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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사실 적당히만 하고 끝내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츠위가 이것저것 요구해온 바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뭐 타당한 요구인 건 맞아.'
역지사지 해보자면 당연하다.
LPL의 우승을 생각하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이른 시기다.
그래도 내가 떠난 이후를 생각해둬야 한다.
구단주로서는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터다.
"어찌저찌 끝내긴 했어. 덕분에 스크림 성적은 엉망진창이지만."
"원하신 대로 되신 건가요? LPL을 보니 더우니 버빈이 한 소리 하던데요?'
사정 다 알면서 얄미운 소리를 해댄다.
솔직히 결과만 놓고 보자면 연습의 결과물은 엉망이었다.
이전에 비해 스크림 성적이 오르긴 했으나 미묘하다.
'40승 33패.. 상대의 수준을 높게 잡긴 했지만 확실히 애매하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힘든 성적이다.
스크림을 압도한다 해도 온갖 변수가 존재하는 장소가 바로 대회.
게다가 필사적인 쿡야에 비해 상대팀들은 여유가 있었다.
당연하다.
하루이틀 손발을 맞춰왔을 리 있을까.
그에 반해 쿡야는 이제 막 프로 레벨로 걸음마를 떼고 있다.
중간중간 내가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5할의 승률마저 위태로웠을 것이다.
'깨져 봐야지. 힘들어 봐야지. 자기가 이기는 이유도, 지는 이유도 모르고 게임해 왔잖아. 애초부터 쉬운 길은 없었어.'
운영의 ㅇ자도 모르던 놈들이다.
본능의 의지에 살코기만을 물어뜯던 하이에나.
야생 짐승의 무리를 길들이는 것이 녹록할 리 있을까.
그간의 스크림은 일부러 승리를 지향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해라.
손발 꼬여서 넘어지더라도 그냥 해라.
그 결과, 스크림의 결과는 썩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것까지 적다는 소린 아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분명하게 성장했다.
이제는 슬슬 써먹어도 될 만한 수준이다.
다름아닌 내가 보증한다.
"후후, 마음에 들어요 그 자신감."
"고작 자신감에 불과한지는 이제부터 증명되겠지. 내가 아니라 쟤네들이 말이야."
상해 LPL의 3일차.
나는 이 거대한 경기장의 중앙에 와있다.
이미 부스 안에서 경기를 기다리는 와중이다.
그저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동료를 믿다니.. 그렇게 화기애애한 관계는 아니지 않았나요?"
"누가 쟤네를 믿는데? 쟤네를 키운 사람이 바로 나잖아. 나는 나 자신을 믿어."
과거의 나라면 상상조차 못했을 광오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말을 되삼키는 건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행적을 부정하는 일이다.
조금 심하게 대했던 건 사실이지만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어떻게 보면 제자.. 예은을 제외하고 누군가를 작정하고 가르치는 건 처음이네.'
은근하게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는 대충 제 역할을 하는 수준까지만 굴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나도 불이 붙었고, 츠위의 부탁도 작용한 점이 없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낼 결과물.
나로서도 솔직히 기대가 된다.
또 츠위의 바람을 이루기 위함이기도 하다.
고작 조별 리그에서 나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라면 이 팀에 미래는 없다.
"그래서 넌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있으면 안돼요? 저도 일단은 쿡야 소속이거든요?"
쿡야 소속이라기보단 쿡야가 네 소속이겠지.
윗사람이 열심인 건 보기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지 도를 넘으면 부담감만 준다.
"VIP석에서 편하게 보고 있어. 구단주가 부스 안에 들어오는 전대미문의 사태 만들지 말고."
"..치사해. 지면 절대로 한 소리 해줄 거에요."
장난스레 혀를 삐죽 내밀며 부스 밖으로 나간다.
말과 행동은 삐진 듯 보이지만 말투는 평이했다.
아마 예은이었으면 반대의 언행을 취했을 것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단 말이지.'
츠위가 외모도 반듯하고 성격도 괜찮음에도 연애 상대로 생각되지 않는 이유가 아마 이것일 테다.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다.
덕분에 별 신경 안 쓰고 경기를 진행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구단주 나으리가 자리를 떠나자 당사자들이 움직인다.
세팅을 마친 다섯 선수들이 나와 코치가 앉아있는 벤치로 모여들었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군기가 바싹 잡혀있다.
"방금 말 들었지? 지면 내가 큰일 나니까 절대 지지 마라."
"그야 저희도 이기고는 싶지만.. 상대가 제법 강한데 괜찮을까요?"
나에게 가장 혹독하게 갈굼을 받았던 마파두부.
팀의 정글러인 그의 우려는 타당하다.
조별 리그 첫 번째 상대가 된 팀CA는 약하지 않다.
라인전 하나 만은 강팀들에게도 꿇리지 않기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결코 세지도 않아.'
말하자면 과거의 그들을 비추는 거울이다.
제대로 된 운영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부딪힌다.
그러다 결과가 나면 한타로 가는 거고.
결과를 못 내면 속수무책 휘둘리다 진고 만다.
듣기로 중국은 게임단의 수만 수백이라고 한다.
2부 리그인 LSPL에 속한 이들까지 감안하면 대략 그 정도가 된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프로라는 허명만 단 빛 좋은 개살구.
아무리 개인 실력이 좋아도 프로 레벨의 운영을 모른다면 한계가 명확하다.
"지금의 너희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야."
"만약 자신 없다고 해도 결국 시킬 거죠..?"
"하하, 고 녀석들 참 갈수록 말대꾸가 늘어가네. 지금까지 해온 코스 한 번씩만 더 할까?"
타이르자 빠르게 제 자리로 흩어진다.
말로 잘 해결이 돼서 다행이다.
어차피 겪을 거 군말없이 하면 얼마나 좋아.
이는 절대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나 혼자 때려 패는 게 낫지.'
귀찮게 쟤네들 기량을 왜 끌어올리겠는가.
나로서도 혼자 게임하는 것이 더 편하다.
불안 요소가 있는 팀원들의 연습은 하면서도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가르치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해갔다.
의외로 나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아직 실전에서 증명은 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코치로 전직했어도 꽤 잘 나갈 수 있었을지도?'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다.
프로게이머가 아닌 코치로서의 자신.
중국 2군팀의 선수라도 되려고 했던 과거의 나는 그런 미래를 꿈꾸었다.
그랬던 내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받고 이 자리에 서게 되다니.
인생이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코치가 된 기분으로 벤치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내가 키운 쿡야-베이더스의 첫 번째 경기.
지금껏 쏟아왔던 피땀어린 노력이 달콤한 결실을 맺는다.
.
.
.
* * *
상해 LPL의 3일차.
유난히도 왈가왈부가 많았던 그 팀이 드디어 경기를 치른다.
그들의 활약이 엄청나게 기대가 된다.
아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별 볼일 없을 게 분명하다.
과연 어느 쪽으로 판정이 기울어질 것인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모아진다.
이례적이게도 중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오늘의 경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생뚱맞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충격적이로군요. 올마스터가 경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본래 쿡야 베이더스의 미드라이너였던 아몬드가 자리에 앉았군요. 어떤 연유에서 일까요?>
<일반적인 견해를 말씀을 드리자면.. 에이스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보통 팀의 전력을 숨기기 위함입니다. 여유가 있는 게임단이라면 흔하게 쓰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올마스터의 실력은 저도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부끄럼을 타는지는 몰랐네요. 저라면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불거지는 의혹을 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왔을 텐데 말이지요. 오늘 경기 이후 쏟아질 세간의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지난 LSPL의 준결승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방송을 통해 적지 않은 고정 팬층을 보유하게 된 올마스터다.
어설프게 까내리다간 자칫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다.
실제로 개막식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 된통 까였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실드가 불가능하다.
그간 입조심을 하였던 더우니 버빈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올마스터가 경기에 나오지 않다니?
팬들로서는 아쉬움을 넘어 살짝 화가 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여러 플랫폼들의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솔직히 쿡야 다른 애들을 별 기대 안되는데..
-짭세상 매직이다 뭐다 해도 올마 빼면 별로잖아?
-아마추어 때는 나름 기대했지만 LSPL에서 보여준 거 보면 음.. 그냥 그럼.
-기존팀들에 비해 딱히 특별한 게 없었지.
신세상 매직을 모티브로 삼았던 쿡야 게임단은 각 서버에서 유명한 아마추어들은 죄다 섭외했다.
때문에 창단 당시에는 상당한 이목을 모았으나 유통기한이 왔다.
LSPL의 결승전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패배가 결정적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마추어는 결국 아마추어구나.
경기의 내용 또한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오더가 엇갈려서 갈팡질팡 헤맨다거나.
충분히 더 맞서 싸울 수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하지 못한다거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막말로 쟤네 다섯보다 올마스터 하나가 더 잘해.
-올마스터가 마검사만 잡으면 혼자 싹 쓸어 담지kk
-근데 마검사 리메이크됐잖아? 이제는 무조건 AD템 가야 할 걸?
-설마 그래서 안 나온 건가..
-아니지. 올마스터 방송 안 봄? 챔프폭이 한두세네 개가 아니잖아.
오히려 팀보다 올마스터 개인 하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을 지경이다.
그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정되자 실망한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다.
시청률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버렸다.
심지어 현장에 온 관중들조차 퇴장하는 이들이 빈번하게 관찰되었다.
<올마스터의 지나친 독주가 팀내의 화합을 해쳐서인지, 아니면 자의에 의한 판단이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여론을 인지하고 있다면 올마스터도 다음 경기에는 분명히 나올 겁니다. 흠흠, 인지하고 있다면 말이지요.>
누구보다 인기를 고려하는 캐스터, 더우니 버빈은 상황을 정리하며 헛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올마스터가 나오던 나오지 않던 경기는 일단 진행을 해야 한다.
이윽고 선수들의 세팅이 완료됐다는 사인이 떨어졌다.
곧바로 시작된 양 팀의 밴픽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의아함을 자아냈다.
<양 팀의 밴픽이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밴픽만 보자면 쿡야가 얼핏 좋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죠?>
<예, 저도 버빈 캐스터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쿡야의 조합은 라인전을 버티면 분명 파괴력이 있으나 CA의 날카로운 창 끝은 이를 꿰뚫어낼 저력이 있습니다. 두 팀 모두 진흙탕 싸움을 선호하는 스타일인 만큼 밴픽의 구도를 보면 오히려 CA가 괜찮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더우니 버빈은 편파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캐스터로서의 능력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해설위원의 경험도 있어 방금도 요를 정확하게 짚어내었다.
쿡야의 조합 구성이 LSPL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CA가 가져간 픽들은 노골적으로 공격적이다.
신짜장, 끠즈, 네네톤 등.
라인전에서 한 번 킬을 따면 스노우볼을 굴리기 딱 좋다.
실제로 중국 프로게이머들이 상당히 선호하는 픽이기도 하다.
쿡야-베이더스 또한 LSPL에서는 비슷한 구성의 조합을 선호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 경기에서는 한타를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보통 모 아니면 도로 작용한다.
<지난 LSPL 이후로 조정되었을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진흙탕 싸움이 아닌 무난한 게임이 되리란 전망이네요. 물론 쿡야가 자신들의 조합 특색을 발휘했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비슷한 성향의 팀을 만났을 때 라인전에서 큰 이득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한타 위주의 구성이 낫다. 팀 내에서 그런 합의가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던 간에 라인전만으로는 게임의 승패를 예측하기 힘들게 됐군요. 올마스터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기대되는 흐름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올마스터가 나오지 않은 탓에 시청률은 갈수록 쭉쭉 떨어져만 간다.
따지고 본다면 다른 일반 팀들의 경기보다는 시청자수가 많지만 원래 줬던 것 뺏기면 섭섭한 노릇이다.
그나마의 시청자라도 놓치기 않기 위해 중계진들의 말꼬리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다지.
쿡야나 CA나 비슷한 수준대의 팀인 만큼 어느 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번 판을 지면 위기감을 느낀 올마스터가 다음 경기에 나올지도 모른다.
간곡하게 지켜보는 팬들의 말 못할 기대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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