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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
한국과 달리 이곳 중국 서버는 오픈 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지간히 불리한 건 아니면 마지막까지 한 번 해보자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때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케 해준다.
─2Server No.1님이 카서트를 지목!
얼마 전 패치된 리픈의 세 번째 도약은 벽을 뛰어넘는다.
리픈의 동선과 행동 반경이 큰 폭으로 넓어진다.
탑에서 한 번 라인 주도권을 잡게 되면 어디로 쏘다닐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콰항!
유령벽을 넘어 미드를 노린다.
판정이 아슬아슬한 위치지만 타이밍만 잘 맞추면 가능하다.
그대로 대쉬해 스턴과 함께 콤보를 꽂아 넣는다.
쿠훙!
콰라랑!
카서트가 탈력 반응을 한 탓에 데미지가 경감했다.
훌륭한 반응 속도지만 스턴에 걸린 시점에서 이미 끝났다.
아군 미드라이너 구리가스가 두 개의 술통을 겹치듯 던져온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골렘벽을 한 번, 그리고 유령벽을 또 한 번 넘어 미드에 닿는다.
리픈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주변 라인도 방심하지 못한다.
여기서 한 번 더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순회 공연을 마친다.
─2Server No.1님이 핑크스를 지목.
카서트를 따내느라 체력이 꽤 손실됐다.
다른 챔피언이었다면 귀환을 해야겠지만 리픈이다.
늑대에게 평캔을 갈기면 어떻게 될까?
터엉!
1코어로 뽑은 배고픈 하이드라가 제 값을 톡톡히 한다.
순식간에 세 번의 평타와 액티브가 터지며 체력이 수백 차오른다.
이렇게 얻는 경험치와 골드도 상당히 쏠쏠하다.
로밍을 하면서도 시간을 빠듯이 활용해 성장한다.
<곰이다!>
아군 서포터 배티에 의해 봇라인 교전이 열렸다.
점멸 궁극기는 이니시를 거는데 최적화돼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싸웠을 때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던지는 모양새가 나왔을지 모른다.
슈욱..!
쿠훙!
적들은 3대3이라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적 정글을 돌아가 점멸로 타워 옆쪽의 벽을 넘었다.
점멸 이후 대쉬기로 연계되는 깔끔한 스턴!
궁극기는 미드에서 빠졌지만 이곳은 봇라인이다.
상대 봇듀오는 체력도 낮고 탈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이드라의 액티브를 퍼엉! 터트리며 광역딜을 선사하자 마무리된다.
─더블 킬!
2Server No.1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 차례의 순회 공연을 완주했다.
맞라이너인 네네톤은 탑라인에서 파밍하는 것밖에 방도가 없다.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덮치자 상대 미드와 봇은 킬을 내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다 보면 제아무리 멘탈 좋은 사람도 버티지 못한다.
-역시 양학에는 리픈만한 챔프가 없지!
-난 리픈만 하면 네네톤한테 발리던데.. 역시 잘하긴 잘하네.
-한국 사람들이 원래 롤을 이렇게 잘해?
-아닐 걸, 방장만 잘함.
한국 방송이랑 살짝 다른 점을 꼽자면 별풍 비스무리한 것이 자잘하게 계속 터진다.
파프리카TV BJ들은 동전 작작 던지라고 한 소리 하겠지만 이곳 중국은 다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곳이 가능한 인구수라는 사실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딱히 반응 안 해줘도 안 삐져서 좋아.'
애초에 컨셉을 나쁜 남자로 잡았다.
많이 쏘면 반응은 하지만 내가 좀 시크하다.
무엇보다 채팅창 반응이 조금 많이 신경 쓰인다.
-오빠야~ 내 아디 한 번만 불러도.
-오빠는 제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와, 올마 출세했네. 시청자 수 보소ㄷㄷ
내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게 그 유명한 한류 열풍인가 뭐시기 하는 건가.
츠위한테 물어봐서야 알았는데 중국 여성들이 한국 드라마를 엄청나게 좋아한단다.
'한국 드라마는 좋아하는 거야 이해할 만하지만 왜 나쁜 남자가 끌리는 걸까..'
의도한 않게 어쩌다 보니 이 상황이 돼버렸다.
어쩔 수 없이 쭈욱 나쁜 남자 컨셉을 유지하는 중이다.
나에게 있어 안 좋은 일이었다면 안 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극성 팬들 덕분에 악성팬들이 사라졌다.
말 한 번 잘못 꺼내면 묻어버릴 기세라 감히 한 마디를 내뱉을 수가 없다.
내뱉을 수 없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라 조금 슬프다.
어디서 막 번역기 같은 걸로 한국어 채팅 치는 사람도 은근히 보인다.
'하지만 저건 진짜 한국 사람 같지.'
간간히 진짜 한국 시청자들의 채팅도 눈에 띈다.
번역기로 복붙한 거랑 현지인이 친 거는 확실하게 다르다.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잉벤 등을 통해 포탈이 퍼진 듯하다.
─적팀이 찬성 4표 반대 1표로 항복하였습니다!
승리!
한 번 더 쓸어담자 항복을 받아내는 일은 간단했다.
모든 게임이 이처럼 쉬이 풀리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결과가 좋다.
늦어도 3일 내에는 2서버 또한 손아귀에 들어올 걸로 예상된다.
.
.
.
* * *
2서버의 솔로랭크 또한 아주 약간 늦어졌을 뿐 순조롭다.
이대로 1위를 찍고 1서버로 이주해서 한 번 더 정복하면 끝이 난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내 앞길을 방해하는 상대가 한 명, 아니 여러 명 눈에 걸렸다..
마검사[1/4/0]-정글러가 미드 딱 한 번만 봐줬으면 이겼는데..
리심[1/3/1]-탑 본 게 미스인 건 인정하지만 미드는 그냥 알아서 망했잖아?
제임스[1/8/1]-상대가 잘하는 걸 어떻게 해.. 하필 90King을 만나다니.
뿌린 대로 거두리라.
아군 마검사충이 대판 깽판을 쳐놓으셨다.
그것만이라면 커버가 가능하지만 진짜 문제는 탑이다.
아군의 탑 제임스가 피로라에게 무참히 썰렸다.
그냥 썰린 것도 아니고 볼 때마다 죽어준다.
미드와 정글까지 정상이 아니니 더 이상 게임을 이어나갈 수 없다.
'이건 그냥 서렌 치는 것이 속편하겠구만.'
이런 상황에서 아군들까지 티격대고 있으니 게임에 승산이 희박하다.
라인전이 채 끝나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서렌을 치자.
팀운 안 좋은 게임을 끝내고 다음 판의 큐를 돌리던 도중 기억이 났다.
'90King, 그리고 피로라.. 혹시 그 녀석인가?'
과거 연습생 시절의 나는 중국 이적을 위해 여러가지를 들쑤시듯 알아봤다.
하지만 알아본 건 어디까지나 게임단이나 중국 내 상황, 그리고 언어적 문제의 고찰이었다.
프로 선수들도 유명한 이가 아니라면 딱히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다.
같이 게임하게 될 프로들도 그럴 지언데 아마추어들은 오죽 할까.
그럼에도 몇 명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이가 존재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저 피로라 장인 90King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피로라로 인정받는 이였으니 유명할 수밖에 없었지.'
물론 리워크 전의 피로라다.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솔로랭크에서 티몽보다도 보기 힘들다는 그 피로라.
그런 피로라를 저 90King이 상당히 잘 다뤘다.
소문은 딱히 좋은 인간이 아니지만 실력 만큼은 괜찮다.
'중국의 도차라는 소문.. 들어본 적이 있어.'
프로게이머의 길을 일절 포기하고 전문 스트리머를 지향한다.
그런 이들 중에도 90King은 조금 심각하게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인성도 파탄났고 대리 게임 등의 직접적인 문제도 터트렸다.
물론 내가 그걸 타박하겠다는 소린 아니다.
까놓고 말해 쟤가 어찌 살던 내 알 바인가.
하지만 내 눈 앞에서 알짱거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채팅창에 신경이 거슬리는 채팅이 눈에 잡혔다.
-90King이 올마스터 솔킬 따는 거에 1만 위안 미션 걸렸다던데?
-아, 그래서 저격하는 거야? 그 정도 액수면 환장할 만하네wwww
-감히 우리 오빠한테 해코지를 해? 당장 쳐들어간다.
-오빠 부대 빡쳤네kkk 근데 거기도 팬층 만만치 않을 걸?
세상사 도차 마냥 남한테 민폐 주고 사는 편이 자기 뱃살을 더욱 두둑하게 살 찌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90King도 중국 내 인지도가 대단하다.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랭킹이 손가락에 꼽힐 수준이라고 한다.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먹고 사는 데엔 당연 지장이 없다.
'그래봤자 나보다 한참은 아래지만.'
현재 내 방송은 입소문을 타고 엄청난 수의 시청자들이 유입되었다.
그 유입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래도 인구수가 지나치게 많다.
소문이 퍼졌다고 번개탄 마냥 팍 꺼지지 않는다.
어떤 화제가 일어나면 불길이 가라앉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나는 그 불길을 상당수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불씨는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오른다.
쿠웅!
이윽고 다음 번째의 큐가 걸렸다.
과연 그가 원하는 대로 맞라인전이 성립될까.
모든 것은 내 선택에 달려있다.
.
.
.
* * *
전문 롤 방송 스트리머 90King.
그는 2서버 솔로랭크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서버에서 활동하는 일은 적지만 말이다.
그 아래 서버에서 양학을 하는 게 90king 방송의 메인 컨텐츠다.
혹은 팬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대리 게임을 해준다.
양학 잘하기로 손 꼽히는 BJ라 소문이 자자하다.
뿐만 아니라 높은 티어에서도 그의 실력은 보증돼 있다.
90king이라면 1서버에 가더라도 무조건 먹힐 것이다.
단순히 팬, 아마추어를 넘어 프로들조차 인정을 한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프로가 아닌 스트리머를 고수할까.
'피로라 하나만은 내가 세계 최고야!'
세계 최고의 피로라 장인이라는 타이틀.
90King에게 있어 유일한 자랑거리임과 동시에 족쇄였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리는 명확한 선이었다.
피로라를 유별나게 잘하지만 다른 챔프는 그만치 못한다.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프로게이머 전직을 포기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프로 하면 탑라인 무조건 터지고 시작하지."
증거가 없으면 모르되 있다.
방송을 통해 그만한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피로라만 잡으면 어떤 게임이든 캐리해낸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그의 방송에 매료되었다.
-90갓이 피로라 들면 프로게이머도 씹어먹지!kkkk
-상대가 만약 피로라 밴하면 어떻게 해?
-다른 챔프들도 준수하게 하는데 밴 카드 소비시킨 걸로도 개이득이잖아.
-그건 그렇네 인정한다.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은 프로게이머의 세계에 대해 밝지 못하다.
챔프폭이 좁다는 사실이 얼마나 한 영향을 미치는지 긴가민가하다.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90King 본인은 인지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 바가 훨씬 많을 뿐더러 자신감도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90King은 그가 부러웠다.
'차도리.. 그 녀석처럼 챔프폭이 조금만 넓었다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ChadoRE, 차도리라는 아이디를 쓰는 로얄CN의 미드라이너.
그는 귀화 중국인으로 본래 국적은 한국이었다고 한다.
'거기서는 나랑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놈이었다던데..'
90King과 차도리.
둘 모두 솔로랭크의 최상위권을 달린다.
그리고 안 좋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챔프폭이었다.
차도리는 여러가지 챔피언들을 다룰 줄 안다.
특히 메타에서 꿀이라 평받는 챔피언들을 빠르게 적응해낸다.
이는 상당히 얌체같은 행동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프로로서는 탁월한 재능이다.
그에 반해 90King 자신은 겨우 피로라 하나 뿐.
다른 챔피언을 아예 못 다루는 건 아니지만 손색이 있다.
그 정도로 해서는 프로 레벨에서 써먹기가 힘들다.
어떻게 연습을 한다고 해도 눈에 띄지 못한다.
솔로랭크에서 밥버러지라 생각하던 놈들에게 져버릴지 모른다.
"저 올마스터인가 뭐시긴가 요즘 날고 긴다는데 나한테 걸리면 얄짤없어. 그냥 썰리는 거야. 내가 프로 안 하는 걸 저 자식도 다행이라 생각할 걸?"
시청자들을 향해 내뱉는 말과 그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자신도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다면 진작에 했다.
스트리머가 버는 돈 물론 많다.
앞으로의 생활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의 최상위권 유저들의 생각은 하나로 통한다.
롤챔스, 넘어서 롤드컵.
세계 최강이라 칭송받고 싶다.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라 평 받고 싶다.
이는 잘 나가는 아마추어들이 적어도 한 번은 꿈꾸어보는 이상이다.
90King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날개를 꺾은 이유.
자신의 주제, 피로라 원챔 유저의 한계를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격밴만 아니었어도 어느 서버든 랭킹 1등을 찍어낼 자신이 있어.'
랭킹 1등을 찍는 것과 유지하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그리고 그는 애시당초 1서버에 가보지도 못했다.
그렇다 해도 완전 헛소리로 치부할 내용은 아니었다.
2서버에서 활동하는 프로게이머들조차 그의 피로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장인충 특유의 집요한 킬각.
피로라가 가진 캐리력을 10할, 아니 12할 이끌어낸다.
그와 라인전을 진행하는 것 자체를 상당히 껄끄러워 한다.
최소한 2서버의 최상위권 유저들 중 그의 실력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때문에 밴.
적팀에 90King이 있다 들리면 피로라 밴 때리고 본다.
설사 없다고 해도 밑져야 본전이다.
'치사한 색히들. 피로라만 들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그가 2서버를 굳이 벗어나지 않는 이유.
본계정 보다는 양학에 집착하는 이유.
프로게이머를 꿈꿀 수 없는 이유.
하지만 피로라만 들 수 있다면 모든 것이 180도 변한다.
피로라가 손에 들린 이상 자신은 무적이다.
상대의 밴에 피로라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90King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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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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