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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식

난데없이 사지로 뛰어들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나 이변은 없었다.

로드 오브 로드는 5대5의 팀게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다.

그것이 스플릿이면 몰라도 한타라면 더더욱이다.

─띠이이잉..!

가는 길에 스킬들을 피하는 것도 멋졌고 조냐 이니시도 적절했다.

하지만 아무리 잘해봤자 결국은 개인.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포위 당했다.

발화까지 걸려 회복력이 반토막 났다.

아군이 달려오고는 있으나 100% 늦고 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혼자 게임을 던지는 모양새입니다. 중계진으로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겠습니다. 방금의 플레이가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팀원들과 조금 더 협력을 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여기는 솔로랭크 아닙니다. 유감스러운 상황이 또 한 번 연출되고 마는군요!>

올마스터의 마검사는 볼 것도 없이 죽은 목숨이다.

황금상의 효과가 풀리자마자 점멸로 벽을 뛰어 넘었으나 한계.

잭트가 곧바로 뒤쫓아가며 헤이클린이 궁극기를 조준한다.

안 그래도 위태위태한 목숨은 풍전등화, 이제 곧 꺼져 버릴 운명이다.

남은 것은 아군의 호응을 기대하는 일이겠지만 이조차 마땅찮다.

그다지 싸울 마음이 없었던 듯 거의 시늉만 하고 있다.

말화이트가 궁극기를 박지도 않았을 뿐더러 조아라가 깔은 장판이 결정적.

뿌리식물의 지옥에 막혀 접근을 저지당하고 말았다.

<미드가 잘린 상황에서 바론을 먹혔습니다. 애매한 타이밍에 한타가 걸린 탓에 봇라인도 상황이 좋지 않군요?>

<미드의 스로잉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꼴입니다.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 사지로 뛰어들었는지..>

상황이 예측했던 대로 흘러가자 더우니 버빈은 굉장히 흡족했다.

올마스터를 까내릴 만한 이야기를 떠벌떠벌 늘여놓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화면이 아래쪽만을 보여주고 있어 미쳐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당연히 당연히 위쪽 이야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옵저버가 화면을 아래쪽으로 내렸던 것은 당연한 판단이었다.

중계진을 포함한 모두가 꼼짝없이 죽었다고 여겼었던 올마스터.

그가 찰거머리처럼 생존해 잭트의 손아귀를 빠져나왔다.

상황이 아주 기묘하고 요상하게 비벼지기 시작했다.

.

.

.

* * *

좀처럼 한타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뾰족한 해법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내 여건상 과감한 수를 두기가 어려웠다.

'기껏 테자이를 거의 다 쌓아 놓고 무리하기는 뭣하지.'

테자이의 재능약탈자.

킬, 혹은 어시스트면 책장이 펼쳐지며 주문력이 올라가는 특이한 아이템이다.

책장을 전부 읽으면 주문력이 무려 180이나 올라간다.

가격은 천 골드를 조금 넘는 주제에 코어템을 초월하는 녀석이다.

나는 이미 테자이의 책장을 거의 다 읽었다.

아무래도 펜타 킬을 거뒀던 게 결정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로 별다른 교전이 안 일어난다.

완독을 해내는 일이 요원하기만 했다.

'여기서 한 건 거둔다면 바로 풀스택을 채우고 게임을 끝낼 수 있겠는데?'

스플릿을 하던 상대가 라인을 만들고 바론을 트라이한다.

바론을 내줄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아군은 싸워주지 않는다.

뒤에서 뒷짐 지고 구경만 하고 있다.

낚시신공은 이미 한 번 써봤지만 안 통한다.

애시당초 머릿속에서 싸울 생각을 싹 다 지운 느낌이다.

그렇다면 나 혼자 해결을 봐야 한다.

지금의 나라면 해낼 수 있다고 판단이 섰다.

<진격에 섰다!>

궁극기를 발동하고 달려든다.

바론 근처의 시야는 전부 지워졌지만 예상이 가능하다.

지금이 바로 바론의 체력이 떨어진 시점이다.

상대의 허점이 가장 많이 드러날 때다.

슈웅!

역시는 역시다.

벽 너머에서 실뭉치가 날아왔다.

이를 무빙을 틀어 가볍게 회피해낸다.

날아오는 타이밍이 너무나 단순했다.

나라면 아껴뒀다 사용했을 테지만 역시 그렇고 그런 수준대의 게임이다.

휘리릭-!

타악!

하지만 적들의 제지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조아라의 덩쿨과 봉을 돌려오는 잭트의 반격.

덩쿨이야 판정이 좋지 않아 피하는 게 손쉽다.

문제는 확정에 가까운 잭트의 스턴이다.

이 스턴에는 발동 시간이 1초 필요하다.

그러니까 그 전에 닿기만 하면 될 일이다.

사샤샤샥-!

최대 네 명의 적을 훑어 버리는 알파 슬래쉬가 적을 가격한다.

그 효과는 마검사를 맵에서 일순간 사라지게 만든다.

애매한 이펙트는 누구를 가격했는지 상대의 판단을 흐린다.

서걱!

조아라를 한 번 베어낸 나는 곧바로 바싹 벽에 붙었다.

그 잠깐의 사이에 적들은 정신을 차리고 행동했다.

잭트가 점멸로 접근해 나를 후려친다.

나머지 적들도 온갖 공격들을 퍼부어온다.

띠이이잉..!

체력이 바닥까지 날아가고 나서야 목표했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해야 하는 행동은 명상도, 점멸도 아니다.

나는 조냐의 물시계를 사용해 시간을 벌었다.

이것으로 한타가 걸렸다는 상황을 만들었다.

뒤에서 밍기적거리던 네 명의 아군들이 이제서야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으면 입장이 애매해질 테다.

'물론 내 생각대로 움직여줄 리는 없지만.'

신뢰도 가지 않거니와 실력 자체도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아군들을 믿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처음 진입했을 때 설계했던 대로 시행한다.

누구처럼 실수하지 않고 깔끔하게 벽을 넘었다.

위이잉..!

곧바로 명상을 통해 체력을 회복한다.

하지만 그 위로 잭트가 도약해오고 헤이클린이 조준한다.

코어템이 나온 잭트의 폭딜은 상상 이상.

치유 감소 상태에서 버텨내기엔 버거운 수준이다.

헤이클린의 궁극기까지 박힌다면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전에, 발화가 풀리는 것이 먼저겠지만 말이다.

위이이잉..!

네 개의 코어 아이템과 책장을 거의 넘긴 테자이의 재능약탈자.

800을 넘어가는 주문력에 의한 회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발화가 풀리자마자 체력 차오르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적의 공격을 다 받아내자마자 나는 걸음을 옮겼다.

'6..5..4..'

머릿속에서 카운트 다운이 내려진다.

궁극기인 마지막 전사의 지속 시간이다.

1레벨 궁극기라면 진작 끝났겠지만 현재 나는 18레벨에 이르렀다.

궁극기가 12초간 상당히 길게 유지되는 덕에 가능하다.

다시 한번 벽을 돌아간 나는 알파 슬래쉬를 내리그었다.

사샤샤샥-!

당연하게도 적은 나의 접근을 저지하려 했다.

억지로 붙다간 조아라가 점멸로 도망갈 우려가 있다.

때문에 일부러 그냥 그었다.

알파 슬래쉬는 최대 네 명의 적을 가격한다.

바론 벽 안에 갇힌 모양새가 된 적들은 한 번씩 유린당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한 번 킬을 먹기 시작하면 미쳐 날뛴다.

마검사가 가진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하지만 흥분하기엔 한참은 이르다.

'카서트는 조냐가 있고 헤이클린은 수호악마가 있지.'

이미 판은 깔아졌다.

내가 구태여 또다시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지금의 상황에서 아군이 적을 몰아넣지 않는다?

승부조작이라도 하냐고 구설수에 오를 것이다.

꽈아아앙!

어쩔 수 없이 박기는 박는다.

말화이트의 궁극기가 거미여왕에게 직격한다.

노린 대상이 참 얄궂게도 우습다.

퍼엉!

퍼엉!

고르키가 포탄을 쏴재끼고, 탈리반이 궁극기로 헤이클린을 가두고.

나름대로 형식은 갖추려는지 얼핏 보기엔 치열하다.

자세히 보자면 적이 도망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가두면 뭣하는가 헤이클린은 수호악마로 부활한다.

생존기도 두 개나 있어 저 벽 너머로 도망가는 건 여반장이다.

나머지 적들도 벽을 등지고 있는 탓에 후퇴가 용이하다.

대충 싸우다 적들을 놓아줄 속셈이라는 사실이 뻔히 보인다.

자비로운 아군들과는 달리 난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지만 말이다.

사샤샤샥-!

헤이클린이 벽을 넘어가는 그 찰나를 노린다.

알파 슬래쉬는 적을 지옥 끝까지 추적한다.

곱게 벽을 넘은 헤이클린 덕에 각이 세워졌다.

다시 한 번 싹쓸이의 시간이다.

─더블 킬!

트리플 킬!

800이 넘어가는 주문력은 알파 슬래쉬의 데미지를 극대화시킨다.

여기에 0.75AP계수의 부자베인이 더해지자 폭딜이 나온다.

헤이클린에 이어 같이 벽을 넘어간 카서트까지 봉변을 당했다.

나머지 두 명의 적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쿼드라 킬!

여기서 한 템포 멈춰 명상한다.

종말곡의 데미지를 상쇄시키며 체력을 끝까지 채웠다.

이미 한 번 이 상태의 나를 때려본 잭트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망간다.

안타깝게도 따라잡힐 운명이다.

테자이의 재능약탈자를 모두 읽었다.

어마어마한 추가 주문력과 함께 또 하나의 효과가 더해진다.

스킬 쿨타임이 15% 추가로 감소한다.

─펜타 킬!

Qookya AllMaster님은 전설적입니다.

마무리..!

봇라인과 반대로 탑라인은 아군 미니언이 밀고 있다.

그리고 라인전 단계에서 2차 포탑까지 밀어뒀다.

설사 아군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넥서스가 예약이다.

제놈들도 생각이 있다면 부랴부랴 달려오겠지만 말이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억제탑을 파괴하였습니다!

3레벨에 이른 궁극기는 12초 동안 공격속를 80% 올려준다.

여기에 부자배인까지 더해지자 순식간이다.

영혼이 빠진 걸음으로 아군들이 도착했을 땐 나는 이미 쌍둥이 포탑에 도착했다.

위이이이잉..!

쌍둥이 포탑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주며 명상으로 회복한다.

공격을 받았다고 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주문력이 900에 가까워진 마검사의 위엄을 팬서비스로 뽐내며 정리한다.

사샤샤샥-!

알파슬래쉬로 미니언을 한 번 긁고 슥삭! 타워를 치자 부스러진다.

나머지 하나의 포탑은 아군과 함께 마무리.

일부러 넥서스를 안 치고 내버려두자 우물쭈물 아군들이 툭툭 공격한다.

그들이 게임을 하고 말고와 상관없이 어차피 게임의 승패는 정해졌다.

힘들게 목을 돌려 표정을 볼 것도 없다.

속 메스껍게시리 남자가 침 질질 흘리고 있는 장면을 봐서 뭣하겠는가.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 밖을 향해 걸어갔다.

"저.. 저기 인터뷰.. ^# 부탁 @&%$.."

이후 상황따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돌아가려 하자 마음이 급해진 건 감독이었다.

말까지 더듬으며 나를 향해 무어라 말을 건넨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내용은 대략 알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다.

"청윈 감독이 인터뷰 하시지 않을 거냐고 물어오는데요."

"글쎄요, 제가 여기서 인터뷰를 굳이 해야 하나."

나의 표정과 몸짓에서 눈치를 챈 듯 감독은 횡설수설 당황해서 무어라 떠들어댄다.

하도 말이 꼬여서 뜨문뜨문 몇 단어를 제외하고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말하려는 바의 방향성은 알 것 같다.

"하지 않으시면 자신들이 굉장히 곤란할 수 있다고 꼭 좀 부탁드리겠다는데.. 어쩔까요?"

통역을 맡고 있던 청명씨는 롤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눈치까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예은의 인맥을 통해 고용한 이상 어수룩한 사람일 리 있을까.

필사적인 청윈 감독의 이야기를 헛웃음과 함께 전달해왔다.

"태도는 어떻죠?"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부족하네요. 일단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와 청명씨가 이야기를 주고 받을수록 청윈 감독의 얼굴이 새파랗게 굳는다.

모르는 언어로 앞담을 까는 것이 얼마나 언짢은 일인지 감을 잡은 모양이다.

이윽고 당당했던 고개가 숙여진다.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인간을 다루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보다 윗사람을 통해 말을 듣게 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냥 정면에서 찍어 누르는 거다.

그가 여기서 고개를 숙인 탓에 전자의 방법을 썼다간 내가 치졸한 사람이 된다.

앞으로의 생활도 있으니 아쉽지만 이쯤에서 만족하는 게 나아 보인다.

"하하, 감독쯤 되시는 분이 고개를 숙이면 제가 민망하잖아요. 누가 보면 내가 무리한 요구라도 하는 줄 알겠네."

나는 청위 감독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그제서야 굽히고 있던 그의 등허리가 펴진다.

뭐 씹은 듯 떨떠름한 표정은 그대로지만 괜찮을 터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누구에게 감히 헛짓거리를 하려고 했는지 자각하는 편이 옳다.

고작해야 중국의 2군 리그.

지금의 나에게 있어 식후의 잘 익은 홍시만도 못하다.

늦게나마 고개를 숙인 것을 보면 나름대로 눈치는 있다.

'한 번까진 봐줄 수 있는 범주지.'

사람은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내 주제를 따져봤을 때 이 자리는 너무 가볍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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