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599화 (59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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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

LSPL의 결승전이 끝난 이후.

약 일주일 째인 오늘 참 신기한 일이 있었다.

정확히는 현재 진행형인 일이다.

<정말 송구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억에 남아있다.

본인이 누구라고 밝혔으니 기억할 것도 없었다.

LSPL에서 말투가 심히 실례스러웠던 쿡야 게임단의 감독 청윈이다..

"뭐, 아셨으면 됐습니다. 앞으로 조심하시구요. 그럼 끊겠습니다."

사과를 하니 받기야 하겠지만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

수화기 너머로 무어라 이어지려는 말을 무시하고 나는 통화를 끊었다.

그런데 사과를 받고도 영 개운하지 않은 이 기분은 뭘까.

'이렇게 시원스런 녀석들이 아닐 텐데.'

청윈 감독만이 아니다.

선수부터 코치까지 관계자 전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몇몇은 직접 찾아와서 성의를 표해도 되겠냐고 말했지만 거절했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영문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보인단 말이지.. 딱히 알 바는 아니지만.'

태도에서 추측하건데 거짓부렁은 아니었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 녀석들이 태세 전환을 했을까.

아주 잠깐 고민하던 나는 생각을 멈췄다.

'고민한다고 답 나올 이야기도 아니고. 굳이 캐물어보기도 싫고.'

정말로 친분이 쌓이게 된다면 그때 사정을 물어봐도 될 일이다.

만약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사과를 하고 그런 거라면 알아봐야 찝찝하다.

오히려 캐면 캘수록 궁금증만 더해질지 모른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네 생각은 어때?"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역시 사과를 해야겠죠. 참 잘된 일이라 생각해요."

나는 점심 식사로 햄버거를 한 움큼 베어 물며 츠위를 바라봤다.

물론 그냥 햄버거가 아니다.

츠위가 본고장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를 직접 만들어줬다.

아삭하게 씹히는 양상추가 살아있는 게 수제 햄버거라 그런지 다르긴 다르다.

"잘된 일이라면 잘된 일이지. 조금 찝찝하긴 하다만."

"왜요? 상대 쪽에서 성의가 부족했나요?"

"그런 건 아닌데.. 저렇게 순순히 사과할 애들이 아니었던 거 같아서."

오늘로 한 지붕 아래에 산지 2주쯤 흘렀다.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아졌고, 서스럼도 없어졌다.

흐른 시간에 비례해서 친밀해졌다는 느낌이다.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야.'

동거를 하다 보면 보통 케이스가 두 갈래로 나뉜다.

관계가 악화되거나 친해지거나.

그 중간은 의외로 잘 없다.

다행스럽게도 츠위의 경우 후자였다.

그녀의 입장상 기본적으로 맞춰주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전체적으로 호감이다.

츠위 본인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저도 하루하루가 보람차서 기뻐요. 요리도 잘 먹어주시고, 중국 생활에도 적응하신 거 같고.. 그런데 대회 준비는 안 하세요?"

"해야겠지. 근데 그건 내가 할 게 아니잖아. 발등에 불 떨어진 쪽이 연락을 주겠지."

아무래도 츠위는 내 선수 생활에 대해 관심이 많나 보다.

가끔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어 온다.

대답하기 난감한 부류는 없어서 말은 해주고 있다만.

신기하게도 츠위에게 말을 하면 어느샌가 일이 풀려있다.

'혹시 회장에게 넌지시 간언을 했다거나?'

단순히 회장 손녀라는 점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회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네 일을 해결했다.

그런 거라면 납득이 가지만 설마.

'에이, 그냥 어쩌다 잘 맞아 떨어진 거겠지.'

나는 상하이 스파이스 치킨버거를 입 안에 구기듯 넣고 콜라를 빨았다.

원래 햄버거는 이렇게 우적우적 씹어줘야 제 맛이다.

그러고선 목이 막힐 때 얼음을 넣은 시원한 콜라로 넘겨버린다.

이 이상의 선택지가 어디 있을까?

"잘 먹었어. 그럼 난 볼 일 보러 들어갈 테니 뭔 일 있으면 까톡으로 연락 주고."

"네, 따로 후식은 필요 없으신가요?"

이렇게 잘 먹어 놓고 후식까지 바랄 리가.

너무 잘 신경 써서 가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뭐, 언제나 그렇듯 주면 잘 먹지만.

'2서버도 슬슬 마무리 단계고 과일 먹으면서 방송이나 이어서 해볼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받긴 받았다.

쟁반에 네모나게 자른 사과와 다른 과일들이 한가득이다.

못 보던 종류의 과일까지 있어 상당히 호화스러워 보인다.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물어도 봤지만 아니란다.

중국은 과일 가격이 싼 편이라고 한다.

'요즘 한국은 사과 한 톨도 금값이던데.'

천정부지 치솟는 과일값이 적잖이 부담됐다.

적어도 중국에 있는 동안은 마음 편히 식도락을 즐겨도 될 듯하다.

살짝 향락을 누리는 것 같아 사치스러운 기분이다.

-오, 방송 켰다.

-OppaDAAAAA

-2서버도 1위 달면 1서버 가?

-아니지. 2서버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걸?

방송을 켜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온다.

최근 평균 시청자는 대략 20만 명.

여기서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유지되고 있다.

'간단한 채팅들은 제법 읽히게 됐네.'

어디까지나 간단한 채팅들이다.

조금만 문장이 길게 늘어져도 모르겠다.

이것만으로 괄목상대한 성장이고 충분 도움이 된다.

아예 안 읽히는 것과, 그래도 읽히긴 하는 건 내 입장에선 천지차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대략이나마 알 수 있다는 소리니까.

덕분에 채팅창에도 눈길이 많이 가게 됐고 방송 진행에도 많이 도움이 된다.

쿠웅!

큐를 잡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것은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다.

방송 시청자가 대략 20만 명.

현재는 방송을 킨지 얼마 안돼 3만 명 정도다.

내가 숫자 감각에 무감각해졌을 뿐이지 3만 명이면 엄청난 수다.

이만한 수의 시청자들이 비단 방송을 보기 위해서만 온 건 아니다.

일부, 극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내 게임을 저격하러 온 이들 말이다.

한국이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사례다.

'보통 이 정도 구간으로 올라오면 애들 개념이 충만해지는데 중국 애들은 참 막가파야.'

지금 내 점수는 그랜드 마스터 500점.

중위권이 조금 안되는 구간대다.

한국에도 물론 저격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 오면 보통 사라진다.

'눈치 보여서라도 할 수가 없지.'

만나는 놈들만 줄창 만난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악효과도 분명 있다.

응, 너 만나면 게임 안 해 미드 달릴 거야.

하지만 그건 마스터 티어 시절의 이야기다.

그랜드 마스터쯤 되면 막 나가던 아마추어들도 슬슬 생각한다.

혹시 나 프로될 수 있는 거 아니야..?

몸가짐도 발라지고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하게 된다.

특히 프로들 눈치를 엄청나게 본다.

내가 여기서 스카웃이라도 당하면 만나게 될 사람들.

괜시리 찍혀서 좋을 게 하나 없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사고 방향이 조금 다른 모양이다.

-라유리가 올마스터 저격하고 있네kkkk

-나도 보는 중! 마검사 밴 한다더라.

-캬~ 진짜로 밴하네.

-도라이븐도 잘림wwwww

프로를 지망 안 하는 아마추어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간단하다.

안 해도 돈이 되니까.

한국으로 치자면 BJ, 스트리머가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다.

'어설프게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것보다 나을 정도로.'

한국이나 중국이나 게임 잘하면 방송하기 쉬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은 시청자수가 정말 오질나게 많다.

시장이 큰 만큼 스트리머가 받는 페이도 늘어난다.

한국과 달리 다른 나라들은 프로게이머도 방송을 할 수 있지 않나?

그냥 프로하면서 BJ도 겸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꼭 잘되는 케이스만 있는 건 아니다.

프로게이머를 하면 홍보도 되지만 오히려 밑천이 드러나는 경우도 흔하다.

아마추어에서는 날고 기던 녀석이 프로 세계에 들어가니 영 아니올시다.

시청자들의 환상이 와장창 깨지고 만다.

'챔프폭 변경이나 스케줄 탓도 있고, 굳이 모험을 지향할 필요가 없다. 뭐 그런 이야기지.'

본래 하던 대로 게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적지 않다.

날고 기는 아마추어들 대부분은 챔프폭이 좁다.

특히 한 챔프의 장인들은 영향을 엄청나게 받는다.

한국처럼 어떻게든 프로 해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러지 않아도 먹고 살 길이 열려 있어 아등바등 안 해도 된다.

프로를 아예 포기해버린 이들은 행동에 가감을 두지 않는다.

눈치 볼 상대가 전혀 없는 프리한 영혼이라 말할 수 있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당연하게도 BJ들 뿐만 아니라 일반 아마추어들도 저격을 한다.

이러한 사정과 3서버보다 약간은 더 높은 수준대.

2서버의 정복은 약간 더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요약하자면 시간 문제라는 소리다.

콰항!

세 번째 검격이 땅을 내려치며 네네톤을 얕게 띄운다.

네네톤은 거대한 칼을 크게 휘둘러 반격하지만 손해다.

방금 전의 딜교환 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게임의 구도가 말이다.

'실력차 날 때 양학하기 좋은 건 역시 리픈만한 게 없어.'

더더욱이 최근에 패치도 됐다.

리픈의 Q스킬, 파열된 날갯죽지 3타로 벽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아직 비주류 챔프라는 이미지가 강해 잘 쓰이지 않는다.

특히 네네톤이나 쇈 같은 탑 주류픽들에게 카운터 맞는다는 부분이 크다.

꾸드득!

쿠러렁!

저렇게 확정 스턴으로 시작하는 네네톤의 스킬 콤보는 악명이 높다.

서로 간에 실력 차이가 비등하다면 이길 수가 없다고 평받을 정도다.

만약 나랑 쟤가 비슷하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챠락, 챠작!

콰항!

빠른 속도의 평캔이 믹서기처럼 네네톤의 가죽을 도려낸다.

마지막 3타로 네네톤을 투웅! 띄워내며 이어나간다.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한 번 더 스턴을 건다.

쿠훙!

네네톤 하는 사람들이 종종 착각한다.

라인전 강캐니까 초반에 무조건 이기겠지.

그건 어디까지나 패시브 관리를 잘했을 때의 이야기다.

1레벨 주도권을 밀린 네네톤은 야성이 부족했다.

나에게 갈긴 두 번의 스킬 전부 강화된 상태가 아니였다.

스턴 시간도 적고, 칼질도 얕게 베였다.

스킬이 다 빠진 네네톤은 단순한 샌드백.

따라가서 발화걸고 평타 툭툭 두들긴다.

그렇게 지속딜 싸움이 되면 리픈의 승리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잘하는 장인들은 챔피언 상성을 뒤집을 수 있다 카더라.

이런 뇌피셜이 있는데 기본적인 라인전 메커니즘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잘하는 사람들도, 잘하는 사람끼리 붙으면 결국 상성 좋은 쪽이 이긴다.

내가 네네톤이었다면 1레벨 라인 주도권을 절대 뺏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라인 푸쉬하고 일방적인 딜교환으로 체력 깎고.

그러다가 킬각 야무지게 잡아서 솔킬 따버리고.

승리로 향하는 공식이 탁탁 정해져 있다.

그런데 실력 차이가 나다 보니 첫 단추부터가 잘못 꿰어졌다.

야성이 부족한 네네톤은 가진 바 힘을 백분 발휘할 수 없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나오는 킬각 또한 알아보지 못했다.

덕분에 퍼블을 딴 건 희소식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꼭 이 타이밍에 먼저 오게 돼있어.'

솔로랭크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리고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긴 뭣하다.

상대팀에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라인 위주로 포커싱이 되기 마련이다.

적팀의 정글러 이블퀸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냈다.

챠라락!

속도를 한껏 높인 이블퀸이 직선으로 나를 쫓아온다.

점멸이 빠진 나는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다.

그 중에서 단 하나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가 보였다.

챠락, 차작!

두 번 낮게 뛰어 도망간다.

그리고 세 번째 검격을 이블퀸을 향해 먹인다.

얕게 띄우며 이어서 스턴을 연계.

아주 잠깐 붙잡아두면 족하다.

티링!

근거리 미니언을 잡자 레벨이 오른다.

네네톤을 따낸 시점에서 이미 눈여겨보고 있었다.

곧바로 E스킬, 용기를 찍어 한 걸음 더 뒤로 뺀다.

'이래봤자 결국은 죽겠지만.'

이블퀸이 점멸로 따라와 스킬 콤보를 우겨 넣는다.

이어지는 레드 평타는 도망갈 여지를 삭제시킨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필연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 정글러 거미여왕의 백업이 한 발 늦게 도착했다.

비슷하게 왔다면 좋았겠지만 솔로랭크가 원래 그렇다.

원래 그렇다면 내가 잘해서 결과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기량 차에 의한 솔킬과 판단력에 의한 백업 호응.

어쩌면 작다고 할 수 있는 틈새를 비집어 열어낸 결과다.

'이렇게 참교육을 해줘도 꾸역꾸역 저격을 한단 말이야.'

수가 하도 많다 보니 어쩔 수가 없는 문제다.

이러한 상황, 지금껏 경험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구체적인 해결법은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싸그리 다 밟아버리면 되는 거잖아?'

오면 오는 대로 전부.

가능한 잔인하게 즈려밟는다.

이 또한 이미 방송 컨텐츠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찰칵!

간만에 잡아서 그런지 손이 조금 덜 풀렸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욱 더 악랄하다.

리픈에게 주도권을 넘겨 줘버리면 게임이 어떻게 비벼지는지, 현지 사람들도 한 번 느껴볼 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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