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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모든 이들의 예상대로다.
사고와 이변, 놀라움과 당혹으로 가득찬 B조와는 정반대.
A조의 준결승전은 IC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경기는 이미 끝이 났고 남은 것은 승자의 인터뷰다.
경기장 중앙에 비치된 푹신한 가죽 쇼파.
MVP로 선정된 세 명의 선수가 나란히 앉아있다.
수만 관중, 수백만 시청자들의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
심히 당황스러운 상황일 텐데도 여유로운 태도다.
당당하길 넘어 거만스러움까지 느껴진다.
과연 중국에서도 손 꼽히는 명문 게임단.
IC의 일원들에겐 지금의 자리는 더없이 익숙하다.
누군가들에겐 한 번이라도 올라갔으면 하는 영광스런 장소다.
하지만 그들에겐 매 시즌 당연하게 지나치는 역이었다.
<스프링 시즌에 이어 서머 시즌도 착실하게 우승으로 달려가고 있는 상해의 고룡! IC의 세 선수를 만나 뵙겠습니다. 안녕하신지요?>
인터뷰를 맡은 아나운서의 인사에 세 선수가 가벼운 목례를 답한다.
좌측부터 샤브샤브, 푸드득, 츠타이.
각각 서포터와 탑솔러, 미드라이너를 맡고 있다.
<첫 번째 세트의 MVP! 샤브샤브 선수의 쏘냐는 오늘도 역시 멋진 활약을 보여주셨습니다. 라인전에서도 한타에서도 매서운 파워센도 보여주며 아군 딜러진들이 프리딜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셨어요!>
<서포터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나머지 팀원들이 실수없이 잘해준 덕분에 제가 초반의 자그만 소득을 고평가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팀의 서포터이자 IC의 봇라인이 강력할 수 있는 이유.
쏘냐를 주 챔피언으로 다루지만 챔피언 폭도 좁지가 않다.
서포터 관련한 센스 플레이들의 상당수가 이 선수에게서 태어났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평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나이 탓인지 그 본인은 과묵하며 겸손하다.
<이어서 두 번째 세트에서 맹활약해주신 푸드득 선수! 탑 탈리반이라는 흔치 않은 픽으로 스피드 있는 게임 보여주셨습니다. 이 또한 절친으로 소문난 츠타이 선수와 픽을 맞추신 건가요?>
<츠타이의 카서트를 확실하게 보조할 수 있는 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니시만 해주면 쓸어담는 그림이 나왔거든요. 상대팀에서 톨라리가 늦었던 것도 빠르게 게임을 끝낼 수 있던 요인 같습니다.>
IC에서 가장 손 꼽히는 두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른 선수들도 모자라지 않지만 역시 백미는 있는 법.
탑솔러인 푸드득은 공격적인 탑솔러의 가장 성공적인 예다.
보통 공격적인 선수들은 챔프폭이 좁다.
그리고 카운터 맞기 십상이라 대회에서 너무 복불복이 심하다.
하지만 푸드득은 공격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되 각 챔피언 별로 플레이 방법을 달리한다.
프로게이머로서 가져야 할 덕목과 개인의 장기를 적절히 융합해냈다.
<이번 상해LPL 서머 시즌에서 독보적인 MVP랭킹 자랑하고 있는 선수죠. 마지막으로 츠타이 선수와 인터뷰 시간 가져보겠습니다.>
명실상부 중국에서 가장 이름값 높은 미드라이너.
츠타이는 올마스터가 나타나기 이전까지만 해도 최고, 최다의 챔프폭으로 이름을 떨쳤다.
다룰 수 있는 챔피언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잘하기까지 한다.
별의별 챔피언 다 보여주며 수많은 충들을 양산했다.
미드 라인으로 한정하자면 올마스터보다 챔프폭이 넓은 게 아닐까?
중국 내 여러 커뮤니티들에선 비교 대상으로 올라가고 있으며, 그 탓에 이번 대회에서의 정면 대결을 기대하는 팬들이 정말 많다.
그래서인지 세 번째 인터뷰는 방향성이 달라졌다.
얕게 심호흡을 한 아나운서가 본론을 꺼내왔다.
<게임의 내용은 앞선 두 선수와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넘어 가볼까요? 혹시 B조에서 결승전에 올라올 팀이 어느 쪽일지, 예상하고 계신 팀이 있으십니까?>
팬들로서는 고대하던 부분이다.
과연 IC는 쿡야와 케이왈츠 중 어느 쪽을 높이 평가할까?
중국 내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왈가왈부가 많이 나온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정해지지 않았다.
올마스터의 실력이 너무 고평가돼 있다.
케이왈츠는 전부를 쏟아낸 적이 없다.
여러 이야기를 부딪히면서 혼란 만을 낳았다.
그런 상황에서 결승전에 오른 IC, 그것도 츠타이 선수에게서 평가가 내려진다.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윽고 츠타이의 입에서 단언이 나왔다.
<무난하게 간다면 케이왈츠일 겁니다. 아, 결코 쿡야의 올마스터를 저평가하는 건 아닙니다. 단순히 믿을 만한 파트너가 있냐, 없냐의 차이겠죠. 케이왈츠에는 있다고 들었습니다.>
단언, 그럼에도 깔끔하다.
사실 선수 개인으로서 대답하기 힘든 이야기었다.
대답을 하던, 하지 않던 어느 쪽이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츠타이는 그 악순환을 단칼에 끊어냈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지 근 2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숱한 상황을 경험해봤겠는가.
경기 뿐만 아니라 인터뷰에서도 완숙미를 자랑한다.
츠타이가, IC가 인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모든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 시키는 훌륭한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8강 쿡야 대 TCG전에서 벨케트와 카센 선수가 올마스터 선수를 막지 못하고 패배했던 걸로 아는데요?>
<라인의 차이도 있고, TCG의 빅가이가 올마스터를 마크할 기량이 안됐기 때문도 큽니다. 하지만 도진기의 경우에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감하게 생각될 정도의 타 선수에 대한 평가.
부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음에도 신빙성이 있다.
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붙는다.
해설이 아닌 인터뷰 자리인 만큼 이 정도면 족하다.
그렇긴 해도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짓궂다고 밖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상정해서 말이죠. 케이왈츠에서 두 명의 선수가 합심하지 않는다면 쿡야가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예상하신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까?>
IC의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아나운서도 쌓아온 경력이 만만치 않다.
도진기는, 혹은 수입푸드는 올마스터보다 동급인가, 아니면 아래인가?
입장을 확실하게 밝혀달라.
난처할 수 있는 질문임에도 츠타이는 웃는 얼굴로 짧게 받아쳤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담백한 대답이었다.
<당연합니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저라고 모를 수가 없죠. 올마스터는 충분히 결승전에 올라올 기량이 되는 선수입니다. 이 제가 보증하지요.>
<어.. 그러면 방금 전의 답변과 조금 상반되는데요? 설명을 보충해주실 수 있을까요?>
알쏭달쏭한 선문답이 돼버렸다.
단신으로 LPL에서 우승할 기량이 있는 선수다.
그러나 상대의 마크가 두 명이면 안된다.
경기장의 모두가 츠타이의 입이 벌어지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렸다.
<예, 무난하게 간다면 케이왈츠가 이기게 될 겁니다. 하지만 올마스터는 저에 준할 정도로 챔피언 폭이 넓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저 이상이라고도 하더군요. 저와 비견된다는 선수가 결승전도 올라오지 못한다면 말이 안되잖아요? 만약 비슷한 처지였다면 저는 해냈을 겁니다.>
통상적으론 힘들겠지만 의외성이 있는 카드를 꺼낸다면 못할 것도 없다.
꺼내지 못한다면 케이왈츠가 세컨드 에이스의 차이로 인해 이길 것이다.
어느 쪽도 선택지를 열어 놓으며 후한 평가가 내렸다.
그렇게 둘을 띄워주고 자신이 올렸다.
라인전에서 올마스터를 완벽하게 마크하며 팀의 기량 차이로 찍어 누른다.
직접 말하지 않았을 뿐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다.
준결승전은 경기의 내용보다 인터뷰가 더욱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
.
.
* * *
8강의 모든 경기가 끝난 것은 지난주 일요일.
다음 경기인 B조의 준결승전은 이번 주의 토요일이다.
일주일이 안되는 시간동안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 놔야 한다.
여러가지 시행 착오를 거친 끝에 방향성은 이미 확립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선수를 뭐 빠지게 굴리는 중이다.
일단 발등에 불 떨어진 작업은 대충 마쳤다.
한가해진 나는 잠깐 숨을 돌리고 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만.'
B조보다 한 박자, 정확히 나흘 먼저 치러지는 A조의 준결승전.
숨을 돌릴 겸 앞으로 상대하게 될 적들의 경기를 느긋하게 관람했다.
경기의 내용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IC는 상해 굴지의 강팀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결승전의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것으로 시청을 마치려던 찰나, 생각이 바뀌었다.
마침 MVP로 선정된 선수들이 전부 신경 쓰이던 이들이다.
과연 어떤 생각으로 게임에 임했는지 보고 넘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인터뷰의 내용은 생각 이상으로 흥미가 깊었다.
'강팀, 그것도 엄청난 강팀이지. 알고는 있었어.'
안 그래도 은근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 전 예은과의 대화 이후로 조금 더 정신 바짝 차리자, 다짐하기도 하였다.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상대는 생각했던 이상으로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당사자로서 소감 한 말씀 들려주시죠?"
같이 경기를 시청한 츠위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이것이 마이크 대신인 걸까.
적당히 맞춰줄 생각으로 가까이 입을 댄 나는 작게 인터뷰 해줬다.
"글쎄,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고 그럭저럭 맞는 말이잖아?"
"에헤이~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저쪽에서는 정면으로 부딪혀 왔는데."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또다시 엄지 손가락을 내밀어온다.
나는 두 손으로 엄지손가락을 포개듯 접어서 주먹 채로 돌려주었다.
대답 못해줄 건 없지만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분위기는 왠지 싫다.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없진 않지. 통상적인 카드로 힘들거라던가. 하지만 상대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다소 반박할 구석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내다, 그런 이야기인가요. 안타깝네요. 30점 드리겠습니다."
최근 들어 부쩍 장난기가 많아진 츠위다.
어쩌면 원래부터 츠위가 그런 성격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살짝 어색했던 한국어 어휘 사용이 풀리면서 본색이 나와버린 건 아닐까?
어느 쪽이든 간에 30점은 너무하지 않았나.
한 번 삼켰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굳이 반박할 이유가 없다는 소리야. 상대는 자신과 내가 동급이라 생각하고 있어. 실제로 플레이 스타일도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 츠타이 선수와 붙게 되면 이길 자신이 있으신가요?"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보고 제법 감정 이입을 했는지 말투까지 따라하고 있다.
이 녀석의 나이대를 생각해본다면 사실 이렇게 노는 게 잘 맞기는 하다.
제법 신나있는 듯 하니 마지막까지 어울려줄 겸 인터뷰를 속행했다.
"라인전을 이기고 말고는 크게 의미가 없어. 츠타이도 말했듯 팀 단위의 기량으로 생각한다면 쿡야가 많이 밀리는 게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패배한다면 라인전의 승패는 의미가 사라지니까.'
"역시.. 그런 가요. 올마스터 선수의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팀의 근본적인 기량 차이로 인해 승패가 정해질 것이다.
어쩌면 츠위는 그것을 신경 쓰고 애써 밝은 척 이야기를 건넨 걸지도 모른다.
내 패배 이유가 팀원들의 실력차가 된다면 책임자인 떨떠름하지 않을 수 없을 일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네가 신경 쓸 게 아니다.
"자신이 없었으면 쓸데없이 계약 조건에 사족을 붙이지도 않았겠지. 너는 그냥 나를 믿으면 돼."
"…."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었던 걸까.
츠위가 내 눈을 빤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봐온다.
예은 때문에 익숙해져서 그렇지 이 녀석도 상당한 미인상이다.
그렇게 쳐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게 된다.
'그래봤자 애는 애지만.'
연애 대상으로 한참은 논외인 여동생 격인 아이다.
하지만 여자 사람 친구가 예쁘면 은근하게 치유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동거 생활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혹시 이런 것도 바람이 되는 건 아니겠지.
"99점.., 아니 70점 드릴게요."
"채점 기준이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니니?"
무엇이 기준인지는 모르겠다만 줬다 뺏으면 시무룩해진다.
어쨌든 이 정도 상대해줬으면 만족했을 터다..
쇼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 나를 츠위가 제지했다.
내 손을 당기듯 붙잡다가 흠칫 놀라 풀면서 말을 이어왔다.
"혼자 말고 함께 해요.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나름대로 기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겉모습은 애긴 하지만 이래 봬도 게임단의 구단주.
낙하산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혼자서는 힘들 거라고 했었지.'
나는 츠타이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이 드넓은 중국에서 나는 혼자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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