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90화 (59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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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식

인터뷰는 창명씨의 통역을 통해 진행된다.

영어도 그렇지만 리스닝과 스피킹의 난이도는 다른 법이다.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인터뷰를 허락했다고 해도 딱히 협조적이진 않다.

눈감아 줬을 뿐이지 당했던 일 자체가 어디 가진 않는다.

결과가 좋았다고 한들 기분이 썩 유쾌할 수는 없었다.

<올마스터 선수, 연달아 펜타 킬을 보여주며 팀을 승리로 이끄셨는데요..?>

<밥 먹고 하는 일이 롤 뿐이라 그닥 어렵지는 않았네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당황해서 나를 벙찐 표정으로 쳐다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건방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굳이 맞춰줄 이유는 없다.

일단 중국에 오기는 왔다.

어차피 몇 달간 할 것도 없었고, 이곳에서의 체험은 귀중하다.

RPG로 따지자면 폭업과 득템이 보장된 노다지다.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고는 하나 프로게이머의 인생은 늘 불안하다.

벌어 놓을 수 있을 때 빠듯하게 당겨 놔야 한다.

안락한 인생, 보장된 노후.

가장 좋은 것은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오늘을 위해 마검사라는 독특한 픽을 준비해 오신 건지요..?>

<그냥 혼자 다 때려 죽일라고요. 원래 인생 혼자 사는 거잖아요.>

한국이든 북미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결국 공인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서 고르고 골라야 한다.

하지만 이곳 중국에서는 딱히 그래야 할 필요성이 없다.

어차피 나를 부른 사람은 저쪽이다.

아슬아슬 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

결정적으로 두 가지.

원래 중국에 사고 치는 사람들이 적잖이 많다.

이 정도로 문제 날 리가 없다.

그리고 다른 하나.

중국에서 내가 이미지 관리해서 모범적인 프로게이머가 되고.

그런다고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좋게 봐줄까.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버린 공산이 크다.

'이 놈들이 원체 해먹었어야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중국의 이미지는 상당히 안드로메다다.

선입견이라던가 그런 게 아니라 자업자득.

자신들이 알아서 자기 무덤을 제대로 팠다.

뭐, 다른 나라에게 왕따 당한다고 해도 적어도 한동안은 잘 먹고 잘 살기는 할 거다.

땅덩이가 워낙 크고 인구수도 세계에서 제일 많다.

그걸 자랑이라고 여기는 탓에 주변국들과 분쟁이 잦다.

내가 중국에서 꼬리 살랑살랑 흔들면 중국 내에서는 몰라도 바깥에서는 역효과일 것이다.

이곳에서 평생 뿌리내리고 살면 모를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조금 인성 드러나는 부분이긴 하지만 까놓고 말하자면 난 돈만 벌고 가면 된다.

'어쩌면 나쁜 남자 컨셉이 인기를 모을지도 모르고.'

아닐 가능성이 크겠지만 딱히 알 바는 아니다.

어느 쪽이 되든 딱히 손해보는 건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중국 아나운서.. 상당히 괜찮다?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남자친구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솔로네요. 올마스터 선수도 없으신가 봐요?>

<아뇨, 전 있는데요.>

그렇게 몇 마디 농지거리로 시간을 떼우자 인터뷰는 끝이 났다.

안 그래도 막 도착해서 피곤한데 시간 외 근무 제대로 한 느낌이다.

아나운서도 고달프겠지만 오자마자 여러 사건 맞은 나도 만만치 않다.

곧바로 차를 타고 안내를 받았던 숙소로 향한다.

'드디어 푹 좀 쉬겠다.'

오늘의 일은 대략 기싸움 정도로 기억하려고 한다.

원래 중국애들의 방식이 깔끔과는 거리가 멀다.

이 정도로 기선제압해놨으니 한동안은 물고 늘어질 일 없을 테다.

더 이상 사고를 복잡히 하기엔 내 피로도가 한계에 부딪혔다.

'일단 가서 자고 다음 날 생각하자. 숙소.. 그러고 보니 마음에 정말 딱 들었었지.'

개인이 가장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줬다는 사실이 끄덕여진다.

게이머에게 있어 이 이상의 공간은 없지 않을까.

한국에 돌아간다면 집의 인테리어에 참고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혼자 사는 것 치고는 조금 쓸데없이 큰 감은 있었어. 가정부 아주머니가 있다고 했으니 괜찮겠지만.'

내가 관리를 안 해도 된다고 하니 그 점은 속 편하다.

엄청나게 큰 집 붙여줘 놓고 알아서 하라고 했다면 살짝 빡쳤을지 모른다.

집 크기가 커지면 청소하는 것만 해도 일이 되니까.

다행스럽게도 사람을 한 명 붙여준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가사를 맡아준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다.

마음이 가벼워진 나는 리무진의 창을 통해 상해의 야경을 둘러보았다.

'낮의 상해와 밤의 상해. 확실히 다르기는 하네.'

상하이의 아름다운 야경.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인데 확실히다.

한동안 이런 도시에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즐긴다.

다소 외롭기는 해도 괜찮을 터다.

물론 결과를 냈을 때의 이야기지만 자신이 있다.

그 정도도 하지 못할 지금의 내가 아니다.

연락도 매일 주고 받을 테고, 이곳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오기는 왔지만 조금은 꿀꿀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복잡하게 생각해서 결론날 이야기도 아니고. 스타트는 좋게 끊었으니 괜찮겠지.'

원래 고민이라는 게 꼭 생각을 오래 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겠는가.

당면한 문제를 찬찬히 해결해 간다면 어느샌가 닿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북미 때와 달리 조건도 상당히 간단하다.

'LPL에서 한 번 우승. 그런데 너무 간단한 거 아니야?'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이야기다.

그렇기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 간단한 조건으로 수락한 것일까.

롤챔스에서 한 번 우승하는 것 정도야 어렵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나한테 걸리면 낙승이다.

살짝 귀찮을 수 있었던 시드권 쟁탈권 LSPL도 다른 선수들이 진행해 놨으니 더더욱이다.

'순항이구만. 바캉스 느낌으로 설렁설렁 즐기면 대충 끝나겠는데?'

인생사 쉽게 풀릴 리가 없다.

당시의 나로서는 차마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곧 다다를 숙소에서 일어날 사건조차 말이다.

.

.

.

* * *

올마스터가 증발했다.

일련의 이야기는 총 세 번에 걸쳐 퍼지게 되었다.

첫 번째는 뜨문뜨문 소식만 올라오던 올마스터의 파프리카 방송국.

두 번째는 신세상 게임단의 공식 오피셜이었다.

─올마스터 중국 간 거 실화냐..?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올마스터가 주장 아니었어?

신세상에서 왜 방출?

팀 내 불화? 누님이랑 깨짐?

개 굳 사이다~!

└어.. 결말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깨진 건 아니고.. 롤드컵 펑크난 겸 잠시 다녀온다는데?

글쓴이-어디 그런 말이 있어? 뇌피셜 아님? 신세상 SNS에는 그런 내용 못 봄.

└올마 방송국 최근 공지. 검색은 알아서.

딱히 SNS를 하지 않는 올마스터는 종종 방송국을 통해 공지를 남긴곤 한다.

한국에서 대회를 진행한 이후에는 잘 하지 않았지만 예전만 해도 활발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유저들이 즐겨찾기를 한 탓에 소문이 퍼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이미 잉벤의 화제글 최상단에는 올마스터에 대한 이야기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갱붐이 벽을 넘었다면..

->가짜에어 독수리가 바론을 먹음

->리심이 스틸 실패하고 스로잉이 됨.

->바론을 먹고 미드를 달려감

->4:5 한타를 이기고 넥서스를 밈

->가짜에어 독수리가 3,4위 결정전을 이김.

->신세상 매직이 롤드컵에 진출

->올마스터가 중국에 가지 않음.

└갱붐 효과 ㅁㅊㄷㅁㅊㅇ..

└저것이 전부 갱붐이 벽을 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근데 중국 가는 건 한가하다고 간 건가? 꼭 가야 함?

└올마 방송국에 그 얘기도 있던데.

단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라고 쪼기에는 실수 정도야 프로게이머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벽넘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안타까운 해프닝이다.

문제는 상황이 너무 잘 맞물려 돌아갔다는 부분이다.

차라리 그냥 졌으면 좋았을 텐데.

잘하다 발 한 번 헛디뎌서 져버리니 우스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어쨌든 갱붐이 벽을 넘지 못하자 삼선 레드의 리그 포인트가 신세상 매직을 앞지르게 됐다.

이번 2013 롤드컵에 진출하게 된 팀은 불밤과 삼선 레드가 되었다.

올마스터 본인의 입장에서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가다니?

일부 팬들이 불만을 표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올마스터 방송국에 추가로 오피셜 떴음.

요약하자면 팀 내 불화X

롤드컵 진출권 획득 실패로 인해 스케줄 공백이 생김.

그 사이에 중국에서 상당한 액수의 스카웃 제의가 왔음.

돈 때문에 간다는 이야기 부정하지 않겠음.

하지만 프로게이머 개인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일, 마침 스케줄도 맞아 떨어짐.

당연 팀원들의 동의를 얻은 후 수락한 것.(갱붐 선수가 벽 못 넘기 전에.)

가능한 빨리 돌아올 예정, 늦어도 내년 스프링 시즌까지는 약속.

중국 재패하고 김치붐 일으키고 옴 이상.

└짜장면에 김치 얹는 큰 그림 ㅇㅈ합니다.

└결국 돈 때문에 간다는 거 인정은 하네. 어설프게 이유 달렸으면 실망했을 듯.

└아니, 고작 돈 몇 푼 받자고 중국까지 가야 해?

└몇 푼이 아니라잖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팀원들이 동의 안 했으면 몰라도 동의했으면 괜찮겠지.

└근데 진짜 얼마 받았을까? 개궁금하다.

안타깝게도 선수들의 연봉 공개는 계약 규정상 위반되는 내용이다.

그래서인지 올라오지는 않았지만 대략 유추는 가능하다.

국내 탑급 프로게이머들이 이 정도 받는다 카더라.

하는 액수가 보통 수억 원 정도다.

여기서 한두 푼 더 얹어진 정도로 올마스터가 꼼짝하진 않았을 터.

최소 수십 억, 잘하면 백억 단위의 돈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잉벤에서는 추측이 오가고 있다.

진실은 본인만이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의 액수라면 사람 마음 혹하는 거 인정할 만하다.

또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오피셜이 올마스터 본인의 입을 통해 나왔다.

평생 거기서 짱박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도 했고 국뽕도 살살 자극해줬다.

─이걸 국뽕이 살려버리네.

잘못하면 욕 먹을 수도 있었는데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

프로 생활 오래해서 그런지 욕 안 먹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듯.

해외 진출한 김치 게이머 1세대라는 이력도 있어서 믿음직하고.

중국에서 한국 프로 흥하면 재밌긴 하겠다.

북미 때는 올마스터란 사실이 너무 늦게 알려져 버렸어.

└크~! 여기서 국뽕 좀 자극해주고!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바리에 칼칼한 갓김치 추가요!

└한국인인 이상 국뽕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치맨 하드 카운터 국뽕!

└중국 간 거는 마음에 안 들지만 착한 줘팸은 ㅇㅈ각.

기본적으로 중국은 타국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

하도 자신들의 이권만 주장하는 탓에 마찰이 생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로 중국에 보내는 시선이 썩 곱지는 않다.

이렇게 양국의 사이가 썩 좋지 않을 때.

현대 사회에서는 스마트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방출한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나라 간의 경쟁이 불 붙는 데에는 그럴 만한 뒷사정이 산재해 있다.

만약 한국이 강한 E-스포츠로 찍어 눌러준다면 정말 좋을 텐데.

갤럭시 크래프트부터 생각은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애초에 안 하는데 어떻게 겨룬단 말인가.

2세대 E스포츠, 로드 오브 로드에 이르러 기회가 왔다.

─방금 올마스터 중국 첫 경기 본 사람??

졸라 심심해서 요즘 진행되는 해외 대회 찾다가 상해 LSPL 켰거든?

뭔가 낯익은 아이디가 보이더라?

중국답게 짭인 줄 알았는데 아님.

카메라 딱 비치니까 올마스터.

혹시 비슷한 사람 뽑아온 거 아니고 정색 빨고 게임 봤는데 와..

이거는 누가 봐도 올마스터 맞다.

└응 올마스터 중국 간 거 맞아.

글쓴이-아니ㅅㅂ 누가 그걸 모른데? 올마스터가 방금 경기를 했다니까?

└?? 중국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경기를 치름?

글쓴이-그걸 내가 알겠냐? 난 그냥 봤으니까 말하는 거고 꼬우면 리플 쳐봐. 1만 이니빵 콜?

└콜 ㅅㅍㄹㅁ. 어디서 약을 파고 있어. 구라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거 몰라?

처음에는 어그로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더라.

올마스터가 중국에서 첫 번째 경기를 치렀다.

하도 이야기가 묻혀있던 탓에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윽고 하나하나 증거물들이 올라왔다.

올마스터가 중국에서 치른 첫 번째 게임.

상해 LSPL 준결승전의 세 번째 세트에서 교체 투입되었다.

한 번 이야기가 불거지자 관심이 모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과연 어떤 챔피언으로 어떤 활약을 했을까?

혹시 컨디션이나 적응 등의 문제로 실수를 하진 않았을까?

로드 오브 로드를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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