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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어버린 역사
한국 서버는 양학하다 보면 조금 미안하다.
같은 나라 사람이다 아니다 이전에 애들 반응이 안타깝다.
제발 나 좀 죽이지 말라고.
얌전히 파밍 좀 하면 안되겠냐고.
눈물 겨운 광경이 연출되곤 한다.
물론 그런 반응 보인다고 안 죽이진 않겠지만 양심이 조금 찔린다.
하지만 여기 중국 서버에 한해서는 그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알아서 꼬치 꿰이듯 죽어준다.
촤자자작!
전방의 적들이 구멍 송송 벌집이 돼버린다.
빵테온의 E스킬이자 주력기, 심장약탈자를 찔렀다.
잘 커버린 빵테온은 스킬 하나하나가 궁극기에 필적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China No.1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적팀의 봇듀오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3.6AD라는 괴랄한 계수.
값비싼 2코어가 나온 빵테온의 위엄이다.
-그냥 스치면 끔살이네.
-근데 쟤네 입장에서도 어이없겠다. 이게 대체 몇 번째야.
-궁극기 쿨이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뒤 돌아옴kkk
로밍이라는 건 알면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르면 피하지 못한다.
이 간단한 논리를 실현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트페나 빵테온처럼 글로벌 궁극기를 이용하는 거다.
다른 하나는 단순하게 적 몰래 다가가는 거다.
나는 전자를 이용해 후자를 가리는데 사용했다.
빵테궁 빠졌으니 파밍 좀 해볼까?
응, 하지 마 그냥 죽어.
로밍의 요를 안다면 게임을 터트리는 건 여반장이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어찌 보면 입롤에 가깝다.
이 입롤의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한 마디로 그냥 라인전 이기면 된다.
라인전을 이기면 상대가 신경 쓸 게 많아진다.
신경 쓸 게 많아지다 보면 놓치는 것도 많아진다.
미드가 자꾸 오니까 자꾸 당해줄 수밖에 없지.
지금 전체 채팅으로 오가는 이야기도 이해하지 못할 부류는 아니다.
[전체]-파사딘 잡아달래서 잡아줬더니 게임 꼬라지 보소;
[전체]-돌잔치때 수류탄을 잡았나 미드 혼자 게임 터트리네.
[전체]-봇라인이 좀만 덜 죽었어도 할 만했는데 GG
[전체]-개그 하냐? 한 번이라도 따라오고 그 소리 함?
싸우든 말든 알 바 아니고 일단 게임은 터진 듯하다.
후반을 바라볼 기력은 없어 보인다.
결국 2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미드가 오픈됐다.
-오 마스터 티어 달성했다. 이거 방종각?
-시간도 늦었고 슬슬 방종하겠네.
-방장님 말 좀 해줘요. 요 깔아도 되는지.
오늘 하루는 거의 빵테온만 주구장창 했다.
빵테온을 하면 게임을 빨리 끝낼 수 있다.
반복 작업도 한두 번이지 이걸로 세 번째다.
아랫 구간을 학살하는 걸로는 더 이상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한다.
"방종각 맞는 거 인정하는 부분이고요.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니 내일 보자 이쁜이들."
오글거리는 한 마디와 함께 방송을 종료한다.
여성팬이 많은 만큼 가끔 신경을 써준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그대로 털썩 침대에 몸을 던졌다.
'별것도 안 했는데 이상하게 힘이 빠지네.'
미국에 있을 적에도 혼자 잘만 생활했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째선지 이곳 중국은 다르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분명 더 편하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음식 재깍재깍 가져다 준다.
같이 사는 사람이 심심한 타입도 아니고 나름 유쾌하다.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라 몸이 두 개였으면 바랄 정도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이 굉장히 공허하다.
그 이유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예은도 이런 기분일까.'
아침마다 연락을 주고 받음에도 직접 보고 싶다.
손을 잡고, 살결을 쓰다듬고, 꼭 안아주고.
이제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무친다.
'..절대로 우승해야겠다.'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 생각을 해봤다.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조금 징징대볼까.
아니면 하루이틀만 휴가 받아서 한국을 갔다올까.
어느 쪽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힘든 건 예은도 마찬가지일 테다.
화상통화를 할 때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그 여린 속을 모를 수가 없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노력하는 것.
만에 하나의 실수조차 하지 않고 반드시 우승하는 것.
이번 LPL은 분명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로얄CN.. 결코 거품은 아니었어.'
그들의 실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계 대회에서도 충분히 비벼볼 만한 여지가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선수는 미드라이너인 ChadoRE.
얼굴을 봤기에 확신할 수 있지만 내가 아는 그가 맞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중국팀 OMC도 굉장했다.
조별 리그에서 보여준 실력은 좌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냥 순수하게 실력을 논평하자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시즌3의 중국이 결코 약하진 않았지.'
내가 기억하는 역사에서 그러했다.
SKY T1 K에게 패배하기는 했으나 준우승.
로얄CN은 그만한 저력이 있는 팀이었다.
솔직히 대진운빨로 준우승 간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가 오가긴 했지만 결과란 건 무시할 수 없다.
모름지기 운도 실력이다.
자신들의 실력을 세계 무대에서 증명한 셈이다.
'그런데 그 로얄CN에 도차가 있다고.'
상당히 강력한 적이 될 것이다.
또 적은 로얄CN만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롤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하나 중국 내의 진짜 강호는 따로 있다.
'THEY와 IC. 중국 게임단에 관심 없었을 적에도 이 두 팀은 모를 수가 없었어.'
상황이 정말 얄궂게도 흘러간다.
이거 참 대회 끝나고 보너스를 받아야 하나.
그렇게나 많은 액수를 받아 놓고도 수지타산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LPL을 넘어 각 지역의 대표전까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태산과도 같다.
그렇게나 험하고 높은 산맥.
정상에 올라갔을 때의 희열도 더하지 않겠는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개인적인 소망으론 쉽게 쉽게 날로 좀 먹고 싶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리 쉬웠으면 내가 한 번의 실패를 경험했을까.
두 번째의 인생에서는 결단코 반복해서야 안된다.
고요한 밤이다.
그날 밤은 유난히도 깊이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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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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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 컵.
참가팀 수 세계 각지 열두 팀.
개최 장소 영국의 수도 런던.
8강과 준결승의 무대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
이미 준결승전은 끝이 났고 결승전에 올라갈 두 팀은 정해졌다.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열흘로 정규 대회 치고는 상당히 짧은 축에 속한다.
여러 나라에서 모인 만큼 선수들의 사생활을 고려한 결과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과는 반비례해 내용은 더없이 풍족했다.
세계 각지 롤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의 결과 또한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납득이 가는 수준이다.
더없이 치열했던 준결승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살아남은 두 팀은 가진 바 색깔이 확연하다.
북미의 강호 CLC, 그리고 유럽의 절대강자라 불렸던 모스코5의 후신 갬빗 게이밍.
마지막 격전이 이곳 독일의 베를린에서 치러진다.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는 수만 관중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오랜만인 기분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데카시르?>
<그렇지 않아요 콰른트. 모든 사람들이 댁처럼 금붕어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실례입니다. 사과하도록 하세요.>
<제가 시청자들께 큰 결레를.. 이 아니잖아!>
예나 지금이나 익살맞고 흥겨운 콤비다.
자학 개그가 특징인 캐스터 콰른트.
선수 출신으로 박식한 해설을 자랑하는 데카시르.
유럽의 로드 오브 로드 방송국은 여러곳 있지만 이 둘이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그에 따라 이번 2013년도 롤드컵의 공식 해설로 발탁되기도 했다.
개최지가 유럽인 데다 그들의 인지도를 생각한다면 당연하다.
둘 덕분에 대회가 한층 더 흥겹고 재미난다.
래딧 등에서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두 말하면 입만 아팠다.
─이런 빅매치가 성사되다니 하느님 맙소사..
CLC가 롤챔스에서 TSL한테 지더니 이번에 드디어 한 건 하나?
간만에 북미 대 유럽 구도 제대로 나왔네.
이건 치킨이 아니라 칠면조각이야!
└칠면조는 개뿔. 난 이미 베를린 경기장 도착함.
└암표 겁나 비싸 나쁜 놈들 진짜..
└그래도 경기장이 넓어서 다행이지. 좁았으면 생각하기도 싫다.
└나도 경기장 안인데 여기 내부 무대 쩔어.
독일 베를린의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
지금껏 거쳐왔던 다른 두 경기장보다 일단 크다.
수용인원이 대략 반 배 가량 차이가 난다.
그것만이라면 화제가 될 리 없었다.
진짜는 보는 이들의 눈동자를 큼지막하게 만드는 내부 구조에 있었다.
<저 거대한 모니터가 보이나요 데카시르? 기술이 발전하니까 별게 다 쏟아져 나오네요.>
<이거 참 쪽팔려서 모르는 척 하고 싶은데 하필이면 옆자리네. 덜떨어진 콰른트의 말대로 이곳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이한 구조에 대해 놀라신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 경기장의 구조가 가진 특성을 말씀드리자면…>
천장에 거대한 직육면체 형태의 스크린이 매달리듯 내려와 있다.
전후좌우 어느 방향에서든 문제없이 롤드컵을 관람할 수 있다.
그렇다.
중국 상하이의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와도 비슷한 구조다.
해설자 데카시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보다 불편함없이, 보다 재미있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을까? 피땀어린 연구의 결정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미 몇 개의 경기장에서 시험 운영이 되고 있으며 서서히 확충되어 나갈 예정이라 하네요. 사방이 온통 객석들로 가득하다 보니 어수선한 감도 조금 있지만 원래 이런 게 직관의 재미 아닌가. 사적인 의견 넣어봤습니다.>
본래의 구조를 따랐다면 2만 5천석도 빠듯한 경기장이다.
하지만 신규 방식을 도입한 덕에 3만여 개의 관중석 도입이 가능했다.
관중들이 앞 사람 머리 크기 신경 쓰거나 안 보여서 눈 찌푸리는 등 불편도 사라졌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이 약간 불편해지긴 하지만 감수할 수 있을 정도다.
상하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와는 달리 중앙 무대가 3중으로 격리되어 있다.
이 합리적인 구조의 경기장은 차차 세계 각지의 모든 롤챔스에 도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경기장도 멋지고 관중들의 분위기도 최고조로 달아올랐습니다. 결승전을 치를 선수들도 서서히 무대 위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치 레슬링 경기장을 보는 것 같네요. 한 번씩 하이파이브 쳐주는 팬서비스도 잊지 않는군요! CLC도, 갬빗도 그들이 걸어온 역사 만큼이나 팬들도 엄청나게 많으니 지는 쪽은 진땀 좀 빼야 할 겁니다.>
CLC는 북미에서, 갬빗은 유럽에서 정말 오래도록 활동해오며 차근차근 팬층을 쌓아왔다.
갬빗의 경우 최근에 한 번 휘청거렸으나 어떻게 팀내의 화합을 조정.
과거 모스코5 시절의 휘광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 CLC는 미드가 불안불안한데.
역시 TSL이 올라갔어야 했어.
하필 컨디션 문제 때문에 8강에서 1대2로 떨어져서..
다른 대회처럼 5전 3선승제였으면 충분 역전각 나왔을 텐데.
└운도 실력이야. 진 건 진 거지 깔끔하지 못하네.
└에러갓이 있었으면 이상적이었겠지만 지금 CLC도 충분히 세.
└CLC가 TSL에 밀린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미드는 둘 다 수비적이라 파밍 구도일 테고 한타 싸움으로 귀결나지 않으려나?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어느 정도 인정은 하는 분위기다.
이 정도면 북미와 유럽의 지역의 대표를 칭할 만하지 않은가?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 전임에도 치열한 예측이 오가고 있다.
<두 팀 모두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는 만큼 예상이 쉽지가 않습니다. 데카시르는 어떠한 구도로 흘러갈지 생각해둔 바가 있나요?>
<저는 콰른트와 달리 언제나 생각을 합니다. 해설자, 게임전문가로서 유추하건데 아마 미드는 무난한 파밍 구도가 되지 않을까…>
래딧 등에는 한 번 씩 올라온 이야기들의 총집편에 가깝다.
미드 라인은 서로가 수비적인 만큼 무난한 파밍 구도.
양 팀의 정글러는 세인트 조지아, 에메랄드 프록스 모두 클라스가 있는 만큼 치열한 눈치 싸움이 예상된다.
그리고 진짜로 치고 박고 혈전이 일어날 장소는 다름아닌 봇라인.
어느 쪽 원딜러가 성장을 잘하냐.
가장 눈여겨볼 포인트라는 것이 대세론이다.
해설자 데카시르가 개인적인 의견을 하나 덧붙였다.
<여기에 하나 더 조커를 추가하자면 탑라인입니다. 이게 모 아니면 도에요. 바이바이의 공세를 다리안이 버티냐, 못 버티냐. 버틸 수 있다면 갬빗이 확실하게 웃어줍니다.>
CLC의 탑솔러 바이바이는 지나칠 정도로 공격적이다.
그에 비해 갬빗의 탑솔러 다리안은 수비지향적으로 한타 캐리가 특기이다.
두 선수의 성향이 갈리기 때문에 게임의 구도도 극단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조커라는 단어 선택은 참으로 적절하다.
하지만 예상은 어디까지나 예상에 불과하다.
직접 맞붙어보기 전까지는 결과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 누가 시즌2 TWA의 우승을 점찍었겠는가?
바야흐로 북미와 유럽의 자존심을 건 대격돌이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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