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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두 조로 나뉜 각각 여섯 개의 팀들이 서로 3전 2선승제의 승부를 펼쳤다.
조별 리그가 막을 내리는 데만 3주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피 튀기는 접전 끝에 남게 된 것은 여덟 팀.
우리 쿡야는 본선 세 번째 날에 경기를 치르게 됐다.
세 번째 날이라고 3일차라는 소린 아니다.
하루하루 빽빽하게 굴러간 조별 리그와는 다르다.
여유롭게 텀이 있어서 나흘에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
그렇다고 해도 촉박하기는 매한가지.
나는 쿡야 게임단의 숙소에서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가오는 8강의 경기를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것이 옳을지.
코치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TCG, 얘네 강팀은 아니지 않았나요?"
"강팀..으로 분류되진 않습니다만 약한 팀도 아닙니다."
우물쭈물 떨떠름한 대답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입장이 많이 민망한가 보다.
지난 LSPL의 결승전에서 완전히 깨졌으니 이해는 가는 노릇이다.
천천히 대답을 기다리자 코치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후우.. 중상위권 정도의 팀으로 8강에 올라가는 경우는 잦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서머 시즌에서는 유난히 성적이 좋게 나왔네요."
그렇다고 한다.
내 생각은 다르지만.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팀이었지.'
페닉스 게임단 정도의 팀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에서다.
중국에서는 그보다 살짝 윗단계, 중상위권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있다.
얼마 전, 조별 리그에서 쿡야와 붙었던 팀CA.
팀CA 또한 중위권 정도의 기량을 가졌다.
실제로 조별 리그 4위에 안착하며 8강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걔네들은 정말 막무가내였어.'
중국 특유의 앞만 보고 뛰어드는 공격적인 게임 방식.
흔히 아마추어식 운영이라 불리우는 그것이다.
이것은 보통 모 아니면 도로 나뉜다.
오랜 경험 끝에 아주 잘 맞물려서 팀 특유의 색깔로 자리잡든지.
아니면 죽도 밥도 안돼서 그냥 라인전만 센 그저 그런 팀이 되든지.
팀CA의 경우는 후자였다.
그러나 TCG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그래서 코치 생각에 TCG의 주축은 누굽니까?"
"본래부터 딱히 모나지도 티나지도 않는 평범한 운영형 팀이었는데요.. 아, 최근에 들어 구심점이 생겼습니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선수를 영입했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적용될 리 없다.
적지 않은 수의 프로게임단들이 달아오른 상태다.
최근 중국 프로판은 급성장하는 중이다.
신생 게임단들은 늘어나는데 선수의 수는 턱도 없이 적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한참은 모자르다.
자국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해서야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진짜배기 선수들은 구할 방도가 없었다.
'진작에 계약으로 묶여있으니 빼갈 수가 없지.'
신생 게임단들의 눈이 해외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두 명 존재한다.
삼선 블루에 있던 명진이와 헬멧.
지난 스프링 시즌 우승 이후 중국으로 흩어졌다.
'잘 모르는 게임단이었지만 적어도 상해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
현재 중국에는 해외 선수들이 상당수 분포되어 있다.
TCG는 그러한 게임단들 중 하나에 해당한다.
한국은 아니고 유럽 쪽의 선수를 스카웃했다,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여기 정리해둔 서류가 있네요. TCG는 지난 스프링 시즌 이후 탑솔러와 정글러를 영입했습니다. 이 두 선수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게임 운영을 지향하고 있어요. 본래의 팀 컨셉과도 맞물려서 신생 게임단들 사이에서 재편성이 성공적이었다며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드디어 말문이 트인 듯 술술 새어 나온다.
뭐, 말하지 않았어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솔로랭크에 시간 투자를 하면서도 틈틈히 LPL을 살폈으니 말이다.
'유명한 선수는 아닌 것 같지만 플레이 자체는 준수했어.'
TCG의 경기도 당연 눈여겨 보았다.
영입됐다는 두 선수는 솔직히 모르는 사람이다.
북미라면 그나마 알 수도 있었겠지만 유럽.
유럽은 LCF 한 번 뛴 것말고는 인연이 없다.
어쨌든 TCG는 영입 이후의 재편성이 성공적이었다.
팀의 기량이 상승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의사소통 등의 문제로 쉽지 않았을 텐데 완성도가 높다.
그런데 중국 내에서는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전체적인 팀의 안정도는 올랐지만 딱히 임팩트 있는 경기를 보여준 적은 없었습니다. 결과적인 승리를 가져 갔달까요? 상대의 실수를 주워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희도 크게 방심만 안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요..'
서류를 보며 자신감 있게 읊던 코치가 내 표정이 뚱한 걸 보고 말꼬리를 주워 담았다.
그의 말도 어떻게 보면 틀리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발언이고 그렇게 될 공산도 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라고 방심을 하고 싶어서 하진 않았겠죠. 자연스럽게 흐름을 가져갈 정도로 운영에 도가 텄다.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제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건 선수에게 필요한 마인드다.
앞 일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다간 될 것도 안되니 말이다.
그에 반해 코치는 최악의 경우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게 코치니까.'
쿡야가 부족한 것은 선수들의 기량만이 아니다.
그들을 이끌 코치부터 한없이 미숙하다.
이 또한 츠위에게 부탁받은 부분이다.
내 근무 강도는 날이 갈수록 빡세지고 있다.
"지금까지 저를 제외한 선수들이 정말 잘해준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어요. 아시겠지만 경기의 수준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올라갈 테니까요."
"예, 본선부터는 다들 악착같아지니 그럴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시현씨는 이제 슬슬 경기를 뛰어 주실 거죠..?"
코치가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꺼내온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벌써 몇 번이나 간곡히 청해왔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전부 거절했다.
애시당초 계획을 세워두었다.
선수들이 나 없이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를 단련하는 실전 무대로서 조별 리그를 써먹었다.
물론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에 하나라는 경우도 나와서는 안된다.
다음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토너먼트 리그.
8강부터는 지게 되면 그대로 탈락이다.
"당연히 나가기는 할 겁니다. 오늘부터 연습도 시작할 거고요. 그것도 아주.. 빡세게 말이죠."
"하하, 선수들이 또 죽어 나겠군요. 알겠습니다. 시현씨가 끼는 것을 산정해서 플랜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LPL은 단거리 뜀박질이 아니다.
비유를 하자면 마라톤에 가깝다.
지역별 LPL을 넘어 대표전까지.
경기 분량을 따졌을 때 타국의 두 배에 가깝다.
때문에 일부러 기반을 탄탄히 다졌다.
연습 시간만 따지면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알아서 극복할 일이다.
당장이 아닌 미래를 본다면 지금의 방식이 옳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TCG 정도에 쩔쩔 매서는 안될 일이지.'
상해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
LPL기간 동안 쭉 경기를 치르게 될 장소다.
이 경기장은 비인기팀 입장에서 상당히 깝깝하다.
축 늘어진 공기가 허파에 달라붙듯 호흡을 방해한다.
경기를 치르는 선수는 마치 사우나실에 갇힌 듯한 속이 답답해진다.
급격한 컨디션 저하로 이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언제까지 꽃길만 걸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
달라진 공기를 처음 들이마셨을 때의 그 당혹감.
내가 그들의 실력을 상승시킨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험은 선수들 스스로가 만들어갈 자산이다.
타인의 도움으로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부류가 아닌 것이다.
TCG는 몰라도 4강, 그리고 결승에서 만나게 될 상대는 강팀이다.
강팀인 만큼 팬들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 압박감 속에서 과연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말라. 내가 말해놓고 내가 지키지 않으면 뭐가 되겠어.'
미리미리 준비해둠이 옳다.
나 자신의 유명세 뿐만 아니라 팀들을 위함이다.
철저하게, 팬들의 인상에서 지워질 수 없는 경기력을 선사한다.
쿡야를 진정한 상해의 용으로 거듭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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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해의 용을 선발한다.
상해 지역의 LPL은 본선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미 4강으로 향하는 A조의 진출팀은 정해졌다.
<최고의 방송, 유일한 방송! 오래 기다렸습니다.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 이후 사흘 간의 공백, 많이 지루하셨죠? 이제는 안심하십시오! 언제나처럼 저 더우니 버빈이 시청자분들의 안락하고 유쾌한 주말을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상해 지역의 LPL을 중계하는 공식 방송은 하나 뿐이다.
최고의 방송, 유일한 방송은 최소한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찌 됐건 무료했던 주중이 끝나고 드디어 주말이 찾아왔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치러진 A조의 8강 리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B조의 4강 진출팀이 정해진다.
그 첫 번째 경기는 IC를 제외하곤 가장 화두를 모았던 그 게임단이다.
<쿡야 베이더스 대 TCG!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상황이 참 얄궂게도 되었습니다?>
<예, 말씀대로 입니다. 두 팀은 지난 LSPL 결승전에서 자웅을 가렸었죠. 당시에는 TCG가 3대1의 스코어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뭐..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더우니 버빈이 그렇게나 눈엣가시로 여긴다는 쿡야-베이더스.
하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입장이 조금 난처해졌다.
이에 맞서는 TCG 또한 외국인 선수를 두 명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그들의 대한 평가는 혹하지 않았다.
<벨케트와 카센! 유럽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하던 그들이 TCG에 합류했습니다. 누구누구와는 달리 마찰도 없고 팀 내의 적응도 훌륭하다고 하죠?>
<지난 스프링 시즌 이상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A조의 2위를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듣기로는 두 선수 모두 중국을 사랑한다고 하니 앞으로의 활약도 다분 기대해봄직 하다고 봅니다.>
김치 먹는 외국인을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띄워주듯.
중국 사람들도 자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에 대해 호감을 가진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올마스터는 조금 많이 애매하다.
종종 하는 개인 방송에서의 그는 나쁜 남자 컨셉이다.
이것이 완전히 먹혀든 여성팬들도 존재하지만 그 반대.
미운털 박히기에도 딱 좋은 행위였다.
한 마디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린다.
<양 팀의 세팅이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기에 임하게 될 선수들의 각오를 빼놓는다면 섭한 노릇입니다. 단상 위로 올라옵니다! 응원하는 팀을 박수로 맞이해주시죠!>
상해 LPL이 치러지는 오리엔탈 스포츠 센터는 최대 5만 관중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늘은 3만여 개의 객석마저 전부 채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기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올마스터가 단 한 번도 경기에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쿡야도 TCG도 그렇게 인기가 많은 팀은 아니다.
없는 팀도 아니지만 관중석을 꽉 채우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2만 명이 넘는 관중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함성.
아니나 다를까, TCG 쪽이 눈에 띄게 우세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중계진들이 만들었다.
그 불합리함 속에서 양 팀 선수들이 뚜벅뚜벅 단상 위에 올라섰다.
더우니 버빈의 제멋대로 진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본래라면 양 팀의 주장이 발언의 시간을 갖지만 공교롭게 되었군요. 쿡야도, TCG도 주장이 외국인인 고로, 대신해서 코치분께 마이크를 전달하…>
나름대로의 이유를 붙여 올마스터의 발언권을 빼앗는다.
모르긴 몰라도 선의에서 비롯되진 않았을 일련의 계획은 실패했다.
코치에게 건네지던 마이크를 올마스터가 그냥 뺏어 들었다.
당황한 더우니 버빈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아주 제멋대로 입을 열었다.
<댁이 신경 안 써줘도 제 밥그릇은 알아서 챙깁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외국인이라 말이 조금 헛나올 수도 있는데 그건 알아서 양해하시고. 일단 뭐, 오늘 경기의 각오인가요? 총 경기 시간 60분이 넘기지 않도록, 경기를 시청하는 팬분들의 저녁 식사가 늦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서 경기 끝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외국인이 중국말 좀 쓰다 보면 말 좀 헛나올 수 있지.
그렇다고 보기에는 말투가 정말 현지인인 듯 유창하다.
이잘못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마이크를 건네 받지도 못할 정도의 외국인이다.
그런 외국인이 경어를 쓰지 못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더우니 버빈은 따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조금은 파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된 8강 무대.
커뮤니티 등에서 이야기가 불거지자 관심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수가 단기간에 두 배 가까이 껑충 뛰어버렸을 정도다.
만약 의도했다면 노이즈 마케팅은 일단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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