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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중국의 프로게임단 케이왈츠.
케이왈츠는 두 명의 한국 프로를 영입했다.
어째서 북미와 유럽이 아닌 한국일까?
거기에는 케이왈츠라는 기업이 가진 특색이 작용했다.
K-Waltz, 한 마디로 케이팝이다.
중국 내에서 한국 음악에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는 기업으로 지분률을 상당한 편에 속한다.
한국 선수를 다수 영입한다면 건 분명 홍보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고 많은 나라들 중에서 굳이 한국 선수를 고집한 이유였다.
사실 게임단 내에서는 반대 여론이 거셌다.
아니,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고 얼마나 잘하겠나.
어중이떠중이 스카웃해봤자 팀 내에서 의사소통 문제가 불거진다.
하지만 해야 했다.
게임단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구단주다.
정확히는 게임단을 후원하는 기업이다.
돈 없이 굴러갈 정도로 운영이란 건 만만치가 않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골이 때린다.
고작 한 명 영입해봤자 무슨 홍보가 되겠느냐?
최소 두 명은 데려와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잘 풀리긴 했다만..'
케이왈츠의 수석 코치 장웨이가 두 명의 선수를 앞에 두고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약 반년 전에 있었던 그날의 사달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한국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이러저러 수소문을 했다.
수소문을 할수록 들려오는 악보.
한국도 게임단들의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 사람이 없다더라.
괜찮은 선수가 있어도 국경을 건너는 일을 설득하는 건 쉽지가 않을 테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래, 그때 너무 잘 풀린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의외로 쉽게 해결돼버렸다.
한 게임단 내 두 명의 선수가 영입 제안을 승낙했다.
덕분에 절차도 간략해졌을 뿐더러, 선수들도 상당히 협조적이라 분위기가 좋았다.
게다가 실력도 생각 이상으로 뛰어났다.
돈값의 두 배, 세 배 가볍게 해내는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완전 횡재를 한 거 아니냐.
그렇게도 생각을 했었다.
"자, 자. 진정하고 이번 시즌 끝나면 팀을 가를 거라고 했잖아. 그때까지는 서로 최대한 양보를 한다. 그렇게 합의가 됐었지?"
벌써 몇 번째 하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알고 있음에도 장웨이 코치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방금 전, 장웨이의 말은 통역사를 통해 도진기와 수입푸드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코치님. 문제를 일으킨 건 제가 아니라 수입푸드잖아요. 제가 왜 경기 출전에 제약을 받아야 하는 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아니, 문제를 일으키긴 뭘 일으켰다는 거지? 니가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도 싫어하고 있고 그 탓에 나도 경기 못 나가고 있고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되나?"
두 선수의 이야기를 통역사에게 전해들은 장웨이는 고개를 저었다.
똑같은 소리를 골백번도 더 들었다.
나름대로 명분이 없지는 않지만 유치하다.
팀 내에서 흔히 생기는 파벌 싸움이다.
어떻게 화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골이 벌어진 상태라 사이즈도 안 나온다.
두 선수를 각각 다른 팀에 배속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렇게 해주려고 하고 있지만 이번 시즌에는 안된다.
빨라도 다음 시즌부터다.
다가오는 준결승전은 어쩔 수 없이 같이 치러야만 한다.
"수입푸드가 그냥 코치님 말 잘 듣고, 게임 내에서 오더 불순응하지 않고 이거 두 가지만 하면 되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게 아니죠. 좋게 좋게 넘어갈 수 있는 걸 왜 사사건건 트러블을 만듭니까?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저한테 뭐라 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래, 네 말도 맞다."
이게 대체 뭐하는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같은 나라 사람임에도 서로가 말을 섞지 않는다.
자신이 중간 다리 역할을 반드시 해야 한다.
통역사를 두 번이나 걸치는 탓에 어지간히 답답한 게 아니다.
'..코치고 뭐고 때려 치고 싶다.'
정말 공교롭게도 두 사람 말이 전부 맞았다.
솔직히 잘못을 한 건 수입푸드 쪽이었다.
하지만 도진기가 대처를 너무 뾰족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어느 쪽이 잘못을 했다고 꼬집기가 힘들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알기라도 속이 편하겠네.'
처음 중국에 왔을 때만 해도 서로 의지해서 잘 해쳐나갔다.
같은 게임단 출신인 만큼 이미 친분도 있어서 정말 일이 잘 풀렸다.
스카웃할 초기에만 해도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투닥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눈치를 챘을 땐 이미 대화의 여지마저 사라진 후였다.
누가 잘못을 했냐느니 시시비비.
까놓고 말해 그런 건 사소한 계기에 불과하다.
서로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너희들도 알 거야. 상대가 상대잖아. 서로 힘을 안 합치면 힘들어. 일단 이건 인정을 하고 가자."
장웨이의 말을 들은 두 선수는 한 번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애시당초 지금의 사단이 난 이유는 무엇인가.
다름아닌 준결승전 경기의 준비 때문이다.
'이리 될 걸 뻔히 짐작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낀 나만 죽어나는구만.'
가능한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물은 내야만 한다.
그런데 현재 팀의 상황의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두 선수는 절대로 같은 경기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이러저러 조건을 걸긴 하는데 결국 이야기의 골자는 그거다.
하지만 준결승전의 상대는 바로 그 올마스터.
그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팀의 전력을 집중시켜도 될까 말까다.
"그런데 코치님. 같이 게임을 하더라도 수입푸드가 자꾸 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말려들 팀원들까지 게임을 던집니다. 제가 손을 쓸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요."
"개뿔이. 너 없이 할 때가 우리 스크림 성적 더 좋게 나왔거든? 게다가 IC를 잡은 것도 나잖아. 너는 그때 그냥 졌었지?"
"나도 한 판 더 하면 이길 수 있었어. 그리고 그리고 그게 승리야? 도박수 같은 플레이로 어쩌다 얻어 걸린 거지. 그래서 8강에서도 한 세트 내준 거잖아?"
말을 섞지 안 하니만 못하다.
의자에서 확 일어난 두 선수를 통역사와 코치가 제지했다.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 할수록 상황이 오히려 꼬이고 꼬인다.
조별 리그에서 두 선수를 거의 내보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순위권에 안착했던 조별 리그 기간동안 해결해보려 했지만 실패.
잠깐 생각을 곱씹은 장웨이는 썩 내키지 않는 마지막 수단을 꺼냈다.
"코치로서 양보할 수 있는 한도는 여기까지야. 일단 첫 번째 경기는 도진기가 나가도록 하자."
그리고 두 번째 경기에선 수입푸드가 나간다.
그 두 경기 중 이기는 쪽의 선수가 메인 오더를 맡고 진 선수는 따른다.
만약 둘 다 져버리면 코치의 판단을 무조건 존중한다.
'다 이기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고.'
호사다마, 다시 한 번 번갈아 경기를 치러야 하겠지만 상관없다.
5전 3선승제에서 두 세트를 따낸 시점에서 경기는 이미 기운 거니까.
얼핏 좋은 해결책 같지만 이 방법을 쓰게 되면 앞선 두 경기는 따로 놀게 된다.
알고 있지만 서로가 자존심을 내세우는 한 다른 방도가 없다.
때문에 가능하다면 이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의 상황을 풀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이 장웨이로선 생각나지 않았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코치님."
"저도요. 근데 왜 제가 두 번째로 해야 하죠?"
남자들끼리 싸우면 유치한 실랑이로 번지기 십상이다.
결국 가위바위보, 아니 이것마저 싸울 염려가 있으니 동전 던지기로 정했다.
선공은 도진기, 후공은 수입푸드.
이러니저러니 해도 두 사람이 미드&정글을 맡은 케이왈츠는 강하다.
처음 이 둘을 들였을 때는 혹시 우승을 넘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꿈만 같은 이야기다.
서로의 사이가 멀어진 이상 어차피 정상적으로는 해결을 못 본다.
그나마 한 번 이상 제대로 된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만족한다.
장웨이는 그것이라도 제대로 지키게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만약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이번 시즌 이후 팀을 나눌 때 불이익이 있을 거야. 나중 가서 딴 소리 없도록 여기 각서 써."
이 정도까지 하기는 싫었지만 장웨이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준결승전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혹시 모를 상황은 최대한 배제해야 함이 옳다.
설사 따르지 않더라도 팀에 묶어 둘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사실 준결승전을 간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은 충분히 성과를 거둔 셈이니까.'
각서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지만 적어도 이 한 가지 역할은 해준다.
팀을 옮기게 된 쪽에서 나중에 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
두 선수 모두 실력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출중하다.
놓치기 싫은 만큼 준결승전 이후의 일도 생각해 두어야 했다.
도진기와 수입푸드는 각서의 내용을 살펴본 후 각자 서명을 써넣었다.
이로써 당장의 불을 꺼진 셈이다.
이상적이라고는 할 순 없지만 현실적인 차선책.
하지만 의외로 최선책에 준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두 선수 모두 서로에게 격한 경쟁 심리를 느끼고 있다.
지는 쪽의 입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뼈를 깎는다.
장웨이의 제안은 예상치 못한 상승 효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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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8강과 마찬가지로 준결승전 또한 A조가 먼저 치른다.
고로 쿡야가 속한 B조의 경기는 시간이 꽤나 남아있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다는 소린 아니지만 나름대로 살 만하다.
"그래서 말인데.. 결승전 끝나고 잠깐 한국 들릴까? 스케줄을 보니 조금 텀이 있더라."
<뭐래, 빠진 소리 하지 말고 경기나 빡집중해서 끝내고 와.>
매일 아침 한 시간, 예은과 만나는 귀중한 시간이다.
솔직히 될 거라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다.
예은의 성격상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조금, 아니 상당히 낯부끄러웠다.
<오면.. 돌려보내 줄 자신 없거든..?>
자기가 말을 하고도 부끄러운지 잠깐 화상 통화를 꺼버렸다.
이내 재연결된 화상 통화에선 아무렇지 않은 듯하고 있지만 명백히 티가 난다.
마음 같아서는 꼭 끌어안아 침대 위로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반응이다.
<..어쨌든 오면 국물도 없을 테니 그리 알아. 알겠어?>
"그래, 그래. 예은이 말대로 할게."
무안해서 목청을 높이는 예은을 적당히 달래며 회상했다.
중국에 갈 때도 보내주지 않으려고 했었지.
만약 어설프게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로 그렇게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고생을 수포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
귀국해서 예은을 만나는 건 포기해야 할 듯싶다.
나는 화제를 돌릴 겸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도진기가 여기 있더라. 도슈는 알고 있어?"
<안 그래도 실물 못생겼다면서 낄낄대고 난리가 났더라. 인정 사정 없이 쳐부숴 주라던데?>
아마추어 시절 도슈는 도진기와 나름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아낀다기 보단 악우에 가까웠는지 즉답이 나왔다.
참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구나.
그러고 보면 나와 예은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럼 한 시간 됐으니 끌게. 더 할 말 없지?>
화상 통화는 별일이 있지 않은 이상 한 시간.
중국에 온 이후로 줄곧 지키고 있는 룰이다.
가끔 넘을 때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봐줄 생각이 없는지 칼같이 떨어졌다.
"그래, 애기야. 내일 또 봐."
<애, 애기는 무슨 으.. 자기도 일 열심히..>
본인이 말을 꺼내고도 부끄러웠는지 화면을 꺼버렸다.
잠시 후 까톡으로 진짜 죽는다! 한 마디의 메세지가 왔다.
나는 예은을 적당히 달래주며 오늘 하루 해야 할 일과를 떠올렸다.
'도진기.. 그리고 수입푸드라.'
그 둘이 주축이 되는 케이왈츠.
어찌 된 영문인지 한 팀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드, 그리고 정글의 시너지를 생각한다면 같이 출전하는 게 옳을 텐데도 말이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팀의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함이구나, 그렇게 넘겨 짚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은 그게 아니지.'
내가 알고 있던 미래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큼지막한 사건들은 사실 우연에 가까우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예상컨대 팀 내의 불화.
도진기와 수입푸드는 흔히 말하는 견원지간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확률이 낮지는 않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언제나 그러하듯 최선의 대비책을 여러 개 세워둔다.
지난 8강 경기를 보고 난 이후 머릿속에 그려진 생각이다.
이를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조금 도움이 필요하다.
간만에 또 뺑뺑이를 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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