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
3, 2, 1
게임의 내용은 떠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조차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도둑이 제 발 저릴 일이 생겼다.
올마스터, 한국인이라는 그가 중국어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조금 어설픈 감은 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설마.. 우리 대화를 다 듣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차우차우는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얼마 전, LSPL의 준결승전에서 찔리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대놓고 보이스 채팅을 주고 받았다.
어차피 중국어를 알아들을 일도 없다.
대동해 온 통역사는 저 뒤에 벤치에 앉아 대기중이었다.
그런데 만약 올마스터 본인이 알아들었다면..?
'이거.. 야단 났다!'
그의 한 마디에 쿡야에서의 생활이 걸려있다.
차우차우는 절대 이곳에서 쫓겨나기 싫었다.
선수들이 감독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른 이유이기도 했다.
개중에는 정말로 찬동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이곳 쿡야 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게임단은 흔치가 않다.
방출됐다는 이력이 남으면 다른 게임단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진다.
사정이 얄팍하다는 점을 약점 잡혀 받을 수 있을 연봉마저 깎이게 될지 모른다.
'라인을 타야 하나..?'
준결승전이 끝난 이후 회식 자리에서 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고는 하나 거기서 끝날 리 없었다.
감독을 중심으로 올마스터에 대한 악담들이 오갔다.
직접 경기를 같이 한 선수들로서는 상당히 떨떠름했다.
올마스터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와닿았다.
차우차우 자신도 영 내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고민을 하고 있던 참에 쐐기가 박혔다.
'그릇이 달라.'
자신이 말하긴 뭣한 내용이지만 의도적으로 게임을 방해했었다.
그 정도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눈을 감아줬고 덕분에 선수 생활을 부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터진다면 그때도 과연 참아줄까?
감독의 의도가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아주 잘 생각해야 한다.
이윽고 차우차우의 머릿속에서는 판단이 내려졌다.
'기왕 태세를 전환할 거면 혼자서는 쪼오금 그렇겠지..?'
자신 혼자 꼬리를 내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건 자체가 나오지 않도록 꼭꼭 틀어 막아야 한다.
차우차우는 개인 연락망을 통해 한 명, 한 명 연락을 넣었다.
.
.
.
* * *
각 나라별로 로드 오브 로드 유저수는 비율이 다르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한국, 중국, 북미, 유럽 순.
과거에는 유럽이 북미를 앞섰지만 최근에는 추월했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은 1위인 한국이 무려 10% 안팎이라는 사실이다.
인구수가 5천 만명이라면 500만명은 롤 아이디를 생성한 셈이다.
그리고 2위인 중국은 약 5% 가량.
그런데 이 중국의 인구수가 조금 심각하게 많다.
과장 하나 없이 롤 유저수만 수천만명이다.
어지간한 나라의 인구수를 찜 쪄 먹는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화제에 관심을 가진다?
정말로 보통 일이 아니다.
◈올마스터가 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 얘기 뿐이야?
잠깐 게임 좀 안 한 사이에 모르는 선수가 유명해졌네.
아니, 선수가 아니라 스트리머인가?
누가 정확하게 설명 좀 해줘 봐.
▷한국 프로잖아. 북미에서는 Unknown Error로 유명하고. 몰라?
글쓴이-해외 관심 없음. 아니, 관심 없는 게 보통 아니냐?
▷나도 그래. 근데 그 올마스터가 중국 와서 깽판 치는 중.
▷3서버 이미 정복 당함. 일주일 만에 1위 뺏김 멍청이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외 대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언어도 다를 뿐더러 딱히 흥미가 일지도 않는다.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그러하다.
중국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정말 흔치 않은 공산주의 국가 중 하나다.
북한과는 달리 어느 정도 개방을 하고 있지만 그 특색을 잊으면 안된다.
여타 선진국들에 비해 도를 넘을 정도로 단절돼 있다.
이를 테면 구글이라던지 유튜브라던지 못 쓴다.
중국 정부에서 쓸 수 없도록 막아 놨다.
대신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짝퉁 사이트를 운영한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귀찮다.
또 중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만 해도 충분히 재밌다.
구태여 타국에 눈길을 줄 일이 없는 것이다.
해외 선수들이 날고 긴다고 해도 애시당초 관심 밖.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올마스터도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마니아층 사이에서는 인기를 모았으나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는 그냥 그랬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솔랭 돌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1위를 먹냐;
그것도 다른 서버도 아니고 3서버에서.
원래 한국 선수들이 저렇게 잘해?
걔만 특별한 거지? 그치?
▷한국에서도 넘사벽 선수인 걸로 알고 있음. 그래서 쿡야가 스카웃해왔고.
▷북미, 유럽 활동 경험도 있다던데? 그냥 전 세계적으로 먼치킨이래.
글쓴이-오, 경력 화려하나 보네. 그거 감안해도 조금 심각히 잘하긴 한다..
▷그냥 마검사빨 아닐까? 마검사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못 올렸어.
관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이 식기는 커녕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초기 홍보 버프로 10만 명이 넘게 보았던 올마스터의 방송.
이제는 평균 시청자 수가 그 두 배를 가뿐히 넘는다.
LPL이 시작되기 전 무료한 기간인 덕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실력과 입담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렇다.
놀랍게도 그는 중국어를 자유자재, 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그럴 듯하게 구사하고 있다.
◈한국 선수가 중국 와서 깽판 치는 거 좀 그렇긴 한데.
딱히 비호감 이미지는 아니지 않나?
성격 털털하고 게임 잘하고.
뭣보다 중국어를 하는 게 마음에 들어.
말이 좀 짧긴 하지만 중국어가 완전히 익숙지는 않을 테니 봐줄 만해.
▷방송 보면 재밌긴 하더라. 말을 좀 툭툭 던져서 그렇지.
▷중국어를 못한다기 보단 그냥 올마스터 본인이 좀 띠꺼운 타입 같은데.. 방송 재밌는 건 부정 안 하겠다만.
▷보면 볼수록 볼매는 있어. 약간 시크한 스타일? 여자들한테 인기 많더라.
▷정말? 그러면 남자의 적이지.
중국어를 하기는 한다.
문제는 좀 짧게 끊어 친다.
동네 친구한테 말하듯이 대강대강, 프로게이머들 특유의 존댓말이라던가 그런 거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먹힌다?
남성 유저들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보지만 여성 유저들.
한국 남자, 거기에 나쁜 남자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인기가 치솟았다.
벌써 수 곳이나 팬카페가 생겨버렸을 정도다.
올마스터 본인이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다.
누군가 채팅으로 쓴 소리로 내뱉으면 실드들이 겹겹이 쌓인다.
메딕과 사이언스 베슬이 항시 대기 중이다.
◈그래도 슬슬 올마스터도 끝물이지.
랭킹 1위 찍으니까 큐 겁나 안 잡히더만.
게임 수준도 높아져서 며칠 전처럼 양학도 안되고.
방송 생각 안 하고 너무 빨리 올라갔어kkkk
▷프로게이머로서는 몰라도 방송은 초보라는 반증이지.
▷지겨운 올마스터 찬양 그만 들어도 되는 건가? 희소식이네.
▷본래 지 자리 찾아갈 거야. 뒤룩뒤룩 낀 거품 다 빠지고.
▷한국인이 주목 받는 거 꼴 같잖았는데 그거 잘됐네kkk
▷죽어랏, 남자의 적!
올마스터의 3서버 정복은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인기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란 보장이 있을까.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화끈한 양학을 보기 위해 모였다.
나라를 막론하고 실력파 방송보다는 양학이 인기가 많은 법이다.
그런데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게 되니 양학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중국의 일부 유저들은 이렇게 비꼬고 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가진 바 실력이 제법 뛰어난 탓에 오래 걸리기는 했으나 그것도 여기까지다.
여타 방송들과 마찬가지로 일부의 고정 시청자들만 남을 게 분명하다.
전문 방송인들처럼 부계정을 만든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는 프로게이머다.
안 그래도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중국 유저들이 상당수다.
명분 없는 양학은 그들에게 비웃음을 살 빌미만 만들어주는 꼴이다.
그럼에도 올마스터는 망설임 없이 부계정을 생성했다.
◈어? 올마스터 부캐 만들었다.
또 처음부터 다시 올라갈 생각인가 본데?
시청자들이 후원 넣어주니까 돈 맛 들렸나 보네www
평소부터 말투도 띠껍더만 그럼 그렇지.
▷이번에는 3서버가 아니라 2서버에서 한다더라.
글쓴이-그거나 그거나. 결국은 돈 벌려고 하는 거잖아?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방송 컨셉부터가 양학이 아니었어.. 2Server No.1….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일이었다.
중국은 서버의 개수가 많다.
그런 만큼 여러 서버 전전하며 양학하는 BJ들도 많다.
서버를 바꿔서 게임하는 것 정도야 상정 내.
안이한 올마스터의 판단을 많은 이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생각을 고쳐 잡아야 했다.
복선은 진작에 깔려있었다.
.
.
.
* * *
방송은 착착 문제없이 진행돼가고 있다.
아니, 문제는 커녕 생각 이상의 엄청난 인기를 불러 모았다.
어쩌면 방송만 해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이게 다.. 얼마라고?"
"200만 위안, 한화로 따지면 3억원이 조금 넘어요."
모니터 화면에 나와 있는 별풍선의 개수.
엄밀히 말하자면 별풍선은 아니지만 결국 요지는 같다.
츠위의 말에 의하면 총 액수가 3억원을 넘어버린다고 한다.
'이건 뭐 초코파이 팔기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중국 진출이 활발했던 과거.
초코파이에 빗댄 우스갯소리는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다.
13억 중국인들에게 초코파이 하나씩만 팔아도 수백억이 굴러 들어온다.
상당히 혹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뜬구름 잡는 헛소리로 판명이 났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 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13억에 홍보하는 비용이며, 유통하는 길을 닦는 것이며.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닐 뿐더러 결정적으로 경쟁자.
아메리칸 드림에 이어 차이나 드림을 꿈꾸고 온 기업들이 정말 많았다.
중국 내 시장도 현지인들의 인성 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 아닌 지라 적잖이 힘들었다.
뭐 하나 내놓으면 짝퉁이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온다.
13억 중국인들에게 초코파이 하나 파는 길은 요원하길 넘어 까마득했다.
'그런데 인터넷이라..'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다면 가히 혁신적인 유통이 가능하다.
단순히 접속해서 방송을 보면 끝이다.
물론 그 만큼이나 경쟁자도 많다.
방송을 하는 중국인, 아니 프로게이머만 따져도 수백 명이 가뿐히 넘는다.
아마추어까지 포함한다면 만 명 단위다.
그럼에도 그 정상에 우뚝 섰다.
'짝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테니까.'
내 이적 사실이 알려지며, 그리고 경기와 실력으로 증명해내며 중국 내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올라갔다.
그 뿐이라면 어느 정도 들뜨다가 가라앉았을 일이다.
비슷하게 마검사를 따라하는 BJ들.
혹은 본래부터 양학에 일가견이 있던 이들.
흉내내기가 특기인 그들조차 실력 만큼은 어떻게 모방할 수가 없다.
"앞으로도 방송을 쭉 하실 건가요?"
"해야지. 아직 목표치엔 도달하려면 멀었거든."
일단 오늘의 방송은 종료했다.
3서버의 솔로랭크 1위 달성.
이 하나를 위해 최근 일주일을 폐인처럼 지냈다.
승부욕에 불탔다기 보다는 재미가 붙었다.
시청자들도 엄청나게 많고, 양학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아직 3서버라 그런지 생각 이상으로 일이 간단했다.
어쩌면 시작은 이제부터 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3Server No.1.. 그리고 2Server No.1.. 혹시 1Server No.1도 만드실 예정이신가요?"
나는 츠위의 물음에 피식 웃음으로 대답했다.
어쩌면 중국 내 현지인들에게는 서버에서 1위를 찍는 것이 대단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민트초코우유 원샷 때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조금 큰 우물 안 황소개구리지.'
실력이라는 건 결국 상대적인 거다.
다이아가 실버를 양학한다.
마스터는 다이아를 양학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중국을 양학한다.
서버 별로 수준 차이가 있으면 뭣하겠는가.
그래봐야 북미, 유럽, 한국보다 수준이 아래다.
수준 차이가 나면 날수록 양학은 더욱 쉬워진다.
'세상일이라는 게 머릿수가 많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거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땅덩이.
자국 만을 싸고 도는 이기적인 민심.
단순한 크기로는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