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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어버린 역사
갈군 만큼 실력이 는다.
그런다고 실력이 늘면 인생 살기 얼마나 편하겠는가.
아무리 명코치라도 선수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칠 순 없다.
하지만 하나부터 다섯 여섯까지는 어떻게 쑤셔 넣을 수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이 바로 그것이다.
"겨우 그것도 못 피할 거면 하고 많은 포지션 중에 왜 하필 원딜을 하냐? 니가 탱커야? 다 쳐맞아주게? 그럴 거면 딜템은 왜 올렸어? 당장 템 다 팔고 탱템이나 덕지덕지 둘러라 아주."
옛말에 욕을 많이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지 않던가.
적절한 팩트폭력은 실력과 수명 향상에 도움이 된다.
쿡야의 원딜러 차우차우가 곤욕을 치른다.
다음 차례는 같이 라인전을 진행하던 서포터가 되었다.
"너는 뭘 잘했다고 쪼개고 있냐? 와드를 박을 때 생각을 좀 하고 박으라고 내가 몇 번 말했지? 상식적으로 거기 와드 안 박아도 동선 파악 다 되잖아? 와드 박으면 무조건 칭찬해줄 줄 알았어? 땅 파면 와드 값이 나오지 앙?"
차우차우를 실실 비웃고 있던 한 사람.
서포터인 아이스크림도 그냥 인정사정없이 패버린다.
가만히 있었으면 욕 좀 덜 먹었을 텐데 눈에 잡혔다.
자기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애들이 곱게 커서 잘 모르나 보네.'
원래 세상사 깔 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깔 수 있는 법이다.
한국 군대라고 거지 같은 곳이 있는데 거기 가면 그냥 이유없이 욕먹어.
그런데 넌 욕먹을 거리도 차고 넘치잖아.
대단한 실수가 아니라 나중에 까려고 했는데 제 무덤을 알아서 판다.
"너는 뭘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앉았냐. 아이디가 마파두부라 머리 안에 든 것도 두부 덩어리야? 내가 마파두부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너 때문에 요즘 마파두부만 보면 신물이 올라와. 정글 좀 생각하면서 돌라고 했지?"
이하의 주입식 교육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처음에는 살짝 반항기가 보이던 놈들도 어느샌가 말을 잘 듣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말 잘 듣는 놈들은 실력이 부쩍부쩍 는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악을 쓰는 수밖에.
그리고 팀단위 연습을 하기 전에 피드백이라던가 여러가지를 괜히 한 게 아니다.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듣는 구만.'
처음부터 갈구기만 했다면 턱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누구 마냥 빼애애액! 빼애애액! 불만만 지껄였을 터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부터 키우니 고분고분 말을 듣는다.
진행 상황은 확실히 순조롭다.
"어때요, 제 시간에 맞출 수 있겠어요?"
"아슬아슬.. 빠듯하네. 굴리고 굴려도 이 정도가 한계야."
츠위의 물음에 영 신통치 않다는 듯 대답했다.
원래 윗사람한테는 그렇게 말해야 함이 옳다.
그래야 기대치도 낮아지고 똑같은 결과를 이뤄냈을 때 만족감도 달라진다.
그런데 이 녀석에게는 잘 먹히지를 않는다.
"충분히 잘돼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정도면 그럭저럭 말씀하셨던 수준까지 도달한 거 아닐까요?"
"..아마도. 경기를 치르는데 문제는 없을 테지."
실력이 늘어난 건 쿡야의 선수들 만이 아니다.
구단주, 츠위가 현장에서 직접 감독을 도맡고 있다.
선수들이 말을 잘 들은 데는 이러한 사정도 없지 않다.
물론 그 이전에 내가 말 잘 듣게끔 갈군 게 먼저지만.
"당근과 채찍 아시죠? 법인카드 마음껏 사용하셔도 되니 가끔 친목 도모도 하셨으면 좋겠어요."
"알고 있어. 섭하게만 대한다고 안될 일이 되는 게 아니니까."
군대에서 흔하게 통용되는 논리인 안되면 되게 하라.
안되는 걸 제발 되게 좀 만들지 마.
안되는 건 그냥 안되는 거다.
가능한 되도록 노력을 할 뿐이다.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게 모범 답안이 될 수는 없다.
당근과 채찍, 최저 시급도 안 맞춰주면서 생색내는 게 결코 이상이 아니다.
노력과 성과에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
이곳 쿡야라는 기업의 모티브는 아무래도 나와 잘 맞는 듯싶다.
하지만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결과는 곧 성과다.
노력을 했다고 성과가 나오리란 보장이 없다.
"잘 부탁드려요. 저희 팀도, 이번 대회도요."
"그럴 거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지."
첫술에 배부르랴, 적어도 나는 그래야 한다.
만약 해내지 못한다면 계약 연장.
최악의 경우 2년 동안 중국에 발이 묶인다.
절대로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원래 이곳은 이런 세계야.'
그동안이 오히려 편했을지 모른다.
한치 앞을 모르는 컴컴한 어둠 속.
한 발자국 헛딛으면 그대로 나락이다.
알고 있었다.
프로게이머의 세계는 잔혹하고 냉혹하다.
승자에게는 무한한 영광을, 패자는 기억조차 되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발을 내딛게 될 장소는 실력과 결과만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처절한 사투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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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희한하고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의 로드 오브 로드 공식 대회는 롤챔스라는 단어를 차용한다.
어느 지역의 대회인지에 따라 NA롤챔스, KR롤챔스, EU롤챔스.
이런 식으로 갈릴 뿐이지 결국은 롤챔스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중국은 롤챔스가 아닌 LPL이라 부른다.
로드 오브 로드 프로 리그(Lord of Lords Pro League.)
이 명칭부터가 중국인들이 가진 자부심을 나타낸다.
<참가팀의 수만 무려 152팀! LPL이 세계 최고의 대회가 아니라면 어떤 곳이 감히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북미와 유럽의 대회를 전부 합쳐놔도 LPL의 규모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상해 LPL의 캐스터를 맡고 있는 더우니 버빈.
그의 입술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웅변이 터져 나온다.
참가팀의 수가 많으므로 세계 최고의 대회다.
어처구니 없는 비약이지만 그 몸집만큼은 인정해줄 만하다.
이만한 규모의 대회는 중국이 아니고서야 이루어질 수 없다.
각 나라의 인구수가 많은 것과 한 나라에 밀집되어 있는 것은 여건이 다르다.
교통에 드는 비용이며 절차며 마지막으로 홍보까지.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국도 E-스포츠의 열기가 못지 않게 뜨겁다.
인구수 대비 유저수는 북미와 유럽의 배 이상이다.
한 나라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기현상.
중국인들의 열기가 똘똘 뭉쳐 이루어진 대륙의 롤챔스가 막을 올린다.
<열두 지역에서 제각기 개최되는 로드 오브 로드 프로 리그! 마지막에 오를 단 하나의 황제를 가릴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그 영광스런 시작을 이곳 상해에서 저 더우니 버빈이 맡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당연하게도 중국 각 지역의 LPL들이 한 날 한 시에 치러질 리 없다.
시청률을 고려해 시차를 두고 나뉘어 치러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경기가 열리게 된 지역은 다름아닌 상해였다.
시드권을 결정하는 2군 리그, LSPL은 다소 늦게 끝났지만 휴식 기간은 충분했을 터다.
결정적으로 롤드컵에 참가 했던 중국의 두 팀이 상해 지역에 속해있지 않다.
그들이 속한 지역은 비교적 늦은 날짜에 LPL이 열린다.
약 2주 가량의 휴식 기간이 있었다곤 하나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13억 중국인들이 고대하던 LPL의 첫 번째 무대로 상해가 선택된 데는 당연 이유가 있죠! 상해야 말로 중국을 지탱하는 2대 산맥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전통적인 중국의 강호로 손 꼽히는 두 팀은 THEY와 IC다.
이번 롤드컵에서는 아쉽게도 진출권을 얻지 못했지만 그 인지도가 어디 가는 건 아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맛밤 게임단급으로 중국 내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강팀 중 하나인 IC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이 바로 상해.
팬들로서는 이번 섬머 시즌의 LPL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다.
아무래도 지난 스프링 시즌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스프링 시즌의 대표전에서는 로얄CN에게 한 걸음 밀렸습니다. 이번 섬머 시즌에서 반드시 설욕을 해야겠죠!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그들이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캐스터 더우니 버빈이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
타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있지만 결정적인 건 아무래도 대세론이다.
커뮤니티의 반응 등을 보고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
방금만 해도 IC가 로얄CN에게 설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흥 강호로 떠오르고 있는 로얄CN은 중국 내에서 영 인기가 없다.
더우니 버빈은 의도적으로 IC의 팬들 입맛에 맞는 발언을 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해설자들은 중립을 표방한다.
해설자들이 가지는 기본 소양 중 하나다.
하지만 더우니 버빈은 때에 따라 살짝 선을 넘기도 한다.
그의 중계는 한 마디로 인기 있는 방송을 지향한다.
사실 방송인으로서 상당히 위험 부담이 있는 행위다.
여기서 생기는 논란의 화살을 타국으로 돌린다.
이를 테면 그의 올마스터에 대한 스탠스처럼 말이다.
<아쉽게도 오늘 일정에는 없습니다만 최근 화제가 되는 모 선수가 있죠. 버빈 캐스터는 그가 아직 중국 리그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나요?>
<그렇습니다. 스크림이라던지 여러 야기를 전파 받은 바가 있습니다. 작은 우물을 벗어나 세계 속에 발을 담그자마자 크게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다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해설자의 물음에 더우니 버빈이 신이 나서 떠들어 댄다.
IC에 대한 호평과는 사뭇 반대가 되는 모습이다.
그는 올마스터가 처음 치렀던 경기에서도 캐스터를 맡았었다.
팀플레이가 지지부진하다.
너무 혼자서만 모든 것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혼자 다해먹어줬다.
그런 낯부끄러운 일을 겪었음에도 더우니 버빈의 입장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가 나름 실력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분명 이번 섬머 시즌에서도 나쁘지 않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 더우니 버빈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의 기량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LPL은 그야말로 용담호혈이니까요! 듣기로는 솔로랭크에서도 썩 높은 랭크에 들지는 못했다고 하던데요?>
<예, 큐가 안 잡히는 바람에.. 아니, 그런 건 다 변명이겠죠. 결과는 모든 것을 증명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흠흠. 일리 있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더우니 버빈의 눈치를 본 해설자가 급하게 말을 조정했다.
최근 개인 방송으로 올마스터가 상당한 인기를 모은 건 사실이다.
중국 내에서의 인지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추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방송에서 조금 약을 팔았을 뿐이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올마스터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아니, 세계적인 스타인 그가 더 증명하고 말게 어딨냐.
이 엉뚱한 의문이 생길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LPL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국의 리그도 인정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진짜는 역시 LPL이지.
이러한 자부심이 베이스로 깔려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 입장에선 어이없는 소리겠지만 정말이다.
방송의 시작부터 더우니 버빈이 부르짖고 있는 세계 최고의 리그 LPL.
더우니 버빈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캐스터들이 모두 해대는 소리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중국 사람들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슬슬 첫 번째 경기가 막을 올릴 시간입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 LPL! 그 시작을 알릴 두 팀의 어깨가 무겁게 됐습니다. LCD 게이밍 대 IC의 A조 첫 번째 경기! 세팅을 마친 선수들이 대륙의 기상을 전 세계에 뽐내겠습니다!>
LCD 게이밍은 나름 상위권에 드는 팀이다.
지역 대표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매번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팀의 역사도 짧지 않아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상대가 무려 IC다.
중국 최고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게임단이다.
공교롭게도 정말 불이 붙을 수밖에 없는 시작이 되어버렸다.
롤드컵 진출의 실패라는 아쉬움을 마셨던 IC를 띄워주는 그림이다.
<현장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롤드컵 결승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 호화로운 경기장을 LPL 내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천장에서 내려오는 직육면체 모양의 거대한 모니터.
롤드컵 결승전의 장소로 지정된 독일 베를린의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에서 보았던 희귀한 구조다.
당시 공식 해설을 맡았던 데카시르가 언급했던 대로 시험 운영을 하고 있는 몇 경기장들이 존재한다.
이곳 상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가 바로 그 중 한 곳이다.
적지 않은 비용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천천히 확충되어 나갈 예정이다.
중국은 E-스포츠의 세계화 추세에 발맞춰 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기로 유명하다.
상해를 제외하고도 북경 등 제법 여러 곳에 이미 특설 경기장들이 다가올 경기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서머 시즌의 LPL은 그 규모가 역대급이다
13억 중국인들의 관심이 중국 최대도시로 이름 높은 상해를 향해 모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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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롤드컵 파트가 끝났습니다.
슬슬 LPL과 1서버 정복 마무리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