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98화 (59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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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

방송도, 솔로랭크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게임단에 소속된 이상 공통된 행사라는 게 있다.

가끔 가다 몸 움직일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뭐, 거절했지만.'

오늘 치러지는 LSPL의 결승전에 참가해줄 수 있겠냐는 코치의 부탁을 거절했다.

거절 사유는 몸이 영 찌뿌둥한 게 감기 걸린 거 같아서.

정말 뻔하디 뻔한 변명이지만 그쪽에서는 나한테 할 말이 없을 거다.

준결승전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자신들의 입장을 밀어붙이겠는가.

그리고 나로서도 내가 포함되지 않은 쿡야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상대를 한 실전에서 말이다.

때문에 숙소에서 편하게 결승전을 시청하려고 했다.

일련의 계획은 단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막히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차 돌리면 안돼?"

"꼭 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부탁드릴게요."

츠위의 말에 차마 안된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녀가 가사 전반을 성심성의껏 도와줬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단순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너머 그 이상.

내가 입맛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주고 있다.

'덕분에 중국어도 많이 늘었고.'

중국어 교사 역할을 해준 것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됐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일이었고 실효도 부쩍 거뒀다.

방송을 통해 실전 스피킹을 하다 보니 빠른 속도로 늘어간다.

채팅을 보는 것도 처음에는 감이 안 잡혔지만 점점 익숙해진다.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들을 위주로 기억에 잡아둔다.

읽을 수 있다와는 거리가 멀지만 시간 문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기사님 쭉 가주세요."

"말씀대로."

츠위는 나의 팬이라고 했다.

로드 오브 로드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자국의 2부 리그라고 하나 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한 번 정도는 억지를 들어줘도 괜찮겠지.

이윽고 차가 경기장 앞에 멈춰 섰다.

끼익.

도착하고 나서야 든 생각이다.

어쩌면 오길 잘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눈동자에 잡힌 장소는 지난 번과는 달랐다.

"제2 뭐시기가 아닌 모양이네?"

"예, LSPL의 결승전과 LPL은 이곳에서 치러져요."

내가 생각하던 이상으로 츠위는 로드 오브 로드의 마니아인 모양이었다.

상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

그녀의 입에서 술술 설명이 흘러나왔다.

"크기 자체는 제2 스포츠 센터랑 별반 다르지 않아요. 진짜 다른 것은 그 내부죠."

"…."

내부가 다르다라.

고작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일반적인 돔 모양의 구형 경기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

유리로 된 외벽이며 역삼각형 모양의 특이한 기둥들.

크기와 목적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완공한 지 얼마 안된 신형 구장인가? 예쁘기는 예쁘네.'

조형에도 상당히 노고를 들인 듯싶다.

눈 앞에 보이는 이 넓은 호수는 경기장 외곽을 빙 둘러싸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 광경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면 츠위의 억지가 고마워졌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쪽이에요."

"아, 그래.."

넓게 펼쳐진 호수 사이에 하나의 큰 다리가 보인다.

그곳을 통해 나와 츠위는 건너갔다.

잠시 후 경기장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너.. 표 있냐?"

"관계자석으로 들어가면 돼요. 대책 없이 가자고 한 거 아니니까 따라오세요."

은근히 당돌한 구석이 있다.

내가 갈지, 안 갈지 어떻게 알고 손을 써놨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편해졌으니 딱히 타박하진 않겠지만 조금 걸린다.

터벅터벅.

츠위를 따라 들어간 길에는 무서워 보이는 경비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스총인지 뭔지는 몰라도 무장 상태가 엄중하다.

나도 모르게 몸이 뻣뻣하게 굳어질 정도인데 츠위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회장님 손녀 정도 되면 이 정도는 경험할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도착하게 된 장소는 참으로 화려했다.

난간 밑을 내려다 보자 경기장이 한 눈에 잡힌다.

의자 등의 기재들도 확실하게 고급품이다.

관계자석이라기 보단 VIP석이라는 느낌이다.

주위의 좌석들은 공간의 여유가 있게 분할돼 있다.

그 중 하나로 츠위가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뒤따라갔다.

'이런 애가 어째서 내 시중이나 들고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만.'

어쩌면 정말로 내 팬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정말 그거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캐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당분간은 참기로 했다.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아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내부가 다르다고 했었나.'

그녀의 말에 깊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다른 것은 내부가 맞았다.

지금껏 그 어떤 경기장에서도 본 적이 없는 형태다.

놀랍게도 360도 전 방위가 객석으로 둘러 쌓여있다.

선수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공간 또한 정확히 사각형.

마치 레슬링 경기장의 링을 연상케 한다.

'저기 위에 선다면 압박감이 장난 아니겠지.'

직접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부담감이 엄청날 테다.

막말로 객석에서 난간을 넘어가면 무대까지 코앞이다.

안전 장치가 있다고는 하나 명백히 홈그라운드.

타지의 선수들은 저 위에서 서는 것만으로도 경기력 저하가 예상된다.

무려 수 만.

객석이 꽉꽉 들어찬다면 5만 명이 우스울 테다.

그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마우스를 잡는 손마저 떨릴지 모른다.

'그리고 이를 실현 시키는 것이 저 네 방위의 스크린인가.'

일반적으로 E-스포츠 경기장은 이런 구조를 띌 수가 없다.

이유인 즉 간단하다.

축구나 야구처럼 선수들이 뛰는 걸 관람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대형 모니터를 통해서만 경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모니터는 당연하게도 평면이다.

양면으로 한다고 한들 좌측과 우측의 관객들은 안 보인다.

때문에라도 이러한 구조는 불가능하지만 가능케 만들었다.

경기장을 보다 3차원적으로 활용하겠다.

천장에 거대한 직육면체 모양의 스크린이 매달리듯 내려와 있다.

어느 방향에 있는 객석이든 모니터 화면을 보는데 지장이 없다.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가히 대륙에서나 가능한 스케일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적어도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시장이 커야 E-스포츠 판이 활성화된다.

돈으로 성립되는 간단한 논리임에도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나라도 이만한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언젠가를 위한 기반은 이미 다져져 있다.

앞으로는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어때요, 오길 잘했죠?"

"확실히. 무대에 서기 전에 이렇게 한 번 둘러 보면 익숙해지니까."

나는 멋들어진 유리잔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놀랍게도 내 앞에는 테이블이 존재한다.

어쩌면 간단한 식사를 하며 관람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고파요?"

"아니, 됐어. 주면 먹겠지만."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공짜 좋아하다 대머리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별 생각없이 경기를 관람하고 있자 정말로 식사가 도착했다.

소룡포 같은 만두류와 소스를 뿌린 탕수육 비스무리한 것.

간이하지만 정말 식사도 팔고 있는 듯했다.

"너 의외로 능력 있네."

"그렇네요. 없으면 곤란하죠. 여러모로.."

츠위의 눈동자는 경기장의 스크린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나 게임의 내용이 신경 쓰이는 걸까.

나는 소룡포를 우물거리며 찬찬히 관찰했다.

'경기 스코어는 1대2.. 이번 게임도 썩 좋은 흐름은 아니고.'

LSPL의 결승전, 경기를 치르는 팀은 다름아닌 쿡야다.

준결승전에서 승리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상대팀은 TCG라는 내 기억에는 없는 게임단이다.

그래도 결승전까지 올라온 걸 보면 만만한 팀은 아닐 테다.

"내가 보기엔 이대로 한타도 제대로 못하고 질 흐름 같은데."

"역시 그렇죠? 운영에 있어서 아직 미숙하니까요."

신랄한 말투의 비평은 대강 맞는다.

내 관점으로 봐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같이 지내봐서 알지만 츠위도 상당히 롤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물론 프로가 아닌 일반 팬 기준에서 괜찮다는 소리다.

'근데 이 녀석 평소랑 달리 많이 진중해졌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경기장에 온 이후로 츠위의 태도가 변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쿡야 게임단은 회장님, 그녀의 할아버지가 후원하는 게임단이다.

이렇게 지고 있으니 기분이 다운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혹시 내가 나가줬으면 좋겠어서 부른 거야? 진작 말하던가, 이미 늦었어."

"아뇨. 여기서 진다고 해도 시드권에는 문제 없을 테고.. 그냥 순수하게 같이 보고 싶어서 청한 거에요."

나가 달라고 했었어도 나가진 않았겠지만 예의상 한 소리다.

어차피 현재 진행되는 게임을 패배하면 결승전은 끝이 난다.

츠위의 말마따나 시드권에는 지장이 없기도 하다.

'은근히 이해타산적인 면모도 있고 알면 알수록 방심할 수 없는 애야.'

기업가의 핏줄이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면모가 없는 성격도 아니다.

방금도 그렇고 사람을 잘 배려해주는 성격 같다.

"시현씨 생각에는 어때요?"

"수준 물어보는 거야? 솔직히 말해도 되면 대답해줄 게. 아니면 말고."

"편한 대로 하셔도 돼요."

편한 대로 말하자면 막말이 될 것 같지만 어차피 사적인 의견이다.

나는 생각한 바 그대로 이야기 해줬다.

이 팀, 까놓고 오합지졸이라고.

"최대한 순화해서 말해주자면 아직 아마추어의 티를 못 벗었지. 너무 어설퍼서 한국이었으면 시드권도 못 땄을 걸?"

"순화하지 않으면요?"

기껏 사람이 배려를 해줬더니.

뭐, 참고가 되는 의견을 듣고 싶은 거라면 순화를 하지 않는 게 맞다.

하지만 말한다고 이 녀석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고민할 내용은 아니다.

"프로는 판단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고 근거가 붙어야 돼. 게임을 논리적으로 못하면 저 봐, 바론 먹히잖아."

봇라인 스플릿을 하던 TCG의 탑솔러.

네네톤을 파사딘과 탈리반 3세가 덮친다.

백이면 백 끊을 수 있는 할 것이다.

문제는 미드와 정글이 빠졌을 때 생기는 윗라인의 공백이다.

<곰이다!>

TCG의 서포터, 배티가 곰돌이를 소환해 바론을 친다.

쿡야에서도 당연히 견제를 하려 하지만 역부족.

체력이 많이 깎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곰돌이가 몸을 대주는 한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미 성장의 격차가 나던 상황이다.

여기서 쿡야가 달려든다면 최악의 경우 떼몰살에 바론까지 먹힌다.

<쿡야 갑니까? 말화이트 궁극기 박습니다만..! 데미지 역시 부족하네요.>

<결국 바론도 먹히고 쿡야는 두 명이나 죽고. 배티가 스턴쿨일 때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아쉽기는 개뿔이.

조금 더 질척하게 싸웠으면 한 명 정도 따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대가로 쿡야는 세 명이 다 죽었겠지.

애시당초 봇라인을 끊으러 간 판단이 잘못됐다.

솔로랭크 마냥 본능에 의지해 게임을 대충 하니까 저 사달이 나는 거다.

선수도, 해설가도 썩 상태가 안 좋아서 여기서는 아무도 상관 안 하는 모양이다만.

"와, 정말 신기해요. 말씀대로 게임이 흘러가고 있어요."

"바론 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았을 거 아니야?"

"확신을 한다는 부분이요.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었어요."

나이는 초홍이쯤 돼보이는 녀석이 참 똘똘하다.

초홍이가 이 녀석의 반에 반에 반에 반만 닮는다면 참 좋을 텐데.

어찌 된 게 내 주위엔 중간 가는 애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어쨌든 말을 이어가자면 팀 내에 확실한 오더가 없기 때문이 커. 까놓고 말하자면 저 단순무식한 놈들을 움직여줄 사령부 말이야."

너무 까놓고 말한 감은 있지만 순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건 츠위다.

살짝 눈동자를 굴려 츠위의 얼굴을 보자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내 말을 곱씹는 듯 표정이 진지하다.

"그렇다면 만약.. 확실한 오더가 있으면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지겠지만.. 참고로 나는 생각 없다?"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츠위가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부담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만에 하나 걔네들이 내 말을 딱딱 들어준다면 내 편의를 위해서라도 해줄 용의가 있지만.

"선수들이 말을 들으면 해줄 수도 있다는 거에요?"

"글쎄, 그럴 일은 없을 걸."

나는 츠위의 물음에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츠위도 그 이후로 딱히 경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물어오는 일은 없었다.

경기의 흐름은 예상되었던 대로 역시나.

바론을 먹고 밀려오는 TCG의 진격을 막는 것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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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 '상하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 레전드' 라고 구글에 검색하면 경기장 이미지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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