 시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향후 여러 분야에 꾸준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얼마를 투자하든 기회가 왔을 때 잡는다.

기업인들이란 그런 족속이라며 허물없이 웃어왔다.

그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도 대략 감이 잡혔다.

'인터넷 방송이라.. 중국도 한국이랑 별반 다를 건 없네.'

독소 조항까진 아니다.

개인 시간이 허락하는 하에서 방송을 해달라.

자신들이 운영 중인 방송 플랫폼에서 말이다.

그렇게 말을 하면 안 할 수가 없긴 하지만 어차피 하려고도 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개인방송은 했었다.

중국에 왔다고 별반 달라지진 않는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사실이 감이 잡히게 돼서 오히려 다행이다.

상대가 무슨 꿍꿍이로 나를 거액을 제시해왔을까.

모르고 있었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탈칵.

여기까지가 좋은 소식이다.

나는 리무진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개인적인 볼 일은 다 본 상태다.

숙소에서 짐은 전부 풀었고, 기타 생활 여건도 전부 들었다.

다만, 조금 일이 있었다.

좋은 소식과 상반된 악보가 이와 얽혀있다.

현재 도착하게 된 곳은 나로서는 어이가 없는 장소였다.

"상해 경기장입니다. 정식명은 제2 상해 E-스포츠 센터..라고 하네요."

통역을 맡은 창명씨가 떨떠름한 어조로 말을 맺는다.

그 말을 직접적으로 한 이는 내가 소속될 게임단의 감독이었다.

그는 아주 의기양양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주위를 가리켰다.

'확실히 중국, 사람이 많다 보니 이런 것도 가능하네.'

지금껏 나는 여러 무대에서 경기를 치러봤다.

그러니 만큼 대략적으로 객석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굳이 설명을 들어볼 필요도 없이 최소 5만 객석.

이곳 제2 상해 E-스포츠 센터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스케일을 자랑했다.

"제1, 그러니까 1군 리그의 경기장은 이보다 배는 큽니다. 소국.. 아니, 한국에는 이만한 곳조차 없을 것이다. 말투가 심히 실례스럽네요."

창명씨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내가 못 들을 거라 생각하고 막말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창명씨를 통하지 않아도 대략 이해가 가고 있지만 말이다.

'계속 듣다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중국어를 배우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겠는데.'

은근하게 느껴져서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확실히 젊음은 좋다.

20대 중반만 넘어가도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몸에 피로도 진득해져서 일찍 안 자면 다음 날 아침이 괴롭다.

하지만 현재 나는 20대 초반의 육체.

어제 내내 그렇게 무리를 했음에도 몸이 아주 팔팔하다.

기분 탓인지 이전에 배웠던 중국어도 갈수록 감이 잡힌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경사스러운 일과 반대되는 악보를 이행하기 위해서다.

나는 자신을 청윈이라 소개한 감독의 안내를 받으며 경기장 내부로 들어갔다.

일반 객석, 혹은 관계자석조차 아닌 선수 대기실 근방이었다

이곳에 와본 적은 없지만 분위기로 알 수 있다.

"참, 제가 다 당황스럽네요. 거부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도 일종의 기싸움이라서.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창명씨한테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예상은 아니다.

지금부터 내가 당하게 될 일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겪어왔던 이야기다.

차후 한국이 E-스포츠의 주도권을 잡게 된 이후 해외 이적 시장이 활발하게 된 미래.

상당한 숫자의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중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나쁜 해프닝은 그 이상으로 많았다.

'윗사람이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아랫사람까지 수긍해 주진 않는다. 그것이 한국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실제로 전례가 상당수 있었다.

한국 프로들이 차별을 당하는 일이 정말로 적지가 않았다.

예를 들어보기도 민망한 사건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다.

같은 게임단의 중국 선수들이 한국 프로들을 뒷담 깐다 거나.

여기에 코치나 감독들도 합동해서 평가를 깎아내린다 거나.

심하면 이를 빌미로 경기에 못 나가게 하기도 한다.

어이 없게도 방송사가 연루돼 있기도 했다.

경기 승리 이후의 인터뷰 자리에서 한국 선수들만 쏙 빼버린다.

그런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실제로 심심찮게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격이다.

윗사람들이 인정을 한다 해도 자신들은 별개다.

현지의 이들로서는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하다.

중국 사람들의 평균적인 인성을 고려해 보면 마찰이 생기고 마는 것은 필연이었다.

지금 나에게 위세 부리는 저 감독 녀석은 약과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내가 바로 잡는다.'

어차피 누군가는 걸어야 할 가시밭길이다.

물길을 터놓는 역할을 내가 맡는다.

정확히는 그보다 위를 노린다.

한국이 로드 오브 로드를 평정한 이후로도 중국인들은 기고만장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리그의 폐쇄성.

롤드컵에서 졌다고 한들 위안이 가능하다.

그저 메타가 안 맞았을 뿐이다.

어차피 그 팀은 중국 최고의 팀이 아니다.

이러저러 변명으로 말을 돌린다.

인구수로 따지면 자신들이 최강.

중국 리그야 말로 세계 최고의 대회다.

바깥의 시선으로 보자면 어이없는 중화사상이 깊게 깔려있다.

우습게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 리그에 이적한 한국 프로들 중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가 없었으니 그러한 생각이 팽배해질 수밖에.'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은 많았지만 압도적으로 찍어 누른 이는 없었다.

그리고 그에 준하는 자국 내 선수들이 존재했다.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강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합리화는 당연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쓰잘데기 없는 자존심 가뿐히 즈려밟는다.

오늘부터가 그 시작점이 됐다.

이윽고 청윈 감독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딱 한 판만 해도 족하다. 설사 져도 우리 선수들이 충분 만회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 있네요."

내가 들어온 곳은 선수 대기실이 아니었다.

다름아닌 무대 중앙의 부스, 그 안이다.

심지어 선수들은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 경기를 이기면 2대0이라 한 판쯤 져도 되니 부담가지지 말라고는 하고 있습니다만.."

돌려 말하고는 있지만 의도는 명확하다.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만큼 내가 물렁하진 않다.

한 마디로 감독은, 어쩌면 게임단은 나에게 망신을 줄 속셈일지 모른다.

'아니, 아마 확실하겠지.'

나는 부스를 가두고 있는 강화 유리를 통해 바깥을 내다 보았다.

엄청난 수의 관중들이 고함을 지르며 제각기 응원에 심취해있다.

방음 덕에 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느껴진다.

수만 관중의 만들어낸 파동이 부스의 외벽을 격렬하게 울려온다.

제2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2부 리그.

그럼에도 어지간한 결승전 못지 않다.

이러한 광경을 나에게 보여준다.

이 정도는 중국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늬앙스를 내포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만한 관중들이 온 무대 경험은 나조차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말 생뚱맞다는 사실이다.

'이제 막 도착한 선수에게 경기를 뛰게 한다. 그것도 되도 않는 이유를 덧붙여서.'

져도 상관없으니 경험삼아 뛰어봐라.

원래라면 하루 시간이 있었는데 당신이 늦게 와버렸다.

잘 포장을 한다고 한들 그 케케묵은 냄새를 숨길 수 없다.

단 한 번도 손발을 맞춰본 적 없는 이들과 게임을 한다?

그것도 팀랭크나 스크림도 아닌 무려 대회 게임에서 말이다.

듣기로는 현재 게임은 LML로 따지자면 준결승전이라고 한다.

이미 시드권 자체는 따냈다고 하지만 자리가 가볍지 않다.

그러한 무대에 갑자기 나를 내보내려는 속셈.

의도가 결코 곱지 않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면 바보다.

당사자가 아닌 창명씨도 표정이 떨떠름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저에게는 애들 장난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일단.. 뒤에 이야기는 순화해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락해도 괜찮을련지요..?"

의도가 곱지 않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기싸움, 그렇다 기싸움이다.

어쩌면 회장은 아랫것들의 시기를 꿰뚫어보고 나에게 넌지시 말을 해준 걸지도 모른다.

조건이 지나치게 좋았던 것도 이와 같은 심산이 깔려 있었을 수 있다.

'지금이 두 번째 세트라고 했나. 이번 경기도 거의 가져갈 흐름이니 자신만만할 만도 해.'

부담을 가지지 말라.

말이야 바른 말이다.

다음 경기에 내가 들어가는 이상 상대의 의도 대로다.

만에 하나 경기를 져버리게 된다면 악포장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썩 웃어주는 흐름은 아니다.

올마스터, Unknown Error라고 해봤자 특별할 게 없다.

중국 이외의 세계에서 띄워줘 봤자 큰 의미가 없다.

결과를 봐라.

중국 선수들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나중에 내가 실력으로 증명한다고 한들 메꾸기가 쉽지 않다.

대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첫 이미지라는 건 오래 간다.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오늘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깎아내리려는 작전은 성공이다.

내가 그 덫에 걸려드는 순간을, 나의 수락을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아쉽지만 괜찮을 터다.

자신들은 기싸움에서 승리한 것이고 나는 꼬리를 뺀 격이다.

앞으로의 생활에서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혹시 몰라서 장비도 가져왔으니 괜찮습니다. 하지만 라인은 미드. 미드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씀 전해주세요."

"예, 그렇게 말해보겠습니다."

캐리를 하기 위해 미드를 골랐다?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포지션을 선택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입장에선 반가울 소식이다.

창명씨의 통역에 감독이 히죽 웃음을 짓는다.

곧바로 사그라들었지만 똑똑히 보았다.

"말씀하신 바대로 됐습니다. 지금 게임이 마무리되어가니 다음 세트에서 미드를 비워주겠다. 그렇게 말을 하더군요."

창명씨가 웃으며 감독의 대답을 전해줬다.

통역사인 그는 롤을 알기는 하나 자세히는 모른다.

아마 그로서는 미드를 따낸 것이 좋은 흐름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솔로랭크에서는 미드만한 라인이 없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꼭 그런 것만도 아니란 말이지.'

나는 선수석 의자 건너편에 보이는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했다.

게임은 슬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큰소리 떵떵친 대로 아군이라 부를 만한 이들이 이기고 있다.

억제탑을 하나 깨부순 상태로 바론을 접수한다.

이대로 돌려깎기에 들어간다면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부스 안에 들어온 지 얼마 안돼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일단 상황을 놓고 보니 그렇다.

큰 변수가 없는 이상 게임의 흐름은 뒤집혀지지 않을 거라 본다.

'얼굴도 선수명도 모르는 이들이고, 신뢰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해.'

과연 저 선수들까지 감독의 영향 아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동안은 동료따위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서 다음 게임을 종결낸다.

아니, 중국을 제패해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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