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
3, 2, 1
90king을 잡아낸 이후 일은 술술 풀렸다.
일단 저격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없지는 않았지만 줄어드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쓸데없는 변수가 적어지자 앞길이 탄탄대로다.
순풍에 돛 단 듯 치고 올라간다.
90King의 저격이 있고 나서 하루 후.
바로 오늘 3서버에 이어 2서버까지도 랭킹 1위를 달성했다.
여기까지는 정말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금 확인하려는 바도 좋은 일이 맞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모니터에 창을 띄워 츠위에게 보여줬다.
"그래서 이게 다 얼마라고..?"
"300만 위안, 근 5억원 정도에요. 근데 저한테 물어보시지 않아도 이제 알지 않으세요?"
알다마다다.
쉬운 중국어 정도는 읽는데 부담이 없다.
후원받은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건 가장 먼저 배웠다.
당연히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후원 받은 액수가 조금 심각하게 많다.
"아마 90King의 시청자를 흡수해서 그런 걸 거에요. 또 유입도 많이 됐고요. 혹시 커뮤니티 사이트들 보시나요?"
"아니, 안 보는데. 채팅창 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글까지는 못 읽지."
츠위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나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잠시 컴퓨터 좀 빌려 써도 되겠냐고.
그렇고 그런 영상들은 뜸부기에 꼭꼭 숨겨두었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
내가 앉고 있던 의자에 츠위의 작은 몸이 들어갔다.
그녀가 컴퓨터로 조작한 것은 인터넷이었다.
처음 보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모니터 화면에 띄워졌다.
그 사이트들이 어떤 곳인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로드 오브 로드 팬 커뮤니티.
로고나 캐릭터만 봐도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내 이야기가.. 상당히 많네?"
"그렇죠? 이제부터는 슬슬 줄어들겠지만요."
이 녀석 은근히 사람 성질 긁는데 뭐 있다.
방송 시청자수 심각하게 많았던 건 나도 인정한다.
슬슬 초기 버프 사라지고 거품 꺼질 시기라는 건 나도 생각했어.
여기까지는 내 오해였고 츠위가 말하려는 바는 확연히 달랐다.
"곧 롤드컵이 열리잖아요. 다른 대회는 안 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롤드컵은 많이들 챙겨 보거든요."
최근에 조금 바쁘게 살다 보니 잊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갈 일이 없어 기억에서 삭제했다.
롤드컵,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회가 슬슬 막을 올릴 때다.
'나 하고는 전혀 연이 없어서 깜빡했지.'
한국 롤드컵은 누구누구가 벽을 못 넘어서 패스.
중국 롤드컵은 애시당초 갈 팀이 정해져 있었다.
갈 기회가 생긴다 해도 갈 생각은 없지만 어쨌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중국은 다른 나라와 롤챔스 시스템이 다르다고 한다.
'한 번만 우승을 하면 된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이제야 알 것 같아.'
나를 고용한 입장에서 너무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 아니냐.
롤챔스 우승 한 번 따위 나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그런데 알고 나니 대략 고개가 끄덕여졌다.
중국은 열두 지역에서 제각각 롤챔스가 치러진다.
이곳 용어로는 LPL이지만 요지는 같다.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까닭은 간단.
인구수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서다.
"세계에서 제일 많잖아요."
"그래.. 많아서 좋겠다."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건 츠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우쭐하는 표정이 얼굴에서 드러난다.
나름 귀여운 표정이라 밉지는 않다.
좌우간에 인구수가 많은 중국은 각지에서 따로 LPL을 치르고 한 번 더 대표전이 연다고 한다.
"한 마디로 롤챔스를 두 번 치르는 셈이네. 선수들이 피로하진 않아?"
"대신 중국은 롤드컵을 제외하면 다른 대회는 잘 안 치르니까요. 그리고 경기가 많아야 선수들도 페이를 많이 받지 않을까요?"
츠위의 말은 다분히 옳다.
경기가 많아야 시장도 활성화되고 일자리, 프로게이머들도 많아진다.
과연 기업가의 손녀님다운 발언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 특유의 롤챔스 방식 때문에 대회 마감이 타 지역보다 늦어진다.
두 번 치르니 만큼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다른 나라와 리그 포인트를 산정하는 기준이 다르게 됐다.
지난 해 서머 시즌부터 올해 스프링 시즌까지를 합산한 수치가 롤드컵 시드권에 연결된다.
'결국 나는 롤드컵과 인연이 없다는 소리네.'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해도 안 가겠지만 은근히 섭하다.
그냥 올해 롤드컵은 가지 마라고 못을 팍! 박아 놓은 것 같다.
내가 잠깐 생각을 곱씹는 사이 츠위가 또다시 몇몇 개의 창을 띄웠다.
"아까 이야기 마저 말인데 이거 보세요."
"설마 나보고 읽으라고? 뭐.. 시도는 해보겠다만."
잉벤으로 따지면 화제글 같은 개념이다.
조회수가 많고 사람들의 추천을 많이 받은 게시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자, 한 자 세심하게 살펴봤다.
채팅체와는 달리 상당히 알아보기가 힘들다.
좀 솔직히 말하자면 뭔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 이 글이 주제가 무엇인지는 파악된다.
"최근 롤 방송 시청자 수 변화? 내가 1위네?"
"그야 당연하죠. 저희 쿡야에서 대놓고 밀어 줬는걸요."
이 녀석 참 단어 선택이 당돌하기 그지없다.
맞는 말이지만 내가 잘한 것도 좀 칭찬을 해주지.
츠위가 마우스 포인터를 끌어 하나의 문단을 강조했다.
"밀어준 것만이라면 시청자수가 하향 곡선을 그려야 하는데 오히려 올라가요. 고정 시청자들을 그만큼 많이 모으셨다는 증거고 또 다른 BJ들에게서 뺏어온 것도 있어요 특히 이 사람."
츠위가 이 사람이라 말한 녀석은 알 것 같다.
중국어가 아닌 숫자와 영어로 써있으니 알다마다다.
얼마 전 나를 저격했던 90King이란 녀석이다.
"그리고 여기 글들 보시면 그에 대한 여론이 별로 좋지 않죠? 시청자가 상당수 줄었고 그 시청자는 아마 시현씨의 방송으로 옮겨갔을 거에요."
"지난 주에 비해 수익이 엄청나게 올라간 건 그래서였겠구나."
단순하게 서버 하나 1위 찍는 시간만을 따진 거니 날짜도 이틀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 해도 조금 의아할 정도로 액수가 많았다.
그 의문이 츠위 덕분에 대략 풀리게 되었다.
'중국 롤 커뮤니티 사이트. 중국어 배울 겸 보면 괜찮겠네.'
지금 츠위가 검색한 사이트들 위주로 보면 될 테다.
방문 기록이 남아있으니 찾아보는 것은 손쉽다.
나에 대한 호평도 오가고 있는 듯하니 궁금해서라도 찾아본다.
"돈도 벌었겠다. 오늘 저녁은 외식 하지 않을래?"
"저녁 다 해놨는데.. 어쩔 수 없네요. 해놓은 건 내일 아침으로 먹죠."
츠위 성격이 많이 깐깐한 편이다.
그렇지만 융통성은 있어서 차선책을 잘 내놓는다.
기업인에게는 딱 알맞은 성격이 아닐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티타늄 수저라 그런지 억소리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몇 백만 위안, 수억 원을 벌었다.
나로서는 입에 담기도 떨떠름하다.
아,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구나.
내가 하는 일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그런데 숫자로 환산해 탁탁 계산해서 말하는 것 보면 정말 기업인의 핏줄이다.
내가 말하기는 뭣하지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파랗다던데 이 녀석은 될 사람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쭈욱 도움이 될지 모른다.
'인맥이 하나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정말로 그릇이 큰 녀석이다.
이 녀석이 윗사람이라면 아랫사람 입장에서도 분명 일할이 맛 날 거다.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능력을 놓고 봤을 때 정말 타고났다.
.
.
.
* * *
일단 밥 사준다고 폼 잔뜩 잡고 가기는 갔다.
그런데 내가 이 드넓은 중국에서 아는 식당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츠위한테 물어 괜찮은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발걸음이 아니라 차를 타고 갔다.
"츠위 너 운전할 줄도 알았어?"
"성인되고 바로 땄어요. 있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아서요."
나도 면허 정도야 있지만 중국에서는 아직 못 쓴다.
그리고 이만한 리무진을 운전할 만한 배짱이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 츠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를 몰고 있다.
나보다 어린 데도 참 대단한 녀석이다.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이 녀석이 어째서 가정부 따위를 하고 있나.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렇게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좀 오래 가길래 비싼 곳을 가나 싶었다.
"여기서 먹으면 어떨까 하는데.. 참고로 여기 조금 쎄거든요?"
"설마. 겨우 외식 한 번 가지고 쪼잔하게 굴까 봐."
수억 원이나 되는 목돈을 벌어 놓고 설마 밥 한 끼 가격을 아낄까.
듣기로 방송으로 통해 번 돈도 고스란히 내 지갑에 들어간다고 한다.
심지어 파프리카TV와는 비교도 안되게 수수료가 적다고.
확실히 돈을 생각한다면 중국만한 시장이 없긴 하다.
그런 목돈을 만진 나에게 이런 허름해 보이는 식당 쯤이야.
소문난 맛집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동네 식당이다.
자릿세가 부담돼서 도시 외각에 세울 정도면 말 다한 수준아닐까.
나는 너무나도 큰 오산을 하고 말았다.
"츠위야... 여기 좀 많이 넓다?"
"소문난 맛집이니까요. 사람도 많이 오거든요."
대문은 정말 허름했다.
문의 크기는 다소 컸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주위 숲에 있는 대나무들을 얼기설기 엮어 만들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니 아차 싶다.
안 쪽도 별반 다를 건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다르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
'친환경 인테리어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거구먼..'
주위는 온통 대나무로 된 숲으로 둘러 쌓여있다.
그리고 그 안 쪽엔 커다란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다.
호수 위에는 대나무로 지은 듯한 수상 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인테리어, 주변 환경 조성에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다.
츠위와 함께 천천히 안 쪽으로 들어가자 알 수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한 번 식사 하기도 힘든 곳이구나.
"흠흠, 이런 데서 한 번쯤 밥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요? 전 꽤 자주 먹는데."
티타늄 수저쯤 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한테는 인연이 없는 장소지만 경험 삼아 한 번은 괜찮을 터다.
운치 있는 곳에서 신선놀음 한 번 해보자.
남자 체면에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차마 꺼내지 못했다.
"아가씨 오셨군요. 그런데 오늘은 예정이 없으셨을 텐데.."
"그렇게 됐어요. 안에 자리 있나요?"
"원칙상 자리가 있어도 안되는 일이지만 같이 오신 분이 보통 인연은 아닌 듯 허니.."
식당 안 쪽은 의외로 현대식이었다.
외관은 예상했던 대로 인테리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검문이 걸렸다.
검문이라고 해봤자 나이 드신 어른 한 분이 나와 계신 정도다.
대화의 흐름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 식당은 순수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듯하다.
위치도 그렇고 지어진 조형도 그렇고.
확실히 일반인들이 다닐 만한 장소는 아니다.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니에요. 어떻게 되겠어요?"
"허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가씨 부탁인데 이번 한 번만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살짝 기분 상할 만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츠위가 이곳 식당의 단골인 덕에 입실 허가를 받았다.
비싼 식당은 역시 손님도 골라 받는구나.
'세상사 돈만 많아서는 안될 것도 있구나.'
저녁 한 끼 먹는데 별별 경험을 다 한다.
그렇게도 생각을 했었다.
늦은 저녁 식사를 가지며 츠위와 나누게 된 이야기.
어쩌면 츠위로서는 차차 준비를 해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별로 놀라지 않네요?"
"생각은 해두고 있었으니까. 놀랍지 않다는 소린 아니지만."
회장님의 손녀라고 했다.
하지만 스물 여섯이나 되는 친손 중 하나고.
무엇보다 내 가사 전반을 도와주는 가정부.
"어째서 그런 궂은 일을 맡게 된 건지 이제서야 이해가 가네."
"저는 사람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주의라서요. 마음이 상하셨다면 밥값은 제가 내죠."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츠위에게 말을 하면 일이 잘 풀린다.
그리고 이것저것 신경을 써준다.
가사나 식사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외.
이를 테면 방송 홍보라던지 일에 대한 부분도 많이 개입했다.
회장 손녀라는 입장을 활용해 신경을 써주는 건가.
그렇게만 생각을 하기엔 조금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츠위의 직책이 단순한 가정부가 아니라면 납득이 된다.
그녀는 쿡야 게임단 내에서 가장 높은 사람.
다름아닌 구단주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이래 봬도 츠위는 회장에게 촉망 받는 엘리트라고 한다.
"밥값을 됐고 사정이나 속시원히 들어보자."
"화.. 안 내요?"
화낼 것이 뭐가 있겠나.
나 같아도 그런 거금을 주고 사람을 들였다면 철저하게 관리했을 테다.
일거수일투족,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방식으로 굴렸을 것이다.
쿡야 측에서 그러지 않았던 이유.
사람은 결코 기계가 아니다.
닥달하는 것이 결코 최선이 될 수 없다.
느리지만 효율적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떤데?
"시현씨의 평가 말씀이죠."
중국에 와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솔로랭크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아마추어.
프로게이머들도 몇몇 있지만 유명한 이는 없었다.
대회가 지극히 가까운 시점이다.
그 준비에 여념이 없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현재 중국에서 나를 가장 옳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단 한 사람.
프로게이머도, 코치도, 하물며 감독도 아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봐온 츠위 뿐이다.
내가 인정하건데 츠위는 그만한 기량이 있는 사람이다.
츠위가 방긋 미소와 함께 나의 물음에 대답했다.
"최고에요."
"그거 다행이네."
이날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에서의 일정이 생각 이상으로 빡세지리란 것.
다른 하나는 여기 식당 내가 생각했던 가격보다 자릿수가 하나 더 붙었다.
============================ 작품 후기 ============================
좌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