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620화 (6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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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여성 성우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동안 선수들과 정말 친밀하게 지낸 덕에 중국어가 부쩍 늘었다.

의사소통은 이제 문제가 없을 수준이다.

가끔 단어가 기억이 안 날 때도 대충 끼어 맞출 수 있다.

일상 회화도 그럴 정도인데 발음 좋은 성우라면 한국어와 다를 바가 없다.

지금 내 귀를 통해 들려오는 아군들의 우려도 마찬가지다.

"형.. 정말 괜찮아요? 제가 가능한 미드 보긴 하겠지만 상대도 수준이 높아서 힘들어질 수 있는데.."

탈리반 3세를 잡은 아군 정글러 마파두부가 불안함이 채 떨쳐지지 않은 모양이다.

가장 많은 갈굼을 받은 탓에 내 실력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회 무대다.

대회 무대에서 나와 경기를 치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 마디 갈굴까 했는데 그럴 만도 하네.

"누가 누구를 걱정하냐? 니 할 일이나 알아서 해. 나는 너를 자기 할 일도 모르는 놈으로 키운 적이 없다."

"네! 맡겨만 주세요!"

이거 참 기합 하나는 대단하다.

그간 쌓아온 신뢰가 헛되지는 않아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기대를 안 하니까 한 소리지만.

'사기진작으로 이어진다면 나쁘지 않은 일이지.'

경기장의 온도는 역시나 차이가 극명했다.

상대팀인 TCG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컸다.

단상을 향해 나를 뒤따라오던 선수들의 표정은 명백히 얼어붙었다.

내가 더우니 버빈을 조금 세차게 까버린 데는 그러한 연유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조별 리그라 경험할 일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이게 보통이 될 거야.'

올라갈수록 더더욱 인기가 많은 팀을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곳 경기장의 열기는 강팀에게 일방적인 홈그라운드다.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최대한 줄여나가기 위한 첫 걸음.

그 스타트를 마검사로 시원하게 끊어낸다.

푸웅-!

상대 미드라이너는 파사딘이다.

파사딘이 풀리자 아주 좋다고 가져갔다.

롤드컵 이후로 파사딘의 평가는 무조건 선픽.

풀리기만 한다면 가져가는 게 이득이다.

그 정도로 솔로랭크/대회를 막론하고 OP챔피언으로 부상했다.

그런 OP챔피언인 파사딘을 가져간 상대의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잘못된 게 있다면 다름아닌 나다.

나를 만난 상대의 운명이 잘못됐다.

'AP마검사와 똑같이 대처한다면 정말 큰코다칠 텐데.'

내가 먼저 조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다.

가만히 기다리자 파사딘이 미니언 막타를 치기 위해 다가온다.

미드 마검사라니?

리워크 전에 분명 상대를 해봤을 터다.

견제 좀 하면서 미니언의 힘을 빌어 싸우면 그만이다.

평타 싸움이 되더라도 파사딘은 크게 밀리지 않는다.

아마 딱 이 정도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러한 예상을 근본부터 뒤흔든다.

만나자마자 평타 한 방.

미니언이고 나발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

서걱!

한 번 베며 따라간다.

파사딘은 침착하게 맞딜을 하며 뒷무빙을 친다.

미니언이 받쳐주는 한 질 리가 없다.

상대의 심산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사샤샤샥-!

맵에서 일순간 사라지는 무적 판정.

미니언들이 나를 향해 던지던 알갱이들이 목표를 잃었다.

그렇게 미니언의 어그로를 빼놓고 한 번 더 쓱싹!

패시브가 터지며 상대를 두 번 베어낸다.

푸웅-!

얼핏 이득 같지만 전체적인 체력 손실을 따지면 비슷하다.

파사딘의 Q스킬, 허무의 마격이 또다시 나를 향해 적중했다.

2레벨에 이르러 황혼의 칼날까지 배운다면 평타 딜교도 밀리지 않는다.

방심은 필연적인 화를 불러오게 된다.

써컹! 써컹!

점멸 평타로 파사딘을 후려친다.

패시브가 터진 걸 감안해도 데미지의 격이 다르다.

2레벨에 이르러 우주류 도법을 배운 결과다.

스킬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공격력이 10%상승한다.

그리고 사용시 매 평타에 고정 피해를 추가한다.

두 번 상대를 베어내자 알파 슬래쉬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사샤샤샥-!

체력이 깎여가는 속도가 의아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겠지만 이미 늦었다.

점멸 평타를 맞은 시점에서 도망갈 구석은 없었다.

써컹!

치지직..!

알파 슬래쉬로 따라가서 평타와 함께 발화.

이 이상 따라갔다간 포탑에 맞아 같이 죽는다.

뒤돌아 볼 필요도 없이 딜계산은 완벽하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리워크된 마검사는 라인전 약캐가 아니다.

2레벨에 한해 그 어떤 챔피언보다 맞딜이 세다.

파사딘은 죽음으로서 뒤늦게 교훈을 얻었다.

"오, 솔킬! 형 미드 같이 밀어드리면 되죠?"

"가르친 보람이 조금은 있네."

내가 그렇게 갈궜던 대로 정글을 돌며 미드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듯하다.

하지만 많이는 없다.

2렙 솔킬을 땄을 때 라인만 밀어주는 건 솔로랭크에서다.

서로 손발을 맞추는 대회에서는 그 이상의 이득이 가능하다.

─Qookya AllMaster님이 레드 지역에 도움을 요청.

라인을 적당히 밀고 바로 위로 올라간다.

아군 정글러와 함께 레드 도마뱀을 뺏어 먹는다.

레드 버프는 아군의 차지, 아니 나의 차지가 되었다.

찰칵!

롱스워드 두 자루를 사서 라인에 귀환한다.

흡수의 칼로 체력 관리를 하는 것도 물론 괜찮은 선택이다.

파사딘이 지속적으로 날리는 Q짤은 상당히 까다롭다.

맞는 말이지만 그것도 상황 나름이다.

한 번 쭉 밀어버린 미니언 웨이브.

라인에 도착하자 아군 포탑 쪽으로 예쁘게 당겨져 있다.

단언컨대 파사딘에게 견제 당할 일이 없다.

"딴 데 가지 말고 미드 역갱만 봐라."

"안 그래도 그럴라고요. 유령이랑 늑대만 왔다갔다 할게요."

프로 대회라고 솔킬이 안 나오는 건 아니다.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따인다 해도 큰 손해로 연결되지 않는 선에서다.

한 마디로 이번 판은 그냥 망했다.

파사딘은 CS 하나 건드릴 수 없다.

미드 포탑 앞에서 냉혹한 프리징이 진행된다.

한 번 알파 슬래쉬로 긋기라도 하면 그대로 킬이다.

레드 버프가 지속되는 이상 경험치조차 허락 받고 먹어야 한다.

그것만이라면 그나마 사정이 나았을지 모른다.

쿠! 챠앙!

굳이 역갱만 볼 필요가 있을까.

현재 탈리반 3세는 깃창 판정이 아주 좋다.

점멸까지 더해진다면 무조건 띄울 수 있다.

내가 호응하는 것으로 가볍게 두 번째 킬이 완성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는 않다.

미드 라인을 버리고 탑라인의 다이브를 시도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듯 깔끔한 연계다.

포탑의 공격을 고르게 맞으며 간발의 차이로 성공시켰다.

'텔레포트라도 있었으면 더블 킬이었는데 아쉽네.'

누구라도 혹시를 상상한다.

이 경우 반대로 생각해보면 편해진다.

텔레포트가 아니었으니까 솔킬을 딸 수 있었겠지.

탈리반과 함께 미드 라인의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었겠지.

마지막으로 용이라는 추가 이득을 가져올 수 있었겠지.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AD챔피언인 마검사는 용을 잡는 것도 수월하다.

봇라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이 정글러와 가볍게 챙긴다.

스노우볼은 겉잡을 수 없이 굴러가고 있다.

'살인 전차라고 들어보셨나.'

미드 마검사를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한 번 킬을 땄을 때 스노우볼 굴리기 엄청 편하다.

솔킬은 물론이고 소규모 교전에서 강력하다.

무엇보다 코어템 완성 속도가 한층 빠르다.

정글 마검사는 반드시 빨간 장갑부터 올려야 한다.

더욱이 정글러인 만큼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미드는 코어템부터 바로 뽑을 수 있다.

찰칵!

궁극기를 배우고 빌지워터 해군칼을 완성했다.

이제부터는 무한 솔킬이다.

파사딘은 눈에 띄면 바로 끔살이다.

영락한 기사의 검까지 나온다면 게임 셋.

혼자 무쌍을 찍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줄 수 있다.

얼마 전 너프로 인해 한타가 애매해졌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원래 이 게임은 초반에 터트리면 후반 생각 안 해도 된다.

프로 레벨은 조금 다른 것도 사실이지만 나다.

스플릿 운영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

.

* * *

누군가는 말했다.

팬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한타에서 전혀 쓸모가 없을 거다.

경기의 흐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깊게 들어갔죠! 여기서 마검사 잘리면서 제압킬 주면 지금까지 TCG가 다시 흐름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성장한 정도에 비해 판단력이 정말 아쉽습니다. 상대가 멀뚱멀뚱 구경만 할 거라 생각했던 걸까요? 너무 잘 큰 나머지 심취한 모양입니다. 아주 뻔하게 잘리는 그림이에요!>

한 번 잘린다고 가져올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그럼에도 더우니 버빈과 쥔차이는 필사적이다.

자신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쿡야-베이더스가 TCG를 완벽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심지어 이를 해내버린 장본인이 올마스터의 마검사다.

마검사가 2렙 퍼블을 바탕으로 눈덩이를 빠른 속도로 굴렸다.

용을 두 번이나 챙기고 탑과 봇을 쏘다니며 킬을 쓸어 담았다.

경기 시간 16분에 무려 2.5코어가 나왔다.

더우니 버빈과 쥔차이는 게임 내내 할 말이 사라졌다.

그러던 와중 단 한 번 올마스터를 까내릴 찬스가 왔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무리하게 스플릿을 하던 올마스터가 뒤를 잡혔다.

탑과 정글, 그리고 미드라이너가 마검사를 포위했다.

이대로 잡기만 한다면 상당한 이득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포위된 쪽이 올마스터가 맞을까?

쿠! 확!

꾸드득!

TCG의 탑라이너, 카센의 네네톤이 미니언을 타고 질주했다.

그리고 점멸로 마검사에게 스턴을 거는데 성공했다.

이어서 들어오는 팀의 연계는 완벽 그 자체.

파사딘이 앞궁과 함께 스킬을 흩뿌리며 리심이 음파를 던진다.

아무리 잘 컸어도 결국은 마검사다.

한 번 점사를 당하면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당사자인 TCG도, 이를 보는 중계진도, 심지어 관중들까지 이건 죽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사샤샤샥-!

음파가 허공을 갈랐다.

금은 장식 머리띠로 스턴을 풀어낸 마검사가 알파 슬래쉬를 사용했다.

대체 어디로?

첫 번째 타겟은 라인전에서 그토록 찢어발겼던 파사딘이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풀피에 가까웠을 파사딘이 상상도 못한 속도로 녹아내렸다.

점멸로 도망갔음에도 순식간에 따라붙는다.

영락검과 유령검의 액티브를 사용하자 그야말로 전광석화.

따라가서 몇 번 그었을 뿐인데 체력바가 삭제됐다.

다음 타겟은 당황해버린 리심이 됐다.

써컹! 써컹!

2대1이니 천천히 협공하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방템을 갖추지 않은 것도 아닌데 칼질이 너무 아프다.

결국 리심은 네네톤을 기다리지 못하고 발로 차버렸다.

그 순간 리심의 운명은 결정되고 말았다.

사샤샤샥-!

차이자마자 점멸 알파 슬래쉬로 리심에게 따라붙어 마무리!

마지막으로 남은 상대는 네네톤이었다.

가장 성장을 잘한 네네톤은 나름대로 버텨보았다.

하지만 끝끝내 토막이 나는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전설의 출현!

관중석이 떠나갈 듯 요동친다.

프로 리그에서 학살도 아니고 전설이 뜨다니?

학살은 3연속 킬의 알림음이다.

그리고 전설은 8연속 킬에 해당된다.

경기 시간 17분에 10킬 0데스 0어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드 캐리, 아니 강제 캐리다.

혼자서 무려 세 명의 적을 썰어버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스킬 연계가 잘됐으면 분명 무난하게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마검사가 성장을 잘한 덕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반 실수가 너무 컸네요.>

<성장 차이를 감안하면 타당한 결과입니다. TCG로서도 악전고투 해봤지만 방금 교전은 어쩔 수가 없었죠.>

마검사의 패배를 예고했던 중계진들은 심각하게 난처해졌다.

그럼에도 일단 해설을 이어나가야 한다.

쥔차이가 안타깝다는 듯 짤막하게 봇라인의 교전을 정리했다.

어떻게 보면 할 말은 한 셈이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고작 그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금의 트리플킬로 인해 첫 번째 경기의 승패는 완벽하게 갈렸다.

그렇게 봐도 무방할 명실상부 슈퍼 플레이였다.

<물론 성장을 잘하기도 했지만 금은 장식 머리띠의 반응과 파사딘을 순식간에 녹여버린 판단이 기가 막히지 않았습니까?>

<예, 뭐.. 하지만 그것도 성장을 잘했기 때문에 갖출 수 있던 아이템이니까요. 금은 장식 머리띠가 없었다면 상황은 거꾸로 되었을 거라 저 더우니 버빈이 단언합니다.>

보다 못한 하오핑이 몇 마디 설명을 보충했지만 나머지 두 중계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지금까지 내뱉은 말이 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주워 담으란 말인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또다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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